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테아티노 수도회 창립자. 축일은 8월 7일. 티에네의 가스파레 백작과 마리아 디 포르토의 아들로 베네치아 부근 비천자(Vicenza)에서 출생, 두 살 때 부친이 전사했기 때문에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1504년 파도바 대학에서 민법과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고 곧 비천자의 시의원이 되었으며 1506년에는 로마로 가서 교황 율리오 2세로부터 최초의 공증인으로 임명되었다. 1513년, 율리오 교황이 서거하자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고, 1516년 36세의 나이로 사제로 서품된 후, 비천자에 돌아왔다. 그는 거기서 성 예로니모의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불치병 환자들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였다. 1523년 로마로 가서 요한 피에트로 카라파와 바오로 콘시글리에리 그리고 보니파시오 다콜레 등과 함께 테아티노(Theatines)회를 창설하여, 이듬해 교황 글레멘스 7세의 승인을 받았다. 회 명칭인 '테아티노' 는 가예타노가 후일 교황 바오로 4세가 된 초대 총장 카라파 주교의 출생지 이름에서 가져 왔다. 그러나 카라파 주교 역시 가예타노를 창립자로서 섬기기를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테아티노회의 정식 명칭은 '신의 성직 율수 성직자회' 로 재속 사제들로 구성된 성직 수도회이며 공동 생활을 하고 청빈, 정결, 순명의 삼대 서원을 하였다. 설교와 병자 간호, 성직자 신분의 개선을 목적으로 창립된 테아티노회는 특히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일체의 재산을 포기함으로써 당시 재물 축적으로 추락된 사제직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 공헌했다. 회원수가 적고 엄선된 인원으로 다소 귀족적인 분위기였지만 자선 사업에 헌신했고 영성과 전례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특히 전례 연구는 이 회의 특성이 되었다. 1527년 로마가 점령당하자 수도회는 로마를 떠나 베네치아로 피난했는데 여기서 가예타노는 재물을 감추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스페인 군인들로부터 많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1530년, 총장으로 선출된 가예타노는 개혁에 반대하는 이단적인 가르침을 과감하게 물리쳤다. 그의 거침없는 기도와 설교, 성체 신심, 자선 사업, 금욕 생활 등은 교회 개혁 정신의 영적 밑거름이 되었다. 가예타노는 라우라 미냐니와 교신 중에서 성모님이 자신에게 아기 예수를 넘겨주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전한다. 생전에 이미 성인으로 공경을 받은 가예타노는 임종 때에 고신극기를 중지하라는 의사의 말에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재 위에서라도 죽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1629년 8월 7일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시복, 1671년 교황 글레멘스 10세에 의하여 시성된 가예타노는 트리엔트 공의회 전에 있었던 가톨릭 개혁가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인으로 평가받으며 오늘도 신자들에게 특히 사제들에게 무소유의 모범으로 남아 있다. (→ 가톨릭 개혁 ; 테아티노회)
※ 참고문헌 김정진 편역, 《가톨릭 聖 人傳》, 가톨릭출판사, 1987/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출판사, 1987/ 배문한, 《그리스도의 향기》, 성모출판사, 1993/ John Coulson, 《The Saints》, Guild Press, New York/ A. Sagrera, 《NCE》2. 〔裵文漢〕
가예타노, 티에네의 (1480~1547)
Cajetanus da Thi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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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가예타노 성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