요셉, 아리마태아의

[그]Ἰωσήφ απó Ἀριμαθαῖος · [라]Ioseph ab Arimathaea · [영]Joseph of Arimath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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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시신을 내리는 아리마태아의 요셉.

예수의 시신을 내리는 아리마태아의 요셉.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의 시체를 내어 달라고 청해서 무덤에 안장한 명망 있는 의회 의원(마르 15, 43-46 ; 마태 27, 57-60 ; 루가 23, 50-53 ; 요한 19, 38-42). 예수의 제자. 축일은 3월 17일. 동방 교회에서는 7월 31일을 요셉의 축일로 지낸다. 아리마태아 출신인 요셉은 성서에서 예 수의 시체를 안장하는 장면에만 등장할 뿐, 그 외에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가 무덤에 안장된 경위를 기 록한 네 복음서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마르코 복음서는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내어 달라고 청한 것 자체가 '용기 있 는 행위' 였다고 본다(마르 15, 43). 그리고 요셉이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었으며, 빌라도의 허락을 받고는 예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다가 고운 베로 싸서 바위에 뚫린 무덤에 직접 안장시켰다고 전한다 (15, 43. 45-46). 반면 마르코 복음서를 참조한 마태오 복음서는 아리마 태아 요셉이 부자로 예수의 제자였으며, 예수를 안장한 무덤도 그가 만든 새 무덤이었다는 사실을 덧붙인다(마 태 27, 57. 59). 루가 복음서는 요셉이 의회 의원이지만, 예수를 죽이려던 의회의 결정과 행동에 찬성을 한 일이 없었다고 전한다(루가 23, 51). 요한 복음서는 요셉이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숨긴 이유는 유대인들이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예수가 죽은 뒤에야 니고데모와 함께 예수의 시체를 모셔다가 유대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를 감아서 안장했다고 전한다(요 한 19, 38. 40). 학자들은 아리마태아 요셉에 대해 두 가지 점에서 논쟁을 한다. 하나는 요셉의 출신지인 아리마태아의 위치 문제이다. 교회 역사가인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Eusbius Caesariensis, 260/265?~339)는 남서쪽의 릿다 부근이라 한다. 하지만 신약 시대의 아리마태아는 에브라임의 서 쪽이며 예루살렘의 북서쪽에 있는 라마(Ramah), 라마다 임 소펌(Ramathaim-zophim),, 라다민(Rathamin)으로 알려 진 유다 지역의 도시였으리라 추정된다. 이 도시는 사무 엘과 그 부모가 살았던 곳으로(1사무 1, 1. 19 ; 2, 11 ; 7, 17 ; 8, 4), 루가 복음서 23장 51절에는 '유대인들의 고 을' 로 명시되어 있다. 그리스어에서는 전치사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동사 앞 에 위치해 있으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자 요셉이 그 사건을 지켜보려고 아리마태아에서 곧바로 올라왔던 것이 된다. 반면 요셉이라는 이름 앞에 위치하면, 요셉의 출신 지역은 아리마태아인데, 지금은 예루살렘이나 그 부근에 살고 있었던 것이 된다. 학자들은 대부분 후자의 견해가 더 맞다고 여긴다. 더 중요한 또 하나의 논란거리는 아리마태아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안장한 동기에 대해서이다. 각 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마르코는 요셉이 유대인들의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었음을 강조하고, 마태오는 예수의 제자였음을 강조한다. 또한 루가는 최고 의회의 의원이었음을 강조 하고, 요한은 유대인을 두려워하는 제자였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아리마태아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안장한 동 기를 밝히기 위해서는, 요셉이 지방 의회 의원이었는지, 최고 의회 의원이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점이 요셉이 최고 의회 의원이었음을 입증 한다. 첫째, 요셉은 부자였을 뿐 아니라(마태 27, 57), 둘 째 최고 의회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고(루가 23, 51), 셋 째 '의회' 라는 용어가 예수 시대에는 최고 의회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며, 넷째 예루살렘의 최고 의회 의원인 니 고데모와 친분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요셉과 예수의 관계이다. 마르코와 루가는 요셉이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이야 기한다(마르 15, 43 ; 루가 23, 50). 마태오는 한걸음 더 나아가 요셉이 예수의 제자였다고 밝힌다(마태 27, 57). 요한은 예수의 제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외부로는 잘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었다고 전한다(요한 19, 38). 학자들 가운데에는 유대교 최고 의회 의원으로서 경건한 동기로 행동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위경인 《베드로 복음서》에 따르면, 요셉은 예수와 빌 라도의 친구였다고 한다. 또 《니고데모 복음서》에 따르 면, 유대인들은 요셉이 예수가 매장하자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풀 어 주어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요셉은 릿 다(Lydda)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웠다고 한다. 초기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요셉은 여러 문학 작품에 계속 등 장하였다. 특히, 1200년경 발표된 로베르 드 보통의 <아 리마태아 hd'Arimatie)이라는 낭만시에는 최 후 만찬에서 사용된 성배(聖杯)가 요셉에게 맡겨졌다고 한다. 반면, 다른 문헌에서는 요셉이 사도 필립보와 함께 골 지방에서 복음 선포 활동을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요셉은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영국으로 파견되었으며, 왕은 서머싯(Somerset) 주의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 지역을 그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곳에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말러리(T. Malory) 의 《아서의 죽음》(Le Morte d'Arthur)에서는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기사인 갤러해드(Galahad)가 성배의 계시를 받으면서 요셉이 제대 옆에 주교복을 입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 참고문헌  Stanley E. Porter, 《ABD》 3, PP. 971~972. 〔李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