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

原罪

[라]peccatum originale · [영]original 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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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는 첫 인간들이 하느님의 명령을 거스름으로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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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는 첫 인간들이 하느님의 명령을 거스름으로 생겨났다.


아담의 첫 죄' 로 인하여 온 인류가 날 때부터 처하게 되는 '죄스러운' 상태. 낙원에서 거룩함과 의로움을 누렸던 첫 인간' 은 첫 죄' 로 인해 그것들을 상실하였고, 또 그 후 모든 인간은 그 원초적 거룩함과 의로움이 결핍된 상태로 태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원죄 교리는 펠라지우스(Pelagus)의 사 상을 논박한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 430)의 신학에 의해 주요한 계기를 맞이하였고,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자들과의 논쟁을 통해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 의해 세부적으로 확정되었다. 교회는 원죄의 실재를 밝혀 주는 일반적 주제들, 즉 죄의 보 편성과 악의 연대성 및 죄의 벌인 죽음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과 첫 죄' 와 그 결과에 관련된 성서 본문들을 재해석하면서 이 교리를 정립하였다. [성서적 근거] 관련 주제 : ① 죄의 보편성 : "하느님 께서는 세상이 사람의 죄로 가득 차고 사람마다 못된 생각만 하는 것을 보셨다"(창세 6, 5). 성서는 창세기에서부 터 죄에 기우는 경향이 극복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온 땅 위에 만연해 있다고 증언한다. 타고난 악에로의 경향은 인간 마음의 근원적 타락과 연관되어 있다. "불의로 가득 찬 백성, 사악한 종자, 탈선한 민족, 부패한 자식들"(이사 1, 4)이라 불리는 하느님 백성 의 마음은 굳어져 있다(미가 7, 5 ; 예레 5, 1 ; 이사 64, 5 참조). 다른 민족들도 "마음에 수술을 받지 않았기" (예레 9, 25)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선천적인 탈선에 참여하고 있다.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악을 공유하고 있어 서 죄가 실제로 만연되어 있다. "죄짓지 않는 사람이 없 다" (1열왕 8, 46 ; 전도 7, 20 ; 욥 15, 14 참조). 모든 인간이 나면서부터 죄는 각 사람의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시편 51, 7). 인간의 천부적 조건, 각 개인 행위 이전의 처지는 자손 대대로 전파되는 죄스러운 처지이다(시 편 58, 4 ; 이사 48, 8). 이러한 죄의 보편적 상황은 인간이 혼자 힘으로는 신뢰와 신임을 바탕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맺지 못하는 데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의인들까지 포함하여 모든 이들은 예외 없이 하느님 앞에서 불안과 공포심을 지닌다. 모세는 호렙 산 위에서 "하느님을 쳐다보기가 두려워서" (출애 3, 6) 얼굴을 가렸고,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느님을 뵌 후 죄인이라는 의식을 지니게 된다(이사 6, 5). 에제키 엘은 하느님의 영광을 바라보자 땅에 쓰러진다(에제 3, 23). ② 악의 연대성 : 사람들은 따로 떨어져 살지 아니하고 악은 곳곳에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악에 물들어 있다. 성서는 세 가지 연대성을 지적한다. 첫째로, 자녀는 선조들이 저지른 잘못의 결과를 떠맡고 또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의 죄에 연루되어 있다. "죄지은 선조들은 간 데 없는데 그 벌은 우리가 떠맡게 되었습니 다"(애가 5, 7). 바빌론 유배의 고통은 귀양자들과 그들 선조들의 탓에서 기인된 것이다(레위 26, 39-40). 물론 예언자들에 의해 이 연대성의 법칙은 비판을 받고 교정 되었지만, 그 법칙은 악의 연대성에 관한 이스라엘의 의식을 잘 반영하였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큼해진다" (예레 31, 29 : 에제 18, 2 참조) . 둘째, 한 국가 공동체나 종족 공동체의 구성원들 간에도 연대성이 있다. 이 때문에 단 한 사람이나 소수의 탓이 백성 전체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왕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를 불러들인 벌로 온 가족과 함께 하느님께 무서운 재앙을 받았다" (창세 12, 17). 사흘 동안 흑사병을 온 지역의 백성들 위에 내린 하느님의 분노 앞에 다윗은 기도를 바치면서 "죄를 지은 것은 저입니다. 못할 짓을 한 것은 저입니다.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제발 손을 돌려 저와 제 집안을 쳐 주십시오" (2사무 24, 17)라고 애원하였다. 셋째, 개인과 환경 사이에도 연대성이 있다. 바벨탑에 관한 성서의 보도는 한 개인 또는 여러 사람들의 책임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그 대신 오만한 주도권을 행사하는 장본인을 "사람들"이라 지적한다. 바벨탑 사건으로 도시 안에 거주하던 모든 사람들은 숙 명적으로 연대 관계 안에 있게 되는데, 그들은 하느님에 의해 온 세상 안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③ 죄의 벌인 죽음 : 인간은 '육' 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다. "티끌로 된 몸은 땅에서 왔으니 땅 으로 돌아가고, 숨은 하느님께 받은 것이니 하느님께로 돌아가리라"(전드 12, 7 : 2사무 14, 14 참조). 죽음은 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공동 운명이다. "사람의 운명은 짐승의 운명과 다를 바 없이 사람도 짐승도 같은 숨을 쉬다가 같은 죽음을 당하는 것을! 이렇게 사람이 짐승보다 나을 것이 무엇인가!"(전도 3, 19 : 이사 40, 6-7 참조). 그런데 죽음은 특정 경우에 비극적 방식으로 또 비정상적으로 인간을 덮치므로 더 이상 인생의 정상적 결말이 아니다. 가혹한 죽음이나 조속한 죽음은 때로 하느님의 벌로 겪는 죽음처럼 간주되고, 모세 율법은 죽음을 죄에 대 한 처벌로 여긴다. 죽음의 벌은 엄밀히 말해서 '구원의 박탈' 이다. 따라서 죽음은 더 이상 신체적이며 생물학적 인 사건이 아니라 종교적 사건을 가리키는, 즉 인간의 탓으로 기인되는 구원 박탈의 처지를 나타낸다. 그래서 간혹 죄 자체가 죽음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하느님은 아담에게 "네가 그것을 먹는 날 분명 죽게 되리라"(칭 2, 7) 고 예고하지만 범죄한 아담은 죽는 대신 낙원 곧 구원의 영역, 하느님과의 친교로부터 추방당한다. 지혜서는 자연적 죽음과 종교적 죽음을 명확히 구분하 면서,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들어오고 그에 속한 사람들 이 경험하게 되는 종교적 죽음을 가리키기 위하여 악인들의 운명과 의인들의 운명을 대비시킨다. 사실 의인은 '겉으로만' 죽었을 뿐 실제로는 '여정' 중에 있으며(지혜 3, 2-3), 또 하느님과의 친교를 누리고 있다. 반면 악인에게 죽음은 하느님으로부터의 격리(지혜 1, 12-15 ; 18, 5), 그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받아야 할 처벌이다. 따라서 죽음은 하느님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이다. 성서 본문 : ① 창세기 2-3장 : 이 장은 불사불멸로 불린 인간의 타락, 피조성과 사멸성을 설명한다. 인간은 낙원을 경작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그곳에 있게 되었다(창 세 2, 15). 그는 선과 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데, 그렇게 해야만 죽음을 겪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2, 17). 첫 인간들은 뱀의 꾐에 빠져 하느님 의 명령을 위반하는 즉시 벌거벗었음을 깨닫고 수치 속 에서 하느님 앞에 서 있기를 두려워한다(3, 7-8). 첫 남녀는 각기 벌을 받고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나며 생명의 나무에서 멀어지게 된다(3, 16-24). 처벌의 결과는 그 장본인들에게만이 아니라 마지막 후손들에게까지 확장되었다. 죄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당한 인간의 비참한 조건은 창조주 하느님에게서, 숙명적 상황에서 또는 알 수 없는 저주의 세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느 님의 구원 계획을 거슬러 자유를 남용한 인간의 잘못에 서 기인되었다. 죄의 보편성과 선조들의 타락 사이의 연관에 관한 창세기의 내용은 지혜문학 작품에도 묘사되어 있다. "여자로부터 죄가 들어 왔고 또 그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죽게 되었다"(집회 25, 24). "죽음이 세상에 들어 온 것은 악마의 시기 때문이니 악마에게 편드는 자들이 죽음을 맛볼 것이다"(지혜 2, 24). ② 로마서 5, 12-21 : 이 성서 구절은 아담과의 대비 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대성을 역설한다. 아담의 반란, 죄, 죽음을 차례대로 논의하면서 아담 안에서의 연대성을 제시한다. 죽음은 아담이 저지른 죄의 벌이다. 벌은 법에 의해 선고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법은 후에 선포 되었다. 따라서 죄의 벌인 죽음은 아담과의 연대성에 의해 전달되었다. 생명의 유일한 원천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이 지닌 보편성과 효과를 입증하기 위하여, 죄인인 아담의 행적과 속량된 인류의 우두머리이고 원인인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이 대비된다. 그래서, 두 가지 연대 관계가 대조된다. 아담이 모든 이와 유대 관계를 맺고있 는 것처럼 모든 이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대 관계에 있다. 첫째 연대성은 죄와 죽음의 왕국을 건설하고, 둘째 연대 성은 은총과 생명의 왕국을 세운다. "한 사람으로 말미 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 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뚫고 들어왔습니다"(로마 5, 12) 죄는 아담의 반란으로 인해 세상에 들어오고 또 죄를 통해, 육체적 일 뿐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의 격리이기도 한 죽음이 세상에 들어 왔다. 모든 이가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지배하지만 벌은 법령에 의해 경고된 것이 아니면 부과되 지 않는다(5, 13 이하). 그런데 아담 이래로 죽음은 그와 관련된 하느님의 명 령이 없으므로 '본죄' 에 의해 벌로 부과된 것으로 간주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신법의 선포는 모세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자연법은 제재의 효과에 대해 명확하 지도 결정적이지도 않았다. 따라서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지배해 온 죽음은 오로지 아담과의 연대성, 그로부터 물려받은 벌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밖에 없다. 아담의 구속 사업을 보다 훌륭히 역설하기 위해서만 논 의되고 있다. 아담의 죄가 우리 범죄의 먼 기원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원초적 타락을 속량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죄와 그 예속으로부터도 우리들을 해방시키러 왔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이가 죄인이 되었고, 마찬가지로 우리를 앞서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우리 모두가 의롭게 되었다(5, 19). 예수 그 리스도와 은총은 죄 위에 군림하게 되었으니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기"(5, 20) 때문이다. 순종 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죄에 예속된 우리를 해방시켜 주고 우리는 신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에 가담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아담으로부터 오는 죄의 힘은 모든 사람 안에 있고, 우리 각자의 선택에 앞서는 처지이다. 성서는 죄의 상황과 그에 따른 비구원의 상황을 보편 성 자체로가 아니라 구원 상황의 보편성에 대립시켜 언 급한다. 창세기의 저자와 바오로는 일상 경험에서 출발 하여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을 확인했고, 역사 안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보아 첫 조상에까지 소 급해야만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 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범한 죄를 따지다가 첫 인간에 까지 소급하게 되었다. 창세기와 로마서는 구원 역사의 전체적 맥락과 거듭 재생되는 인간 생명의 리듬을 제시 하면서, 하느님의 행적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안에 뿌리 내린 보편적 죄의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단언하였다. 그러므로 첫 죄' 로 이해되는 원죄는 원초적 역사의 시초에 비유적으로 투사된 '현실적(actualis) 죄' 이다. 현재 의 인간은 늘 있어 왔던 존재이며 또 연대기 측면에서 원 초적인 것으로 제시되는 것은 실상 근원과 인간 존재의 전망하에서 '시원적인 것' 이다. 그것은 인간이 현실 안에서 언제나 겪는 경험 요소이다. [교리의 정립] 아우구스티노 : 그가 원죄 교리를 창안 한 것은 분명 아니다. 그 이전에 이 교리의 핵심에 관련 되는 이론들이 제기되었고, 실천적 전통이 실행되었다. 그런데 그는 펠라지우스를 논박하면서 '원죄' 란 용어를 창안했고, 해석적 모델과 이론적 체계를 이 교리에 부가 함으로써 이 교리의 정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펠라지우스에 의하면, 인간은 반드시 은총 없이도 자유 의 지의 타고난 능력으로 선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아담의 죄는 단순히 나쁜 표양의 영향만을 미칠 따름이다. 이 주 장을 거슬러 아우구스티노는 인간을 하느님께 온전히 의존해 있는 존재로 이해하며,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난 자 유 의지는 순전히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의 로마서 5장 12절에 대한 해석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번식 에 의해 아담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모두가 죄를 짓는다. 모든 이가 죄를 짓는 까닭은 인간이 '씨앗의 형태로' (ratione seminali) 아담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인간은 '출산에 의해' (per generationem) 전해지는 원죄를 물려받는다. 아담의 죄는 의지적인 것이고 또 모든 출산 행위에 내재해 있는 '탐 욕' (concupiscentia, 또는 사욕)을 통하여 출산으로 전해진다. 탐욕은 그 자체로 실제 죄는 아닐지라도 죄로부터 온 다. 원죄는 상속되는 것으로써 하나의 : '탓' (culpa)이고, 그 주된 벌은 죽음이다. 또 세례받지 않은 아기가 죽었을 경우, 그 아기의 벌이 가벼울지라도 영생에서 제외된다. 아우구스티노의 이같은 설명들, 예컨대 출산에 의한 원죄의 전달, 모든 인간이 아담 안에 내포되어 있다는 설명, 탐욕의 역할, 인간 성애(性愛)에 대한 부정적 평가, 세례받지 않은 아기들이 받는 단죄 등에 관한 단언들은 논란의 주제들이다. 하지만 인간을 거의 중립적인 출발 점에 둠으로써 구원의 실재를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시키고, 또 원죄의 실재를 과소평가하면서 한 개인의 죄스러 운 행위로 축소시킨 펠라지우스를 논박한 반대 입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교도권의 가르침 : 펠라지우스의 오류를 단죄한 카르타고 공의회(418)와 반펠라지우스 논쟁을 종결지은 제2 차 오랑주 교회 회의(529)에서 원죄에 관해 선포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제5차 회기(1546) 중에는 그 이전의 내용을 재확언하고 당시의 논쟁에 근거하여 일부 내용들 을 명확한 표현으로 보완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원죄에 관한 고유한 교리를 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의화에 대한 근본 교리를 위한 바탕을 마련하고자 하였다(DS 1510~1516). 인간의 기본 조건은 신체적 관점(질병 · 고 통 · 죽음)에서 뿐만 아니라 도덕적 관점(죄 · 자유의 훼손 · 악에의 경향)에서도 악화되었다. 인간의 잘못에서 빚어진 이 죄의 처지는 모방을 통해서가 아니라 출산의 자연적 방식에 의해 전해지거나 확산되고 각 모든 사람 안에 전 해지며 세례성사로써 없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은 세례 후에도 사람 안에서 악에로의 경향으로 존속하는 탐욕에서부터가 아니라 원죄에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 펠라지우스 논쟁을 유발시킨 논제가 원죄의 부정 또는 과소평가였다면, 트리엔트 공의회의 경우는 어느 정도 그와 정반대였다. 죄로부터 출발하여 인간 본성을 온전히 타락한 것으로 이해한 종교 개혁자의 사고에 대해, 트리엔트 공의회는 인간 본성이 손상되었을지라도 본질에 있어서 그 온전성을 보전하고 있음을 단언하고(DS 1521), 또 의롭게 된 인간의 내면적 변화와 의화 실재를 천명하였다. 공의회는 원죄와 관련된 몇 가지 사항을 명 확히 하였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사 람들을 위한 구원은 없고 본죄를 범하지 아니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필요하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되지 아니한 인류의 상태는 하느님으로부터 격리된 상태이고, 또 죄의 상태 그리고 거룩함과 의 로움이 결핍되고 박탈된 상태이다. 셋째, 원죄는 아담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를 입혀 '죄인' 이 되게 한 범죄, 역사의 시초에 저질러진 인간의 죄스러운 행위이다. [신학적 종합] 원죄의 근본 핵심 : 원죄는 불특정 결함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은 결핍이며, 따라서 그것은 유전 (遺傳)의 특성을 지닐 뿐 아니라 결국에는 인간의 죄스 러운 상황을 초래하는 '죄' 가 된다. 원죄가 성화 은총의 결핍을 초래하고, 따라서 인간의 자유 결단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죄가 된다. 성화 은총의 결핍이란 어떤 창조된 선물의 결여가 아니라 인간을 실질적 으로 하느님의 벗이 되게 하는 선물의 결핍을 뜻한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근본 관계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 구원 역사의 구체적 질서 안에서 인간을 이루는 구성 요소가 결핍될 때에 그것은 '죄' 이다. 죄의 개념과 관련되어 있는 은총의 결핍과 인간의 자유 결단은 각 사람 모두 에게 그와 같은 영향력을 미치므로 항상 보편적 차원을 지닌다.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각자 개인적 결단을 내 리기 이전에 죄의 처지에 빠져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 에서 자기 삶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즉 범죄한다고 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서의 처지에 이미 처해 있으 므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원죄는 본죄로써 실행되는 각 사람의 개별 자유 결단 이전에 모든 사람들 에게 영향을 미치는 비구원의 보편적 상황이다. 인간이 하느님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무능, 은총 의 결핍 상태인 원죄 개념에는 구분되어야 할 두 가지 뜻이 담겨져 있다. 중세기부터 신학자들은 인간 각자가 태 어날 때 처하게 되는 이런 처지를 가리키기 위하여 '전 해진 원죄' 또는 '유전죄' (peccatum originale originatum)라 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 상태를 야기시킨 첫 인 간의 죄를 가리키기 위하여 '기원 죄' (peccatum originale originans)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기원 죄 : 만일 그리스도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이의 구세주로 고백한다면, 이 신앙 자체는 만인의 비구원을 생겨나게 한 첫 죄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단언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키는 구세주가 되지 못하고, 선하고 의로운 인간을 창조할 줄 모르는 창조주 하느님의 잘못을 고치는 역할만 수행했을 것이다. 그래서 '야기시키는 첫 죄' 는 왜 구원 역사가 아니라 악의 역사가 원초적으로 인간 존재를 결정지우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하느님이 죄인을 창조하지 않았는데도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난다. 그러므로 인간의 창조와 역사적이며 구체적 인간 존재 사이에는 분명 어떤 것이 개입하였을 것이고, 바로 이것이 기원 죄이다. 역사적 첫 죄, 기원의 첫 죄에 관해 말할 때에 그것은 분명 아담의 역사적 실제 인격과 연관되지 않는다. 아담은 하나의 암호, 하느님의 은총 및 하느님과의 우정을 전 달하는 대신 죄의 상황을 전해 준 인간적 중재를 가리키는 암호이다. 아담은 첫 자유인을 포함하는 온 인류를 대 표한다. 그런데 첫 자유인은 죄의 역사를 개시했으나 다른 자유인들도 다 같이 죄를 범해 왔다. 그러므로 기원 죄는 단 한 사람의 죄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범하는 죄이다. 기원 죄는 온 인류의 죄라 할 수 있다. 모든 사 람이 첫 죄의 결과를 당하기만 하는 수동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범죄함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근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기원 죄는 온 인류의 죄라 할 수 있다. 전해진 원죄 : 모든 인간이 죄의 상황에 있다. 이 상황은 행위가 아니라 상태이다. 이 처지는 악의 세력 안에 있는 멸망 · 은총의 결핍 · 노예 상태이다. 이런 까닭에 죄는 이 처지를 지칭하는 데에 부적합한 개념이 아니다. '전해진 원죄' 또는 '유전 죄' 란 각 사람이 자유롭고 의 식적인 모든 행위에 선행하는 참되고 엄밀한 의미의 죄를 지칭한다. 그것은 각 사람이 지은 죄가 아니고 시원 인류로부터 시작되어 세대를 거쳐 전수된 죄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 결단을 내리기 이전에 죄 속에 갇혀 있다. 각 개인에게 은총의 결핍 상태를 야기한 죄는 첫 인간 의 죄뿐만 아니다. 모든 사람의 죄가 유아들에게까지 은총을 박탈한다. 유아까지도 처하게 되는 은총의 결핍 상 태는 첫 자유인의 죄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지은 죄의 결과이다. 전수된 원죄는 기원 죄의 벌이며 또한 이미 범한 죄의 벌이기 때문에 죄라 할 수 없지만, 이 벌 자체가 죄와 같은 결과를 야기하기 때문에 죄이다. 그러므로 전수 된 원죄는 책임 없는 죄이지만 그 벌이 죄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므로 용서받아야 한다. 유아는 단순히 신 · 인 관계의 회복을 이루는 은총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용서도 받아야 한다. 죄스러운 은총 결핍의 상태에 대해 용서받아야 한다. 전수된 원죄는 어떻게 전달되는가?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번식으로써 원죄가 전달되지만, 물론 생리학적 행위로써 은총의 결핍, 신 · 인 관계의 파괴가 전달된다 는 가르침은 아니다. 그리고 죄 자체가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유아는 은총의 결핍 상태에 처해 있게 되는 데에 필요 충분한 조건만을 이어받을 뿐이다. 즉 하느님과의 인격 관계를 맺는 데에 크게 미달된 인간성만을 이어받 는다. 부모한테서 단순한 인간성만을 물려받는다.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성을 이어받을 뿐이다. 유아는 이어받은 단순한 인간성 때문에 은총이 결핍되고 하느님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인간으로 태어난다. 은총의 우위성 : 신앙 체험의 근본 요소는 죄가 아니 라 은총이고, 인간의 응답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이다. 그것은 근원적 성사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교회의 성사들 안에서 우리에게 선사되는 하느님의 순전히 은혜로운 선이다. 인류 역사의 시초에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상에 부합되게 하고(로마 8, 29), "하느 님 아들 안에 있는 아들"의 독특한 우정에로 인간을 부 르는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이 있다. 하느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워 이루려고 작정하신 영원하신 계 획"(에페 3, 11)을 성취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몸 소 은총을 주시는 사람들을 영원으로부터 당신 아들의 모습을 가지도록 정하셨다" (로마 8, 29 ; 2디모 1, 9). 그런데 인간은 영적이며 자유로운 피조물로서 오로지 자기 책임의 실행을 통해서만 이 하느님의 계획에 응한다. 하 느님은 부르지만 몸소 선사한 선물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구원 역사의 구체적 질서 안에서 인간은 자기 운명의 유일하고 절대적 주인공, 자기 미래의 독자적 창조자, 자기 행위의 절대적 판관으로 자처하면서 하느님의 계획에 대항하였다. 인간은 자기 존재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신세 지고 있지 않다고 또 멋대로 결단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선과 악을 결정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들어온 죄의 실재는 인간의 하느님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종교적 실재이므로 은총의 실재를 통해서 이해된다. 인간의 배은망덕에 대립되고 또 그 모든 역설적 비극 안에서 그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다. 죽음을 고발하는 것은 생명이고, 인간의 악의의 깊이와 넓이를 드러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느님 사랑의 계시이다. 온 세대의 인간은 권 세와 독립의 계획으로부터 유혹받도록 자신을 방치해 왔고, 또 "갈라져 새기만 하여 물이 괴지 않는 웅덩이를 파려고 생수가 솟는 샘" (예레 2, 13)인 하느님을 저버렸다. 죄의 선행하는 보편적 상황 곁에는 죄에 앞서는 은총의 보편적 선사가 있다. 인류의 유일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중심과 종말을 지니며, 또한 그분 안에 "모든 존재가 창조되었고 모든 것이 존속하므로"(골로 1, 15. 17) 창조의 이중 경륜 즉 은총과 죄의 경륜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죄가 없는 낙원의 경륜과 예수 그리스 도가 구세주로서 개입하시는 죄의 경륜이 따로 병행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있는 유일한 은총의 경륜이 있을 뿐이다. 단 하나의 구원 경륜 곧 은총의 경륜이 있을 뿐이다. 죄가 은총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 은총은 죄 이전에 있었고, 죄에 앞선다. 첫 인간은 범죄 이전에 낙원에 있었다. 그러므로 죄가 없었더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도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는 절대 성립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죄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예수 그리 스도가 현존해야 하는 확고한 근거가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균형이 있는 것이 아니고, 둘은 같은 수준 위에 동격으로 놓일 수 없다. 아담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 아담과 예수 그 리스도는 대등 관계가 아니라 주종 관계에 있다. 아담은 구원의 보편성의 척도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요청되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담에 의해 요청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원죄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은 은총의 메시지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역사의 시초에도 그 마지막에도 인간의 죄 위에 군림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원죄 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 관한 기본 논의를 위해서만 의미를 지닌다. 신약성서에서 죄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의 계시이고, 죄의 보편성은 은총의 보편성에 의해 부각된다. 인간 역사에 대한 결정적 해 석은 죄에 처한 인간의 상황에 영원한 구원의 빛을 던져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이다. (→ 구원론 ; 은 총 ; 의화론 ; 죄 ; 죽음) ※ 참고문헌  J. de Fraine, The Bible and the Origin ofman, New York, Desclée, 1962/ A. Ganoczy, Schopfungslehre, Dusserdorf, Patmos, 1983/ K. Rahner, The Sin of Adam, Theological Investigations 11, New York, Seabury, 1974, pp. 247~2621 P. 스호는베르흐, 조정헌 역, 《인간과 죄》, 분도출판사, 1978. [崔榮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