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 빅토르 마리 Hugo, Victor Mane(1802~1885)

글자 크기
9
프랑스 낭만파 시인 위고.

프랑스 낭만파 시인 위고.

프랑스의 낭만파 시인. 소설가. 극작가. 19세기의 프랑스어를 가장 풍요롭게 구사한 작가. 많은 작품을 남긴 문필가이면서 동시에 정치가였다.
[생 애] 위고는 1802년 2월 26일 프랑스의 브장송(Besangon)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 시지스베르(Leópold-Sigisibert Hugo)는 육군 소령이었고 후에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1769~1821) 군대의 장군이 되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세례를 받도록 하지 않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로 떠돌아다녔다. 아버지는 그가 군인이 되기를 희망하였으나, 그는 문학에 흥미를 갖고 프랑스의 작가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던 샤토브리앙(F.A.R. Chateau-briand, 1768~1848)을 닮으려고 하였다.
그의 시가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등단을 한 그는 낭만주의 운동에 공헌한 잡지인 《문학지》(Conservateur Littéraire)를 형과 함께 1819년에 창간하였다. 초기 작품 활동 시기에 그는 낭만주의자들의 모임 '세나클' (클럽)을 결성하였는데, 이는 낭만주의자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이 무렵 위고는 어린 시절의 소꼽동무인 아델(AdèleF oucher)과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헤어졌다. 그러나 1821년 어머니가 죽고 왕의 연금과 내무부의 연금을 받게 되자 둘은 다시 가까워져서 1822년 10월 12일 생 쉴피스 성당에서 혼인성사를 받았다. 이때 가톨릭 교회의 혼인 절차에 따른 세례 증명 문제로 복잡한 어려움이 있었으나, 친구인 라므네 신부가 이탈리아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증명해 줌으로써 해결되었다. 이후 위고는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였다. 그는 왕당파였으나, 1830년 7월 혁명이 일어날 무렵부터 인도주의와 자유주의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1841년에 위고는 프랑스 학술원의 회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딸 레오폴딘(Léopoldine)이 남편과 함께 익사한 사건이 발생한 1943년 9월 이후, 비탄에 빠져 약 10년 간 문필 활동을 중단하고 정치 활동에 관심을 쏟았다. 루이 필리프(Louis-Philippe, 1830~1848) 왕조 때도 왕당파였던 그는, 1848년 2월 혁명으로 루이 필리프가 물러나고 공화국이 되었을 때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공화파 국회의원이 되었다.
1851년 나폴레옹 3세(Napoléon Ⅲ, 1852~1870)가 쿠데타로 제정(帝政)을 수립하려고 하자, 위고는 이에 반대하여 시민 항쟁을 이끌다가 실패하여 벨기에로 탈출하였고, 이후 19년 동안 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해야 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가톨릭 교회의 정치적 활동에 혐오감을 느끼고 결별하였다. 영국 해협의 저지 섬(1852~185)과 건지 섬(1855~1870)에서의 오랜 망명 생활 동안, 위고는 인류의 교화자이며 예언자로서의 사명감을 갖는다는 확신 속에서 창작에 전념하였다. 나폴레옹 3세가 물러나자 위고는 1870년 프랑스로 돌아왔으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환영을 받았다. 곧 국회 의원이 되었지만 사퇴하였다. 하지만 1876년 파리의 상원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878년 6월에 뇌출혈을 일으켰지만 얼마 후 회복되었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원로로서 기념비적인 존재였다. 그는 박해받는 자들과 억눌린 자들과 죄인들을 위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1882년에는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에 100만 명의 인파가 모였을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 1883년 8월에 유서를 작성했는데, "나는 모든 교회의 기도를 거절한다. 나는 모든 영혼들의 기도를 청한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 라고 적었다. 1885년 5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일주일 동안 빈사 상태에 있었는데, 파리의 대주교가 병자성사를 주려고 했으나 거절하였다. 그가 죽자 국민적인 대시인으로 추앙되어 국장(國葬)으로 장례가 치러지고 팡테옹에 묻혔다.
[작품과 사상] 전기 작품으로는 시집 《오드와 발라드》 (Les Odes et ballades, 1826) · 《동방 시집》(Les Orientales, 1829)과 소설 《아일랜드의 한스》(Han d'Islande, 1823), 희곡 《크롬웰》(Cromwel, 1827) 등이 있다. 첫 번째 시집인 《오드와 발라드》로 루이 18세로부터 연금을 받게 되었고, 운문 희곡인 《크롬웰》의 서문은 낭만주의 문학의 선언이라 평가된다. 이 작품은 너무 길어 무대에 올리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힘차고 독창적인 운문으로 쓰여졌다. 그는 고전주의를 비판하여 '삼일치(三一致)의 법칙' 중에서 시간과 장소의 일치는 불필요한 구속이라고 주장하고, 희극과 비극의 구별을 없앤 연극 장르를 제시하였다. 1830년에는 희곡 《에르나니》(Hernani)의 상연을 계기로 고전주의 지지파와 격렬한 투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시집 《가을의 나뭇잎》(Les Feuilles d'autome, 1831)은 개인적인 문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고, 《황혼의 노래》(Les Chants du crépuscule, 1835)는 위고의 정치적 성향을 숨김 없이 드러낸 시집이었다. 《마음의 소리》(Les Voix intéieures, 1837)는 개인적이지만 철학적인 소재를 다룬 시집이며, 《빛과 그림자》(Les Rayons et les ombres, 1840). 에서는 이전의 여러 가지 주제를 되살리면서 색채와 사실적인 세부 묘사에 대한 작가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사랑으로 순결해지는 고급 창녀의 이야기인 희곡 《마리옹 드 로름》(Marion de Lorme, 1831)은 검열에 걸려 무대 공연이 금지되기까지 한 작품이다. 이외에도 그는 《왕은 즐긴다》(Le Roi s'amuse, 1832) · 《뤼 블라》(Ruy Blas, 1838) · 《뷔르그라브》(Les Burgraves, 1843),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Notre Dame de Paris, 1831)를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였다.
망명 생활 중에 위고는 나폴레옹 3세를 비난하는 시를 모은 작품집으로 《징벌 시집》(Les Châtiments, 1853)을 발표하였다. 이 시집은 프랑스어로 쓴 풍자시 중 가장 힘찬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딸에 대한 추억과 철학 사상을 노래한 《정관(靜觀) 시집》(Les Contemplations, 1856), 인류의 진보를 노래한 서사시 《여러 세기의 전설》 (La Légende des siècles, 1859), 장편 소설 《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 1862) · 《바다의 노동자》 (LesTavaileulus de la mer, 1866) · 《웃는 사나이》(L'homme quui rit, 1869) 등을 발표하였다.
《레 미제라블》은 사회 문제를 통찰하는 시대 의식의 소설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미리엘 주교는 당시의 일반적인 가톨릭 성직자들의 권위주의적인 상(像)과는 동떨어진 겸손하고 소박한 인품과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신앙 생활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인물로서, 주인공 장발장을 감화시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또한 여기서 나타나는 하느님은 교의적으로 명시하는 고정 관념의 하느님이 아니라, 미리엘 주교의 겸손하고 소박한 인품과 생활 속에서 굳은 믿음으로 긍정되는 하느님이다.
《여러 세기의 전설》은 역사와 전설에 바탕을 둔 작품으로 비교적 짧은 서사시로 되어 있다. 《악마의 최후》(La fin de Satan) · 《하느님》(Dieu, 1891)과 함께 3부작으로 된 철학적 · 역사적 서사시이다. 이 책은 위고의 원숙한 정치적 ·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복잡한 종교 체험을 깊이 명상하며 천재적인 시인의 재능을 발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세기를 거듭함에 따라 점차로 실현되 는 인류의 개화, 암흑에서 이상을 향해 올라가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인간 정신은 캄캄한 어두움의 밑바닥에서부터 날아오르기 시작하여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 박쥐로 표상되는 무신론적 허무주의이다. 다시 회의론을 표상하는 어둠의 새 부엉이를 거치며 시인은 계속 빛을 향해 올라가서 신비의 하느님 빛에 이르고자 하나 궁극적으로는 도달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한계인 죽음으로 끝난다. 합리적이며 이성적 신, 신비의 빛과 사랑으로 표상되는 신을 찾기 위해 한없이 비상하는 인간 정신의 자세와 종교적 성찰을 그는 잘 표현해 내었다. 위고는 공의로운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으로 인간의 양심을 신뢰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결국은 보상을 받게 되는 합리적인 세계관, 인류의 무한한 진보에 대한 낙관, 선악의 결투장인 이 세계에서 최후의 승리는 신에게 돌아가고 악의 세력이 자취를 감추게 되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피력하였다. 이 작품 속에는 범신론적이고 이신론적 인 면이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면이 있어서, 당시의 제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는 위험한 책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대에는 가톨릭 신학이 부각시키려 하는 개방적인 하느님 상과 근접한 긍정적 면을 보여 주는 예언자적 역할을 다한 시인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평 가] 위고는 현대 가톨릭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사랑과 빛의 하느님" ,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구원의 교회"를 부각시키려고 했던 작가로 평가할 수 있다. 그의 가르침은 구약과 예언자들과 신약의 가르침에 상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오늘날 가톨릭 교회가 자신의 소명을 분명히 알고 하느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데 하나의 빛을 던져 주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사실, 그는 풍부한 상상력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에 대한 연민에 찬 감수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웅대하면서도 낙관적인 사상의 서사시로 시인의 선구자적 사명을 다한 시인으로 칭송받고 있다. (→ 가톨릭 문학, 프랑스의)
※ 참고문헌  Henri Guillemin, Hugo, écrivains de toujours, Seuil, 1981/ J. Bertrand Barrere, Victor Hugo, Les écrivais devant Dieu, Desclee de Brouwer, 1965/ 빅토르 위고, 이성배 역, 《하느님》, 성바오로출판사, 1993/ 이성배, <빅토르 위고의 종교와 가톨릭 교회>, <현대 가톨릭 사상》 24(2001. 여름), pp. 205~255. [黃晳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