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기 · 나진 본당
雄基 · 羅津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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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1935년 함경북도 경흥군 나진(慶興郡 羅津)에 설립되 었다가 1949년에 폐쇄된 함흥교구 소속 본당. 관할 구 역은 경흥 · 응기 · 나진 지역이었으며, 회령(會寧) 본당 공소에서 본당으로 독립되었다. 웅기를 중심으로 한 이 지역에 본당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은 1926~1927년경에 나타나며, 1927~1928년에는 웅기에 본당 대지를 매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특히 웅기 공소는 회령 본당 공소 중 가장 큰 곳으로, 1929년 에 76명, 1931년에는 200명의 신자들이 존재함으로써 이곳에 본당을 세우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포교 인력이 부족하고 또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 계획은 뜻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이 지역의 경제적 · 정치적 중요성이 높아 지고, 또 나진에 거대한 항구가 건설될 계획이 발표되면서, 교구에서는 1932년 후반부터 본당 설립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에 사우어(B. Sauer, 辛上 院) 주교는 미국의 후원자들로부터 자금을 얻어 나진에 대지를 매입한 뒤, 1935년에 본당을 창설하고 노이기르크(P. Neugirg, 俞順和)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 다. 그러나 도시의 여건상 성당 공사를 할 수 없게 되자, 노이기르크 신부는 당분간 청진(淸津)에 거처하면서 웅기 · 나진 신자들을 돌보게 되었고, 얼마 뒤 그가 고산(함 경남도 안변군 고산읍) 본당을 맡게 되면서, 응기 · 나진 지역은 다시 공소가 되었다. 한편 1936년경 나진 지역의 신자수가 324명으로 증 가하자, 교구에서는 나진 본당을 다시 세운 뒤, 1936년 11월 치머만(F. Zimmerman, 閔德基) 신부에게 본당을 맡겼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러 가지 사정상 치머만 신부는 나진에 상주할 수 없었고, 대신 나남(羅南, 함경북도 부령군 나남읍)으로 가 본당을 세운 다음, 그곳에서 웅기 · 나진 신자들을 함께 사목하였다. 이후 웅기 · 나진 본당은 나남 본당 신부에 의해 관리되다가 1949년 성당을 비롯한 모든 교회 재산이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해 몰수되면서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나남 본당은 치머만 신부에 이어 1937년 말부터 엔크(D. Enk, 嚴) 신부가 사목하였고, 1938년 말부터는 모르(L. Mohr) 신부가, 그 다음에는 밀레만(H. Millemann, 南) 신부가 부임하여 사목하였다. (→ 나남 본당) ※ 참고문헌 《경향잡지》 817호(1935. 11. 28)/ 《가톨릭 사전》 한국 교회사연구소 편,《원산교구 연대기》, 1991/ -, 《함경도 천주교회 사》, 1995. [方相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