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동 본당
月南洞本堂
글자 크기
9권
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마산시 월남동 2가 1 소재. 1964년 12월 29일에 마산(현 완월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다. 주보는 파티마의 성모. 관할 구역은 월남동, 화영동, 청계동, 홍문동, 창포동, 대내동, 대외동, 반월 동, 중앙동, 신월동, 대성동, 장군동, 두월동, 신창동, 평 화동, 월포동, 월령동 전 지역. [교 세] 1964년 1,184 명, 1968년 1,162명, 1974년 1,766명, 1980년 2,156 명, 1985년 2,493명, 1990년 3,402명, 1995년 4,349 명, 2000년 3,127명. [역대 신부] 초대 유재국(兪在國) 바실리오(1964. 12~1967. 1), 2대 박재근(朴在根) 아우구 스티노(1967. 1~1969. 4), 3대 이윤호(李潤浩) 필립보 (1969. 4~1972. 12), 4대 정순재(鄭淳在) 베드로(1972. 12~1974. 1), 5대 이군형(李君炯) 베드로(1974. 1~1977.3), 임시 현기호(玄基浩) 시몬(1977. 3~7), 6대 서정술(徐正 戌) 프란치스코(1977. 7~1981. 1), 7대 박두환(朴斗煥) 베 네딕도(1981. 1~1984. 1) , 8대 최영철(崔榮喆) 알퐁소 (1984. 1~1987. 2) 9대 서원열(徐元烈) 라파엘(1987. 2~1991. 6), 10대 구병진(具丙鎮) 베드로(1991. 6~1995. 6), 11대 장병욱(張炳旭) 베네딕도(1995. 6~1999. 1), 12 대 신은근(申銀根) 바오로(1999. 1~현재). 한국 전쟁 이후 마산 지역 일대에 인구가 증가하여 본당 신설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마산 본당의 김두호 (金斗湖, 알로이시오) 신부가 본당 설립의 책임을 맡게 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김두호 신부가 건강 때문에 전임되어 새로 부임한 정삼규(鄭三圭, 요한) 신 부가 1958년 대지 583평과 지상 건물을 매입, 건물을 수리하여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부임한 안달원(安達遠, 베드로) 신부는 월남동 성당 신축 기성회 를 새로이 조직하여 1962년 10월에 첫 모임을 가졌는데, 그 모임을 통해 기존에 논의되었던 완월동 성당을 월남동 성당 터로 옮기자는 의견을 매듭 짓고 완월동 성당은 그대로 두고 월남동에 또 다른 성당을 짓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월남동 본당은 1964년 12월 29일 마산 본당에 서 본리되어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유재국 신부가 임명되었다. 유 신부는 부임하자마자 성당 신축에 전념하여 외국의 원조를 바탕으로 1965년 5월에 기공식을 가졌고, 12월에 신축 중인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1966년 2월 마산교구가 신설됨에 따라 유재국 신부는 서울대교구로 떠나게 되었고 후임으로 부임한 박재근 신부가 성당 신축을 마무리 짓고 1968년 3월에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3대 주임 이윤호 신부는 1970년 1월에 성당 뒤편에 상가를 조성하여 어려운 교우들에게 제공하였고, 5대 주임 이군형 신부는 1976년 5월에 사제관과 수녀원 신축 공사를 완료하였으며, 7대 주임 박 두환 신부는 1983년 10월에 본당 사무실 및 회합실을 확장하였다. 8대 주임 최영철 신부는 성전 보수위원회를 설립하여 1984년 4월 대대적인 성전 보수공사를 완료하였다. 9대 주임 서원열 신부는 1988년 2월 본당 월보인 《월남 가족》(현 《달무리》)을 발간하였고, 이해 3월에 본당 사무실 및 강당인 '사랑의 집' 을 준공하였다. 또 1990년 7월 성당에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신자들의 노력으로 1991년 5월에 성당 복구 공사를 완료할 수 있었다. 10대 주임 구병진 신부 재임기인 1993년 7월 사제관 개수 공사가, 1994년 5월에는 수녀원 개수 공사가 완료되었으며, 11대 주임 장병욱 신부 때인 1998년 1월 해운동 본당이 분리되었다. (→ 마산교구) 〔金志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