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정 상시 본당
龍井上市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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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연길교구 소속 본당. 만주 간도성 연길현 용정 상시 소 재. 1936년 9월 용정 하시 본당에서 분리 · 설정되었으 며, 1950년 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주보는 예수 성심. [역대 신부] 초대 아펠만(B. Appelmann, 裵) 발두인(1936. 9~1938), 2대 슈미트(A. Schmid, 安) 알빈(1938~1939) 3 대 한윤승(韓允勝) 필립보(1939~1943. 6), 4대 슈미트 (1943. 9~?) , 5대 김성환(金成煥) 빅토리오(1943~1947.8) . 용정 상시는 본래 용정 본당이 있었던 곳이다. 용정 본당은 활발한 전교 활동으로 교세가 크게 신장됨에 따라 보다 더 넓은 곳으로 본당을 이전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는데, 마침 교우 김인학(金仁學)이 용정의 신 시가지인 하시에 광대한 부지를 기증하자 1932년에 본당을 그곳 으로 이전하였다. 본당 명칭도 용정에서 용정 하시로 바꾸고, 주보도 예수 성심에서 그리스도 왕으로 변경하였 다. 그리고 상시에 있는 옛 용정 본당은 용정 하시 본당 의 유치원 · 학원 용도의 부속 건물로 활용하였다. 그러 다가 1936년 9월에 옛 용정 본당을 다시 부활시켜 용정 상시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용정 하시 본당의 주임으로 있던 아펠만 신부가 임명되었다. 주보는 옛날과 마찬가지로 예수 성심으로 정하였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윤승 신부가 1939년에 3 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한윤승 신부는 갑자기 1943년 6월 평양교구로 파견되었는데, 이러한 갑작스런 조처는 태평양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일제가 조선에서 활동해 오 던 모든 미국인 신부들과 수녀들을 국외로 추방함에 따 라 단지 두 명의 신부만이 남게 된 평양교구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용정 상시 본당은 6월부터 약 3개월 동안 사제 없는 본당이 되었다가 9월에 슈미트 신부가 4 대 주임으로 다시 부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가 다 가기 전에 김성환 신부가 다시 5대 주임으로 부임하였 다. 또한 1945년에는 연길 성 십자가 수녀회(현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 전신) 지원을 마련하여 이신숙(미리암) 수녀와 이현식(임마꿀라따) 수녀가 파견되어 전교 활동 을 돕고, 유치원과 학원의 운영을 담당하였다. 이와 같이 용정 상시 본당은 한국인 본당 신부와 한국인 수녀들만 으로 구성된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에 브레허(T. Breher, 白化東) 주교와 수녀원 장상의 기대와 관심의 대상이었다. 광복 후 용정 상시 본당에서는 옛 학교 자리에 정미소 를 차려 본당의 살림을 보탰는데, 이 정미소 덕분에 식량 난을 겪을 때마다 가난한 이웃을 도울 수가 있었다. 또 본당 신부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에 의해 1946년 5월 22일 용정 하시 본당이 청산을 당한 뒤에도 활동을 계속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강화되는 중국 공산당의 탄압으로 연길교구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던 김성환 신부가 1947년 8월 16일 월남하고야 말았 다. 또한 이옥순(라우데스) 수녀와 김기준(제르트루다) 수녀도 그 해 8월 24일 월남 길에 올랐다. 그러자 용정 해성학교 출신인 임 요셉이 두만강변의 남평(南坪)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슈레플(C. Schrail, 周聖道) 신부를 연필 제조 기술자로 초빙하여 용정에서 살면서 신자들을 돌보게 하였다. 슈레플 신부는 비밀리에 신자들을 돌보았으며, 1947년 크리스마스 때는 연필 공장에서 신자들과 더불어 성탄 미사를 드렸다. 1948년 5월 15일 갑자 기 중국 공산당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며 남평에 갇혔던 신부들을 석방하고 본당으로 돌아가게 함에 따라 슈레플 신부는 용정 상시 본당을 돌보며 신자들과 공개적 으로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주일 미사에 모여들자 중국 공산당은 신자들의 성당 출입을 위협적인 눈초리로 감시하 며 막았다. 이러한 탄압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졌다. 중국 공산당이 1949년 가을에 연길교구 선교사들의 귀 국을 허락하였으므로 슈레플 신부도 출국 허가를 신청했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리하여 슈레플 신부는 용정 시장 민 씨의 도움을 받으며 용정 상시 본당을 계속 지켰다. 그러나 남침했던 북한군이 유엔군에 밀려 용정으로 후퇴하면서 본당은 퇴각한 북한 군대의 병사(兵舍) 로 변했다. 마침내 슈레플 신부는 1950년 12월 24일 여러 신자들과 아침 미사를 올린 것을 끝으로 용정을 떠나 게 되었다. 이로써 용정 상시 본당은 침묵의 본당이 되고 말았다. (→ 연길교구 ; 용정 하시 본당) ※ 참고문헌 王子 주성도, 《하느님의 자비를 영원토록 노래하리라》, 분도출판사, 1993/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 60년사 편찬위원회 편, 《은혜의 60년》,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 1995. 〔徐鍾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