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숭배
偶像崇拜
[라]idololatria · [영]idola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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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우상 숭배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목석이나 쇠붙이로 만들어 허수아비[偶]같이 무의미한 모양(像)이나 또는 감각적 대상, 즉 영물(靈物)이나 주물(呪物)을 종교적인 대상으로 숭배하는 일. 나아가 어느 특정한 인물을 절대자로서 존중하는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용 어] 우상 숭배를 뜻하는 라틴어 '이돌롤라트리아 (idololatria)는 '상' (像) 또는 '우상' 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에이돌론' (είδωλον)과, 봉사하다' 또는 '영예드리다' 를 의미하는 '라트레우오' (λατρεύω)가 결합된 단어에서 파생된 '에이돌라트레이아' (ειδωλολατρεία)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 뜻은 다양한 종교 안에서 우상들을 찬미 하는 신심 또는 그런 과장된 찬미 행위를 뜻한다. [성서적 의미] 성서적 관점에서 볼 때, 구약성서는 이 방신을 믿던 아브라함을 선택함(여호 24, 2-3)으로써 하느님이 당신의 백성을 우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는 여정이다. 금송아지(출애 32장)나 석상, 아세라 목상, 산당 등(2열왕 31, 1) 우상을 만들어 섬기거나, 거짓 신에게 운명을 질문하거나 꿈을 해몽하는 자도 가차없이 처단하도록 명령하였다(신명 13장). 그래서 십계명의 첫 번째는 다른 신이나 우상을 만들어 섬겨서는 안된다(출애 20, 35)는 것이다. 마카베오 시대에는 헬레니즘의 다신(多神) 문화권 속에서 우상 숭배와 순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였다(2마카 6, 18 이하). 신약성서에서도 우상 숭배에 대한 금지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사실 신자들은 동물의 상이나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을 성전에 마련하려는 유혹이 없지 않았다(묵시 13, 14 : 마태 24, 15).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교도적인 풍습과 습관에서 벗어나 우상 숭배를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1 고린 10, 14 : 묵시 21, 8). [윤리 신학적 의미] 그릇된 예배 : 윤리 신학적 관점에 서 우상 숭배의 오류성과 그 오류의 경중을 식별하기 위 해서는 예배의 본성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또한 예배의 방법과 대상에 대한 식별을 해야 한다. 즉 예배의 대상이 올바른지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한 예배 방법과 수단이 합 당한지를 구분해야 한다. 예배의 본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그릇된 예배를 세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첫째, 하 느님께 합당한 영광을 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오직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하느님을 끌어들이려는 데서 나오는 이기적인 예배 행위이다. 즉 참된 하느님께 대한 잘못된 예배 행위이다. 둘째는 실재하는 악마와 마술적 인 힘에 대한 종교적 신뢰를 두는 행위로써, 미신 행위 또는 마술 행위이다. 셋째는 참된 하느님이 아닌 거짓 신들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써 이것이 좁은 의미의 우상 숭배이다. 경신 예배의 차원에서 가장 중대한 오류는 진짜가 아닌 거짓 신에게 진심으로 찬미와 순종을 표현하는 것으로써 우상 숭배 행위이다. 즉 정확한 지향으로 거짓 신을 숭배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우상의 종류 : 헛된 예배의 대상인 우상들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다. 사람보다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악마와 그 졸도들의 세력에서부터 순수 피조물들, 사람들에 의해 조성된 존재들 그리고 사람들에 의해 부여된 가치들에게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특별히 황제들이 세속에서 신격화되었던 역사적 경험들이 있고, 그 외에도 유명 인 · 짐승 · 나무 · 바위 등 순수 피조물들을 신의 지위에 올려 놓기도 한다. 더 나아가 현세적인 가치들을 절대적 으로 추구하는 행위도 우상 숭배의 한 형태이다. 즉 부 · 명예 · 권력 · 쾌락 · 건강 등을 추구하는 행위도 여기에 해당된다. 집단적 우상 숭배의 형태로는 검증되지 않은 민족 전통의 보존 행위, 부국 강병이란 명목으로 공격적인 외국 침략 행위, 유물론적인 차원에서의 물질적 진보에만 골몰하게 만드는 정책 등이 해당된다. 교회의 입장 : 십계명의 제1 계명,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출애 20, 3)는 대명제는 분명 하고도 확고하다. 그러나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는 두 가지 측면에서 구별해야 한다. 많은 신들과 여신들을 숭상하게 된 원인이 참 하느님에 대한 의도적인 배신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무지의 결과일 수 있다는 측면과 세상에 대한 이원론적 개념에 근거해서 하느님과 대립되거나 경 쟁 관계에 있는 악령들의 노여움을 달래 보려는 측면이다. 전자의 경우는 개인적인 탓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이고 전통적이며 집단적인 오류이기에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문화를 정화하고 교정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는 하느님이 한 분 계심을 인정하면서도 악마와 그 졸도들의 존재를 또한 인정하기에 개인적인 나약함에서 오는 결단력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즉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구체적 인 생활에서 잡신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거나 분노를 달래려는 데서 나오는 우상 숭배 행위이다. 그러나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체험으로 악의 세력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악의 세력은 어디까지나 하느님 지배하에 있는 것이기에 거기에 예배를 드려서는 안된다. 수덕(修德) 생활로써 물리치고 악령의 일시적이고 현혹적인 현상을 끊으려고 노력하며 전능(全能)하신 하느님 자체를 신봉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가족 중심의 효(孝)를 강조하는 우리 나라 전통 문화권 안에서 만날 수 있는 우상 숭배의 한 형태는 자손의 복과 액을 조령(祖靈)이 관장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데서 오는 과장된 조령 숭배와 제사 행위이다. 다행히 현대 의 많은 이들은 조상 제사가 전통 문화와 효도 교육의 시청각적인 수단이라 간주하고 있지만, 지금도 토착화를 위한 전통 상(喪) 전례와 조상 제사의 복음화에 대한 연구는 요청되고 있다. (→ 우상) ※ 참고문헌 X. Léon-Dufour (ed.), Vovabulaire de Théologie Biblique, Paris, Les Editions Du Cerf, 4th ed., 1977(광주 가톨릭대학교 역,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교, 1984)/ Karl H. Peschke, Christian Ethics, vol. II , C. Goodliffe Neale, Alcester and Dublin, 1986(김창훈 역, 《그리스도교 윤리학》 2권, 분도출판사, 1992)/ P.K. Meagher · C.H. Pickar, 《NCE》7,p. 348. 〔李東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