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 본당

龍湖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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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남구 용호1동 487-9 소 재. 1978년 12월 3일 대연(大淵)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여왕이신 동정 성 마리아. 관할 구역은 용호2 · 4동 전 지역과 용호1 · 3동 일부 지역. [교 세] 1978년 925명, 1982년 2,271명, 1985년 3,097명, 1991년 5,627명, 1996년 6,267명, 2000년 6,633명. [역대 신부] 초대 카니(D. Kearney, 강대식) 디오니시오 (1978. 12~1982. 6), 2대 루스(J.W. Ruth, 조) 요셉(1982. 6~1984. 2) 3대 황태웅(黃泰雄) 요셉(1984. 2~1987. 2), 4 대 한영일(韓永 니콜라오(1987. 2~1990. 2), 5대 김상 호(金相浩) 세례자 요한(1990. 2~1996. 2), 6대 손덕만(孫 德萬) 토마스(1996. 2~2001. 2), 7대 김정수(金正洙) 대건 안드레아(2001. 2~2002. 1), 8대 김형근(金亨根) 블라시오 (2002. 1~현재) . [공소 시기와 본당 설립] 1972년 부산시 당국의 도시 계획에 의한 판잣집 철거로 대신동, 영주동과 좌천동의 일부 주민들이 대연 본당 관할인 용호동 지역에 정착했는데, 당시 이 지역의 신자수는 40여 명에 이르렀다. 이후 지역 신자수의 증가와 관할 본당과의 거리 문제로 인하여 공소 설립이 요구되자, 당시 동항(東港) 본당 3대 주임이었던 트라우너(A.Trauner, 하) 신부는 유치원 건물 을 임대하여 1974년 10월 용호동 공소를 설립하였다. 공소 신자들은 1976년 12월에 '성당 건립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고, 1977년 11월에는 성당 부지 300평을 매입하였다. 1978년 7월부터 공소를 지도하던 카니 신부는 성당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공소 신자들의 성금과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지원금으로 1978년 8월 성당 건축 공사를 시작하여 12월 8일 단층 성당(145평)을 완공하 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한편, 성당 완공 전인 12월 3 일 용호 본당이 설립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카니 신부가 임명되었다. 카니 신부는 부임과 함께 신자들이 본당에 서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사목회를 구성하였으며, 관할 지역을 11구역으로 세분화하였다. [본당의 발전과 성장] 1979년 3월 인보 성체 수도회 분원을 마련하였으며 9월 수녀원(16평)을 신축하였다. 신자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1980년 8월 성당 증축위 원회를 구성하여, 이듬해 10월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1982년 5월 3층 성당(180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성당이 완공된 뒤 부임한 2대 주임 루스 신부는 본당 신심 단체의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가 신병으로 귀국하였고 이어 3대 주임으로 황태웅 신부가 부 임하였다. 황 신부 또한 루스 신부의 사목 방침에 따라 본당의 기틀을 확고히 하고 교세를 확장하는 데 주력하여 본당 단체들을 구성하였고, 동시에 다양한 교육 프로 그램을 통하여 신앙 생활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본당은 성체 조배회, 기도회 등 다양한 신심 단체를 조직하여 사목과 선교 활동을 수행하여 왔으며, 6대 주임 손덕만 신부는 1996년 10월 사제관, 수녀원, 교육관으로 사용할 건물 공사를 시작하여 1998년 7월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156평)을 완공하였다. 이와 함 께 2000년에는 대희년을 맞아 지역의 불우 청소년과 독거 노인들을 보살피자는 취지에서 '자녀 갖기 및 부모 모 시기 운동' 을 펼치기도 하였다. 2002년 1월 11일 용호1 동 본당을 분리 · 설립하면서 778세대 1,892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용호1동 본당 분리 후 8대 주임으로 부 임한 김형근 신부는 미사 전후에 성서 봉독, 묵주 기도 등을 전 신자와 함께하면서 본당의 내실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연 본당 ; 부산교구) ※ 참고문헌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教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金善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