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평 본당
元坪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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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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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 주교의 서품식.
①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구미시 원평동 435-1 소재. 1956년 12월 30일에 설립되었다. 주보는 성 베 네딕도. 관할 구역은 원평1 · 2 · 3동, 원남동, 남통동, 선주동 전 지역과 송정동, 김천시 아포읍 일부 지역. [교 세] 1968년 1,706명, 1974년 2,000명, 1981년 2,140명, 1986년 3,282명, 1991년 4,389명, 1997년 3,273명, 2000년 3,621명. [역대 신부] 초대 피셔(G. Fisher) 제라르도(1957.3~7), 2대 이경우(李慶雨) 가브리 엘(1957. 7~1960. 4), 3대 노규채(盧奎彩) 아우구스티노 (1960. 4~1964. 6), 4대 이동호(李東鎬) 플라치도(1964. 6~1965. 5) , 5대 이석진(李錫震) 그레고리오(1965. 5~1970. 6), 6대 이동식(李東植) 베네딕도(1970. 6~1980. 2), 7대 퓌테러(Michael Fütterer, 곽미걸) 미카엘(1980. 2~1981. 9), 8대 석찬귀(石燦貴) 스테파노(1981. 9~1984. 1), 9대 함정태(咸正泰) 가시아노(1984. 1~1985. 10), 10 대 이형우(李炯雨) 시몬(1985. 10~1986. 1), 11대 허연구 (許淵九) 모세(1986. 1~1991.3 12대 김영옥(金榮玉) 요 한(1991. 3~1995. 2) 13대 곽길우(郭吉祐) 베드로(1995. 2~1998.8), 14대 조성택(趙成澤) 요한(1998. 8~현재 ) 1952년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왜관에 정착하여 선 산 · 구미 지방을 주관하게 되자 같은 수도원의 비테를리 (T. Bitterli, 李聖道) 몬시놀로부터 지원을 받아 구미 공소 관할이었던 현 본당 소재지의 대지를 매입하여 1956년 12월에 성당(건물 면적 51평, 현 분도유치원 본관)을 짓고 뒤이어 구미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979년 9월 26일 신평 본당이 분가함에 따라 원평 본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왜관 본당의 보좌 정환국(鄭桓國, 알로이시오) 신부가 매주 미사를 집전하다가 1957년 점촌 본당의 피셔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2대 주임 이 경우 신부는 선산읍을 중점적으로 선교하였는데, 선산 · 고아 · 봉한 등 공소의 건물을 마련하고 해평 공소를 개 척하였다. 3대 주임 노규채 신부는 도개 · 외예 · 임은 등 공소를 설정하고 중학교 미진학 아동 10여 명에게 진학 의 길을 열어 주기도 하였다. 5대 주임 이석진 신부는 농 촌 개발에 주력하여 1966년 10월 가톨릭 농민회를 가톨 릭 노동 청년회로부터 분리 · 유치하였고, 분도 양계장을 개설하여 협업 농업으로 양송이 농장을 마련하였다. 또 신용 협동 조합(현 분도 신협)을 창설하였고, 구미읍 지역 의 농촌 지도자들을 포함한 농촌 개발 협회를 창설하여 지역 영농 개혁에 공헌하였다. 그리고 중학교 미취학 아동을 위한 호수천신고등공민학교를 열어 약 3년 간 운영하기도 하였다. 6대 주임 이동식 신부는 구미 공업 단지의 조성으로 지역 사회가 도시화 · 공업화되어 감에 따라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사목에 치중하였다. 8대 주임 석찬귀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 조직의 확대 등으로 젊은이들의 사도직 활동 참여도를 높였고, 성서 40주간 모임을 개설하고 외짝 교우를 위한 교리반을 운영하였다. 9대 주임 함정태 신부는 신자 재교육에 주력하여 주일학교를 육성하고 신앙 강좌를 자주 열었으며, 부부 일치 운동(M.E.)도 전개하였다. 10대 주임 이형우 신부는 외짝 교우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이고 부부 20여 쌍의 혼인 장애를 해소하는 등 가정 사목에 노력하였는데, 1986년 1월 왜관 감목 대리구가 대구대교구로 환원되어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임되었다. 11대 주임 허연 구 신부는 가정 사목과 신심의 증진에 주력하였는데, 부부 주말 피정 · 월례 가족 미사 · 가족 산간 학교 · 월례 인간 관계 공개 강좌 등을 통하여 성가정의 형성 · 유지에 노력하였으며, 본당 설정 3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장학 사업을 시작하고 《원평 30년사》를 간행하였다. 1995년 2월에 가톨릭 문화관이 준공되어 성서 학교 · 사회 복지 · 각 본당 친목회 등의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1990년 12월에 형곡 본당이, 1996년 9월에는 도량 본당이 분가하였다.(⇦ 구미 본당 ;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원평 성당 사목회,《원평 30년사》, 1986. 〔金志煥〕 ② 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1-4 소재. 1977년 12월 27일에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 · 설립되었다.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관할 구역은 김제시 금구면 일부, 금산면 일부, 정읍군 감곡면 일 부 지역. [교 세] 2001년 703명. [역대 신부] 초대 김태윤(金泰潤) 안드레아(1977. 12~1982. 9), 2대 김윤섭(金潤 燮) 안셀모(1982. 9~1984. 12), 3대 박인호(朴寅虎) 베드 로(1985. 1~1986. 4) , 4대 전종복(全鍾福) 요한(1986. 4~ 1990. 5), 5대 최용준(崔容俊) 안토니오(1990. 5~1994. 1), 6대 한정현(韓正鉉) 아우구스티노(1994. 1~1997. 2), 7대 김의철(金義哲) 에두아르도(1997. 2~2000. 1), 8대 양경배 (梁庚培) 베네딕도(2000. 1~현재 ) . 1938년에 설립된 원평 공소는 수류 본당의 주임이던 최재선(崔再善, 요한) 신부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사목 활동을 하였는데, 1940년 강당이 건립된 이후 교세가 확장되었다. 한국 전쟁 중에 수류 성당의 사제관이 소실 되자 원평 공소는 김제(현 요촌) 본당의 관할로 되었고, 1960년 3월 수류 본당이 복구되자 다시 수류 본당 소속 공소로 편입되었다. 수류 본당에 부임한 김반석(金盤石 베네딕도) 신부는 원평 지역 전교에 큰 비중을 두고 현 성당 부지에 강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였고, 1주 간격으로 수류와 원평에 각각 머물면서 사목 활동을 하였다. 1969년 수류 본당에 부임한 김영신(金英信, 바오로) 신 부도 수류와 원평에 교대로 상주하였다. 원평 본당은 1977년 12월에 수류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김태윤 신부가 부임하였다. 본당 공동체는 1980년 1월부터 성전과 부속 건물을 건 립하기 위하여 '성당 신축위원회' 를 발족한 뒤 12월에 성당 신축 기공식을 하였으나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되자 본당 소유의 일부 토지를 매각, 공사를 재개하였다. 그 결과 대지 3,073평에 성당 122평, 사제관 38평을 완 공하여 1982년 7월 5일 김재덕(金在德)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2대 주임 김윤섭 신부 재임 기였던 1982년 신용 협동 조합이 창립되었고, 이해 9월에 성모 성심 수녀회 분원이 마련되어 수녀 2명이 부임 하였다. 4대 주임 전종복 신부는 1989년 3월에 교육 봉사를 통한 지역 선교의 취지로 수녀원 1층에 무료로 운영되는 성모유치원을 설립하였다. 5대 주임 최용준 신부의 재임기였던 1991년부터는 수확한 배의 수익금으로 부족한 본당의 재원을 충당하기도 하였으며, 6대 주임 한정현 신부가 재임하였던 1996년에는 교육관(31평)을 완성하였다. (→ 전주교구) ※ 참고문헌 호남교회사연구소 편, 《천주교 전주교구사》 II , 천 주교 전주교구, 1998.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