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당동 본당

龍塘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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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목포시 용당1동 109518 소재. 1979년 10월 30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6 · 25 순교 사제(몬시놀 안 파트리치오 · 고 토마스 · 오 요한) 관할 구역은 용당1 · 2동, 용해동, 연산동이며, 관할 공 소는 안좌 읍동 · 안창 2개소. [교 세] 1980년 1,544명, 1985년 3,433명, 1990년 4,755명, 1995년 5,382명, 2000년 5,431명. [역대 신부] 초대 김무웅(金武雄) 율 리오(1979. 10~1984. 1), 2대 김충호(金忠鎬) 미카엘(1984. 1~1988. 2), 3대 정형달(鄭亨達) 바오로(1988. 2~1991. 6), 4대 노완석(魯玩錫) 타데오(1991. 2~1996. 1), 5대 서성래 (徐聖來) 아우구스티노(1996. 1~1998. 2), 6대 김계홍(金 桂洪) 요한 그리소스토모(1998. 2~1999. 9), 7대 윤근일 (尹槿一) 요셉(1999. 9~2002. 2), 8대 장용복(張容福) 미 카엘(2002.2~현재). 1970년대 후반 목포시의 신(新) 시가지 조성 계획이 진행되면서, 용해동과 용당동 지역에는 주택 단지와 아파트촌이 날로 증가해 갔다. 이에 이 지역의 거주 인구는 급증하였고, 자연 신자수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지역을 중심으로 본당 신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는데, 목포 지역 사도회 연합회에서는 새 성당을 6 · 25 때 목포에서 피납된 브렌난(P. Brennan, 安) 몬시뇰 · 쿠삭(T. Cusack, 高) 신부 · 오브라이언(J. O'Brien, 吳) 신부를 기 리기 위한 기념 성당으로 결정하고, 골롬반회에서 기증한 목포시 용당 1동 1095-18번지와 1095-22번지의 대지(221평)에 성당을 건립하기로 확정하였다. 1979년 2월 18일, 경동 본당에서는 '새 성당 건립위 원회' 발족을 위한 첫 모임을 개최하였다. 이어 3월부터 건립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목포 지역 5개 본당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고, 7월에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런 가운데 공사가 진행되던 10월 30일, 교구에서는 용당동 본당을 설정하고 김무웅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성당은 1달 후인 11월 25일에 완 공되었으며, 목포 지역 신자들이 각종 성물과 집기류를 기증함으로써 본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갔다. 용당동 본당은 1980년 1월에 평신도 사도직 활동 및 본당 운영의 활성화를 위해 사도회를 조직하였으며, 이 듬해 9월에는 일로 본당의 임성 공소가 본당으로 이관되어 교세도 확대되었다. 그러나 성당 규모가 협소하여 늘어나는 신자들을 다 수용하기 어렵게 되자, 본당에서는 1983년 9월에 인근 대지(115평)를 매입한 뒤, 증축 공사를 시작하여 1984년 3월에 완공하였다. 그 사이 1984 년 1월에 산정동 본당의 안좌 읍동 공소와 안창 공소가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이후 1987년 2월에 본당 앞의 대지(101평)를 새로 매입하여 본당의 시설을 개선하였고, 1992년 11월에는 지하 1층 지상 3층의 교육관 및 사제관을 짓고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또 1997년 8월 성모상 을 교체한 데 이어 10월에 성체 조배실을 마련하였으며, 2000년 9월에 본당 내 소프트볼 동아리가 창단되어 본 당 공동체의 단합에 큰 역할을 하였고, 그 해 11월에는 1층 교리실과 강당을 개 · 보수하여 시설도 정비하였다. 2002년 현재 본당에는 레지오 마리애를 비롯하여 14 개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복음화를 위한 노력과 복음적 생활' 을 사목 지침으로, 전 신자가 함께 노력하고 있다. (→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년사》, 1990.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