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교 본당
雲橋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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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춘천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춘천시 운교동 42 소재. 1965년 9월 6일 죽림동(竹林洞) 본당과 소양로(昭陽 路)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한국 순교 성 인. 관할 구역은 운교동, 교동, 조양동, 옥천동, 효자동 일부 지역. [교 세] 1967년 1,627명, 1971년 1,800명, 1977년 2,340명, 1983년 1,505명, 1989년 2,076명, , 1996년 2,501명, 2000년 2,469명. 〔역대 신부] 초대 헤이워드(H. Hayward, 오남성) 후베르토(1965. 9~1969. 10), 2대 맥마흔(A. McMahon, 안) 아르투르(1969. 10~ 1973. 7), 3대 나이한(J.Nyhan, 나) 요한(1973. 7~1975. 6), 4대 월터(N. Walter, 유) 누겐트(1975. 6~1979. 4), 5대 천 신기(千信基) 세례자 요한(1979. 5~1984. 4), 6대 임홍지 (任弘志) 알로이시오(1984. 4~1987. 4), 7대 이응현(李應 鉉) 테오도로(1987. 4~1993. 9), 8대 조규호(曹圭豪) 토마 스(1993. 9~1998. 2), 9대 이태혁(李泰赫) 요아킴(1998. 2~ 현재). [본당의 설립] 병인박해 순교자 시복을 앞둔 1964년 주교 회의에서는 순교자 현양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려는 목적으로 각 교구에 순교 복자 기념 성당을 건립하기로 결정하였고, 같은 해 12월 15일 현 본당 소재지의 부지(1,590평)에서 공사를 시작하여 1965년 9월 6일 성 당(122평)과 사제관(29평), 수녀원(22평), 예비 신자 교리실과 창고가 딸린 부속 건물(33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로써 운교 본당이 설립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헤이워드 신부가 부임하였다. 헤이워드 신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였고, 죽림 본 당과 소양로 본당에서 이관된 300여 세대, 750명의 신 자들을 운교동, 교동, 조양동, 옥천동, 후평동, 도화리, 만천리를 포함한 총 19개 구역으로 편성하였다. 이어 2 대 주임으로 부임한 맥마흔 신부는 1973년 1월 신자들 의 열악한 경제 사정을 돕기 위해 '운교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하여, 3월 9일부터 영세한 사업가나 가계를 돕기 위한 금융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 이르러 운교 신용 협동 조합은 급성장하였으나, 외환 위 기와 IMIF 경제 체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1999년 11월 17일 파산 선고로 문을 닫게 되었다. 한편 1971년 6월 에는 본당 사목을 돕던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가 본원의 사정으로 철수하였다. 1973년 1월 비상 국무 회의에서 '모자 보건법' 이 통과되자,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고, 춘천교구 내에서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자연 가족 계획법 운동을 확산시켜 나갔다. 이에 부응하여 3대 주임 나이한 신부는 행복한 가정 운 동과 미혼 남녀를 위한 가나 혼인 강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순결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가정 성화 주일, 가임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 등 가정 성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1973년 9월에는 까리따스 수녀회의 분원이 마련되었다. 4대 주임 월터 신부의 재임 기간 동안 외부 보조금으 로 운영되던 본당 재정은 점차 자립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으며, 1976년 8월에는 '치명자의 모후' 가 창설되면 서 레지오 신심 운동이 시작되었다. 1979년에 5대 주임 으로 교구 소속 방인 사제인 천신기 신부가 부임하였다. 천 신부는 12월 사목 협의회를 설립하였고 본당의 제 신심 단체들을 정비하였으며, 새로운 단체들을 설립하면서 신자들을 위한 신앙 교육을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한편 평소에 유아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천신기 신부는 유치원 설립을 추진하여 1979년 8월 60여 평 규모의 건물을 완공하고 '대건유치원' 을 개원하였다. 대건유치 원은 1982년 2월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2000년 2월 까지 총 40회 1,46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80년 7월 1일에는 후평 본당을 분리하면서, 857명의 신자를 이관하였다. [변모와 성장] 1980년대는 독재 정권과 그에 대응하 는 교회 안팎의 거센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첨예한 정치 적 갈등과 그 극적인 귀결을 보여 준 시기였다. 정의 구현 사제단의 활동을 주축으로 하여 6대 주임 임홍지 신 부는 시국 기도회를 성당에서 개최하고 광주 항쟁의 참담한 모습을 담은 화보를 전시하여 독재 정권의 횡포를 알렸다. 또한 임 신부는 재임 기간 중 처음으로 춘천교구 에 매리지 엔카운터(M.E.)를 도입하였고, 1984년 8월 24일부터 27일까지 제1차 춘천교구 M.E. 주말 부부 모 임을 서울 명상의 집에서 개최함으로써 교구 내에서 주 말 부부 모임을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아울러 1984년 6월 24일에는 12개의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을 주축으로 '천주의 모친' 꾸리아를 결성하였고, 1986년에 레지오 창설 10주년 기념 행사를 개최하였다. 1984년 8월에는 낡은 양옥이던 수녀원을 증축하고 축복 식을 거행하였다. 7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응현 신부는 본당의 여러 행사를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1988년 5월 단층 건물이었던 유치원을 2층으로 증축하는 공사를 시작하여 9월 공사를 완료하고 대건 교육관이라고 명명하였다. 8대 주임으로 부임한 조규호 신부 또 한 본당의 각종 시설물을 신축하기 위하여 마스터 플랜 을 작성한 뒤 1994년에 교리실과 회합실로 이용할 하상 관(135평) 공사를 시작하여 10월에 완공하였고, 이어 1996년 7월 사제관과 수녀원 및 본당 사무실로 사용될 건물(305평)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2월에 준공하였다. 이로써 본당 내 제반 시설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9대 주임 이태혁 신부는 외환 위기와 IMIF 경제 체제라 는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어 교회 안팎으로 새로운 변화 가 요구되던 시기에 본당에 부임하였다. 이태혁 신부는 본당 쇄신을 위해 성서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취지 아래 성서 사도직 운동을 진행하여 성서 쓰기, 성서 공부, 성서 읽기 운동을 펼쳤다. 1999년에는 성부의 해를 맞아 낙후된 성당을 전반적으로 새롭게 단장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2000년 7월 공사를 시작하여 9월 초에 완공하였다. 아울러 2001년 8월에는 본당의 중심 협의회를 사목 협의회, 구역 협의회, 평신도 단체 협의회, 재무 평의회로 재편함으로써 본당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죽림동 본당 ; 춘천교구) 〔李泰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