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본당

蔚山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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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울산시 중구 복산동 494 소 재. 1956년 4월 26일 언양(彥陽) 본당에서 분리 · 설립 되었으며, 주보는 통고의 성모. 1996년 본당 이름을 지 금의 복산(福山)으로 바꾸었다. 관할 구역은 복산동, 학 성동, 옥교동, 반구동, 남외동, 약사동, 동동, 서동, 장현 동, 연암, 화봉, 송정, 호계, 강동면 일대. [교 세] 1958 년 1,233명, 1965년 1,156명, 1970년 2,035명, 1975 년 2,941명, 1980년 4,250명, 1985년 4,880명, 1990 년 5,433명, 1995년 6,549명, 2000년 5,346명. [역대 신부] 초대 김재석(金在石) 요셉(1956. 4~1957.4), 2대 백 응복(白應福) 스테파노(1957. 4~1959. 4), 3대 김재석 (1959. 4~1965. 1), 4대 안달원(安達遠) 베드로(1965. 1~1968. 1), 5대 이병만(李炳萬) 요셉(1968. 1~1972. 12), 6 대 박진(朴震) 시몬(1972. 12~1975. 2), 7대 정환국(鄭桓 國) 알로이시오(1975. 2~12), 8대 오수영(吳壽永) 히지노 (1975. 12~1978. 1), 9대 홍형표(洪亨杓) 암브로시오(1978. 1~1980. 9), 10대 이영묵(李英默) 안드레아(1980. 9~1983. 2), 11대 박태산(朴泰山) 요아킴(1983. 2~1986. 2), 12대 손덕만(孫德萬) 토마스(1986. 2~1989. 2), 13대 이영식(李 永植) 히지노(1989. 2~1990. 2), 14대 이옥군(李玉君) 타 데오(1990. 2~1991. 2), 15대 김윤근(金潤根) 베드로(1991. 2~1996. 2), 16대 염봉덕(廉鳳德)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1996. 2~8), 17대 이시찬(李時贊) 다니엘(1996. 8~1999. 2), 18대 박승원(朴勝遠) 니코메데스(1999. 2~현재). 박해 시절 울산, 언양, 경주, 양산 등지는 피난 신자들 의 집산 지대로서 일찍이 경남 천주교 발전의 온상이었다. 특히 허인백(야고보) 김종윤(루가), 이양등(베드 로) 3인의 순교자를 낸 울산 장대는 비중이 큰 순교 성 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해를 피해 깊은 산속으로 들 어간 피난 신자들은 좀처럼 도시 근방이나 인가가 많은 지역에 거주하려 하질 않았다. 박해 이후 부산에 본당이 설립되어 그곳 신부들이 피난 신자들을 찾아 매년 판공 성사를 주었지만, 울산 등지의 신자들이 집단을 이루지 못했으므로 본당이 설립될 전망은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이후 이 지역의 신앙 공동체는 1950년 한국 전쟁으 로 23육군병원이 개원되면서 병원에 근무하던 군종 신부와 피난민, 군인 그리고 몇 안되는 지역 신자들로 형성 되었다. 이곳에 관심을 가진 대구교구장 최덕홍(崔德弘, 요한) 주교는 울산 지역 본당 설립을 계획하고, 언양 본 당의 이성만(李性萬, 이냐시오) 신부와 상의하여 복산동 490번지 일대의 대지를 매입하고 윤병희(尹炳熙, 바오 로) 신부로 하여금 순정 공소에 머물면서 사목을 펼치도록 하였다. 1952년에는 현 강당 및 사제관 대지를 매입하였다. 1953년 12월 김재석 신부가 언양에 부임하면서 본당 설립은 현실화되어 갔다. 김 신부는 평일에는 울산 에서 머물며 출장 교리 등으로 교세 확장에 진력하였으며, 그 결과 1956년 4월 매암동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의 지원을 받아 성당을 완공하고, 주보를 소화 데레사로 정하였다. 당시 본당 신자수는 356명이었으며, 김재석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본당 승격과 동시에 새 성전 건립을 위한 공사가 시작되어 1956년 5월에 현 성당(120평 연와조 건물)을 기공한 후, 2대 주임 백응복 신부 재임시인 1957년 8월 공사를 마무리하여 성당을 신축하였으며, 성당 주보를 통고의 성모로 변경하였다. 본당 설립 초기에는 유엔군의 주둔과 가톨릭 구제회 (N.C.W.C.)의 구호 물자 배급 등으로 전교 성적이 좋았 고, 전교 회장 및 수녀들의 활약에 힘입어 1956년부터 1959년까지 4년 동안 영세자가 500여 명에 달하였다. 그 후 4대 주임 안달원 신부는 지역 실정을 감안하여 울 산유치원을 설립하고, 야음에 성당 부지 1,600여 평을 매입하였으며, 호계 · 남창에 건물을 매입하거나 공소를 개설하는 등 인구 증가에 대비하였다. 울산이 공업 단지로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오자, 신자수가 증가하 여 월평 본당(1975. 1.29), 전하 본당(1978. 1.29), 염포 본당(1981.8.30), 우정 본당(1983. 2. 17), 병영 본당(1988. 2) 이 각각 분리 · 설립되었다. 성당 건물의 노후로 인해 1997년 7월 구 성당 건물을 철거한 후 8월에 새성전 건 립위원회가 설립되어, 1999년 5월 사제관 철거 후 성전 확장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 해 10월 울산유치원 기공식을 거행한 후 2000년 3월 준공하였다. 18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승원 신부와 본당 신자들은 3개 꾸리아와 43 개 쁘레시디움, 370여 명의 단원을 두고 있는 레지오 마리애, 20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지속적인 성체 조배 회 등 제 단체들과 함께 본당 공동체 활성화에 진력하고 있다. (→ 부산교구 ; 언양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天主教 釜山教區 편, 《釜山教區三十 年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90/ 천주교 언양 교회, 《신앙 전래 이백 년사》, 1993.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