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편지
便紙
[라]Epistolae B. Ioannis Apostoli · [영]Letter of Jo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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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요한 사도가 집필한 것으로 여겨져 온 신약성서 중 가톨릭 서간에 속한 세 개의 편지. [필 자] 요한의 편지들을 읽어 보면 어디에도 필자의 이름을 밝히는 내용이 등장하지 않으며, 요한 2서와 3서 에서는 자신을 일컬어 '원로' (πρεσβύτερος)라고 할 뿐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요한의 편지들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사도 요한이 쓴 편지로 알려져 왔다. 대략 2세기 말부터 그 같은 주장이 시작되었는데, 구체적으로는 무라토리 단편(Fragmentum Muratorianum)의 경전 목록에서 요한 1서의 작가를 요한 복음서의 작가와 동일 인물로 본 때부터이다. 그 후로 2~3세기 교부들 역시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사실 요한 복음과 요한 서신을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사상적인 유사성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요한 1서의 서문(1, 1-4 ; 요한 1-14), 새 계명(1요한 2, 7-11 ; 요한 13, 34), 기본적인 개념들(생명 · 빛 · 사랑 · 진리 외), 그노시스 주의의 영향을 받은 적대자들과의 대립 등이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 차이점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우선 종말론의 차이이다. 요한 복음서에서는 현재적인 종말론이 주축인 반면(3, 18 : 5, 24 ; 11, 25), 요한의 편지들에서는 미래적인 종말론이 눈에 필다(1요한 2. 18. 28 ; 3, 2 ; 4, 17). 또한 '변호자' (παραστάτης)가 요한 복음서에서는 성령을 가리키는 반면(요한 14, 16. 26 ; 15, 26 ; 16, 7), 요한의 편지들에서는 그리스도를 가리킨 다(1요한 2, 1). 그리고 예수의 대속적 죽음에 대해 요한 복음서는 암시적으로 언급하지만(1, 29. 36), 요한의 편지들에서는 직접적인 주제로 다루어진다(1요한 1, 7. 9 ; 2, 2 ; 4, 10). 이런 차이점들을 볼 때 요한의 편지들과 요한 복음서가 같은 작가에 의해 쓰여졌다고 보기는 힘들 다. 하지만 적어도 사상적으로 공감대를 가진 작가들의 글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신약성서에 '요한' 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작품은 모두 다섯 개이다. 학계에서는 이들을 두고 흔히 '요한계 문헌' 이라고 하며, 이른바 '요한 학파' 에서 나온 작품들로 간주된다. 말하자면 요한의 편지들의 작가들은 모두 이 요한 학파에 속한 사람들이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요한 학파의 창시자로는 요한 복음에 등장하는 '애제자' (愛弟 子)로 여겨지는데(13, 23-26 ; 18, 15-16 ; 19, 26-27 ; 10, 2-10 ; 21, 7 ; 21, 20-23), 그가 예수에 대해 증언한 내용이 바로 요한 복음서이기 때문이다(요한 19, 35 ; 21, 24). 말하자면 요한의 편지들은 애제자가 창시한 요한 학파의 일원이 쓴 편지들이다(1요한 1, 1-3 : 4, 14). 요한의 편지들의 필자가 스스로를 '원로' 라 부르고, 다른 지역 교회에 권고의 편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요한계 교회들에서 지 도적인 위치에 있었던 인물로 여겨진다. [집필 연대 · 장소 · 대상] 역사적으로 요한의 편지들 을 가장 먼저 인용한 문헌은 135~137년경에 쓰여진 폴 리카르포(69~155)의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이다(7, 1 :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오신 것을 고백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정녕 반그리스도인입니다"-1요한 2, 18. 22 ; 2요한 7). 따라서 요한의 편지들이 쓰여진 연대의 하한선은 135~137년으로 잡을 수 있다. 요한의 편지들의 집필 연대를 계산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그노시스주의와의 관련성이다. 우선 "요 한의 편지들에 나오는 초기 그노시스주의의 그리스도론 적인 오류는 이레네오 교부가 단죄한(《반이단론》, 1, 26, 1.) 그노시스주의자 체린투스에 의해서 100~120년경 에 체계화되었다"(정양모, 《요한 1 · 2 · 3서》,p. 13). 또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주교(35~107)가 로마로 압송되 던 중에 쓴 일곱 편의 편지에도 교회에 침투한 그노시스 주의를 경고하는 내용이 등장한다(《스미르나 서간》 1~6장 ; 《트랄리아 서간》 9~10장). 그리고 요한의 편지들이 요한 복음(대략 100경)보다 후대에 쓰여졌다는 견해를 따르면, 대략 100~110년경을 집필 연대로 잡을 수 있다. 고대 교회 문헌에서는 사도 요한이 활동하던 지역과 관련해, 소아시아의 에페소가 자주 거론된다(《교회사) 3, 24 ; 《반이단론》 3, 3, 4). 또한 에페소에 그노시스주의 사상이 만연해 있던 시기가 요한의 편지들이 쓰여지던 때 와 겹친다는 점을 감안하여, 집필 장소로는 에페소를 꼽 을 수 있다. 그리고 대략 4세기 초 에우세비오(Eusebius Caesariensis, 260/265?~339)가 쓴 <교회사>(Ἐκκλησιαστική ἱστορία) 그리스도 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쓰여졌다고 여겨지는 이른바 '가톨릭 서간' 목록이 등장하는데, 거 기에도 요한의 편지들이 포함되어 있다(2, 23, 25 ; 5, 18, 5). 실제로 요한 1서를 보면 특정 교회에 보낸 편지라기보다는 '회람 서신' (回覽書信)이라는 인상을 강하 게 풍긴다("나의 어린 자녀 여러분" : 5, 21). 따라서 집필 대상도 에페소를 비롯한 소아시아 지역의 요한계 교회들로 광범위하게 잡을 수 있다(묵시 1, 11 참조). 하지만 요 한 2서와 3서에는 수신인이 뚜렷이 명기되어 있다("선택 받은 주부님과 그분 자녀들에게" : 2요한 1 1 "가이오에게" : 3 요한 1). [그노시스주의의 영향] 요한의 편지들에는 수시로 적대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부인하고(1요한 2. 22), 육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반그리스도인들이다(4, 2-3). 그들은 스스로 죄가 없다고 하며(1, 8. 10), 하느님을 안다(2, 4. 6), 빛 속에 있 다(2, 9), 그분을 보았다(3, 6)고 하며, 현재적인 종말론에 빠져 미래의 구원을 부정했던 것 같다. 적대자들의 사상을 훑어보면 그노시스주의적인 색채가 물씬 풍긴다. 1세기 말~2세기 초경, 요한계 교회는 그노시스주의 사상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의 신성 을 지나치게 강조하느라 그분의 인간성을 부정하였으며, 이원론에 따라 하늘 그리스도와 땅 예수를 구분했다. 이를테면 영적인 존재인 하늘 그리스도가 인간 예수의 육을 잠시 빌렸다가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 살짝 빠져 나갔다든가(분리 그리스도론), 예수란 비록 인간처럼 보이기 는 했으나 사실 환영에 불과했다(그리스도 가현설)는 주장을 하였다(1요한 2. 22 ; 4, 2-3. 15 5, 1. 5. 6 ; 2요한 7). 신앙심이 너무나 돈독했던 나머지 예수가 평범한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차마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노시스주의 인간론에 사로잡힌 이들은 구 원을 받는 것은 '육' 이 아니라 '영' 이라는 주장을 폈고, 세례를 통해 이미 '영' 이 구원되었다는 자신감까지 가지 고 있었다(1요한 1. 6. 8. 10 : 2, 4. 6. 9 등). 예수의 역사성과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는 그노시스주 의자들의 잘못된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은 요한계 교회를 분열로 몰고 갈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그노시스주의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을 공동체 에서 제거시키기 위한 싸움이 요한계 교회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신 학] 그리스도론 : 요한의 편지들에서는 그리스도 가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사상이 유난히 강조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모든 영은 하느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그렇게 고백 하지 않는 모든 영은 하느님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1 요한 4, 2-3 : 2요한 7 참조),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물과 피를 거쳐오신 분이십니다. 물만 거쳐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를 거쳐오셨습니다"(1요한 5, 6). 모두 그노시스 주의자인 적대자들을 의식한 것이다. 그리고 요한 복음 서와 마찬가지로 요한의 편지들에서도 예수의 선재 · 신 성 신앙을 발견할 수 있다(1요한 1, 1-3 ; 5, 20). 그 같은 예수 고백은 유대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이는 요 한계 교회가 이미 유대교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요한계 교회의 독특한 사상이었던 예수의 신 성 신앙은 후에 삼위 일체 신앙(325), 신인 양성(神人兩 性) 신앙(451)으로 자리잡게 된다. 구원론 : 요한의 편지들에는 '하느님과 하나 됨' 이라 는 독특한 구원론이 등장하는데, 이는 본래 요한계 문헌 의 '그리스도론' 에서 출발한 것이다. 요한계 문헌에는 예수가 '말씀' (λόγος)으로서 창조에 동참했고, 빛으로서 생명을 주며, 하느님의 외아들, 아니 바로 하느님 자신과 똑같은 분이라고 한다(요한 1, 1-18). 하지만 요한계 문헌에 나오는 '하느님과 하나 됨' 사상은 비단 예수와 하느 님의 관계를 정의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관계에 인간도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특히 요한 1서에 서 이런 사상이 두드러진다(2, 6 4, 13-16 ; 3, 9. 15). 우선 단순하게 보면, '하느님과 하나 됨' 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인의 내밀한 관계[相互內住]를 표현하는 것이다(정양모). 그리고 이를 종말론적으로 응용시켜 보면, 장차 심판의 날이 되어 하늘에서 이루어지게 될 '하느님 과의 하나 됨' 이 땅 위에서 미리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E. Kasemaman). 이 해설은 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고통과 박해를 겪고 있던 요한계 교회에 하느님의 궁극적인 돌보심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파악할 수도 있는데, 신념과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신앙인의 존재 방식을 표현한다는 뜻이다(G. Strecker) . 새 계명 : 사랑의 계명을 요한계 문헌에서는 유독 '새 계명' 이라고 부른다(1요한 2, 7-11 : 요한 13, 34). 사실 '사랑' 이란 요한 1서의 필자도 시인했듯이 예로부터 있어 온 계명인데도 말이다(2, 7). 사랑의 계명이 갖는 새로운 면은 '하느님과 하나 됨' 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하느님은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세상에 선보이셨다. 그리 고 이런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실천한다면,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즉, 초우주적인 하느님의 사 랑이 예수를 통해 세상으로 들어와 역사화되었으니 그것은 새롭다고 할 수 있다(C.H. Dadd). 바로 '예수식 사랑' 이 새로운 것이라는 말이다(R. Schnackenburg). 교회론 : 흔히 요한의 편지들은 배타적인 성격이 강한 그리스도교 집단(sect)에서 나온 작품들로 간주된다. 사실 요한의 편지들에서는 세상에 대한 강한 부정을 읽을 수 있고, 하느님도 희망이 없는 세상에 예수를 보내 오직 그를 믿는 그리스도인만 구원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분으로 간주한다. 또한, '사랑의 계명' 도 요한계 교회 내부로만 제한시켜 교우들끼리의 '형제 사랑' 은 강조했으나, 보편적인 사랑은 도외시했다(1요한 3, 11-18). 그런 까닭 에 요한의 편지들에는 배타성을 가진 표현인 '우리' 가 자주 등장한다(1요한 1, 4 ; 3, 14. 16 ; 4, 6. 10. 11. 14. 16. 17. 19 ; 3요한 8, 12). 아무튼 요한 서신이 그리스도 인 공동체의 결속력 과시라는 차원을 넘어 편협한 인상 을 풍기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요한의 편지들을 읽어 보면 교회가 심각한 분열 양상에 처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요한계 교회는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부적인 결속력을 다져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요한의 편지들에 등장하는 교회론은 그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요한의 편지들에 하느님과 예수, 하느님과 그리스도인 의 관계에 대해 신학적으로 심오한 반성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누구라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교회 론으로 대변되는 배타적인 성격은 단점으로 지적될 것이다. (→ 가톨릭 서간 ; 그노시스 ; 그리스도 가현설 ; 요한 사도 ; 요한의 복음서) ※ 참고문헌 K.H. 셀클레, 박상래 외 5인 譯, 《신약성서 입문》, 분 도출판사, 1976/ 정양모 역주, 《요한 1~3서》, 200주년 기념 성서, 분도 출판사, 1992/ 박태식, <하느님과 하나됨>, 《예수와 교회》, 우리신학 연구소, 1999, pp. 239~2761 H. Thyen, Johannesbriefe, 《TRE》 17, pp. 186~200/ H.J. Klauck, Der Erste Johannesbrief, 《EKK》 XXII -1, Benziger · Neukirchener, 1991/ G. Strecker, Die Johannesbriefe, 《KEK》 14, Göttingen, 1989/ C.H. Dadd, Union with God, The Interpretation ofthe Fourth Gospel, Cambridge, 1954, pp. 187~200/ E. Käsemann, Christian Unity, The Testament ofJesus, Philadelphia, 1978, pp. 56~78. [朴泰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