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론

宇宙論

[라]cosmologigia · [영]cosm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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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주변의 행성들이 찍힌 우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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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주변의 행성들이 찍힌 우주의 모습.


우주의 생성과 질서에 대한 이론 체계. 학문 분야에 따라 연구 방법 및 목적에 차이가 있다. 자연 과학에서는 천문학적 · 수리 물리학적(數理物理學 的)으로 관측되거나 가정되는 모든 천체와 현상으로 이 루어지는 물리적 우주(universe)를 하나로 통합된 전체로 파악하려고 한다. 반면, 종교학 내지 신학에서는 질서가 잡힌 세계의 창조 또는 생성에 관한 이론, 즉 세계 질서와 세계상(世界像)의 표현을 총망라하려 한다. 그리고 철학에서는 자연의 인식, 즉 자연 철학 및 우주의 창조와 질서에 대한 이론을 편다. I . 서양 철학에서의 우주론 그리스어에서 우주(κόσμος)는 "질서"를 뜻한다. 그런데 '우주' (宇宙)라는 한자는 중국의 철학 용어로서 천지 만물의 총칭이며,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모든 세계를 가리킨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우주는 하늘과 땅을 달리 부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천문학적 · 수리 물리학적 우주론] 세 가지 시기로 나 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신화 시대가 지난 기원전 6 세기부터로 피타고라스 학파에 의해, 천체의 운동은 자연 법칙의 조화 관계에 의해 지배된다고 생각한 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 383~322/321)는 지구 중심의 우주론을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항성들이 반투명한 구(球)에 붙어 공전하며, 가장 바깥쪽 구에는 붙박이 별이 매달려 있다고 했다. 2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프톨레마이오스(C. Ptole-maios)에 의해 천동설의 모형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4/1225~1274)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을 그리스도교적으로 해석하여 받아들였다. 두 번째 시기는 코페르니쿠스(N. Coper-nicus, 1473~1543)의 지동설(地動說)에 의해 선도되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 중심의 우주론 대신 태양 중심의 우주론을 제안하였다. 이후 뉴턴(I. Newton, 1642~1727)의 역학적 우주론이 나왔고, 18세기에 라이트(T. Wright)는 우주가 수많은 은하(銀河)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허설(W.F. Herschel, 1738~1822)을 비롯한 천문학자들이 별들과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켰다. 세 번째 시기는 아인슈타인(A. Einstein, 1879~1955)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제안하고, 다시 이것을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발전시키면서 시작되었다. 슬라이퍼(V.M. Slipher, 1875~1969)가 외부 은하의 적색 이동(extragalactic redshifts)을 발견하였고, 은하계 밖에 있는 성운(星雲)이 우리 은하와 같은 종류의 은하라고 하였다. 한편, 허블 (E.P. Hubble, 1889~1953)은 은하계의 거리를 측정하기 시작하여 우리 은하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계의 후퇴 속도는 우리 은하계와의 거리에 비례하며, 은하계가 후퇴하는 속도는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에 비례하여 증가한다는 비례 정수, 즉 허블 정수를 발표하였다. 드 지터 (W. de Sitter, 1872~1934) , 프리드만(A.A. Friedmann, 1888~ 1925) 등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우주론에 적용시켰고,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현대 우주론의 기본 전제는 우주가 공간 안에서 동질적(homogeneous, 어떤 시간에도 모든 장소가 평균적으로 같다)이라는 것이며, 물리 법칙은 어디서나 똑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론에 적용된 일반 상대성 이론의 요점은 공간이 동역학(動力學)적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균일하 게 굽어 있다는 것이다. 공간은 스스로 팽창하고, 공간에 있는 은하들은 서로 멀어진다고 한다. 같이 움직이는 관측자에 대한 상대적인 모든 후퇴 속도는, 허블 법칙에 따르면, 이들의 거리 증가는 빛의 속도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빛은 팽창하는 공간을 전달하는 동안 점차 파장이 늘어난다. 따라서 먼 은하에서 방출된 빛은 더 긴 파장으로 도달하게 되며, 이것이 우주론적 적색 이동의 원인이다. 팽창은 우주의 기원이 약 100억 년 전의 밀집된 상태(소위 big bang, 대폭발)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러나 이 대폭발 이론을 반대하는 우주론자들은 이 대폭발의 잔광(殘光)이라고 생각되는 초단파의 배경 복사의 존재를 가지고 반론을 제기하였다. 약 3K(켈빈) 온 도를 갖는 열적 복사는 1950년대 초 가모브(G. Gamow, 1904~1968)에 의해 예측되었으며, 1965년 펜지어스(A. Penzias)와 윌슨(R.W. Wilson)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이후 약 10만 년 동안 지속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초기 우주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진척되었으며, 이 대폭발 가설은 천문학계에서 크게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천체의 생성에 대한 모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주에 대한 기술(記述)과 설명이 학자들간에 상당한 견해 차이가 있다. 결국 하나의 전체로서의 우주에 대한 물음은 언제나 열려진 물음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교학에서의 우주론] 종교학적인 관점에서 우주론은 질서가 잡힌 세계의 성립 또는 창조에 관한 이론이다. 서양인들은 조화롭게 성립된 세계라는 의미의 우주 (cosmos)는 고대 그리스인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생각하나, 해저 왕국과 지하 세계를 포함한 하늘과 땅에 관한 이해는 헬레니즘 이전에 동양인의 세계관 근저에 놓여 있었다. 동서를 막론하고 태초에는 혼돈과 암흑이 있었다고 가정하나, 이 혼돈과 암흑의 성립 자체에 관한 설명은 거의 없다. 이 혼돈에서 일종의 싹 또는 배아가 나왔고, 이 싹으로부터 '세계 알' (Weltei) 또는 '세계수' (世界樹, Weltbaum) 등과 같은 형태들이 나오게 된다. 이러한 생각들이 발달하여 '대지의 어머니' (mater terrae)라는 개념이 등장하였다. 이 대지의 어머니가 하늘에 의해 수태되어 생물들을 낳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생식과 탄생을 유추한 것이다. 이러한 자연적인 현상들은 피안에 존재하는 신적인 질서 권위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다(流出說). 그러나 이 신화적인 우주론, 즉 개벽론(Kosmogonie)은 그리스도교의 '무로부터의 창조' (creatio ex nihilo)와 극명하게 대립되는 것이다. [성서에서의 우주론] 성서 저자들은 우주를 하늘과 땅, 그리고 지하 세계로 나눈다. 현 세계는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느님에 의해 유지되며 궁극적으로는 멸망될 것이며 심판을 받는다(창세 1, 1 이하 : 사도 17, 24 : 2베드 3, 5 이하). 구약성서에서 하늘은 하나의 요새, 즉 창궁(蒼穹)이다. 상세하게 규정되지 않은 다수의 하늘들은 하느님의 지배 아래에 놓여 있다(신명 10, 14 ; 1열왕 8, 27 : 시편 148, 4). 하늘은 하나의 얇은 접시처럼 태초의 바다 위를 배회하고 있고, 태양은 사방에서 땅을 둘러 싸고 있다(시편 24, 2 ; 104, 6). 땅은 세계의 중심으로서 확고한 기반 위에 놓여 있고, 대양 속으로 침잠한다(욥기 9, 6 : 시편 18, 16 : 잠언 8, 25). 지하 세계는 땅과 대양의 밑에 있으며 어둠과 망각의 영역이다(욥기 10, 21 ; 시편 88, 12). 지하 세계는 하늘과 전혀 반대되는 곳이기도 하다(욥기 11, 8). 신약성서에서는 구약처럼 우주를 하늘과 땅(마태 11, 23 ; 마르 13, 31 ; 묵시 6, 13 이하), 그리고 지하 세계로 구분해서 보고 있으며(루가 10, 15 ; 필립 2, 10), 고대 그리스 사상의 영향을 받아 세계를 통일적인 개념인 우주 (cosmos)로 파악하고 있다. 지하 세계는 저주받은 자들이 머무는 장소이고(루가 16, 23), 악령이 거주하고(8, 31) 사탄이 갇혀 있다(묵시 12, 9 ; 20, 1). 땅은 혹성들에 게 둘러싸여 자유롭게 떠다니는 것이다. 하늘, 즉 공중의 세계는 악령들의 영역이다(에페 2, 2 ; 6, 12). 반면, 하늘은 하느님의 거처, 천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며, 구원과 축복받은 자들의 장소이고, 우주는 부분적으로 하느님에게 적대적인 장소이다. 하지만 지하 세계는 지옥, 악령의 왕국, 그리고 형벌의 장소로 여겼다. 성서에서의 우주론은 공간적이고 세계적인 회화적 표현 방식이 종교적인 언어로 변화된 것이다. [서양 철학에서의 우주론] 고대와 중세의 우주관 : 고대 그리스 철학의 이오니아 학파는 모든 존재하는 것이 생성된 원리 또는 근원, 즉 태초(ἀρχή)에 대해 탐구했 다. 그 원리에 대해서 초기에는 물 또는 아페이론(ἄπειρον), 또는 공기나 불이라고 하였다. 한편, 피타고라스 학파는 땅을 둥글다고 보았고 수(數)에 관한 방정식으로 우주의 조화를 설명하였다.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기 원전 483~423)는 흙 · 물 · 불 · 공기의 네 가지 원소론을 제창하였다.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기원전 499~428)는 무수한 스페르마타(spermata)의 다양한 결합에 의해 사물 이 생성된다고 하였고, 지구는 접시와 같이 생긴 것으로써 그 위를 공기와 불의 에테르가 뒤덮고 있다고 보았다.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기원전 460~437)는 원자론을 제기하였다.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은 '세 계 영' (Weltgeist)에 의해서 지배되는 우주를 생각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우주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며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의 한가운데 구슬의 모양을 하고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지구가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원소들이 불변의 동일성 을 가지고 지구 중심을 축으로 공전하고 있는 천체의 영 역을 모두 채우고 있다고 하였다. 하느님의 영원한 창조 사업을 주장하였던 오리제네스 (Origenes Alexandriae, 185?~254)와는 반대로 아우구스티노 (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는 일회적인 창조 행위를 주장하였다. 초기 스콜라 철학자들은 플라톤과 피타고라스 학파의 주장에 동조하였다. 12~13세기에는 라틴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근거로 우주를 9개 의 밀집된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이것은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의 《신곡》에 시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14세기에 니콜라우스 폰 오레스메(Nikolaus v. Oresme, +1385)가 지구 자전(自轉)의 증거를 제시한 후부터 고대 그리스 철학의 우주관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았고, 우주론은 새로운 방향을 보이게 되었다. 근대와 현대의 우주론 : 15세기에 들어와서 우주론은 자연 과학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으며, 태양 중심이냐 지구 중심이냐 하는 문제가 우주론의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폭 넓게 지지를 받았으나, 새로운 우주론을 수립하기에는 해명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 있었다. 케플러(J. Kepler, 1571~1630) 는 《신비한 우주론》에서 행성들과 태양의 거리에 일정한 수학적 질서가 있음을 밝혔다. 브루노(G. Bruno, 1548~ 1600)는 무한한 공간과 무한한 숫자의 별들이 있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했으나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갈릴레이(G. Galilei, 1564~1642)가 코페르니쿠 스의 체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후부터 지동설은 일반화 되었고, 그 후부터 수학의 발달이 우주론 발전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우주론의 연구 목표가 마치 수학적인 공식 체계를 발견하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되었다. 라플라스(P.S. de Laplace, 1749~1827)는 우주의 구조를 수학적으로 설명해 보려고 하였다. 아인슈타인은 논리 수학적인 형식으로 주어지는 좌표 공식에 무관한, 소위 텐소 분석(Tensoranalysis)을 통하여 수학적 공식을 만들어 냈다. 그는 우선 순수하게 논리적 으로 텐소를 구성하고 나서 물리적인 내용을 채워 넣는 방식, 즉 물리학적 사실을 현상과 비교하는 방식을 고안해 내었다. 이후 각각 서로 다른 수학적 전제에서 출발하여 근본적으로 서로 구분되는 다양한 우주론의 모형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모형들의 고안자들은 가능한 한 많은 사실 소여(所與)를 모형 안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구성 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예컨대 아인슈타인의 세계 모형은 유한한 공간적 내용을 갖는 닫혀진 4차원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 모형은 우주 팽창의 결과로 관찰될 수 있 는 나선형 은하계의 적색 이동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현대의 관찰 천문학은 도구의 한계 때문에 지금까지 발표된 세계 모형들을 검증하지 못하고 있고, 아직도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주론은 일정한 철학적 결론을 갖고 있다. 즉, 현재의 우주를 하나의 단순한 필연적 사고의 상태로 이끌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주의 구성은 아주 많은 변수를 동반하고 있다. 최근에는 물질의 구조에 대한 수학적 기안을 마련 해 보려는 시도가 물리학자들에 의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은 전자기장과 중력장에 대한 공동의 공식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로 인해 물질의 구조는 매우 가변적이라는 것이 판명되고 있다. 오늘날 개벽론도 수학적 언어로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수학적인 틀은 매우 잠정적인 특성을 가질 뿐이며, 우주 발전 전반에 관하여 언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주의 발전선상에서 확실 히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단지 단편적인 내용들뿐이다. 별 의 원자핵 반응의 결과로(예컨대 에너지는 수소가 헬륨으로 변화되면서 생성된다) 우주 물질의 핵결합이 지속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며 또 어떤 원칙에 의해 진행되는지 우리는 모르고 있다. 현대 우주론의 학문적 성과는 여전히 미천한 것이다. 이 연구 작업은 수학적 공식화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 주고 있다. 그리고 우주의 형성과 발전이 매우 복잡 하다는 것과 필연적인, 즉 불변적인 설명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인식시켜 주고 있다. (→ 과학 ; 과학 철학) ※ 참고문헌  W.B. Bonner, The Mystery of the Expanding Universe, New York, 1964/ J. Charon, Geschichte der Kosmologie, Miinchen, 1970/ W. Davidson, Philosophical Aspects of Cosmology, British Journal of the Philosophy of Science, vol. 13, No. 50, August, 1962/ R. Harré, Philosophical Aspects of Cosmology, British Joumal of the Phiosophy of Science, vol. 13, No. 50, August, 1962/ H.J. Sandkü hler(hrsg.), Europädische Enzyklopädie zu Philosophie und Wissenschcften, Hamburg, 1990, pp. 866~870/ B. Kanitscheider, Kosmologie. Geschichte und Systematik in philosophischer Perspektive, Stuttgart, 1984/ 一, Philosophische-historische Grundlegung der physikalische Kosmologie, Miinchen, 1974/ S. Weinberg, Die ersten drei Minuten, Miinchen, 1978. 〔秦教勳〕 II . 동양 철학에서의 우주론 [정 의]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우주론은 하늘, 땅[天 地]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옛날부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났으며[天圓地方], 땅은 하늘의 둥근 뚜껑으로 덮여 있는 닫힌 공간이라고 생각하였다. 우주(宇宙)라는 낱말은 중국 전국 시대에 시교(尸位) 가 "위아래 사방을 우(宇)라 하고, 지나간 옛날과 돌아올 지금을 주(宙)라고 한다" (上下四方曰字 往古來今日宙, 《尸子》 下卷)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서 "우" (宇)는 공간을, "주"(宙)는 시간을 가리키며, '우주' 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조선 시대의 철학자 인 장여헌(張旅軒)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 다. "위아래 사방을 우(宇)라 한다면 올라가면 위의 끝에 까지 이르고, 내려가면 아래의 끝까지 이른다. 사방은 동서남북의 끝에까지 이른 것, 이것이 우(宇)이다. 예로부 터 지금까지 하늘 땅의 시작부터 하늘 땅의 마침을 끝까지 다한 것을 주(宙)라 하였다"(上下四方日字 則上焉至 于上之極 下焉至于下之極 至東西南北之極者是宇也 古往今來曰宙 則從天地之始 盡天地之終者 是宙也). 결국 우주라는 말에는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관에 대하여 《장자》(莊子) <경상초>(庚桑楚) 편에서는 "한정된 실(實)은 있으면서 머물러 있을 곳이 없는 것이 우(宇)이다. 길이는 있으면서 머리도 꼬리도 없는 것이 주(宙)이다" “(有實而無處處 宇也 有長而無 本剽者 宙也)라고 하였다. 실(實)이 있다는 것은 가상이 아니라 실재한다는 것이며, 머물러 있을 곳이 없다〔無乎 處〕는 것은 경험적으로 어느 자리도 차지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어디인가 머무를 수 있는 한정된 공간이 아니라 무한한 공간을 뜻한다. 길이가 있다[有長]는 것은 예 로부터 지금까지의 나아감만 있을 뿐, 상하 좌우가 없음을 뜻한다. 머리도 꼬리도 없다[無本剽]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宙)는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시간을 뜻한다. 따라서 《장자》에서 말하는 우주는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장형 (張衡)은 "우(字)의 겉은 끝이 없고, 주(宙)의 끄트머리는 막힘이 없다" (字之表無極 宙之端無窮, 《靈憲》)라고 하여 《장자》에 나오는 우주관을 계승하여 무한한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명확히 하였다. 《천자문》(千字文)은 "하늘 땅은 검고 누렇고 우주는 넓고 크다" (天地玄黃 宇宙洪荒)고 하여 한자를 배울 때부터 천지와 우주의 광대함을 알게 하였다. 장자는 구만 리 상공을 날아가는 대붕(大鵬)의 시점에서 무한한 공간 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하늘은 푸르고 푸른 것이 그 바 른 색깔인가? 그것은 멀어서 끝에 이른 데 가없는 것인 가!"(天之之蒼蒼 其正色也 其遠而無所至極也, 逍遙遙遊》 [우주에 대한 탐구 이유] 무한히 펼쳐진 하늘에 대하여 매력을 느낀 고대 중국인들은 천체의 운행이나 구조 에 대하여도 열심히 탐구하였다. 《춘추》(春秋)에는 혜성에 관한 기록이 있다. "살별이 있는데 북두에 들어간다" (有星孛入于北斗, 文公 14年)고 적혀 있다. 이것은 핼리 (halley) 혜성에 관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기 원전613). 그 이후 이 혜성은 진시 황제 7년(기원전240) 부터 1910년까지 중국에서만 294회 관찰되었다고 중국 의 사서(史書)는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 혜성은 본래 발광(發光)하지 않고 꼬리가 언제나 태양과 반대 방향에 있다는 것도 주목하였다. 유성비(流星雨, meteorshower)에 대해서도 기원전 16세기의 기록이 남아 있다(《竹書紀年》). 태양의 흑점(黑点)도 기원전 28년에 육안(肉眼)으로 발견하여 "을미년 해가 떠서 누렇게 되고 검은 기운이 있다. 크기는 돈[錢]만하며 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乙未 日出黃有黑氣 大如錢 居日 中央, 《漢書》, 《五行志》 第7下之下)라고 기록하였다. 갈릴레이(G. Galiilei, 1564~1642)가 망원경으로 발견한 것은 1610년이었다. 그런데 중국인이 일찍이 이런 성과를 올린 것은 농경(農耕)이 하늘에 의해 좌우된다는 현실적 요구뿐만 아니라, 하늘의 강한 흡인력 때문이었다고 미우라(三浦國 雄)는 주장하였다. 중국인은 하늘의 뜻은 천체의 이상(異常, 혜성의 출현 같은 것)으로 하늘(天空)에서 보여 준다고 믿었다. 따라서 천명을 대행하는 황제가 하늘을 부지런히 주시(注視) 하는 것은 통치상 중요한 일이었다. 실제로 중국에서 천문학자는 황제의 관료였다. 태사국(太司局) · 사천대(司 天臺) · 흠천감(欽天監)은 그러한 관료 조직 중 하나였다. 따라서 한대(漢代)까지 천문관은 동시에 사관(史官) 이었다. 정사(正史)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천문지》 (天文志)와 《오행지》(五行志) 등은 그러한 업적이었다. [우주 생성에 대한 이론] 이에 대해서는 천지 개벽(天 地開闢)의 신화(神話)에서 시작되었다. 반고(盤古)라는 거인(巨人)에 의하여 천지가 열렸다는 중국 고대의 이야 기를 삼국 시대의 서정(徐整)이 정리하여 《삼오력기》(三 五歷記)에 실었는데, 여기엔 음양(陰陽) 철학에 의한 윤 식(潤飾)이 보인다. 그 이야기는 "천지가 혼돈되어 달걀 과 같았다. 반고는 그 가운데서 태어났다. 만팔천 세로 천지가 개벽되고 양청(陽淸)은 하늘이 되고 음탁(陰濁) 은 땅이 되었다. 반고는 그 가운데 있었다. 하루에 아홉 번 변하여 하늘보다도 더 신비하게 땅보다도 더 거룩하게 되었다. 하늘은 날마다 한 장(丈)씩 높아졌고 땅은 날 마다 한 장씩 두꺼워졌으며 반고는 날마다 한 장씩 자라 났다. 이와 같이 일만팔천 세였다. 하늘의 수는 지극히 높고, 땅의 수는 지극히 깊고 반고는 지극히 커졌다. 그 러므로 하늘은 땅과의 거리가 구만 리이다" (天地混沌如 鷄子 盤古生其中 萬八千歲 天地開闢 陽清為天 陰濁爲地 盤古在其中 一日 九變 神于天 聖于地 天日高一丈 地日厚 一丈 盤古日長一丈 如此萬八千歲 天數極高 地數極深 盤 古極長 故天去地九萬里)라고 기록되어 있다. 반고의 천지 개벽은 천지가 어떠한지 언급하지 않았으 므로, 후에 하늘은 첫째 종동천(宗動天)으로부터 아홉째 월륜천(月輪天)까지 아홉 겹[九重]으로 되어 있다는 구 중천설(九重天說)이 출현하였다. 아홉이라고 한 것은 이 숫자가 가장 끝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천지 개벽 설은 기(氣) 철학에 의하여 대체되었다. 《회남자》(淮南 子)의 <천문훈>(天文訓)에는 이렇게 기재되어 있다. "하늘이 아직 형태를 이루기 전에는 왕성하게 무성하 고 질박하게 혼돈된 상태에 있으므로 대소(大昭)라고 말 하였다. 도(道)는 허곽(虛廓, 끝이 없는 허공)에서 시작되었다. 허곽은 우주를 낳고, 우주는 기(氣)를 낳았다. 기 에는 애은(涯垠, 사물이 서로 닿은 곳. 경계, 구별, 제한)이 있는데, 청양한 것은 엷고 희미하며 하늘이 되고 중탁한 것은 엉겨 붙어 땅이 되었다. 청묘가 합하여 오로지 하나가 되는 것은 쉽고 중탁함이 엉겨 말라 버리는 것은 어렵다. 천지의 습정이 음양이 되고 음양의 전정이 사시가 되며 사시의 산정이 만물이 되었다" (天墮未形 憑憑翼翼 洞 洞漏漏 故日大昭 道始于虛廓 虛廓生宇宙 宇宙生氣 氣有 涯垠 清陽者 薄靡而為天 重濁者 凝滯而為地 清妙之合專 易 重濁之凝渴難 故天先而後地定 天地之襲精爲陰陽 陰陽之專精爲四時 四時之散精爲萬物) 여기서 "청양한 것 은 엷고 희미하여 하늘이 되고 중탁한 것은 엉겨 붙어서 땅이 되었다" 는 구절은 어떤 의미에서는 중국 우주 생성론의 역사의 해석사, 말하자면 살을 붙인 역사라고 야마 다(山田慶兒)는 말하였다. 전한(前漢) 말 (역위건착도)(易緯鑿度)나 진대(晉 代)의 《열자》(列子) <천서편>(天瑞篇)에 보이는 생성론 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형체가 있는 것이 무 형(無形)한 것에서 생겨났다면 천지는 어디에서 생겨났 는가?" 라는 질문 뒤에 《열자》는 다음과 같이 계속 언급 한다. "대체로 기(氣)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던 상태가 있었는데 태역(太易)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氣)가 시작 되는 것을 태초(太初)라고 하고, 형체가 시작되는 것을 태시(太始)라고 하고, 바탕[質]이 시작되는 것을 태소 (太素)라고 한다. 기(氣)와 형체(形), 바탕[質)이 모두 갖추어져 서로 분리되지 않은 것을 일러 혼륜(渾淪)이라 한다 . ··· 하나란 것은 형체가 변형되는 시작이다. 맑고 가벼운 것은 올라가 하늘이 되고 흐리고 무거운 것은 내려 땅이 되었다. 충화(沖和)의 기(氣)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천지가 정기를 합하여 만물이 변화하여 생겨났다" (夫有形生於無形 則天地安從生 故日 有太易 有太初 有太始 有太素 太易者 未見氣也 太初者 氣之始也 太始者 形之始也 太素者 質之始也 氣形質具而未相離 故日渾淪 ··· 一者形變之始也 清輕者上爲天 濁重者下爲地 沖和 氣者爲人 故天地含精 萬物化生) . 이 사상은 후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것은 송(宋) 대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의 《노자주》(老子注)에도 인용되고, 남송(南宋) 말 왕백(王栢)의 《천지 만물 조화 론》의 권두를 장식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더 관심을 얻 는 것은 혼돈 또는 혼륜이다. 《열자》의 주석가 장담(張 湛)도 "비록 혼연(渾然)한 하나의 기(氣)이지만 서로 떨어져 흩어지지 않는다. 삼재(三才, 天地人)의 도(道) 역 시 실제로 그[渾] 가운데 징조[兆]를 잠겨 둔다" (雖渾然 一氣 不相離散 而三才之道 實潛兆乎其中)고 하였다. 혼 돈한 가운데에 이미 도(道) 즉 질서가 잉태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구조] 조선 시대의 철학자인 권근(權近, 1352~ 1409)은 태조 4년(1396)에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 次分野之圖)에서 천(天)을 논하면서 중국 고대의 전통적 우주관에 관한 6가지 학설을 열거하였다. 즉 장형(張衡) 의 혼천설(渾天說), , 주비(周牌)의 개천설(蓋天說) · 선야 설(宣夜說), 우희(虞喜)의 안천설(安天說) , 요신(姚信) 의 혼천설(昕天說) 우용(虞聳)의 궁천설(弓天說) 등이 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개천설인데, 권근은 혼천설 이 정통적 우주관이라 생각하여 나머지 설은 논외로 취급하였다. 우선 개천설부터 살펴보면 《주비산경》(周髀算經) 하 권에 "하늘의 모양은 삿갓을 덮어놓은 것 같고 땅의 형태는 네모난 쟁반을 엎어 놓은 것 같다. 하늘은 땅과 8만 리 떨어져 있다" (天象蓋笠)라고 되어 있고, 상권에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天圓地方)라고 하였다. 개천설은 전한 시대까지 유일하고 지배적인 우주론이었는데, 후한 시대에 장형이 주장한 혼천설에 의하여 압도당하였다. 장형은 저서인 《혼천의》(渾天儀)에서 다음과 같은 우주론을 전개하였다. "혼천은 달갈과 같이 천체는 둥글게 되어서 탄환과 같고 땅은 달걀 중 노른자같이 안에 외롭게 들어 있다. 하 늘은 크게 되고 땅은 작게 되어 있다. 하늘의 겉과 속에는 물이 있다. 하늘이 땅을 안고 있는 것은 마치 껍질이 노른자위를 싸고 있는 것 같다. 천지는 각기 자기의 기 (氣)에 태워져 서 있고 물에 실려 떠 있다. 주천(周天)은 364도 4분의 1이고 또 그것을 둘로 나눈다면 182도 8 분의 5이고, 지상을 덮고 있다. 182도 8분의 5는 지하 를 감싸고 있다." 이 주장의 새로움은 하늘이 땅을 싸고 땅의 아래(여기는 물의 세계)로 회전하여 들어간다는 데 있었다. 개천설이 천지를 상하로 취급한 반면, 여기서는 내외로 취급한 것이다. 그러나 하늘을 고체로 보고 그 형상을 천원 지방(天圓地方)으로 생각한 것은 전통적인 천지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생각한 것이 가장 근 본적인 천지관이었다. 하늘은 원정(圓精) · 대원(大 圓) · 원령(圓靈) · 원재(圓宰)라고 부른다면 땅은 방주 (方州) · 대방(大方) · 대구(大矩) · 방여(方輿)라는 별칭 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원형과 방형은 천지의 상징 (symbol)으로써 도시 건축의 계획에도 적용되었다. 한편, 우주 구조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야설이 다. 그것은 개천설에 나타난 8척표(八尺表)나 혼천설에 나타난 혼천이란 계측 장치를 빠뜨린, 말하자면 철학적 우주론이었다. "하늘은 끝으로서 바탕이 없어 우러러 그 것을 쳐다보면 높고 멀리 끝이 없다. 눈은 희미하며 또렷 함이 없어졌으므로 창창하게 된다" (《晋書 天文志》)라고 한 것은 하늘의 고체성을 깨뜨리고 무한 우주론의 길을 열 어 놓았다는 점에서 참신함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한대(漢代) 이후 모든 학자들이 혼천설을 지지하여 개천설은 뒤로 밀려났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우주관 은 4~5세기경 우리 나라의 천문학에 토착화되었다. 이는 고구려 고분에 그려진 일월 성신도(日月星辰圖)와 석굴암의 둥근 천장에서 천원 지방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첨성대는 주비의 팔척표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천원 지방의 축조 양식으로 되어 있다. [조선에 미친 영향] 장형의 혼천설에 의거하면서도 기 일원론을 발전시켜, 생성론과 구조론을 통일시켰던 송 (宋)의 장재(長載, 1020~1077), 주희(朱熹, 1130~1200)의 우주론은 조선 시대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지가 혼돈하여 아직 나누어지지 않았을 때 단지 하나의 기(氣)가 존재하였을 뿐이다. 이 기는 커다란 공간에 가득차 생성도 소멸도 없다. 기는 그 대로 큰 공간이었다.-장재는 태허즉기(太虛卽氣)라고 하였다-기는 모였다〔聚, 농밀화] 흩어졌다[散, 희박화] 하 는 끊임없는 운동 가운데 있다. 따라서 공간은 언제나 고르지 않은 바탕(不均質)으로 되어 있다. 이윽고 이런 기 의 부분적 운동이 전 우주 규모로 시작된다. 하나의 기는 처음엔 천천히 회전하다가 다음에는 그 속도를 늘여서 움직인다. 그 회전은 바깥쪽[外側]보다 급속히 된다. 따라서 밖의 기는 희박화되어 움직이고 나누어져 중심에서 움직이는 기는 농밀의 도(度)를 더해 간다. 그래서 한 기 (氣)의 회전이 극점에 도달하였을 때 중앙의 농밀한 기는 응결되어 마침내 대지가 결성되고, 여기서 혼돈은 하늘과 땅으로 나누어진다. 하늘과 땅으로 나누어진 뒤 기 의 회전이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땅의 둘레를 기초한 하늘이 회전하고 있으므로 땅은 떨어지는 일이 없다. 하늘은 아홉 개 기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에서 밖으로 운동함에 따라서 그 다음의 맑은 데 이끌려 단단하게 조여서 움직인다. 9층에 이르면 그 회전도 맹렬하게 빨라진다. 해 · 달 · 별도 하늘의 회전과 함께 운행한다. 그 러나 우주는 12만 9천 6백 년을 주기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이것은 송(宋)대 소강절(邵康節)의 학설땅의 주위를 에워싸고 따라가는 기의 속도는 말기에 가 까워짐에 따라 그 다음에는 둔하게 움직이고 그것에 응 하여 중앙의 땅의 응결이 해체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생성의 과정은 역으로 중앙의 농축된 기는 안에서 밖으로 향하여 파동처럼 확산되어 움직이고, 기의 농축 밀도가 우주 전체에 퍼져 균질화되었을 때 기의 회전은 정지되고, 여기서 우주는 재차 혼돈으로 되돌아간다." 김문표(金文豹)의 사도설(柶圖說)과 이경창(李慶昌, 1554~1627)의 주천설(周天說)은 장형의 혼천설을 바탕으로 우주설을 전개하였다. 전자는 음양 오행설과 천원 지방설을 절충하여 사도설을 전개하였고, 이경창은 조선 중기 천문학자로 《주천도설》(周天圖說)을 저술하여 우 주관을 전개하였다. 조선 시대 성리학자인 장려헌은 "대 체로 우주가 비록 크다 하지만 이미 이기(理氣) 가운데 둘러싸여 있다면 우주보다 앞서서 존재하는 것은 이기이다" (《旅軒全書》 性理說 卷6, 宇宙說)라고 하여 우주론에 대한 이기론적 근거를 설명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서양의 천문학이 도입되었다. 인조 9 년(1631) 7월에 정두원(鄭斗源, 1581~?) 일행이 명나라에 서 서양 천문학의 추산법을 배우고 돌아올 때 가지고 온 디아즈(E. Diaz, 陽瑪諾, 1559~1639)의 《천문략》(天文略)이 처음으로 조선에 전해졌다. 그 후 인조 23년(1645) 소현 세자(昭顯世子)가 청(淸)나라에서 살 폰 벨(J.A. Schall von Bell, 1592~1666)이 번역한 천문학 서적들을 소개하였 다. 그 이후에 들어온 천문학 번역서들의 영향으로 효종 4년(1653) 시헌력법(時憲曆法)이 시행되었고, 그로 인해 전통적인 혼천설적 우주관을 대체하였다. 시헌력법은 브 라헤(T. Brahe, 1546~1601)의 우주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이러한 서양 우주 체계와 조선 시대 천문 학자들에 의하여 꾸준히 계승된 두 개의 전통적 우주론 이 있었다. 즉 박지원(朴趾原, 1737~1805)의 《열하일기》 (熱河日記)에 의해 전해진 김석문(金錫文, 1685~1735)의 삼대환(三大丸) 공부설(空浮說)과 홍대용(洪大容 , 1731~1783)의 지전론(地轉論)이다. 어떤 이들은 홍대용의 지구 회전설을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중국에 있던 예수회 학자들을 통하여 코페르니쿠스(N. Copernicus, 1473~1543)의 지동설을 단편적으로나마 접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 참고문헌  李烈炎, 《時空 學說史》, 湖北, 人民出版社, 1988/ 三 浦國雄, 《中國人の 天と 宇宙 (特輯) 宇宙論》, 東京, 春秋社, 1982/ 全 相運, 《韓國科學技術史》, 正音社, 1984/ 《漢書 五行志》 《莊子》 〈庚桑 楚>/ 張旅軒, 《旅軒全書》. 〔鄭仁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