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동 본당
月明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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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군산시 월명동 16-11 소재. 1961년 7월 2일 둔율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다. 주보는 성 베드로. 관할 구역은 군산시 월명동, 신창동, 중앙로 1가동, 신흥동, 금동, 영화동, 금광동, 송창동, 명산동, 해망동 전 지역과 장미동 일부 지역. [교 세] 설정 당시 550명, 1968년 1,330명, 1974년 1,858명, 1980 년 1,479명, 1985년 1,542명, 1990년 1,581명, 1995 년 1,512명, 2000년 1,501명. [역대 신부] 초대 메어베 르겐(G. Meerbergen, 高賢澤) 고마르(1961. 7~1962. 12), 2 대 김이환(金二煥) 스테파노(1962. 12~1967. 12), 3대 김정원(金正元) 토마스(1967. 12~1969. 12), 4대 김반석(金 盤石) 베네딕도(1969. 12~1973. 11), 5대 황인규(黃寅奎) 마태오(1973. 11~1978. 4), 6대 김치삼(金熾參) 스테파노 (1978. 4~1979. 1), 7대 이수현(李守鉉) 보나벤투라(1979. 1~1980. 1) 8대 이재후(李載厚) 토마스(1980. 1~1984. 8) , 9대 양재철(楊載喆) 안토니오(1984. 8~1989. 1), 10대 한기호(韓奇瑚) 세례자 요한(1989. 1~1993. 2) , 11대 김준호 (金俊鎬) 십자가 바오로(1993. 2~1996. 1), 12대 전대복 (全大福) 라우렌시오(1996. 1~2000. 1), 13대 김윤섭(金 潤燮) 안셀모(2000. 1~현재). 둔율동 본당의 교세가 확장되자 1956년 10월에 본당 분리를 위한 기성회를 결성하여 기금 조성을 추진하였다. 1960년 3월에 월명동 104번지 소재 대지 596평과 적산 가옥 234평을 매입하여 이듬해 5월 적산 가옥의 연와제 창고를 성당으로, 적산 사택을 사제관으로 개축하는 공사가 완공되었다. 이해 7월 2일에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전교 협조회(S.A.M.)의 메어베르 겐 신부가 부임하였으며, 1962년 11월 수녀원으로 사용할 건물을 매입하고 인보 성체 수도회 수녀를 초빙하였다. 2대 주임 김이환 신부 때인 1963년 4월에 옥봉리 공소에 지역 사회의 유아 교육을 위한 해성유치원을 개원하였고, 1964년 11월에 기존 성당 54평을 142평으 로 증축하는 공사를 완료하여 이듬해 3월 한공렬(韓珍 烈, 베드로)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 5대 주임 황인규 신부는 교리실 2층을 개조하여 수녀원으로 사용하였고, 1976년 8월 성당 마당에 새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건평 247.8평(2층 건물) 규모로 완공 1978년 4월 10일 김재덕(金在德, 보니파시오)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 7대 주임 이수현 신부 때인 1979년 1 월에 오룡동 본당이 분리되었고, 8대 주임 이재후 신부 는 1981년 3월 옥구읍 옥봉리 74-12에 성당 신축 부지 800평을 매입한 뒤 본당 분리를 추진하였다. 9대 주임 양재철 신부는 1986년 3월 교육관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6월에 준공하였다. 10대 주임 한기호 신부 재임기인 1990년 7월에 성당 보수 및 증축 공사가 완공되었고, 1992년 2월 소룡동 본당이 분리되었으며, 1993년 2월 에 본당 소식지 《월명 월보》가 창간되었다. 11대 주임 김준호 신부는 1995년 1월부터 본당 사무실 자료 전산 화를 시작하였고, 4월에는 전 신자 성서 필사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자선 헌금을 모아 자매 결연을 맺었던 필리핀의 롤롬보이 본당을 도왔다. 12대 주임 전대복 신부는 1997년 5월부터 본당 사무실에 신심 서적을 비롯한 도서류와 비디오 테이프를 비치하여 모든 신자들에게 무료로 개방함으로써 영성 생활에 기여하고자 하였고, 이해 12월에 유치원과 수녀원 대지가 군산시 도로 계획 용지에 편입되어 보상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 전주교구) ※ 참고문헌 호남교회사연구소 편, (천주교 전주교구사》 II , 천 주교 전주교구, 1998.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