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도 Ubadas(1080/1085~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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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주교. 축일은 5월 16일. [생애와 활동] 이탈리아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구비오(Gubbio)에서 귀족의 자녀로 태어난 우발도는, 게르만계 혈통을 이어받은 아버지를 어려서 여의고 고아가 되었다. 그 후 고향인 구비오의 주교좌 성당 참사 수도회에서 교육을 받고, 후에 그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1114 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1117년경에 수도원 원장이 되었다. 그때 수도자들이 철저하게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 도회가 설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그 수도원을 방 문하여 석 달 동안 함께 생활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생활 규칙을 도입하여 자신의 수도회에 적용시켰다. 규칙을 엄격히 지키며, 가난 · 겸손 · 고행 · 온순 · 열정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생활을 철저히 실행하던 그는 점점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던 중 주교좌 성당이 화재로 불타는 일이 발생하였다. 1125년에 주교좌 성당 복구 활동을 벌이던 우발 도는 공석 중인 교구장을 임명해 주도록 교황 호노리오 2세(1124~1130)에게 사절을 파견하였다. 하지만 교구 신자들의 요청에 따라 우발도가 주교로 천거되었고, 그로 인해 1129년 주교 서품을 받았다. 그 후 우발도는 약 31 년 동안 주교직을 수행하였다. 그는 교구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인내심과 자비심, 용기를 두루 갖춘 주교로 교구 신 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또한 그 지역을 약탈하려는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1세(Friedrich I Barbarossa, 1152~ 1190)에게 탁월한 지혜를 발휘하여 자신의 교구를 수호한 일도 있었다. 그는 말년에 약 2년 동안의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한 후 1160년에 사망하였다. [공 경] 우발도의 유해는 처음에 구비오 주교좌 성당 에 안치되었는데, 부패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후에 그의 유해는 구비오 시를 굽어보는 콜 레 인지노(Colle Ingino) 언덕 꼭대기에 지은 작은 경당으로 이장되었다. 그의 사후에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으며, 그의 유해가 안치된 경당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순례지가 되었다. 우발도는 1192년 3월 5일 교황 철레스티노 3세(1191~ 1198)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마귀 들린 사람들, 편두통과 신경통 환자들, 앓는 어린이들의 수호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그는 주로 천사들이 주교 지팡이를 들고 있는 가운데 축복을 내리는 주교 또는 마귀들을 물리치며 축복을 하고 있는 주교의 모습으로 표상된다. ※ 참고문헌  A. Allaria,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15, trans. by Carol Kerstner, Robert Appleton CO., 1912(Online Edition by Kevin Knight, 1999)/ J.F. Mahoney, 《NCE》 14, pp. 359~360/ Les Bénédictins de Ramsgate réd., Dix Mille Saints Dictionnaire hagiographique, Brepols, Belgique, 1991, p. 493/ H.M. Stamm, 《LThK》 10, p. 329. 〔李錫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