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필라스 Ulfilas(3111~382/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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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 고트족의 사도. 성서 번역자이며 고트어 문자의 창안자. [생애와 활동] 울필라스는 고트족의 소아시아 침공 때 포로로 잡혀 온 가빠도기아의 그리스도교 가문 출신으로 311년경에 태어났다. 그는 언어나 정서 면에서 완벽한 고트인으로 성장하였으며, 사절로 337년 콘스탄티노플 에 파견되었다. 그곳에서 아리우스주의자인 니코메디아 의 에우세비오(Eusebius Nicomediae, +342) 주교로부터 주교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오에 의해 선교사로 고트족에게 파견하였다. 이후 울필라스는 도나우(Donau) 북쪽 지역에서 7년 간 선교 활동을 전개했다. 잠시 동안 고트족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피해 피신해 있다가, 다시 발칸 반도의 산악 지역으로 돌아가 약 30여 년 동안 고트족에게 열성을 다해 선교 및 사목 활동을 했다. 그는 성서를 고트어로 번역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문자를 만들어야 했다. 그 래서 그리스어에 능통했던 그는 몇 가지 철자는 고대 유 럽의 룬(Rune) 문자와 라틴 문자에서 빌려 옴으로써 비교적 쉽게 고트인들이 사용할 문자를 만들었다. 그는 이 문자를 이용하여 열왕기를 제외한 모든 성서를 번역했 다. 열왕기를 제외한 까닭은 그 내용이 군사적인 위업을 나열한데다가, 고트족이 호전적이었기에 그 내용 때문에 그들을 자극하여 전쟁을 부추기기보다는 억제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구약성서는 칠십인역을 번역하였고, 신약성서는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했다. 울필라스는 360년에 아리우스주의 문제를 다른 콘스 탄티노플 교회 회의에 참석하였다. 울필라스는 이 회의 가 공포한 '유사 본질론' 신조를 받아들였다. 그 후 성자와 성부의 유사 본질과 성령의 종속을 가르쳤다. 그가 고트족에게 전한 것은 아리우스주의에 빠진 그리스도교였다. 니체아 정통 신앙을 따르는 테오도시우스 1세(379~ 395)가 황제가 되었을 때, 그는 '유사 본질론' 의 견해를 갖고 타협하고 화해하려는 이들을 이끌었다. 아퀼레이아 교회 회의(381)가 끝난 뒤 황제는 콘스탄티노플로 그를 소환했으며, 그곳에서 382년 혹은 383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여겨진다. [평 가] 울필라스가 아리우스주의를 신봉하게 된 것은 특별한 환경의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즉 그가 콘스탄 티노플에 머무는 동안 아리우스주의나 유사 아리우스주 의 외에 영향을 받을 만한 다른 가르침이 없었으며, 따라 서 그는 그러한 환경의 희생자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는 사망 직전까지 아리우스주의를 따랐고, 이로 인하여 그가 쌓은 업적과 노고는 정통 그리스도교 교의에 어긋난 다는 이유로 교회로부터 공경과 칭송을 받지는 못하였다. (→ 아리우스주의) ※ 참고문헌  P.J. Healy,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15, trans. by Carol Kerstner, Robert Appleton co., 1912(Online Edition by Kevin Knight, 1999)/ F.X. Murphy, 《NCE》 14, p. 3771 F.W. Norris, Biographical Dictionary of Christian Missions, ed. Gerald H. Anderson, MacMillan Reference USA, 1998, p. 688. [李錫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