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안 본당
龍安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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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전주교구 소속 본당. 익산시 용안면 교동리 427-2 소 재. 석동 본당을 모체로 하여 1976년 12월 16일에 설립되었다. 주보는 성 요셉. 관할 구역은 용안면(교동, 성치, 덕용, 중신 1구 · 중신 2구, 신은, 석동 1구, 석동 2구, 송산, 법 성), 용동면(구산), 성당면(교항, 성당, 두동), 웅포면(제성, 맹산). [교 세] 1977년 704명, 1987년 1,084명, 1997 년 1,057명, 2001년 985명. [역대 신부] 초대 이태주 (李泰柱) 알로이시오(1976. 12~1979. 1), 2대 현유복(玄有 腹) 베네딕도(1979. 1~1984. 1), 3대 김진석(金鎭碩) 마태오(1984. 1~1985. 1), 4대 김병엽(金炳燁) 베드로(1985. 1~1988. 1), 5대 정태현(丁泰鉉) 갈리스도(1988. 1~1989. 8) , 6대 박종근(朴鍾瑾) 안드레아(1989. 8~1992. 1), 7대 강덕행(姜德幸) 요셉(1992. 1~1996. 4), 8대 경규봉(慶奎 奉) 가브리엘(1996. 4~1997. 2), 9대 리수현(李守鉉) 보나 벤투라(1997. 2~2000. 1), 10대 전대복(全大福) 라우렌시오(2000. 1~현재) . [공소 시대] 용안 지역에는 1882년에 두동 공소가 최 초로 설립된 데 이어 1890년 곰골(응동) 공소, 1895년 에 석동 공소, 1896년에 성당리 공소, 그 후 1900년까지 두무다리(1897), 댁말(1898), 은입산(1899) 하댁말 (1900) 등 8개의 공소가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고, 나바 위 본당의 관할하에 있다가 1910년 10월 나바위 본당에 서 안대동(安大同, 현 함열) 본당이 분리됨에 따라 용안 지역은 안대동 본당 관할이 되었다. 석동 공소는 1912 년 12월 1일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의 집전으 로 500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소 경당 봉헌식을 가졌는데, 1921년에 다시 나바위 성당으로 이관되었다. [석동 본당 시대] 1933년 가을, 석동 공소 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공소 건물(50평)과 사제관(18평)을 짓기 시작하여 1934년에 완공되었다. 이후 신자수가 400여 명 으로 급증하자, 석동 공소는 1938년 6월 12일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에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신부 가 임명되었다. 그 후 2대 이성만(李成萬, 이냐시오) 신부, 3대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까지 이어지다가 신부의 공석으로 1942년에는 안대동 성당의 관할이 되었다. 광복 이후 다시 4대 이상호(李尙浩, 아우구스티 노) 신부, 5대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 6대 하한주 (河漢珠, 요셉) 신부로 이어지다가 다시 신부의 공석으 로 1950년 12월 석동 본당은 함열 본당 관할로 이관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거치면서 석동 공소 신자들은 1955년 공소에 있는 구 성당과 사제관을 개축하였다. 1961~ 1963년에는 함열 본당 주임 김반석(金盤石) 신부가 함열 본당이 소유한 논을 매각하여 용안 첨례교회 터를 매 입한 후 전교사 정창모를 파견하면서 교동 · 덕용 · 중신 구역의 신자수가 증가하였다. 또한 미국 가톨릭 복지 협 회(N.C.W.C.)로부터 지원을 받아 1961년부터 시작한 극 빈자 구조 사업인 웅포 하천 부지 개간 사업을 통해 35,000평의 거대한 농장이 마련되었다. 1975년에는 홍 윤표(라파엘) 회장의 노력으로 국유지 경작자 20여 명 의 승낙을 받아 현재의 성당 부지를 확보하였고, 1976 년 6월 현 성당 대지 위에 성당(건평 85평) 신축을 시작 하여 1977년 4월 28일 김재덕(金在德,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1976년 12월 1일 함열 본당과 화산 본당의 구역 조정으로 용안 본당의 관할 구역이 확정되었고, 12월 16일에 함열 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설정되었다. [용안 본당의 설립과 발전] 초대 주임 이태주 신부가 부임한 이후인 1977년 1월 사도회에 이어 성모회, 교리 교사회 등이 발족되었고 진소 · 성당 공소 신자 재교육과 예비 신자를 포함한 청년 연수회가 실시되었다. 1979년 이후 미카엘회가 창립되었고, 성모상 건립 · 분수대 공사 · 잔디 심기 · 진입로 축대공사 등이 있었으며, 1980 년에는 데레사회 발족, 용안 신용 협동 조합 창립, 본당 진입로 포장 공사, 철문 시설, 중 · 고등학교 학생회 발족 등이 이었다. 4대 주임 김병엽 신부는 사목회와 함께 1986년 2월 성당 앞 토지(789평)를 매입하였으며, 3월 에는 국유지를 임차해서 성당 대지로 사용 중이었던 960평의 토지를 매입하여 그 해 9월 성당 앞 토지 매립 공사를 통해 운동장을 만들었다. 5대 주임 정태현 신부 는 수녀 초빙에 대한 사목회의 결의에 따라 교육관(45 평) · 사제관(44평) · 별관(9평)을 신축하고 구 사제관을 수녀원으로 개축하였는데, 6대 주임 박종근 신부 때인 1991년 2월 사랑의 씨튼 수녀회 수녀들이 파견되었다. 7대 주임 강덕행 신부 재임기인 1995년 7월 본당 건물을 헐고 새 성전 신축(성당 129평, 수녀원 35평, 사무실 및 회의실 24평)을 위한 기공식을 하였고 12월에 수녀원, 사무실 그리고 이듬해 4월 성당 신축 공사를 마무리하였 다. 8대 주임 경규봉 신부 재임기인 1996년 11월 25일 이병호(李炳浩, 빈첸시오) 주교의 주례로 새 성당 봉헌식이 거행되었는데, 1,958평의 대지 위에 건평 100평, 연건평 130평의 330석 규모로써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편의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 전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호남교회사연구소 편, 《천주교 전주 교구사》 Ⅱ,천주교 전주교구, 1998. 〔金志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