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Oudot, Paul (1865 ~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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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파리 외방전교회 소 속 신부. 세례명은 바 오로. 한국명은 오보 록(吳保祿). 1865년 11월 28일에 출생하 여 1888년 9월 22일 에 사제 서품을 받고 페낭 신학교에 파견되 었으나 더운 기후를 이겨내지 못하여 곧 조선으로 전임되었다. 1890년 10월 24일 조선에 입국한 우도 신부는 1891년 10월 10일 전라도 고산 차 돌백이(현 백석, 전북 완주군 운주면 구재리) 주임으로 발령받아 사목 활동을 하 다가 1893년 4월 22일 부산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었으 며, 1898년 7월 황해도 매화동 본당 2대 주임으로 부임 하였다. 우도 신부는 매화동 본당 부임 직후에 200여 명 의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었고 3개월 만에 한옥 기와 집 성당을 준공하였다. 빌렘(Wilhelm, 洪錫九) 신부 혼자서 관할하던 황해도 내의 공소가 1898년 청계동 본당과 장연(長淵) 본당이 설립되어 분할 조정되었는데, 우도 신부는 이때 안악군의 상촌 · 안흘 · 동창포 · 곰바위, 장련군(長連郡)의 장련 · 고정동, 신천군(信川郡)의 신설 도 · 귀털몰, 황주군(黃州郡)의 철도(鐵道) 등 9개 공소 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는 많은 토지를 매입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농민들에게 소작을 줌으로써 전교 활동을 활성화시켜 1899년 한 해 동안 500여 명의 영세자가 배출되는 등 본당 교세가 크게 신장되었다. 또 우도 신부는 종교 교육과 문맹 퇴치를 목적으로 황해도 지역 최초의 사학(私學)이라고 할 수 있는 봉삼학교(奉三學校)를 설립하였는데, 봉삼학교는 남자부와 여자부로 구분되어 남학생들에게는 교리 및 한문을, 여학생들에게는 기도문 · 한글 · 가사(家事) 등을 가르쳤다. 아울러 그는 뮈텔 (Mutel, 閔德孝) 주교에게 자신의 사목 및 교육 사업을 도와 줄 수녀의 파견을 요청하였는데, 이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 2명이 파견되어 봉삼학교 여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우도 신부는 1912년부터 봉삼 학교 여자부에 누에치기와 명주실 뽑는 일을 실험적으로 실시하여 효과를 거두면서 양잠 강습소(養蠶講習所)를 개설하고, 그 기술을 널리 보급함으로써 주민들의 소득 증대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그는 매화동 본당에서 약 15 년 동안 사목하면서 전교회 · 성의회(聖衣會) · 예수 성 심회 · 성모 성심회 · 매괴회 등 여러 신심 단체를 조직하고 성영회(聖嬰會) 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우도 신부는 1913년 10월 31일 선종하여 매화동 본당 내에 묻혔다. (⇦ 오보록 ; → 매화동 본당 ; 봉삼학교)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한국 가톨릭 대사전》 4권, 한국교회 사연구소, 1997, pp. 2566~25671 호남교회사 연구소, 《천주교 전주교 구사》 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8/ 한국교회사 연구소 · 대전교구 홍보국, 《대전교구사 자료 제1집 -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서한집》, 천주교 대전교구, 1994. 〔金志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