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서

[히]יוֹאֵל · [라]Prophetia Ioel · [영]The Book of Jo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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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열두 소예언서 중 두 번째로 등장하는 예언서. 브두엘의 아들 요엘(יוֹאֵל)이 선포한 말씀으로 모아져 있다. [구성과 통일성] 요엘서는 칠십인역과 대중 라틴어 성서인 불가타에서 3개의 장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이 전통보다 후에 생긴 히브리어 성서의 장 구분에서는 2장 28-32절이 3장 1-5절로 계산되어 도합 4개의 장으로 나뉘게 된다. 한국의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영어권의 일부 경우처럼 칠십인역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성서에서 매우 짧은 책 중 하나인 이 예언서의 구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다. ① 머리글(1, 1) ② 자연 재난과 주님의 날(1, 2-2, 17) 메뚜기 재앙과 가뭄(1, 2-20) 주님의 날(2, 1-11) 참회 예절(2, 12-17) ③ 주님의 응답(2, 18-4, 21) 물질적 · 영적 강복(2, 18-3, 5) 민족들에게 내리는 심판(4, 1-17) 이스라엘의 구원(4, 18-21) 지난 백여 년 동안 많은 학자가 요엘서를 여러 시대에 걸친 여러 저자의 작품이라 밝혀 내려고 노력해 왔다. 예컨대 1장 1절에서 2장 27절은 이미 들이닥친 '주님의 날' 을 서술하는 것으로 유배(기원전 578~538) 이전 작품이고, 3장 1절에서 4장 21절은 미래에 일어날 '주님의 날' 을 그리는 부분으로 유배 이후 작품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동안의 많은 연구와 논의를 거치면서 오늘 날에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예언서를 단일한 저술로 간주한다. 요엘이 고대의 어떠한 문학 작품보다도 생생하고 극적인 표현으로 보여 주듯이, 이스라엘 땅에 전무후무한 메 뚜기 재앙이 벌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가뭄으로 한창 어려운 때에 메뚜기 떼가 덮쳐, 조금 남아 있던 초목마저 모조리 먹어 치운다. 생존이 온전히 땅에 매여 있던 옛날에, 이러한 사태는 짐승은 물론 사람들에게까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때에 요엘이 참회하라고 소리 치며 등장한다. 그런데 이 예언자는 하느님의 백성을 멸망의 문턱까지 몰고 간 이 재앙이 한 번으로 끝나 버리는 사건이 아니라고 외친다. 이 재난은 더욱 근본적이고 중요한 사건, 이스라엘인들이 늘 생각하면서 두려움 속에 기다리는 사건, 곧 '주님의 날' 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는 오래 전부터 여러 예언자가 예고해 온 날이다. 기근이 나 메뚜기 재앙이 아니라 바로 이 '주님의 날' 이 요엘 예 언자의 주된 관심사이다. 그리고 이것이 요엘서를 하나로 묶는 중심 주제이다(1, 15 ; 2, 1-2 ; 3, 2-4 : 4, 14-17. 18). [예언자 요엘] 요엘은 '브두엘' 의 아들인데, 이 이름은 구약성서에서 오직 이곳(1, 1)에 한 번만 등장한다. '야훼님은 (참) 하느님이시다' 라는 뜻을 지닌 '요엘' 도 역대기와 느헤미야서와 에즈라서 등 구약성서 후대의 역 대기계 문헌에는 18회나 언급되지만, 그 외에는 사무엘 예언자의 맏아들 이름으로 단 한 번만 사용된다(1사무 8, 1). 이로써 요엘이 오래된 이름이기는 하지만 구약성서 의 후대에 와서 흔히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 구 약성서 어느 곳에서도 요엘 예언자가 언급되지 않는다. 요엘서 자체에서도 이 예언자 개인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런데 요엘의 예언이 유다 지방, 특히 예루살렘과 그곳의 성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그가 유대인이고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였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요엘은 성전에서 거행되는 종교 의식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이사야나 에제키엘처럼 이스라엘인들의 잘못된 종교 의식을 비판하였던 예언자들과는 달리, 그것이 아무런 문제도 지니고 있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가뭄과 메 뚜기 떼의 침입으로 성전에서 매일 바쳐야 하는 곡식 제 물과 제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여러 외적 궁핍보다 더 큰 불행으로 여긴다(1, 9. 13. 16). 또한 그의 많은 표현 도 전례 용어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그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직하던 '전례 예언자' 였으리 라고 추측된다(1역대 25, 3. 5 ; 예레 35, 4 ; 즈가 7, 3 참 조). 다른 한편, 기존의 성서에 정통한 요엘은 선배 예언 자들의 사상을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미 공 포한 말씀을 다시 선포하고 그들의 어구나 어휘를 인용하고 재활용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예언자를 '성서 예언자' 또는 '성서 해설가' 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예언자로서 요엘의 성격을 흐리게 하거나, 그의 독창성을 부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요엘의 시대] 열두 소예언서는 머리글과 관련하여 두 부류로 나뉜다. 호세아서 · 아모스서 · 미가서 · 스바니야 서 · 하깨서 · 즈가리야서는 머리글에 나름대로 연대가 제시된다. 반면에 요엘서와 나머지 다섯 소예언서에는 예언자의 활동 시기와 관련하여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요엘의 시대를 알기 위해서는 이 예언서 안에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서들은 늘 여 러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개별적으로는 상대적인 개개의 암시들을 종합하여 그것들이 자연 스럽게 가리키는 시대를 이 예언자의 활동 시기로 어림 잡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시된 시대는 기원전 9세 기 전반부터 기원전 4세기 전반까지, 500년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다양하다. 4장 1-3절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느부갓네살 임금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많은 유대인을 끌고 간 기원전 587년의 대참사를 시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서술하는 오바디야서의 기록과 비 교해 보면, 요엘서의 이 구절은 사건이 일어나고 상당한 세월이 흐른 뒤에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539년에 는 바빌론 대신에 페르시아가 근동의 패자로 등장한다. 그래서 요엘서에서는 바빌론인들을 언급하지 않고, 나라 를 잃은 이스라엘인들이 이민족들의 희생물이 된 사실만 회상한다. 이러한 유배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듯, 이 예언서에는 임금이나 왕실에 관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 는다. 그 대신 원로들과 사제들이 백성을 이끄는 것으로 되어 있다(1, 2. 13). 그리고 기원전 515년에 재건축된 성전은 다시 백성의 생활 속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였 음을 드러낸다(1, 9. 14. 16 ; 2, 17 ; 4, 18). 게다가 자연 재앙으로 위협을 받으면서도, 하느님 백성의 중심인 성 전에서 모든 전례가 매우 정상적으로 거행된다는 사실도, 느헤미야와 에즈라의 활동 이후의 시대임을 가리킨다. 기원전 587년에 파괴되었던 예루살렘 성벽 역시 오래전에 보수되었음이 전제된다(2, 7. 9). 이 작업은 느헤 미야가 기원전 445년에 한 것이다. 그래서 기원전 5세 기 전반부가 요엘서 저술 시기의 상한선이 된다. 많은 학자가 후대의 첨가문으로 여기는 4장 4-8절에는 시돈이 등장하는데, 이 도시는 기원전 343년에 외적의 침입을 받아 파괴되었다. 그래서 이 연도가 요엘서 저술 시기의 하한선이 된다. 요엘서의 저술 시기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이 예언서의 특징을 밝히는 데에도 큰 몫을 하는 요소는 이른바 전승 비평적 사항이다. 요엘은 다른 어떤 예언자보다도 더 명백한 방식으로 선배 예언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자기의 고유한 메시지를 선포한다. 특히 그의 핵심 주제인 '주님의 날' 에는 이사야서 13장, 스바니야서 1장, 오바디야서 등이 큰 영향을 끼친다. 이 주제와 직결되는 이민족들에 관한 신탁은 예레미야서 46장, 49-51장, 에제키엘서 29-32장, 35장 등, 그리고 '북쪽에서 내려오는 적' 은 예레미야서 4-6장의 도움으 로 꾸며진다. 요엘은 또한 선배 예언자들이 선포한 내용 을 주님의 말씀으로 인용하기도 하고(오바 1, 17 ; 요엘 3, 5), 그들의 말마디나 특수한 표현을 그대로 이용하기도 한다(이사 13, 6 ; 요엘 1, 15 ; 나훔 2, 11ㄴ ; 요엘 2, 6ㄴ 참 조) . 이러한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기원전 4세기 초엽이 요엘 예언자의 시대일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드러난다. 이 시기는 페르시아 제국 시대로, 유대인들은 민족과 땅이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나름대로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느헤미야와 에즈라가 감행한 종교 개혁 덕분에 예루살렘 성전은 유일한 성소로 자리를 굳히고, 그곳의 모든 전례도 이미 잘 정비되어 거행되고 있었다. [주님의 날] 요엘은 '주님의 날의 예언자' 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이 주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하느님 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하여 당신의 통치 를 확립하는 이 종말의 날에 관하여, 그는 어떤 예언자보다도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하느님의 백성에게 지독한 고통을 가져다 준 재난을, 이전의 예언자들이 선포해 온 '주님의 날' 곧 종말의 시작으로 설명한다. 백성도 이 재난이 지금까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였기 때문에, 예언자의 선포에 따라 인간 역사의 끝 날을 쉽게, 그러나 떨리는 마음으로 내다보게 된다. 요엘은 이러한 주님의 날과 관련하여 특별히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한다. 첫째는, 이 날이 단순히 미래의 어느 날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미 시작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현재와 미 래, 인간의 역사와 하느님의 초역사적 개입을 펼쳐 보이며 이 두 범주를 직결시킨다는 의미에서, 이 예언자는 예언과 묵시록이 이어지는 경계에 서 있다고 말할 수도 있 다. 둘째는, 이 주님의 날이 양면성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곧 하느님의 백성에게 멸망이 될 수도 있고(1, 4-2, 17) 최종적 구원이 될 수도 있다(2, 18-4, 21). 이때에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메뚜기 떼와 같은 대군이 밀어닥쳐 하느님의 백성을 전멸시켜 버릴 수가 있다. 그러나 동 시에 선택된 백성이 하느님의 손에 구원을 받을 수도 있다. 멸망의 날을 구원의 날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자비하신 하느님에게 돌아서는 참회이다. 단순히 하느님의 백성에 소속된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율법이나 경신 례에 충실한 것만으로도 구원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이 예언서의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 가는 분기점(2, 12-17)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제라도··너희는 금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2, 12-13ㄱ). 그런데 하느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이시 다(2, 13ㄴ). 이러한 하느님은 구원을 위한 준비를 사람들에게만 맡기지 않으신다. 사도 행전의 저자가 오순절에 성령께서 내리신 일을 이야기하면서 직접 인용하는 것처럼(사도 2. 17-21), 하느님은 아들과 딸, 늙은이와 젊은이, 자유인과 노예의 구분 없이 당신 백성의 "모든 사 람에게" 당신의 영을 풍성히 내려 주신다. 그 덕분에 모두 예언자가 된다. 저마다 예언자처럼 하느님과 가까워 지고 그분의 뜻을 알게 된다(3, 1-2). 그럼으로써 이제 참된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은 당신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주신다(3, 5). → 구약성서 ; 예언서) ※ 참고문헌  H.W. Woff, Dodekapropheton 2. Joel und Amos (Biblischer Kommentar AT XIV/ 2), Neukirchener Verlag, 2판, 1975/ L.C. Allen, The Books of Joel, Obadjah, Jonah and Micha(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T), Eerdmans, 1976/ J. Jeremias, Joel · Joelbuch, Theologische Realenzyklop die XVII pp. 91~97. [任承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