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묵시록
默示錄
[그]Αποκάλυψις Ἰωάννου · [라]Apocalypsis B. Ioannis Apostoli · [영]The Book of Reve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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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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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3세기경 파피루스에 그리스어로 쓰여진 요한의 묵시록 일부.
신약성서의 마지막 책이며, 사도 요한이 저자로 여겨 져 온 신약성서의 유일한 묵시 문학 작품. 이 묵시록의 저자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영광과 악의 세력에 대한 승리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승리는 '이미' 역사 안에 와 있지만,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승리는 '아직' 이 역사 안에 오지 않았다. 왜냐하 면 공동체는 그리스도처럼 완전한 승리를 아직 거두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묵시록은 하나의 철학, 더 정확히 말하면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신학 서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저자는 그리스도 사건의 빛 속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홀로 봉인을 떼실 수 있는 분이시며, 악과의 오랜 싸움 후에 찾아 올 선의 승리인 역사의 비밀을 드러낼 수 있는 분이다. 결국 역사는 사랑의 현시로 바뀌게 된다. 순교자들은 자 신들의 고통과 죽음으로써, 또 자신들의 기도로 그리스 도의 승리가 확실하다는 증거를 보여 준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인 교회를 위한 희망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 자] 묵시록의 저자는 구약성서에 정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저자는 구약의 20여 권에서 245회나 인용 하고 있다. 특히 이사야서 · 다니엘서 · 에제키엘서 · 시 편 · 출애굽기 · 예레미야서 · 즈가리야서 등에 능통하며, 유대 문학에도 정통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또한 저자는 자신의 저서에서 '사도' 라고 지칭하지 않으며, 오히려 '예언자' 로 자신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원래 작가에게 어떠한 이름을 부 여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오래된 문제이며 오늘날에도 계속 논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확실한 해결은 없다. 하지만 2세기까지 묵시록은 일관성 있게 사도 요한의 작품으로 인정되어 왔다. 유스티노(100~165)는 "그리 스도의 사도들 중의 하나인 요한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우리들과 함께 있었다. 그에게 있었던 계시에서 천년 왕 국설을 예언하였다" (《PG》 9, 669)고 전한다. 또한 이레네 오(130~200)는 "주님의 제자 요한이 묵시록에서···(《PG》 7, 1040. 1068. 1192)라고 하였으며, 알렉산드리아의 글 레멘스(150?~215?)는 "옛이야기가 아니고 참된 대화인 옛이야기를 들어 보라. 죽음의 박해가 끝난 다음 파트모 스에서 에페소로 되돌아온 요한은···묵시록에서 요한이 말한 것과 같이"(《PG》 9, 328. 648)라고 하였다. 그리고 테르툴리아노(160~223)는 "성서에서도 옷을 언급하면서 육신의 희망을 유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실은 요한의 묵시록에서도···(《PL》 2, 834)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든 교부들이 동일한 의견을 낸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묵시록의 저자가 제4 복음서의 저자와 동일한 인물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제시한 인물은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오(Dionysius Alexandrianus, 190~265?)이다. 그 는 요한 복음과 묵시록을 비교하면서 복음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빛 · 생명 · 진리 · 은혜' 등의 용어들이 묵시 록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말하였다. "이 저자가 야고보의 형제이며 제베데오의 아들인, 요한 복음과 교회 서간을 쓴 사도 요한이라고 동의하기에 어렵다" (Eusebius, Historia Ecclesiastica, 7, 25, 7) . 사실 저자를 밝히기란 참으로 어렵다. 묵시록에서는 단지 요한이라는 이름만 언급되지 어떤 요한인지를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사도 요한이라고 적용 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제기되기 때문이다. 사실 묵시 문학의 특징 중 하나는 가명이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가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의 내용을 하느님 계시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한에 있어서 그렇다. 그러나 굳이 저자에 대하여 밝히자면, 현대에는 요한의 계열에 속하는 작품으로 보며, 요한의 제자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저작 연대] 이레네오의 증언에 의하면 저작 연대는 1 세기 말경으로 나타난다. 이레네오는 《이단을 거슬러》 (Contra Haereses)라는 글에서 "계시를 본 다음부터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기에, 거의 우리들의 시대에, 즉 도미 티아누스 통치 말년에 ···" 라고 기록하며 묵시록의 작성 연대를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 말년이라고 전하고 있 다. 책 자체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면 교회와 로마와의 관 계가 사도 행전에 나타나는 것과 다르게 나타난다. 즉 사 도 행전의 시대보다 후대의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묵시록에서는 사도 행전과는 달리 황제 숭배 사 상이 아주 깊게 나타나 있다. 따라서 묵시록은 사도 행전 의 시기보다 늦게 작성된 것이며, 황제 숭배의 사상이 강 하게 강요된 시기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통적으로 작성 연대는 황제 숭배의 사상이 가장 강하게 요 구되었던 도미티아누스 황제 말년 곧 95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학적 형태] 요한의 묵시록은 묵시 문학 작품이다. 그러나 구약성서에서 시간적 차이를 두고 연결되었던 예 언과 묵시가 이곳에선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묵시록을 저술하면서도 자신을 예언자로 느끼고 있다(10, 11). 또한 서문에서 자신의 작품을 '묵시록' 이라고 부르 고 난 뒤에도 그것을 마치 '예언의 말씀' (τους λόγους της προφητεία)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특별히 결론 부분(22, 7. 10. 18. 19)에서 강조되어 나타난다. 이처럼 요한의 묵시록은 마치 묵시와 예언의 새로운 종합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 묵시록이 하나의 긴 편지인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책에서 발견되는 많은 요소들은 그것을 다시 보도록 한다. 물론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 다른 사도들의 편지 서두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형식으로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1, 4)라고 하며,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화 가 (내리기를 빕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만을 갖고 편지라고 단정할 수가 있겠는가? 편지가 아니라면 왜 서간문의 서론처럼 '은총과 평화' 를 기원하며, 주소를 명백히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로 정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묵시록의 전체적인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할 것이다. 묵시록은 한 사람이 읽고 많은 사람이 듣는 관계로 구성되어 있음을 1장 3절에서 볼 수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부분(22, 7ㄴ) 과 22장 6-21절이 그러한 분위기 속에 있음을 알 수 있 다. 또한 책의 진행 과정에서 경청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함으로써 전체 맥락이 단절됨을 볼 수 있으며(13, 9. 10. 18), 마지막 인사인 "주 예수의 은총이 모든 이와 함께" (22, 21)라는 말은 명백히 전례적 모임의 상황임을 알게 하여 준다. 이처럼 묵시록은 교회에 보내진 하나의 글로써 전례적 모임에서 읽혀지고 들려지고 해석되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전체적 내용 안에서 자주 반복되는 전례적 청원은 저자의 이러한 의도를 확인해 주고 있다. 결국 묵시록이 완전히 예언으로 발전하 기 위해서는 전례적 모임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적 구조] 초기 교부들의 주석서에서 간접적으로 또 부분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문학적 구조에 대한 문제 는 금세기 초에 확실한 형태를 갖고 나타났다. 이것은 묵 시록을 여러 가지 출전(出典)으로 구분하는 19세기 독 일계의 문헌 비판에 대한 역반응으로 생긴 것이며, 작품 전체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묵시록을 확정된 문학 구조 안에서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묵시록의 문학적 구조를 정의하려고 하는 시도는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부분적으로 만 일치를 이루고 있고, 결정적인 해결을 얻기에는 아직도 요원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을 갖고 묵시록의 구조를 본다면, 다음과 같이 할 수가 있다. 서 언 : 1, 1-3 제1부 : 1, 4-3, 22 제2부 : 4, 1-22, 5 4, 1-5, 14 : 묵시록 본문의 서론 6, 1-7 ,17(7, 1-17) : 봉인의 장 8, 1-11, 14(10, 1-11, 13) : 나팔의 장 11, 15-14, 20(14, 1-20) : 징표의 장 15, 1-18, 24(17, 1-18, 24) : 대접의 장 19, 1-22, 5(21, 9-22, 5) : 묵시록 본문의 결론 결 론 : 22, 6-21 서언 : 이 부분(1, 1-3)은 묵시록 전체의 서언으로써 계시의 원천과 내용, 그리고 그 계시를 듣는 사람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제1부 : 이 부분(1, 4-3, 22)은 묵시록의 사목적인 부분에 해당하며(1, 11의 '네가 보는 것' 에 해당하는 부분), 일 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1장 4-8절은 많은 구약성서의 인용을 통하여 왕으로서 메시아의 영광 스러운 재림과 장엄한 착좌식, 그리고 하느님 백성에 대 한 미래의 통치를 말하는 부분이다. 이를 통해 이 묵시록이 무엇을 위한 기록인가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한편 1 장 9-22절에서는, 환시 중에 나타난 그리스도가 묵시록 의 저자에게 환시를 통하여 드러나게 될 모든 것을 기록 하고 일곱 개의 교회에 보내라고 명령한다. 이 일곱 교회 는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를 가리키며, 동시에 일곱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통하여 전체 교회를 가리키기도 한다. 2-3장까지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일곱 개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 편지에서 그리스도는 각 공동체의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질책과 칭찬, 그리고 약속들을 한다. 모든 편지는 비록 약간의 차 이는 있지만, 동일한 양식에 따라 쓰여지고 있다. 곧, 각 편지는 아래와 같은 6개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첫 번째는 '주소' 이다. "~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라고 함으로써 각 교회의 지리적 위치를 규정한다. 두 번 째는 '그리스도의 자기 소개' 로 "이것은 ~가 하는 말이 다"라고 한다. 장엄하고 예언적인 이 형식은 구약과 신약의 권고문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으며, 여기서는 이 표현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각 지역 교회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 준다. 세 번째는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각 교 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판단' 이다. 그리스도의 이 기능은 "모든 교회는 내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 23)라는 말로 특히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네 번째 요소는 각 교회의 상황에 따른 특별한 권고 로, 기억(2, 5 ; 3, 3)과 회개(2, 5. 16. 21. 22 ; 3, 3. 19)로의 초대란 점이 특징이다. 다섯 번째 요소는 '성령의 말씀을 알아들으라는 일반적인 권고이다. "귀 있는 자는 영이 교회들에게 말씀하 시는 것을 들어라"라는 표현은 일곱 개의 편지 전체에 나타난다. 귀 있는 자' 라는 표현은 묵시 문학이나 지혜 문학에서 단순히 들을 수 있는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적인 여유와 그 받아들인 것을 반성하고 실제로 지혜롭게 적용할 수 있는 것 을 뜻한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귀 있는 자' 는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자를 의미한다. 마지막은 '그리스도의 약속' 으 로, "승리한 이에게는 ··· 을 줄 것이다" 라고 한다. 누구든지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은 선물이 약속된다. 이 선물의 최종적인 실현은 종말론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제2부 : 미래의 사건을 기술하고 있는 제2부(4, 122, 5)는 크게 여섯 단락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첫 부 분(4, 1-5, 14)은 제2부의 서론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 에서는 묵시록의 중심 내용이 시작하는 봉인을 떼기 전 의 상황으로 천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4장에서는 창조주이신 하느님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반면, 5장에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구세주이며 어린 양이신 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두 번째 부분(6, 1-7, 17)은 일곱 개의 봉인을 떼면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한편 7장 1-17절은 삽입구로 봉인의 장에서 생긴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 시하여 주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일곱 번째의 봉인(8, 1)은 아무런 내용이 없으며 단지 본론의 세 번째 부분인 나팔의 장(8, 2-11, 14)까지를 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나팔의 장은 다음에 따라올 세 가지 징표의 장 (11, 15-14, 20)까지를 열어 주기 위하여 마지막 세 개의 나팔을 세 개의 재난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9, 12). 한편 이 부분의 삽입구(10, 1-11, 13)는 나팔의 장에서 생긴 문제들에 해답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들에 대한 확고한 주님의 보호를 약속해 주고 있다. 네 번째 부분(11, 15-14, 20)은 세 가지 징표의 장이다. 이 부분에서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그분의 증언 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하늘의 징표를 보여 주며, 동시에 그들이 겪게 될 많은 시련과 고통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 부분 또한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삽입구(14, 1-20) 를 통해 속량된 사람들을 미리 보여 주며, 동시에 심판을 미리 예고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말씀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고 있다. 다섯 번째 부분(15, 1-18, 24)은 대접의 장이다. 세 번째의 징표(15, 1ㄱ)는 위의 일곱 번째의 봉인(8, 1)이나 일곱 번째의 나팔이며 동시에 세 번째의 재난(11, 15)처 럼 단순히 일곱 대접의 장을 열어 주는 역할만을 하고 있 다. 마지막 재앙인 일곱 개의 대접의 장에서 하느님의 분 노가 최고조에 달하고 하느님의 신비의 계획이 완성된다. 이곳에서도 역시 삽입구(17, 1-18, 24)에는 창녀 바빌론이라는 표상을 통하여 하느님 분노의 일곱 대접의 장을 구체화시켜 주고 있다. 마지막 여섯 번째 부분(19, 1-22, 5)은 제2부의 결론 부분으로 모든 부정적인 요소 가 그리스도의 장엄한 개입으로 파괴되는 모습과 창조주 이신 하느님의 업적이 충만히 실현되는 모습을 그려 주 고 있다. 또한 삽입 부분(21, 9-22, 5)에서는 모든 것의 완성으로서 어린 양의 아내가 될 신부인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소개하여 주고 있다. 결론 : 묵시록 전체의 결론 부분(22, 6-21)으로 묵시 록의 예언 부분(4, 1-22, 5)에 나왔던 여러 가지 교훈들 을 다시 한번 반복하고 있다. 동시에, 주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빨리 임하도록 우리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며,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축원하며 끝맺고 있다. [이해의 방법] 유대계 묵시록과는 달리 이 묵시록은 신비주의적 비밀 작품이 아니다. 요한은 문서를 봉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있으며(22, 10), 전례적 환경에서 읽혀져야 할 것을 말한다(1, 3 : 참조 : 다니 8, 26). 그렇기에 묵시록의 내용은 기도하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만 이해되고 실현된다. 묵시록의 해석학적 방법을 찾기 위 한 시도들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졌다(예를 들어, 천년 왕국설 · 개요설 · 예언 역사적 방법 · 종말론적 방법 등). 묵시록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모든 해석학적 방법들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특히 문학적 구조와 그곳에 사용 된 상징주의에 대한 것도 알아야 하며, 그것을 실제로 적용시키는 방법도 연구하여야 한다. 문학적 접근 : 무엇보다도 책 전체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이러한 문제가 적어도 중요한 요소에 대해서만이라도 진지하게 다루어졌을 때, 전체적으로 주목할 만한 차원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피상적인 연구가 되기 쉽다. 상징주의 : 묵시록의 상징주의는 문학적 측면과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난해하게 되어 있다. 상징적 대화는 항상 사실적이고 처참한 현실적 표현에서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분리는 묵시록에서 하나의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특별한 기능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여러 가지 발전 단계를 가진 상징적인 원주를 형성한다. 예를 들면, 묵시록 5장 6절에서 기본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어린 양으로 표현된 구원자인 그리스도이다. 이러 한 분위기에서 첫 번째 단계를 가지게 된다. '서 있는 어 린 양 을 통해 그리스도가 어린 양으로 소개되며, 그의 부활을 암시하고 있다. 두 번째 단계로 '살육당한 것 같 았다' 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표현하고 있다. 세 번째 단 계인 '일곱 뿔' 은 모든 힘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즉 메시아적인 힘을 의미하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로 '일곱 눈을 가진' 은 저자가 설명하고 있듯이 세상에 보내진 하느님의 일곱 영으로 성령 활동의 전체적인 총체를 뜻하 고 있는 것이다. 이 각각의 단계들을 차례로 생각하며 해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적용은 다음과 같은 가치를 갖게 된다. '죽으시고 또 충만한 메시아적 힘을 갖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성령을 갖고 계시며 그 성령 을 파견하신다. 이 모든 것이 저자에 의하여 '어린 양' 이란 단어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묵시록에서 는 규정되지 않은 상태의 상징적 주제를 제공하고 있기에, 기본적인 상징적 암호의 실제적 가치를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묵시록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의 구실을 한다. 해석학적인 적용 : 상징을 해석하고 구약성서의 언급 을 설명한 다음, 묵시록의 내용을 자기의 구체적 현실에 적용하여야 한다. 이 적용 과정에서, 묵시록의 해석학은 자신의 정점에 다다르며, 두 가지 기본 요소가 나타난다. 객관적 요인으로 신비가 있다. 묵시록에서 이것은 역동 적인 발전 단계에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의미하고(10, 7), 은유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암호로 풀어야 될 원초적 상징의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1, 20 ; 17, 5. 7). 다른 하나는 주관적 요소로써 지혜이다. 묵시록에서 이것은 항 상 상징을 적합하게 판독하고 설명하며, 구체적 생활에 그것을 적응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13, 18 ; 17, 9 참조). 〔종말까지 공동체의 상황]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분이 영광을 받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하느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의 대립이 이 지상에 있을 것이다. 지상에서의 이 마지막 대립의 주된 초점은 이 시간 동안 지상에 하느님의 통치를 선언하는 표상인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피로써 세상으로부 터 구원된 사람들이다(5, 9). 그리고 죄의 권세에서부터 해방된 사람들(1, 5)이기에 하느님을 위한 한 왕국을 형 성한다. 하느님의 왕국은 종말론적 미래에 전 우주 안에서 실현될 것이다. 악마적 세력의 정체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실체를 통하여 드러난다. 참된 하느님의 승리는 사탄의 승리처럼 보이는(11, 7 ; 13, 7) 순교자들의 죽음 을 통하여 나타난다. 왜냐하면 순교자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통하여 사탄의 왕국을 이겼기 때문이다. 사탄의 권세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항하여 싸움을 건다. 왜냐 하면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짐승을 알고 그것에 경배하는 것을 거절하기 때문이다. 비록 신자들은 죽임을 당하지만 하느님에 의해 악의 세력이 정복된 다음에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5, 10). 이처럼 요한의 묵시록은 유대계 묵시록과는 달리 현재의 고통의 의미를 역사의 신적인 계획에 의하여 해석하 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현재를 이해함 으로써, 즉 하느님 왕국의 도래를 통하여 그 의미를 제시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가 하늘 에서 영광을 받고 다스리는 원인이 되었듯이, 죽음을 통 한 순교자들의 승리는 지상에 대한 하느님의 통치가 온다는 것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다(6, 9-11). 이것은 심판을 통해 하느님 반대 세력을 완전히 파괴시킨 다음에 실현될 것이다. 저자의 의도에 의하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박해는 마지막 시기가 도달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피로 서 하느님의 왕국을 이룩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지상에서의 사탄적 권세의 통치가 파멸한다는 '표징' 이 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미' 그러나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것의 주된 초점은 묵시록에서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통하여 그리고 공동체 안에 이미 하느님의 왕국이 현존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묵시록, 요한의 ; → 묵시 문학 ; 신약성서 ; 알파와 오메가 ; 요한 사도 ; 종말 ; 천년 왕국설) ※ 참고문헌 R.J. Bauckham, Climax of Prophecy : Studies in the Book of Revelation, Edinburgh, Clark, 1993/ M.-E. Boismard, Notes sur I'Apocalypse, 《Revue Biblique》 59( 1952), pp. 161~181/ W. Bousset, Die Offenbarung Johannis, Göttingen, 1906/ G.B. Caird,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St. John the Divine, New-York, 1966/ R.H. Charles,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Ⅱ, ICC, Edinburgh, Clark, 1920/ A.Y. Collins, The Apocalypse(Revelation), The New Jerome Biblical Commentary, Englewood Cliffs, Prentice-Hall, 1990, pp. 996~1016/ - Eschatology in the Book of Revelation, 《Ex Auditu》 6(1990), pp. 63~721 A. Feuillet, The Apocalypse, New York, 1965/ U. Vanni, La struttura letteraria dell'Apocalise, Brescia, 1980/ J. Roloff, Revelation, Minneapolis, Fortress, 1993/ P. Schaff, History ofthe Christian Church I New York, Scribner, 1882/ H.B. Swete, The Apocalypse of St. John, London, 1906. 〔閔丙燮〕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