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동 본당

月谷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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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1동 90-1450 소재. 1968년 9월 24일 미아동(彌阿洞, 현 길음 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다. 주보는 착한 목자. 관할 구역은 하월곡1~4동, 상월곡동, 미아4 · 9동, 종암1 · 2 동, 길음3동 일부 지역. 〔교 세] 1974년 3,040명, 1980 년 4,015명, 1986년 6,470명, 1992년 6,543명, 1996 년 7,043명, 2000년 5,889명. [역대 신부] 초대 이사응 (李思應) 안토니오(1968. 9~1973. 5), 2대 이용선(李容善) 베드로(1973. 5~11), 3대 박용일(朴勇一) 타데오(1973. 11~1974. 5), 4대 임응승(林應承) 요한(1974. 5~1978.8), 5 대 김윤상(金允相) 베네딕도(1978. 8~1983. 8), 6대 최용 록(崔鏞錄) 프란치스코(1983. 8~1988. 2), 7대 백은기(白 殷基) 라파엘(1988. 2~1992. 9), 8대 박대웅(朴大雄) 세례자 요한(1992. 9~1996. 10) , 9대 민병덕(闞炳德) 비오 (1996. 10~2001.9), 10대 김병일(金秉鎰) 요셉(2001. 9~현 재). [설립과 발전] 서울 북부 지역의 모(母) 본당인 미아 동 본당은 1967년 4월 수유동 본당을 분가한 데 이어 다시 여러 본당의 분가를 계획하였다. 따라서 월곡동 본 당은 1968년 9월 24일 미아동 본당에서 분리 · 신설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이사응 신부가 부임하였다. 본당이 설립된 이후 1968년 12월에 성당 부지를 매입하여 1969년 3월 30일 성전 건립을 위한 기공 미사가 봉헌되 었고 그 해 11월 9일 새 성당(대지 143평, 성당 75평, 사제 관 25평, 주일학교 65평, 지하실 21평, 연건평 186평) 봉헌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4대 주임 임응승 신부는 사목 위원회를 재구성하고 평신도 사도직 단체와 신심 · 재교육 활동의 활성화를 꾀함 으로써, 본당의 과도기를 극복하고, 본당과 사목 체계의 정착을 추진하였다. 본당의 총 신자수가 3,000명에 가까울 정도로 증가하자 성당 대지가 협소해졌고 부속 시설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여러모로 불편하였기 때문에 1974년 10월 '본당 대지 확장 기성회' 가 발족되었다. 5 대 주임 김윤상 신부는 특히 쉬는 신자들의 회두 운동· 거주 불명자 찾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모든 가정이 복음 전파에 앞장설 것을 강조하였는데, 이 교세 확대 운동은 많은 결실을 얻어 해마다 세례자가 꾸준히 증가하였다. 6대 주임 최용록 신부는 성당 대지 확장 사업을 제일의 사목 목표로 삼아 어려운 본당의 경제 사정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성당 터를 확보하는 공로를 남겼다. 1980년대 중반에 이루어진 새 부지와 가옥의 매입으로 교리실과 회합실의 부족난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협소한 성당으로는 늘어나는 신자수를 감당할 수 없었고, 1969년에 준공한 성당은 낡고 허술하여 자주 보수 공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1988 년 10월에 '성전 건축 준비위원회' 가 발족하였다. 8대 주임 박대웅 신부는 성당 신축을 첫 번째 사목 목표로 삼 고 1993년 4월 성전 신축 기공식을 가졌으며, 이해 12 월 24일 새 성당이 완공되어 1994년 5월 1일 김수환(金 壽煥, 스테파노) 추기경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94년 4월에 성당 뒤편 왼쪽에 있는 112평 규모의 대지(하월곡동 90-1198)를 매입함으로써, 월곡동 성당의 총 대지 면적은 현재와 같이 590평이 되었고 본당의 숙원 사업이었던 대지 확장 사업을 완수하였다. 월곡동 본당은 2001년 9월 24일자로 33주년을 맞이하였는데, 33 주년을 계기로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귀감으로 삼을 만한 것은 본당 공동체의 소중한 경험으로 정리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는 목적에서 《월곡동 본당 33년사》를 간행하였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월곡동 본당 33년사 편찬위원회, 《월곡동 본당 33년 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월곡동 교회 , 2001.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