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영]Uruguay
글자 크기
9권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동부에 위치한 나라로, 공식 이름은 우루과이 동방 공화국(Repúblicica Oriental del Uruguay). 수 도는 몬테비데오(Montevideo). 북쪽과 북동쪽으로는 브라 질, 남쪽으로 라플라타 강 어귀, 남동쪽으로 대서양과 접하고 있다. 면적은 176,215k㎡, 인구는 3,310,000명 (2001). 이 중 스페인계, 이탈리아계 백인이 약 90%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메스티소(mestizo)와 물라토(Mulato), 흑 인들이며 인디오는 거의 없다. 유럽인들이 정착하기 전에 이 지역에는 차루아족(Charruias), 차나족(Chanaes) , 야로족(Yaros)이 살고 있었고 이 들은 과라니(Guaran) 문화를 형성하였다. 1516년 스페인 항해사 후안 디아스 데 솔리스(Juan Dí az de Solís)가 라플라타 강으로 배를 타고 들어왔으며, 스페인 당국의 본격적인 식민화는 1624년부터 시작되었다. 1680년에는 브라질에서 온 포르투갈인들이 라플라타 강변에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투(Colonia del Sacramento)를 세웠다. 1726년 스페인은 포르투갈인을 몰아내고 몬테비데오를 세웠고, 양국 간의 식민지 쟁탈전이 전개되었으나 1777 년 포르투갈이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승인하여 우루과이는 리오데 라플라타 부왕령에 속하게 되었다. 1811년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혁명의 열기가 고양될 때에 우루 과이는 호세 헤르바시오 아르티가스(José Gervasio Artigas) 장군 주도의 독립 투쟁이 좌절되고 1821년 포르투갈령 브라질에 합병되어 시스플라티나 주(Provincia Cisplatina) 로 명명되었다. 1825년 아르헨티나의 지원을 받은 후안 안토니오 라바예하(Juan Antonio Lavalleja) 장군에 의해 독립 투쟁이 재개되어 1825년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에 개입함에 따라 충돌이 지 속되었다. 1828년 8월 영국의 중재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우루과이 영토 불가침 조약을 통해 우루과이의 독립이 인정되었으며, 1830년 헌법 제정과 함께 우루과이 공화국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의 대립 장소가 되었고, 브라질의 원조를 받는 보수파 콜로라도당(Colorados)과 아르헨티 나의 원조를 받는 자유파 블랑코당(Blanchos) 사이의 내 전으로 인해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었다. 1903년에 콜로라도당의 개혁주의자 호세 바트예 이 오르도네스(José Batlle y Ordóñez)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에 점차 정치적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하였다. 1904년 내전이 완전히 종식되었고, 블랑코당과 콜로라도당의 평 화적 공존, 일반 시민을 위한 사회 개혁 및 현대적 공공 행정의 도입이 선언되었으며, 농산물 수출을 통한 경제 적 번영을 바탕으로 의무 교육과 사회 복지 제도의 도입 이 이루어져 '남미의 스위스로 불릴 정도로 이상적인 민주주의 정치를 실현하였다. 이후 대공황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고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 세계의 곡창 지대로 번영을 누리던 우루과이는 급속히 악화된 경제와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심각한 사회 문제를 겪었으며, 국가 통제에 의한 경제 계획과 민족주의적 정치 및 문화적 목표를 갖고 도시 게릴라식 전법으로 수도 지역 내외에서 활동을 전개하는 투파마로스(Tupamaros)가 결성되었다. 투파마로스는 급진적인 노동자와 사회당 이탈 자를 중심으로 결성되어 1963년 7월부터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1965년 이후에는 중산층, 학생, 전문직 종사자들이 조직적으로 가세하였다. 1971년 11월 선거에서 기존의 양당 체제에 반발한 기독 민주당, 사회주의자 및 공산주의자들이 확대 전선 결성을 발판으로 하여 투파마로스의 지지로 대결하였으나 집권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1973년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4명의 군인과 2명의 민간인으로 구성된 국가 안보 평의회(OCSENA)를 통해 국가 권력을 장악하였다. 1984년 국민 투표가 실시된 후 1985년 다시 민간 정부가 들어섰다. 민간 정부는 군부 시대의 비민주적 법을 개정하였고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회복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1986년부터는 군사 정권 기간 중에 발생한 인권 침해의 조사 문제로 혼란을 겪기도 하였다. 교회의 역사 : 1547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 이와 브라질의 일부를 아우르는 라플라타 강 교구가 설정되었고, 1620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교구가 설립되어 이 지역을 관할하였다. 1824년 라라냐 가(Dámaso Antonio Larrañaga) 신부는 몬테비데오 시와 그 지역의 교황 대리로 임명되었다. 교회는 우루과이의 독 립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고 독립 투쟁에 적극적으로 가 담하였는데, 라라냐가 신부는 아르티가스 장군의 조언자 역할을 하였다. 우루과이는 독립을 한 이후 1830년 헌 법을 통해 가톨릭을 국교로 정하여 인디오 선교와 같은 교회 활동에 대하여 보조하였다. 1832년 교황 그레고리 오 16세(1831~1846)는 이 지역을 대목구로 설립하였으 며, 1878년 교구로 설정된 몬테비데오는 1897년 대교구로 승격되었다. 1917년 헌법에 의해 교회와 국가가 분리됨으로써 국교로 인정되었던 가톨릭은 그 지위를 잃게 되었다. 1997년 법원에서는 군사 정권 시기에 실종 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더 이상의 조사를 중지하기로 결정하였지만, 교회는 실종자를 찾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 하고 있다. 2001년 현재 가톨릭 신자는 2,532,000명이고, 대교 구 1, 교구 9, 본당 229개에, 대주교 3, 주교 11, 신부 501(교구 소속 222, 수도회 소속 279), 종신 부제 64, 수사 123, 수녀 1,455명이 있다. ※ 참고문헌 강석영, 《라틴 아메리카史》 하,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6/ A.D. Pirotto, 14, pp. 495-497/ 2002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338/ Ammuario Pontificio 1998, Citttà del Vaticano, 1998.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