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상탐>

[라]Unam Sanct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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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 상탐>을 발표한, 추기경들에 둘러싸인 교황 보니파시오 8세.

<우남 상탐>을 발표한, 추기경들에 둘러싸인 교황 보니파시오 8세.


교황 보니파시오 8세(1294~1303)가 1302년 11월 18 일에 발표한 교황 수위권에 관한 칙서. 교황은 교황권의 영적 · 정치적 우위를 시행하려고 이 칙서에서 '양검론' (兩劍論)을 펼치며, 교황에 대한 순명이 어떠한 경우에도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배경과 경위] '하나이고 거룩한' (Unam sanctam) 교회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 칙서는 1302년에 소집된 로마 교회 회의의 논의를 거쳐 발표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칙서 작성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 로마 교회 회의의 기록은 보존되어 있지 않다. 절대 왕권을 주장하며 교황과 대립하고 있던 프랑스 왕 필리프 4세(Philippe IV le Bel, 1285~1314)는 프랑스 주교들에게 로마 교회 회의 참석을 금지하고, 로마에 가는 주교들의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1302년 10월 30일부터 로마에서 개최된 교회 회의에서 로마로 여행을 오거나 귀환한 사람을 감금하거나 훼방하는 자는 누구나 파문한다는 칙서를 선포한 데 이어서 11월 18일에 <우남 상탐>이 선포되었다. [구성과 내용] 이 칙서는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전개 되고 있다. 첫째, 오직 하나인 참 교회가 있으며, 그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하나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는 둘이 아니라 하나의 머리가 있을 뿐이다. 둘째, 그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 대리자가 교황이다. 베드로의 사목을 거부하는 자는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양 떼에 속하지 못한다. 넷째, 영적이고 세속적인 두 개의 칼 곧 권력이 있다. 교회가 지니고 있는 영적인 칼은 사제의 손으로 사용되는 것이고, 교회를 위한 세속적인 칼은 사제의 지도를 받아 왕의 손으로 쓰여지는 것이다. 넷째, 가장 낮은 자에서부터 가장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체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므로, 영적인 권력이 세속 권력 위에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영적인 권력은 세속 권력이 그 최상의 목적을 지향하도록 가르치고 악한 권력을 심판할 권리가 있다. 하느님이 부여한 최고의 권력을 거부하는 자는 누구나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이 교황에게 순종하는 것은 전적으로 구원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선언한다. [성격과 사상] 교회의 단일성 등에 관한 교리를 제시하는 이 칙서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Bernardus de Clairvaux, 1090~1153) · 생 빅토르의 후고(Hugues de Saint-Victor, 1100~1141) ·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 1274) 등 여러 저명한 신학자들의 저술을 광범위하게 인 용하고 있다. 필리프 4세의 절대 왕권 주장과 교황의 수 위권 주장이 대립하는 혼란 속에서 발표되기는 하였지만, 이 칙서는 보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칙서의 내 용대로, 교황직의 근본 원리와 세속 권력에 대한 그 적용은 신중한 구분을 하여야 한다. 모든 사람이 교황의 권위 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선언은 구원을 위해서 교회가 하 나여야만 하는 필요성에서 나온 것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소속되어야 하며 또 모든 종교 문제에서 그 머리인 교황의 권위에 순종하 =여야 한다는 것이다(Porro subesse Romano Pontifici omni humanae creaturae declaramus, dicimus, definimus et pronunciamus omnino esse de necessitate salutis). 이것은 교회사상 교회의 일관된 가르침이 되어 왔으며, 1516년의 제5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도 똑같은 의미가 선언되었다(De necessitate esse salutis omnes Christi fideles Romano Pontifici subesse) . 이 칙서는 더 높은 권위인 영적인 권력에 대한 세속 권력의 예속을 천명하고, 거기에서 영적인 권위의 대리자가 세속 권위의 보유자를 선임할 수 있고 또 그 권력 행사가 그리스도교의 법에 어긋날 때에는 심판할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세속 권력에 대한 영적인 권력의 재치권이 그리스도교 도덕률의 수호자라는 교회의 기 본 개념에 근거한다는 것은 분명하며, 그 재치권은 도덕 률에 관련되는 모든 문제에 미치는 것이라는 것이다. [정치적인 대립] 필리프 4세는 중세 유럽의 그리스도 교 국가들에서 매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우남 상탐>이 내포한 가르침에 정면으로 대립하였다. 그는 민족 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한 프랑스인들을 든든한 후원자로 의지하여 절대 왕권을 주장하고, 교회 혹은 주교들 도 국가의 짐을 나누어 지도록 강요하였다. 따라서 프랑스 왕은 이 칙서를 거부하였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프랑스 왕과 대립하면서 강력하고 이상적인 교황직을 수 행하며 유럽과 전세계의 평화를 추구하려 하였지만, 끝 내 수많은 정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필리프 4 세는 교황의 파문에 대하여 공의회에 상소로써 응수하였 고, 1303년 9월 군대를 보내 아나니(Anagni)에 있는 교 황의 성에서 그를 체포하게 하였다. 아나니의 시민들이 2일 후에 교황을 구출하였지만, 이 사건은 교황직의 무력함과 정치적으로 무의미함을 드러냈다. 그는 몇 주 후에 로마에서 사망하였다. 그와 더불어 교황직의 보편적이고 중세적인 우위성은 끝났다. 몇 년 뒤 교황 글레멘스 5세(1305~1314)는 <메루이트>(Meruit)라는 소칙서를 발표하여 필리프 4세로 하여금 칙서 <우남 상탐>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조처해 주었고, 후에 교황청을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기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우남 상탐>의 교리 내용은 결코 손상시키지 않았다. (→ 보니파시오 8세 ; 수위권) ※ 참고문헌  《ODCC》, pp. 1655~1656/E.J. Smyth, 《ANCE》 14, p. 382. 〔姜大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