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세영 禹世英(1845~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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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알렉시오. 일명은 세필(世弼). 본관은 단양. 황해도 서흥 향교골의 유명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학업에 열중하여 18세 때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우연히 알게 된 김기호(金起浩, 요한) 회장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관직에의 뜻을 버리고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그는 가족들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례 를 받기 위하여 교우들과 더불어 서울로 상경했다. 베르 뇌(Berneux, 張敬一) 주교는 함께 온 사람들에게는 모두 세례를 주어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우세영에게는 그의 신앙이 가족들에 의해 흔들릴 것을 염려하여, 정의 배 (丁義培, 마르코) 회장에게 보내어 1주일 동안 주의 깊게 관 찰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1주일 후 정의 배의 증언을 증거로 그는 동료들보다 뒤늦게 베르뇌 주교로부터 세례성사를 받았는데 , 이때가 1863년(고종 3)이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천주교를 반대하던 부모와 가족에게 먼저 전교를 시작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심한 반대로 다시 서울로 와서 정의배의 집에 거주하였다. 여기에서 만 1년을 지내면서 묵상 생활 등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책을 베끼고 가족의 개종을 위해 기도하였다. 이후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전교하여 그의 가 족과 친척들 20여 명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고 향에서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어 평안도 논재(평 안남도 대동군 율리면 답현리 소재)로 이사하여 가족과 함께 열심히 수계하였다. 그러던 중 1866년 2월 16일 이웃 마을인 고둔리 공소 에서 축일을 지내다가 유정률(劉正律, 베드로) 등 다른 신자 16명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평양 감영에서 혹형을 이겨내지 못하고 배교하였다. 그는 석방되자 배교한 것을 곧 뉘우치고 스승인 정의배에게 사죄하고자 서울로 상경하였다. 이때 이미 정의배는 체포되었고 그것을 안 우세영은 정의배의 집을 지키던 포졸에게 자신이 천주교 신자라고 자수하여 체포되었다. 관장은 여러 차례 그에게 배교를 강요하며 심한 형벌을 가하였으나 그는 열렬 한 신앙으로 견더내었다. 그러다가 1866년 3월 11일 푸르티에(Pourthie, 申) 신부, 프티니콜라(Petinicolas, 朴) 신부, 정의배 등과 함께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軍門梟首) 형을 받아 순교하였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21세였다.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병인박해 ; 새남터) ※ 참고문헌  《右捕盜廳謄錄》/《치명일기》/《달레 교회사》 下.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