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술임 禹述任(1803~1846)
글자 크기
9권

체포되어 매를 맞는 성녀 우술임 수산나(탁희성 작)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수산나. 경기도 양 주(楊州)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인천(仁 川) 사는 교우 청년과 결혼한 뒤 남편의 권고로 입교하였다. 1828년에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을 뻔했으나, 체포 당시 임신 중이었으므로 2개월 동안의 옥고와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다. 하지만 그때 받은 형벌과 고문 의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을 받았다. 이후 남편을 잃고 1841년 상경(上京)하였는데, 서울에서도 덕행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그녀는 여러 신자 집을 전전하며 하인 노릇으로 생계를 이어 갔고, 얼마 뒤에는 이간난(李 干蘭, 아가타)의 하인이 되어, 그녀와 함께 수계 생활을 열심히 하였다. 1846년 5월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가 체포되자 김 신부의 집에 남아 있던 여교우들은 이간난의 집으로 피신하였다가, 다시 현석문(玄錫文, 가롤로)이 마련한 새 집으로 숨었다. 이때 우술임은 홀로 남아서 이간난의 집을 지키다가, 7월 11일 현석문, 정철 염(鄭鐵艷, 가타리나), 이간난, 김임이(金任伊, 데레사)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녀는 포도청에서 치도곤과 주리형 등의 고문을 당했으나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이에 죽을 때까지 매질을 당한 뒤 9월 20일에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 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下/《日省錄》 柳洪烈, 《韓國天主教 會史》 上, 가톨릭출판사, 1989. [孫淑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