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성모 수녀회

慰勞 - 聖母修女會

[라]Congregation Sororum a Nostra Domina Consolationis · [스]Hermanas de Nuestra Señora de la Consolaci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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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마리아 로사 몰라스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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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마리아 로사 몰라스 수녀.


1857년 3월 14일 성녀 마리아 로사 몰라스(St. Maria Rosa Molas, 1815~1876) 수녀가 그리스도의 위로를 현존화 하고 하느님의 자비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며, 특히 곤 궁한 이들이 하느님의 위로를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 설 립한 수녀회. 총본부는 로마에 있으며 한국 본원은 서울 시 성북구 성북1동 120-7번지에 있다. [창립자 마리아 로사 몰라스] 1815년 3월 24일 스페 인의 레우스(Reus)에서 태어난 마리아 로사 몰라스는, 16세 때 수도회에 입회할 뜻을 표명하였으나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마리아 로 사는 낙심하지 않고 이 역경의 의미를 묵상하면서 수도 회에 입회할 때를 기다렸으며, 1841년 1월 6일 '성 빈 천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에서 독립하여 에스티빌 (Estivill) 수녀가 책임을 맡고 있던 공동체에 입회하였다. 이 공동체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애덕의 집' (la Casa de Caridad) · 병원 ·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는 데, 순명의 정신으로 탁월하게 소임을 수행하던 마리아 로사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1849년 토르토사(Torosa) 시 엘 헤수스(El Jesús)에 위치한 '자비의 집' (La Casa de Misericordia)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지역의 고아, 버림받 은 사람들, 노인, 정신 이상자들의 수용 시설이었던 자비 의 집은 당시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거의 운영되지 못하 고 있었는데, 마리아 로사는 예리한 통찰력과 신념으로 이곳을 놀랍도록 훌륭한 시설로 변모시켜 놓았다. 자비 의 집을 소외된 이들에게 위로를 제공하는 도시의 명소 로 만든 마리아 로사의 활동을 눈여겨본 시 당국은 1851년 그녀에게 학교 운영을 제의해 왔다. 이에 마리 아 로사는 당시 교육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던 가난한 도 시 소녀들에 대한 교육을 계획하여 실행하였고, 이듬해 에는 시립 병원의 책임을 위탁받게 되었다. [수도회의 설립과 발전] 자비의 집 학교, 병원의 운영 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던 마리아 로사는 지역 교회와 밀 접한 관련을 맺고 일하면서 자신이 입회한 레우스의 공 동체가 그녀의 입회 시기 전부터 교회와의 관계가 끊어 져 있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이에 마리아 로사는 에스 티빌 수녀와 공동체 수녀들에게 편지를 써서 성 빈천시 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수녀회로 복귀하거나 교구장에 게 요청해서 교구에 소속된 수녀회를 새롭게 설립하자는 두 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그러나 수 차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자, 토르토사 공동체 에 살고 있던 11명의 수녀들과 함께 교회 안에 속한 수 도회를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1857년 3월 14일 토르토 사의 공동체들을 교구 소속 수녀회로 새롭게 정비하였 다. 이듬해 11월 14일 교구 참사회 대리 마네로(Ramon Manero) 신부는 이 수녀회가 이웃에게 위로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위로의 수녀회' 라고 이 름붙였고 이후에 '위로의 성모 수녀회' 로 정착되었다. 1868년 1월 4일 토르토사 교구장 베니토 빌랴미차나 (Benito Villamitjana) 주교에 의해 수녀회의 회칙과 규정이 승인된 이후, 마리아 로사는 토르토사 교구 관할 지역 내 의 여러 곳에 가난하고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학교와 병원, 복지 시설을 설립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1876년 6월 11일 토르토사에서 선종하였다. 그 후 1888년 10월 2일 교황 레오 13세(1878~1903)에 의해 교황청 설립 수녀회로 승격되었고, 1901년 6월 19일 최 종적으로 회헌을 인준받았다. 마리아 로사는 1977년 교 황 바오로 6세(1963~1978)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창립 초기부터 소외된 이들을 위한 보호 시설, 병원, 학교의 운영을 통해 카리스마를 실천해 오고 있는 위로 의 성모 수녀회는 1924년 베네수엘라를 시작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창립자의 정신을 전파하고 있으며, 1932년 이탈리아, 벨기에, 포르투갈 등에 진출한 데 이어 아르헨 티나(1933) , 브라질(1949), 부르기나파소(1972), 칠레 (1978), 한국(1986) 에콰도르(1987), 모잠비크(1989) , 멕시코(1990), 슬로바키아(1994) 등지로 활동을 확대하 였다. 2002년 현재 14개 국에서 80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영 성] 위로의 성모 수녀회의 영성은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양받으시옵소서. 그분 은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의 하느님으로서 우 리의 갖은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리하 여 우리 자신도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받는 그 위로로, 온 갖 환난을 당하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2고린 1, 3-4)라는 성서 말씀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삼위 일체 안에서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실의에 찬 사람을 위로하 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신 그리스도를 모든 사랑과 위로의 원천과 모델로 삼고, 위로자인 성령께서 그리스도 의 신비를 계시하여 주시고 그분과 일치할 수 있도록 인 도해 주심을 믿으며 주님의 사업에 참여한다. [한국 진출과 사도직 활동] 1986년 5월 14일 원주교 구장 지학순(池學淳, 다니엘) 주교의 초청으로 입국한 마틸다 세기(Matilde Segui) 수녀와 카르멘 로스(Camen Ros) 수녀는, 마리아니스트 수녀회(현 마리아의 딸 수녀회) 본원에 임시로 거주하였다. 그러다가 1988년 3월 25일 안나 마리아 페레아(Ana Maria Perea) 수녀와 마리아 호세 크레스포(Maria Jose Crespo) 수녀가 입국하면서 현 본원 소재지인 서울 성북구 성북1동 120-7번지로 옮겨 정착 하였고, 1999년 1월 경기도 화성군 봉담읍 왕림리에 수 련소를 마련하였다. 위로의 성모 수녀회는 "이 세상 어디라는 것, 또 무엇 을 한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 게든지, 필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하느님의 위로를 전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는 창설자의 정신에 따라 하느님의 위로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진출하여 사 목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초기에는 빈민 식당 '베들레 헴의 집' (1989~1991)과 '영등포 공부방' 등에서 봉사하 였고, 1993년도부터 하계동 영세민 아파트 방문과 교도 소 사목 등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국 진출 초기부터 시 작된 기도 모임은 성북동 본원이 마련된 후 '젊은이 기 도 모임' 으로 발전하였고, 점차 어른들을 위한 기도 모 임과 피정 지도를 새롭게 시작하였다. 1999년에는 신축 한 왕림리 수련소 내에 여대생을 위한 '미리암 기숙사'를 세웠고, 그 해 4월부터는 가출 소녀들을 위한 일시 보 호 시설인 '우리들 쉼 자리' 를 운영하고 있으며, 대학 내 가톨릭 동아리 소속 학생들에게 성서 모임과 교리 교육 지도를 실시하고 있다. 2002년 현재 종신 서원자 10명, 유기 서원자 6명, 수련자 1명, 청원자 1명의 회원이 활 동하고 있으며, 국제 공동체로서 한국 진출의 몫을 담당 했던 스페인을 비롯하여 아르헨티나, 멕시코 회원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 참고문헌  《교회와 역사》 320호(2002. 1). 〔위로의 성모 수녀회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