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복음서

福音書

[그]Κατά Ἰωάννην · [라]Evangelium secundum Ioannem · [영]The Gospel of Saint John

글자 크기
9
요한의 복음서 시나이 사본(4세기경).

요한의 복음서 시나이 사본(4세기경).


예수의 제자인 요한이 집필하였다고 여겨져 온 신약성 서의 네 번째 복음서. [특 징] 신약성서의 정경에서 '요한의 복음서' 로 알려진 이른바 제4 복음서는 공관 복음서와 달리 독자적인 전승 자료로 엮어진 특수 복음서이다. 우선 나자렛 출신 예수는 신적인 영역에서 인간 세계로 파견된 하느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고 명확하게 제시하면서 신앙을 촉구한다(3, 16 : 10, 10 : 20, 30-31). 즉, 하느님의 계시자 로서 영원 속에 예수의 신적인 선재(先在)를 내세운 점 이 특이하다. 예수는 로고스(λόγος) , 즉 말씀이 육화한 하느님의 외아들이요(1, 14 ; 참조 : 1, 18 ; 3, 16. 18), 본 질적으로 하느님과 동일한 분이며(1, 1-3 ; 10, 30 ; 14, 9), 지상에서 아버지 하느님과 일치된 일을 행함으로써 (5, 17-19) 하느님을 알려 주고(1, 18 ; 참조 : 3, 34) 영광 을 드러내면서도(17, 4) 수난을 겪지만 생명의 근원이요 (11, 25-26) 길 · 진리 · 생명이며(14, 6) 세상의 구원자라는 것이다(4, 42). 요한 복음서도 공관 복음서처럼 초대 교회의 다양한 전승들을 기본 자료로 하여 엮어진 교회의 책이다. 달리 말하자면 오랜 기간의 전승 과정을 거쳐 완성된 복음서이기 때문에, 당시 교회가 직면한 신학 · 사상적인 문제나 과제들이 반영된 문헌이다. 특히 요한 복음서는 공관 복음서에 비해 전승 내용들이 심도 있게 음미되고 재해석됨으로써 깊은 신학 사상이 반영된 복음서이다. 그렇 다고 역사적인 사건 보도가 경시되었거나 역사적인 신빙 성이 희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에 관한 역사적 · 지상적 사건들을 신앙의 눈으로 관찰하고, 거기에 담긴 계시 내용을 신학적으로 서술 · 묘사했기 때문이다. 사실 요한 복음서의 저자에게는 예수의 지상 활동이나 사건에 관한 증언을 통해 예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려는 신앙의 안목과 의도가 우선이었다(20, 30-31 참조). 따라서 요한 복음서에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예수의 신비스러운 인격에 관심의 초점이 집중되어 있다. 달리 말하자면 예수가 누구이냐보다는 계시된 예수를 믿느냐 거부하느냐의 여부, 곧 응답을 촉구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공관 복음서의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를 복음 선포의 주제로 가르치며 믿음을 촉구한다(마르 1, 14-15). 반면 요한 복음서의 예수는 자기 자신을 계시하고, 아들로서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생명(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선포한다. 즉 하느님의 나라 대신에 예수 자신이 자리하고, 예수를 통해서만이 생명을 얻어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예수를 믿고 함께하는 자만이 하느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예수의 기적 사화에서도 사람들에 대한 예수의 동정이나 자비보다는 오히려 예수 자신의 신적인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는 데 초점이 모아져 있다. 이것은 예수의 자기 계시가 곧 하느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데 기여한다. 그러므로 요한 복음서의 예수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계시하거나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촉구하고 자기 자신을 선포하도록 함으로써 복음 선포의 주체요, 동시에 객체로 소개된 셈이다. 요한 복음서가 이런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요한 복음서가 예수에 관한 모든 것을 서술 · 묘사했다 거나 신약성서의 메시지를 대변할 만한 유일한 복음서라고 할 수는 없다(20, 30- 31 ; 21, 24-25 참조). 즉 요한 복음서도 신약성서의 다른 책들과 함께 읽혀져 보완되어야만 한다. 각 책마다 고유한 신학적인 관점이 있고, 그 관점은 당시 시대적인 정황 곧 삶의 자리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관 복음서와의 관계] 요한 복음서와 공관 복음서의 상관 관계에 대해 말할 때, 주로 제기된 물음은 요한 복 음서의 저자가 공관 복음서의 전승 자료나 본문을 알고 있었으며 편집시 이용했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특수 전 승 자료를 갖고서 편집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 성 서학계의 경향은 후자의 견해를 받아들이면서도 공관 복음서와의 관계는 구두 전승 단계, 즉 공관 복음서가 쓰여 질 무렵이나 그 이전의 전승 단계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말해 요한 복음서와 공관 복음서의 전승사적인 삶의 자리가 서로 다르고, 문학적인 상관 관계는 없다는 것이다. 복음서라는 관점에서는 서로 다를 바가 없지만, 내용 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점은 우선 지리적 · 연대적인 순서이다. 공관 복음서는 예수의 활동이 갈릴래 아 지방에서 시작하여 유다 지방을 거쳐 예루살렘에서 마감되는 것으로 보도한다. 이에 반해 요한 복음서는 예수의 활동이 주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펼쳐지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공관 복음서는 예수가 공생활 동안 단 한 번 과월절을 지낸 것으로 보도하나, 요한 복음서는 적어도 세 번이나 지낸 것으로(2, 13 ; 6, 4 ; 11, 55) 말함으로써 예수의 공생활이 3년 가량 지속되었음을 시사한다. 둘째로 공관 복음서는 예수의 말씀이나 가르 침과 행적 등을 단편적으로 수집해 전하지만, 요한 복음 서는 예수의 기적-요한 복음서는 기적이라는 용어 대신 표징(σημεῖον)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몇 가지를 선별하여 예수의 담화와 연결시켜 보도한다. 셋째로 요한 복음서는 공관 복음서에 비해 예수의 행적을 적게 보 도하지만, 공관 복음서에서 전혀 볼 수 없는 행적들도 보도한다(2, 1-11 ; 3, 1-12 ; 4, 5-42 ; 11, 1-57 ; 13, 1-19 ; 13, 31-17, 26). [종교 · 정신사적인 배경] 요한 복음서의 종교 · 정신 사적인 배경은 복음서가 형성된 역사적인 정황, 곧 삶의 자리를 가리킨다. 당시 공동체의 관심사와 현안 문제들은 역사적인 상황과 결부되었고, 복음 선포적인 전승 과 정과 복음서의 편집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으로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유대교와의 대립 : 요한 복음서는 유독 '유대인들' (οι Ἰουδαῖοι)이란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주로 예수와 제자들에 대한 대립적인 적대 관계를 지닌 유대 지도층을 가리킨다. 사실 이들은 유일신 사상에 익숙한 자들로서 하느님의 아들로 계시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고, 더구나 그런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은 신성 모독으로까지 여겼다. 이들이 처음부터 예수를 죽이고자 한 것으로 보도된 것도 이런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회당에서의 추방이란 표현과 더불어 회당을 중심으로 한 당시 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과의 첨예한 대립을 설명해 준다. 역사적으로 유대교와 그리스 도교의 관계는 《예수 어록》(Q)이 집필되기 이전(50~60 경)부터 이미 대립적이었고, 제1차 유대 독립 전쟁(66~ 70)과 그 후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90년경 야브네(Jabneh, Jammia)에서 유대교를 재건할 때 더욱 악화되었다. 이런 상황은 요한 복음서의 삶의 자리 가운데 하나로 여긴다. 특히 유대인들에 대한 대립적이거나 도전적인 표현들과 예수와 함께 머물러야만 한다는 가르침 등은 당시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반그노시스주의적인 경향 : 요한 복음서는 당시의 그 노시스주의(Gnosticismus)적인 사고가 야기시킨 문제들에 맞서 그리스도교적인 신앙의 답변을 제시하여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즉 그노시스주의적인 용어나 사고 방식을 역이용하여 그노시스주의의 그릇된 구원의 길을 폭 로하고, 호교적으로 강하게 서술 · 묘사하였다. 특히 예 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구원론에서 반그노시스주의적인 색채가 부각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육화한 로 고스와 인격적으로 결합됨으로써 하느님을 알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세례자 요한의 추종자들에 대한 호교론적인 경향 : 요 한 복음서는 공관 복음서에 비해 세례자 요한 개인이나 활동에 대한 언급이 적고,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자라는 점만을 분명하게 거듭 밝히고 있다. 그리고 예수는 마치 세례자 요한과 경쟁이나 하는 듯 세례자 요한이 세례 활동을 펼치던 곳에서 세례를 베풀고, 세례자 요한은 그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떠나가 활동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런 현상은 그리스도 인들과 세례자 요한의 추종자들과 원만치 못했던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시사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 서 세례자 요한의 종파에 대한 요한 복음서의 호교론적 인 경향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요한 복음서가 공관 복음서에 비해 예수의 말씀이나 가르침을 좀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예수 친히 말하는 고유한 형식-예를 들어 "진실히 진실히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로 시작하는 예수의 가르침이나 자기 계시 말씀-으로 서술 · 보도하는 것도 이런 맥락 안에서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저자와 책명] 요한 복음서의 저자는 교회 전통상 열 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제베데오의 아들, 야고보 의 형제 요한이라고 말한다. 이 전통에 따라 책명을 요한에 의한 복음서' 또는 '요한의 복음서' 라고 한 것이다. 이런 전통은 20세기 초에도 교황청 성서 위원회가 교황 비오 10세(1903~1914)의 이름으로 재천명한 바 있다. 하 지만 오늘날 성서학계에서는 이런 전통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사도 요한이 깊고 폭 넓은 신학 사상을 지닌 요한 복음서의 저자일 수 없다고 내세우며 '요한에 의한 복음서' 대신 이른바 '제4 복음서' 란 책명을 선호한다. 그런데 요한 복음서의 보도에 따르면, 저자는 목격 증인이며 예수의 애제자이다(15, 27 ; 19, 35 ; 21, 24). 물 론 이 제자가 사도 요한과 동일 인물인지는 요한 복음서의 보도 내용만으로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요한 복음서가 애제자의 목격 증언에 바탕을 둔 기록물이라는 점뿐이다. 그리고 이 제자는 예수의 사건과 말씀을 상기하고 믿으면서(2, 22 ; 12, 16 ; 13, 7) 성령의 도움을 받아 증언한(14, 26) 본래 전승자이며, 그의 제자 들 중 어느 한 사람이 복음서(1-20장)를 엮었을 것이고, 후대에 또 다른 제자가 부록 편(21장)을 가필했을 것으 로 추정할 수 있다. 요한 복음서가 일시적으로 기록되지 않았고, 오랜 전승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 것이라고 보는 관점 역시 이를 반증해 준다. 따라서 애제자가 요한 복음 서의 최종 편집자는 아닐지라도 목격 증인으로서 전승자 내지는 본래의 저자라고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제자를 사도 요한과 동일시하거나, 이 복음서의 저자를 사도 요한이라고 내세우는 교회의 전통도 사도 전승에 따른 정경의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는 있다. [저작 장소와 연대] 저작 장소는 복음서가 쓰여진 시대적인 배경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그런데 그 배경은 어떤 뚜렷한 하나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살펴본 배경을 토대로 추리해 본다면, 팔레스티나와 별로 멀리 떨어지지 않는 이방인 지역, 곧 요르단 강 건너편 동부 지역,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에페소 등이 저작 장소로 거론될 수는 있다. 특히 에페소를 가장 유력한 장소로 보는데, 교회 전통과 상충되지 않고 문헌상으로는 비교적 확실하기 때문이다. 저작 연대 역시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1 세기 말엽(90~100)이나 2세기 초엽(100~110 또는 140)으 로 추정한다. 그 이유는 요한 복음서의 저자라고 알려진 사도 요한이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98~117)의 초기까지 살았다는 교부들의 증언과 80년대 후반(85~90)에 성행 했던 회당 추방이란 표현을 요한 복음서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9, 12 ; 12, 42 ; 16, 2). 그리고 2세기 초에는 요한 복음서가 이미 이집트에 알려진 것으로 문헌상 증명되었고, 2세기 중엽에 쓰여진 그노시스주의적인 문헌 이나 교부들의 문헌에서도 요한 복음서의 본문이 인용되거나 언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합리적이고 공통적인 추정 연대는 90~100년 사이이다. [저작 목적] 신약성서 가운데 요한 복음서의 저자만이 유일하게 저작 목적과 동기를 명시하고 있다. 즉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예수 에 대한 믿음을 가짐으로써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가 행한 수많은 표징들 가운데 몇 가지만 골라서 기록하였다는 것이다(20, 30-31). 결국, 예수가 행한 표징 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 이라는 믿음을 갖도록 이끌고 또한 지속적으로 믿어서 구원을 얻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으며, 이런 표징들을 기록한 책은 인간 구원을 알리는 기쁜 소식의 보도 내용, 곧 복음서라는 것도 시사한 셈이다. 따라서 표징은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믿도록 이끌어 주는 수단이나 매개체이 며, 인간은 누구나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은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한 유일무이한 필수 조건이다(3, 18-21 ; 5, 24). 이런 사상은 요한 복음서 도처에서 수시로 언급됨으로써 재확인 되고 강조된다. [구 조] 요한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 는 하느님의 현존, 곧 예수의 영광이나 때에 집중된 다양한 행적들과 말씀들을 극적으로 묘사하여 보도한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제1부에서는 하느님으 로부터 파견된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적인 공생 활(1-12장), 제2부에서는 하느님께로 귀환하는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별과 수난 및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 한 내용(13-21장)이 보도된다. 보도 내용상 그 특성에 따라 세분화시켜 본다면, 제1 부에서는 머리말, 세례자 요한의 증언 활동과 첫 제자들의 소명 사화, 예수의 자기 계시적인 공생활이 보도되고, 제2부에서는 최후 만찬과 고별 담화 및 고별 기도, 예수의 수난과 죽음 및 부활에 관한 이야기, 복음서의 저작 동기 및 목적 그리고 부록이 보도된다. 그리고 제1부 내용은 예수의 자기 계시가 예수의 행적과 말씀이 연계된 표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도되었다고 하여 표징의 책' , 제2부에서는 예수의 영광이 수난과 죽음의 때 와 결부된 채 설명되었다고 하여 '영광의 책' 또는 '수난의 책' 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이 두 부분은 서로 분리되어 엮어진 것은 아니다. 즉 예수의 영광이나 때가 제1부에서 수시로 예시되거나 언급되고, 그 내용이 제2부에서 구체적으로 서술 · 묘사된다. 달리 말하자면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의 관점에서 예수의 지상 활동이 극적으로 보도된다. 그리고 이 두 부분의 연결점은 제2부의 첫머리에서도 시사되고 있다. "해방절 축제 전날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야 할 당신의 시간이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세상에 있는 당신의 사람들을 사랑해 오셨으므로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1 1). [주요 신학 사상] 요한 복음서의 신학 사상은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예 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즉 그리스도론적이요 구원론적인 관심 이 요한 복음서의 근간을 이룬다. 특히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란 존칭은 당시 유대인들의 모든 기대를 뛰어넘는 예수의 메시아성을 총체적으로 뜻한다(5, 18 ; 10, 33. 36 : 11, 4). 예수는 영원 속에 하느님과 함께 있다가 지상으로 파견된 외아들로서 아버지 하느님과 일치 하여 그분의 뜻을 실천한다. 달리 말하자면, 하느님은 아들 예수 안에서 당신의 모든 구원 계획과 목적을 이행하 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들 예수를 믿는 것은 곧 아버지 하느님을 믿는 것이요, 아들 예수를 보는 것 역시 아버지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 예수와 하느님의 이런 유일무이 한 관계는, 예수는 하느님의 외아들(독생자)이요, 육화한 말씀이라는 표현에서도 잘 시사되어 있다. 요한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한마디로 말해 하느님의 계시자요 인간 구원자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길이요, 인간과 함께하는 진리의 계 시자이며, 인간에게 참된 양식을 제공하는 생명의 근원이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근본적으로 요구된 것이다. 이런 믿음은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고, 생명을 지금 여기서도 얻어 누릴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리고 인간 가운데 현존하는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끊임없이 활동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얻어 누리는 생명은 또한 종말 기대와 함께 미래 지향적이다. 이와 같이 볼 때, 요한 복음서의 구원론은 현재적이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특성을 지닌다. 이런 특성은 현재적 종말 론 내지는 현실화된 종말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종말에 얻게 될 인간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 금 여기서도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기 때 문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그분을 믿고 그분과 함께 사는 삶 그 자체가 부활이요 생명, 곧 새로운 삶인 것이다. 그러나 그 삶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향한 미래 지향적이기 때문에 종말론적인 지 평선상에 놓여진 긴장된 삶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삶 은 언제나 희망적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영이요 그리 스도의 영인 성령 곧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협조자)가 진리의 영으로서 함께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파라클레토스는 지상 예수가 아버지 하느님을 계시하듯이 부활 승천한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계시하고, 존재의 차원을 달리한 그리스도는 파라클레토스로 인해 이 세상 에서 계속 활동하며, 그 가운데 아버지 하느님께서도 함께 활동하시기 때문이다. 사실 요한 복음서는 첫 장에서부터(1, 12)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20, 31)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서 믿음을 내세우고, 믿음의 동기로서 특별히 표징을 언급 한다(20, 30). 믿음의 대상은 주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파견하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요, 동시에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役 事)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 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적인 일 (기적), 곧 하느님의 역사하심에로 향하고, 예수의 일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활동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표징이다. 그리고 표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 곧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고 동시에 예 수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계시 및 증언 행위이다. 그러므 로 표징은 예수의 정체와 사명을 드러내는 데 기여하고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표징 때문에 갖는 믿음보다는(2, 23-25 : 4, 18) 말씀에 근거한 믿음을 높게 평가한다(2, 22 ; 4, 41-42 ; 17, 20). 여기서 믿음은 말씀에 대한 실천적인 응답으로 부각된 점이 특이하다. 즉 참된 믿음이란 단지 예수의 표징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믿음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에 대한 전인적인 응답 행위라는 것이다. 분명한 증거에 직접 접하지 않고서는 결코 믿지 않겠다고 말한 토마스가 자신의 모든 회의를 극복하고서 믿음에 이르게 된 것도 사실상 "믿지 않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되시오"라는 예수의 말씀을 진정으로 듣고 거기에 응답했기 때문이다(20, 24-28).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결정적인 단계의 믿음은 눈으로 보지 않고서도 믿는 그런 믿음인 것이다(20, 29). 이런 믿음은 예수의 말씀과 그 증언으로 인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요한 복음서의 저자는 오늘도 말해 주고 있다(4, 50 ; 14, 11 ; 17, 20). (→ 로고스, 성서에서의 ; 복음서 ; 신약성 서 ; 요한 사도) ※ 참고문헌  이영헌, 《요한 복음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 4, 분도출판사, 1999, pp. 9~59/ 一, <요한 복음서 해제>, 《신 학 전망》 112호, pp. 119~143 ; 113호, pp. 27~52 ; 114호, pp. 67~89/ -, 《요한이 전하는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생활성서사, 1999, pp. 14~841 R.E. Bro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I ~ XII New York, 1983, XXI-CXXIX/ X. Léon-Dufour, Lecture de l'évangile selon Jean, Tome 1, Paris, 1987, pp. 9~341 R. Schnackenburg, Das Johmesevannelium, Teil. 1, Freiburg, 1973, PP. 1~196/ U. Schnelle,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Göttingen, 1994, pp. 533~584. [李永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