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시스, 사바티노 데 Ursis, Sabbatino de(1575~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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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예수회 신부. 선교사. 나폴리 왕국의 레체(Lecce) 출신으로 중국명은 웅삼발(熊三拔), 자는 유강(有綱)이다. [생애와 활동] 1597년 11월 6일 나폴리의 신학교에 서 수련을 시작하여 1602년 3월 25일에 서품을 받았다. 일본으로 선교지가 결정되어 1603년 마카오에 도착하였으나, 1606년 카타네오(C. Cattaneo)가 주관하던 남경(南 京)교구에 소속된 남창(南昌)으로 전교지가 변경됨에 따라 마카오를 떠나 중국에 입국하였다. 그러나 곧 북경 (北京)의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로부터 부름을 받고 1607년 북경으로 가서 리치로부터 중국어와 한문을 배우며 북경에서 전교하였다. 우르시스는 수학 · 천문학(天 文學) · 역학(曆學)에 능통하여 1611년부터 명 조정의 역법 개정[修曆] 사업에 기용됨으로써 판토하(Pantoja)와 더불어 서양 선교사로서는 최초의 비공식 흠천감(欽天 監) 감원(監員)이 되었다. 명대(明代) 이후 중국의 역법 은 전통적 대통력(大統曆)을 주로 하고, 회회법(回回法) 을 보조로 사용하며 천문을 관측하였는데, 시대가 내려오면서 일식 · 월식의 예측 및 정확한 달력을 만드는데 오류를 범하는 일이 잦아 역법 개정에 관한 논의가 빈번하였다. 그러다가 1610년 11월 1일의 일식을 흠천감에 서 잘못 예측하자 직방랑(職方郞) 범수기(范守己)가 이 에 대한 비판의 글을 올리고, 오관정(五官正) 주자우(周 子愚)는 우르시스, 판토하 등 서양인이 중국에는 없는 정밀한 역법을 알고 있으니 수력에 참가시킬 것을 상소 하였다. 이에 역법 관장 기관인 예부에서는 당시 한림원 (翰林院) 검토(檢討)이던 천주교인 서광계(徐光啓) · 남 경(南京)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 이지조(李之藻)와 함께 우르시스 · 판토하를 수력에 참여하게 하여, 이들은 천문을 관측하고, 역서를 편찬하고 천문 의기도 제작하였다. 그러나 일부 수구파 고관들과 흠천감 감원들이 선교사들의 중국 체류 · 한역 서학서의 저술 · 번역 등에 반대함으로써 결국 1613년 10월 사직하였다. 그 후 1629 년 5월 서광계의 주도로 '역국' (曆局)이 열리고 서양 방식에 의한 역법 개정이 공식적으로 결정되었으나 우르시스는 이미 타계한 뒤였다. 1616년 중국 근대 천주교 사 상 첫 번째 그리스도교 박해인 남경교난(南京敎難)이 일어나자 우르시스는 1617년 3월 판토하와 더불어 북경에 서 광주(廣州)로, 곧 광주에서 마카오로 추방되었다. 1618년 초부터 마카오에 머물던 우르시스는 그 해 2월 17일에 종신 서원을 하였으나, 교난이 계속되던 1620년 5월 3일, 45세의 나이로 마카오에서 사망하였다. 비록 오랜 기간 중국에서 전교하고 중국 조정에 봉사할 수는 없었으나 우르시스가 중국의 천문 역법 개정에 끼친 공적은 크다. 중국의 일식 현상을 유럽, 인도와 비교 연구함으로써 북경의 경도와 위도를 측정하였으며, 또한 광주에서 북경에 이르는 위도도 측정하였다. 또한 서양의 수법(水法)을 소개하여 중국의 수력(水力)과 수리(水利) 에 이용하도록 하였다. [저 서] 한문 저서로는 《간평의설》(簡平儀說) 1권 · 《태서수법》(泰西水法) 6권 · 《표도설》(表度說) 1권이 있 다. 《간평의설》은 우르시스가 찬설(撲說)하고 서광계가 차기(劄記)하여 1611년 북경에서 간행된 천문역법서로 이지조의 《천학초함》(天學初函)과 《사고전서》(四庫全 書)〈자부(子部) 천문산법류(天文算法類)에 실려 있을 정도로 의미가 크다. 서광계가 서문에서 밝힌 바대로 이 책은 우르시스가 서양의 수천년 간의 천문 · 역법을 중국 최초로, 단기간 내에 일일이 번역하여 출간함으로써 중국의 역법 개정에 크게 기여한 저술이다. 《태서수법》은 우르시스가 찬설하고, 서광계가 필기하여 1612년 북경에서 간행되었는데 역시 《천학초함》과 《사고전서》 <자부 (子部) 농가류(農家類)>에 실려 있다. 서양의 수력 기구 [水器]와 저수[水庫]의 법을 상세히 소개한 책이다. 강 과 하천의 물 · 우물과 샘의 물 · 비와 눈에서 얻는 물 등을 이용하는 법을 설명하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림 을 그려 이해를 도움으로써 중국의 수리 관개 방법과 시설 개량에 기여하였다. 이는 간행 이듬해에 서광계가 천진(天津)에서 둔전(屯田) 할 때 이 저서의 이론을 시험 한 후 실제로 중국의 농업에 적용하도록 한 바 있다. 표 도설》은 우르시스가 구술하고 당시 흠천감 감부(監副)이 던 주자우와 탁이강(卓爾康)이 필기하여 1614년 북경에서 간행되었다. 역시 《천학초함》과 《사고전서》 <자부, 천 문산법류>에 수록되어 있다. 《표도설》은 천체의 기본적 지식, 즉 태양과 지구의 천체상의 위치, 지구는 태양보다 작다는 사실, 지구는 둥글다는 것 등을 간명하게 설명함으로써 천문 측정의 기초 이론을 명확히 해설하였다. ※ 참고문헌 L. Pfister, Notices biographiques et bibliographiques sur les Jesuites de l'ancienne Mission de Chine 1552~1773, Paris, 1932/ J. Dehergne, Repertoire des Jesuites de Chine de 1552 a 1800, Roma et Paris, 1973/ 方豪, 《中國天主教史 人物傳》 第一冊, 香港, 公教真理學會, 1967/ 李之藻 編, 《天學初函》, 臺灣, 學生書局, 1965. 〔張貞 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