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은 본당

加恩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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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소속 본당. 경북 문경군 가은읍 왕릉1리 280-1 소재. 1957년 점촌 본당(현 충현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한 비안네. 관할 구역은 가은읍과 농암면. 공소는 가은읍에 소재한 도태, 상괴, 전곡, 민지, 성유 등과 농암면의 상신원, 농암, 내서, 지동등 9개소. 〔교 세〕 1988년 1,896명, 1993년 1,654명. 〔역대 신부〕 초대 지베르츠(Emst Siebertz, 지인수) 에른스트(1957. 5~1961. 11), 2대 이경우(李慶雨) 가브리엘(1961. 11~1965), 3대 최영호(崔榮浩) 비안네(1965~1969. 8), 4대 지글메이어(Georges Zieglemeyer, 신걸만) 게오르규(1969. 8~1973), 5대 이성길(李聖吉) 바오로(1975~1979. 5), 6대 유재준(兪在濬) 다태오(1979. 5~1981. 8), 7대 마퀴에이라(Raphal Maquieira, 민정식) 라파엘(1981.8~1985. 4), 8대 전달수(田達秀) 안토니오(1985. 8~1990. 7), 9대 이상복(李相福) 비오(1990. 7~1993.5), 10대 조창래(趙昌來) 빈천시오(1993. 5~현재).
〔공소 시기〕 가은 지역의 복음 전파는 병인박해(1866) 때 경상도 북부에 거주하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문경군 동로 상달에서 잠시 생활하던 중 연풍 흰내미로 이주하였다가 다시 먹뱅이(현 왕릉2리)에 정착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후 이곳 신자들은 박해 말기인 1869년경 7가구가 모여 교우촌(회장 : 방사선 요한)을 형성하였으며, 1886년에는 칠곡의 신나무골〔枝川面 蓮花里〕에 거주하던 로베르(Robert, 金保祿)의 방문을 받고 '왕릉(가은) 공소' 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1894년 9월경 파이야스(Camilleus Paillhasse, 河敬朝) 신부가 칠곡에 가실 본당(현 낙산 본당)을 설립한 뒤에는 이곳 소속 공소가 되었고, 1901년 2대 김성학(金聖學, 알릭스) 신부가 김천 본 당(현 황금동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전임되자 그의 도움으로 공소 강당을 매입하게 되었다. 이 강당은 1907년 도탄리(현 왕릉4리)로 이전되었으며, 1941년 현재의 성당 소재지인 왕릉1리로 다시 이전되어 이듬해 새 강당이 건립되었다. 이후에도 왕릉 공소는 그 소속 본당이 자주 변경되어 1906년 이후 충북 옥천 본당(홍병철 루가 신부) 관할이 되었다가 1922년 점촌 공평 본당(김문옥 요셉 신부) 관할로 변경되었고, 1947년 함창 본당(김동환 가롤로 신부) 소속이 되었다가 1952년부터 점촌 본당(최영호 비안네 신부) 소속이 되었다.
〔설립과 변모〕 왕릉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된 것은 점촌 본당 시절인 1957년이었다. 이에 본당에서는 초대 지베르츠(에른스트) 신부 재임시인 1960년 새 부지를 추가 매입하여 기존의 강당 부지와 함께 새 성당을 건립하기로 하고, 이듬해 4월 성당 및 사제관 건립에 착공, 11월에 준공을 보게 되었다. 아울러 제4대 지글메이어(게오르규) 신부 재임시인 1970년 6월에 강당을, 제5대 이성길(바오로) 신부 재임시인 1978년 5월에 수녀원을 건립하고, 각처의 공소 강당 신축에도 노력하여 도태 공소(1963), 성유 공소(1964), , 농암 공소(1965), 상괴 공소(1972)를 각각 신축하였다. 그 동안 본당의 사목을 돕기 위해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소속 수녀들이 1978년 2월부터1980년 4월까지, 1981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활동하다가 귀원한 뒤 1985년 2월부터는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소속 수녀들이 본당에 분원을 설립하고 활동해 오고 있다. 한편 본당 신자들은 초기부터 성모회, 학생회, 모니카회, 성 요셉회, 명도회, 레지오 등 여러 신심 활동 단체들을 구성하였으며, 주일학교를 위해 1985년 12월에 교리실을, 1986년 11월에 유아원 교실을 각각 증축하였다. (→ 안동교구)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