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현5동 본당
龍峴五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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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인천교구 소속 본당. 인천시 남구 용현5동 611-8 소 재. 1984년 2월 23일 숭의동 본당에서 용현2동 본당으로 분리되었다가 1985년 11월 15일 행정 구역 변경으로 용현5동 본당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주보는 세족례. 관할 구역은 용현2 · 5동 전 지역과 신흥동 3가, 승의1 동 일부 지역. [교 세] 본당 설정 당시 1,625명, 1990년 3,554명, 1995년 5,342명, 2000년 6,258명. [역대 신 부] 초대 펠리니(R. Pellini, 방인이) 로베르토(1984. 2~ 1989. 2) , 2대 강근신(姜根信) 미카엘(1989. 2~1992. 2), 3 대 최병학(崔炳學) 바오로(1992. 2~1997. 1), 4대 조성교 (趙誠) 요한 그리소스토모(1997. 1~2002. 1), 5대 최상진(崔尚鎮) 야고보(2002. 1~현재). 숭의동 본당 관할이었던 용현5동 본당 지역의 인구 증 가로 1984년 2월 23일 분리되었는데, 본당 설정 초기에 성당이 없어 박춘기(프란치스코)의 집을 빌려 미사를 봉헌하다가 그 해 12월 콘센트 형태의 가건물 성당을 완성하였다. 초대 주임 펠리니 신부는 사목 행정과 구역 반을 설정하여 본당의 골격의 갖추어 놓았고, 여러 단체를 결성하여 신자들의 활동을 장려하였다. 1986년 말 신자수가 증가하자 새 성당 건립 논의가 대두되어 본당 옆 부지 115평을 매입하였고,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내에 성당 건립 분과를 두어 기금 마련에 노력하였다. 2대 주임 강근신 신부는 기존의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를 그대로 두고 1989년 8월 '성전 건립 추진위원회' 를 결성하여 성당 건립을 위한 새로운 임원단을 구성하였으며, 성당 주변 부지 43평을 추가 매입하고 시유지 25평을 매입하기로 인천시와 합의하였다. 이해 10월에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대지 면적 778.48평, 연면적 980 44평 규모 의 성당과 사제관(연면적 185.37평)을 완공하고, 1991년 11월 23일 맥노튼(W.J. McNaughton, 굴리엘모, 羅吉模)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 4대 주임 조성교 신부는 갈수록 힘들어지는 한국의 농촌 현실을 우려하여 신자들과 아울러 우리농 살리기 운동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으며, 5대 주임 최상진 신부는 냉담자 찾기 운동을 전개하여 본당 사목을 활성화하고자 하고 있다. (→ 인천교구) ※ 참고문헌 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인천교구사》, 인천교구, 1991.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