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 미사
慰靈
[라]Missa defunctorum, Miisa pro defunctis · [영]Mass for the Dead, Mass of Christian Bu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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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봉헌하는 미사. 교회가 죽은 이를 위하여 미사를 봉헌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들이 상호간에 영성적인 도움을 주며 다른 지체들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이다(《미사 경본 총지침》 335항). 따라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 교회가 죽은 이를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미사가 위령 미사이다. [역사적 발전 과정] 미사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요약할 수 있는 파스카 사건의 재현이다. 따라서 초대 교회 때부터 부활을 기념하는 미사가 매주일에 거행되었다. 처음에는 주일에만 거행되던 미사가 평일에도 거행되기 시작하였고, 여러 가지 다른 성사 및 준성사와도 연결되었다. 위령 미사가 이미 2세기부터 봉헌되었다는 흔적을 아리스티데스(Aristdes)의 《호교론》과 위경인 《요한 행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H.I. Milne, A new fragment of the Apology of Aristes, 《Jounal of Theological Studies》 25, p. 75 ; M.J. James, The Apocryphal New Testament, Oxford, 1945). 또한 테르툴리아노(Tertullianus, 160~223)는 죽은 이를 위한 기일 미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De Corona, 2, 79 ; De Castitate 11,《PL》 2, 926). 초대 그리 스도교 신자들은 4세기까지 일상 생활에서 로마의 관습 을 따랐다. 상을 당한 로마인들은 죽은 이의 무덤에서 음 식을 나누는 음복 잔치(Refrigerium)를 빼놓지 않고 거행 하였다. 이 음복은 상을 당한 지 3일, 7일, 30일(동방 지 역에서는 3일, 9일, 40일), 그리고 1년째 되던 날 거행하였 다. 이러한 음복이 그리스도교화되면서 성찬례, 즉 위령 미사로 발전하였다.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는 로마 근교 오스티아에서 있었던 자신의 모친 모니카(Monica, 332~387)의 장례를 회상하면서 어머니를 묻은 후에 바로 구원의 제사인 미사를 봉헌하였다고 전 한다(《고백록》 9, 12). 또한 3세기 초까지로 소급할 수 있 는 문헌인 《디다스칼리아》/Didascalia apostolorum, F.X. Funk판, 1권, p. 276)에서도 묘지에서 행해지는 위령 미사 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처음에는 음복과 무덤에서의 미사가 함께 행해지다가 서서히 음복이 사라지고 위령 미사만 남게 되었다. 위령 미사를 위한 기도문은 6세기 이전에 만들어졌으며 《레오 성무 집전서》(Sacramentarium Leonianum)에 5개,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Sacramentarium Gelasianum)에 13개가 수록되어 있다. 초기 기도문 들은 죽음을 파스카 여정의 완성으로 받아들이고, 하느 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Requiem aetemam)에 도달함 을 기쁘게 찬미하였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러 이러한 파 스카적 기쁨은 사라지고 심판과 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찬 기도문으로 변질되었다. 이제 죽는 날은 더 이상 태어나는 날(Dies natalis)이 아니라 심판의 날, 분노의 날 (Dies irae)로 받아들여졌다. 위령 미사는 중세 때에 일어난 3가지 전례적 · 신학적 사조로 인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첫째, 신심 미사 (Miissa votiva)의 등장이다. 미사가 파스카의 재현이라는 초대 교회 이래의 미사에 관한 전통적인 생각이 점차 흐 려지고, 라틴어를 모르는 대중들이 미사에서 소외되면서 미사는 일부 성직자나 수도자의 전유물이 되었다. 더 나 아가 미사가 공동체의 모든 이를 위한 제사라기보다는 개인의 신심과 청원 등을 위해 바치는 사적인 제사로 여 겨지면서, 미사 예식 자체를 절대화하는 경향도 생겨났 다. 이는 자연히 미사에 대한 미신적이며 주술적인 이해 를 초래하였고, 이때부터 미사는 개인 또는 소수의 사람 을 위해서, 특별한 청원을 하기 위해서나 개인적인 일들 을 기념하기 위해서 바치는 사적인 예식으로 전락하였 다. 이런 이유로 위령 미사는 죽은 이들의 구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크게 성행하였다. 둘째, 연옥(Purgatorium)에 대한 교리가 널리 퍼지면서 연 옥에서, 고통받는 영혼을 위한 미사의 효험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연옥 영혼의 고통이 감소되고 천국으로 들어 올림받는다는 생각이 일반화되 었다. 연옥 영혼이 죄를 씻고 빨리 하늘 나라에 오를 수 있도록 미사를 더 자주, 더 많이 봉헌해야 한다는 생각으 로 인하여 위령 미사는 매우 빈번하게 집전되었다. 셋째, 대사(Indulgentia)에 대한 교회의 교리가 확정됨으로써 연 옥 영혼을 위한 미사, 위령 기도, 자선 행위 등이 더욱 강조되었다. 급기야 미사가 지닌 공동체 모두를 위한 구 원의 잔치라는 본래의 의미가 결정적으로 훼손되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위령 미사를 한번 봉헌함으로써 대사를 받고, 그 대사만큼 죽은 이가 연옥에서의 징벌을 경감받 게 된다는 식으로 대사의 효력이 오용되었다. 이로써 위 령 미사는 연옥 영혼을 위한 만병 치료제와 같은 효과를 지닌 주술적인 행위로 인식되었고, 결국 미사가 지닌 공 동체적이며 파스카적인 성격이 흐려지게 되었다. 연옥 영혼을 위해 30일 동안 매일 미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일한 지향으로 봉헌해야 하는 '그레고리안 미사' (Missa Gregorii)도 이때 등장하였다. 이 그레고리안 미사 는 "어느 죽은 수도자를 위해 미사 30번을 봉헌하자 연 옥을 벗어날 수 있었다" 는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 604)의 《대화》(Dialogi4. 55 ; 77, 416~421)에 나오는 예화로부터 그 이름이 생겨났다. 이렇게 신심 미사와 기 원 미사가 발달하면서 더 이상 주기 기념일뿐만 아니라 다른 날에도 연옥 영혼을 위하여 위령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전통은 트리엔트 공의회를 거쳐 오 늘에 이르고 있다. [신 학] 위령 기도와 마찬가지로 위령 미사의 신학적 근거는 "모든 성인의 통공에 관한 교리"와 "하느님의 구 원 계획에 있어서 인간의 협조에 관한 교리"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구원의 잔치에 초대받았다. 그러므로 산 이 도 죽은 이도 모두 이 공동체의 일원이다.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통하여 산 이와 죽은 이가 이 공동체 안에서 통교를 이룬다. 그러므로 위령 미 사는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이 먼저 죽은 이를 위해 하느님 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그리스도와 함께 봉헌하는 것이 다. 미사는 파스카의 잔치이다. 이 파스카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외아들 그리스도를 희생하는 하느님 사 랑의 표현이다. 미사를 통해 산 이와 죽은 이를 파스카의 영원성으로 초대하는 분이 하느님이시기에, 산 이들이 봉헌하는 위령 미사는 죽은 이를 위하여 의미있는 제사 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스스로 마련하신 인간을 위한 구원 계획에서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협조를 통하 여 그 구원 계획을 완성한다. 살아 있는 동안 하느님을 믿으며 세례를 통해 새로이 태어났으나 나약함으로 인하 여 세례 후에도 여전히 죄에 물든 채 살아가는 신자들이 있다. 비록 이 죄를 씻지 못하고 죽었을 때도 하느님은 여전히 구원의 팔을 펼치시며 모든 이를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계획을 변경하지 않으신다. 세상을 떠났기에 하 느님의 구원 계획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옥 영 혼을 위해, 살아있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봉 헌하는 것이 위령 미사인 것이다. [분 류] 《미사 경본의 총지침》에 의하면, 위령 미사는 3가지 등급으로 구분된다(336~337항). 가장 급이 높은 미사는 장례 미사이다. 죽은 이를 하느님께 맡겨 드리는 미사이며, 교회 공동체가 죽은 이와 송별하는 미사이기 때문이다. 이 장례 미사는 의무 대축일과 대림 · 사순· 부활 시기의 주일이 아니면 어느 날에나 다 봉헌할 수 있 다. 두 번째 등급은 사망 소식을 들은 후 처음 드리는 미 사, 또는 장례가 있는 날 다른 곳에서 드리는 미사, 제1 주년 기일 미사이다. 이러한 위령 미사는 주일과 축일, 대축일을 제외하고 재의 수요일과 성주간이 아닌 모든 평일에, 그날이 비록 의무 기념일이라도 봉헌할 수 있다. 세 번째 등급의 위령 미사는 그 외의 모든 위령 미사이 다. 이 세 번째 등급의 위령 미사는 신심 미사를 허락하 는 날에만 봉헌할 수 있다. 신심 미사를 허락하는 날은 원칙적으로는 의무 기념일이 아닌 연중 평일뿐이지만, 본당 신부나 집전 사제의 판단에 따라 필요하다면 의무 기념일과 대림, 성탄, 부활 시기의 평일에도 신심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미사 경본에는 위령 미사의 기도문(euloga)을, 장례 미 사, 주년 위령 미사, 보통 위령 미사 등 3가지로 분류하 였고 각각 부활 시기와 부활 시기가 아닌 때로 나누어 기 도문을 수록하였다. 이는 기도문 안에 파스카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위령 미사와 연미사] 위령 미사와 연미사는 본래 동 일한 말이지만 미사 지향(예물)과 관련하여 혼동되기도 한다. 정해진 법에 따라 미사를 봉헌할 때 사제는 미사 예물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미사 예물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죽은 이를 위해 봉헌하는 미사를 통상 연미사라고 부르며, 그 밖의 산 이를 위한 미사로는 생미사, 가정 미 사 등이 있다. 위령 미사는 미사 경본에 따로 수록된 위 령 미사의 기도문과 독서문을 사용하는 미사를 뜻한다. 따라서 미사 예물 지향이 죽은 이를 위한 연미사라고 하 더라도 그날의 미사가 교회의 축일표에 따른 미사라면, 그것은 위령 미사가 아니다. 위령 미사는 사제가 흰 색 혹은 검은 색 제의를 입고, 축일표에서 제시된 기도문과 독서 대신 죽은 이를 위한 고유의 기도문과 독서 등을 취 하여 봉헌하는 미사를 말한다. [합동 위령 미사] 많은 연옥 영혼을 위한 미사 지향을 가지고 위령 미사를 한번 봉헌하는 것을 합동 위령 미사 라고 한다. 모든 사제는 한 번의 미사를 봉헌할 때, 한 가지 지향만을 가지고 집전해야 한다. 교황청 성직자성 에서는 1991년 2월 22일 <합동 미사 예물에 관한 규정> 을 반포하였다. 그 규정 제2조는 "봉헌자들이 사전에 명 료하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기들이 바친 예물이 다른 예물과 하나로 혼합하여 단일 미사를 거행하도록 자유롭 게 동의한 경우 '합동' 지향을 적용하여 한 번의 미사로 써 그 책무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규정 에 입각하여 우리 나라의 설날이나 한가위 명절, 그리고 위령의 날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미사를 청하는 경우에 그 미사를 합법적으로 봉헌할 수 있으며 이를 합 동 위령 미사라고 한다. (⇦ 연미사 ; → 레퀴엠 ; 미사 ; 미사 예물 ; 장례 미사 ; 합동 지향 미사) ※ 참고문헌 A. Cornides, Requiem Mass, 12, p. 3841 H. Leclercq, 《DACL》 4-1, pp. 427~456 ; 5-2, pp. 2705~2715/ P. Rouillard, I riti dei funerali, 《Amnesis》 7, Genova, 1989, pp. 193~227/ S. Marsili, Theologia della celebrazione dell'eucaristia, 《Anamnesis》 3~2, Casale Monferrato, 1983, pp. 11~116/ D. Borobio(ed.), Sacramentos, La celebracion en la Iglesia 2, Salamanca, 1988/ R. Cabié, L'Eucharistie, L'Eglise en prière 2, Paris, 1983/ F. Sottocomola, La celebrazione cristiana della morte nelle vostre assemblee 2, Brescia, 1984, pp. 420~428/ 土屋吉 正, 최석우 역, 《미사 그 의미와 역사》, 성바오로, 1990. [李完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