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성 토마스의 Joannes a Sancto Thomas(1589~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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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주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도니미코회 회원으로 서 본명은 후안 푸앵소(Juan Poinsot)이다. [생애 및 활동] 1589년 6월 9일 리스본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페드로(Pedro Pionsot)는 막 시밀리아누스 2세(Maximilianus II , 1527~1576)의 아들인 오스트리아의 대공 알베르토(Albertus, 1559~1621)의 비서였다. 알베르토 대공은 스페인 왕 필리페 2세(Filipe Ⅱ , 1527~1598)가 포르투갈과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통치를 맡기자, 요한의 아버지는 대공을 수행하여 스페인으로 갔다. 그곳에서 포르투갈 여성인 마리아와 결혼하였다. 그녀가 곧 요한의 어머니이다. 요한의 형 루이스는 삼위 일체 수도회 회원으로서 1637~1655년에 코임브라(Coimbra) 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는데, 요한은 1605년 형에게서 공부를 배웠다. 또한 요한은 예수회가 운영하 는 이 대학에서 1년 간 신학을 더 공부한 다음 루뱅(Louvain) 대학에서 스페인 출신 도미니코회원인 토마스 데 토레스(Thomas de Tomees)로부터 신학을 배웠다. 또한 이곳에서 성서학을 연구하였다. 스페인으로 돌아온 요한은 1609년 7월 17일 마드리드(Madrid)에 있는 도미니코회의 누에스트라 세뇨라 다 토차(Nuestra Senira d'Atocha)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1610 년 7월 18일에 서원을 하면서, 수도명을 학문적인 스승 으로 흠모하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 1274)의 이름을 따서 성 토마스의 요한이라 하였다. 1620년부터 요한은 피아천자(Piacenza)와 마드리드에서 신학 강의를 시작하였으며, 이후 알칼라(Alcala)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약 10년 후에 연속해서 두 번 (1630, 1640) 신학 대학 학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이 기간 동안 그는 줄곧 스페인 최고 종교 재판관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를 얀센주의자라고 고발하는 무리들도 많았으 나, 그가 정말로 얀센주의자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스페인에서는 학문적으로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을 정 도로 명성이 높았으며, 교의나 교회 문제에 관해서 그에 게 가장 자주 자문을 구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노선을 따르는 그의 신학과 철학에 관한 저술들은 판본을 거 듭하며 출간되었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학설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주석가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당대의 학문적 토론에 활발하게 참여하였으나, 한 번도 토론 상 대방의 기분을 거스르는 일이 없는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수도원의 전통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원칙에 충실했던 그는, 임종을 맞이한 병석에서, "학생들을 가 르치고 글을 써 온 30년 동안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거스르는 것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지극히 겸손하고, 가르치는 일에만 헌신했던 요한은 교회와 수도회가 제시하는 많은 명예로운 자리들을 거절하였다. 1643년에 스페인의 왕 필리페 4세(1605~1665) 는 그를 왕의 고문으로 위촉하였다. 요한은 이를 받아들 이지 않으려 했으나 수도회에서 받아들일 것을 명하여 어쩔 수 없이 수락하였다. 하지만 이듬해 6월 17일 스페 인 프라가(Fraga)에서 생을 마쳤는데, 그의 사망 원인은 확실하지 않다. 열병으로 사망하였다는 설도 있고, 왕의 고문으로서 왕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시기한 반대파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저술 및 사상] 요한은 서한들과 가톨릭 교의서들, 교의 요약서 《콤펜디움》(Compendiun)과 같은 글들을 통해 서 가톨릭 교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요약서는 1640년 마드리드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스페인어로 7판이 출판되었으며 이탈리아어 · 라틴어 · 폴란드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필리페 4세를 위해서 올바른 고해성사를 위한 지침을 저술하였으며, 사망 직전에는 행복한 임종 준비에 관한 논문도 썼다. 그의 첫 번째 대작인 《토마스 철학의 역정》(Cursus Philosophicus Thomiscus)은 1631~1930년 사이에 16개의 판본이 출간되었다. 두 부분으로 구성된 이 저술의 첫 부분은 형상론과 질료론을 다루고 있는데, 근대와 현대 가톨릭 사상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논리 방법의 원천이 되며, 둘째 부분인 <자연 철학>(Philosophia Naturalis) 은 물질적 존재와 심리학에 대한 토마스 철학적 사유를 정확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신학의 역정》(Cursus Theologicus)은 토마스 아퀴나스 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의 주석서로서 이 책의 순서에 따라서 저술되었다. 이 저서에서 요한은 신학의 본질에 관한 개관을 제시한 뒤에 후기 종교 개혁 시대의 새로운 사고에 따라서 기초적인 신학 문제들에 대한 사유를 전개하지만, 반종교 개혁적인 시각이나 목적을 염 두에 두고 있지는 않았다. 《성령의 은사》(Gifts of the Holy Spinit)에서 그는 성서, 특히 아가서와 요한과 바오로 사도의 서간, 아우구스티 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와 교황 그레고리오 1 세(590~604) ,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Bernardus de Clairvaux, 1090~1153)의 글을 자주 인용하였다. 이 책에서 요한은 성령의 중요한 은사는 영적인 자유라고 설명하였 다. 그에 의하면, 성령의 은사는 하느님과 관련된 문제에 서 능동적인 것이 아닌 수동적인 자세를 지닐 때, 인간을 더욱 충만하게 채워 준다. 성령은 그 은사를 통해서 인간의 마음과 하느님의 마음을 하나로 결합시킨다. 따라서 사랑의 성령을 받기 위해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성령을 향해서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이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하느님의 영은 거부하지 않는 영혼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관상의 삶이다. 영혼은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숨결로 고취되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 성령의 은사는 영혼 안에 영적인 각성과 영적인 사랑의 힘을 통한 희열을 불러일으킨다. ※ 참고문헌  D. Hughes, (NCE》 7, PP. 1070~1071/ V. Rodriguez, VIII, pp. 710~714.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