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

僞善

[그]ὑπόκρισίς · [라]hypocrisis · [영]hypocri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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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마음을 숨기고 겉으로만 착한 체하거나 외면적인 치레로 선한 체하는 것. 호의나 친절을 얻기 위해 누군가 를 속일 목적으로 윤리적으로 선하거나 칭찬할 만한 지 향 혹은 정서를 꾸미는 능력. 위선이란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히포크리시스' (ὑπόκρισίς)는, '밑에서' 또는 '아래로' 라는 의미를 지닌 전 치사 '히포' (ὑπό)와 '논쟁하다' 나 '판결하다' 라는 의미 의 동사 '크리네인' (κρίνῐεν)이 결합되어 '무대에서 어떤 연기를 하다' 혹은 '응답하다' 라는 의미의 동사 '히포크 리네스타이' (ὑποκρινεσται)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고 대 그리스에서는 연극에서 어떤 가면을 쓰고 배역을 맡 아 연기하는 배우를 "위선자" 라고 하여 본래의 자기 의 도와는 달리 어떤 행위를 가장하여 꾸미는 것에 비유하였다. [성서적 의미] 구약성서에서 위선에 관한 의미를 찾아 보기는 쉽지 않다. 구약성서에서는 위선 행위 자체를 언 급하기보다는, 위선자라는 용어를 통하여 선(善) 자체인 하느님을 중심으로 삼는 삶과 거기에서 파생한 규범을 온전한 마음으로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 키고 있을 뿐이다. "이 백성은 말로만 나와 가까운 체하 고 입술로만 나를 높이는 체하며 그 마음은 나에게서 멀 어져만 간다"(이사 29, 13). 또한 "말로는 하느님과 가까 운 체하면서 속으로는 하느님을 멀리하는 자"(예레 12, 2)로 규정한다. 나아가 위선자란 용어를 "하느님을 잊어 버린 자나 "두려워하지 않는 자"(욥기 8, 13), "교만한 자"(욥기 20, 6), "악을 행하는 자(이사 1, 16), "불경한 자" 또는 "죄인"(이사 9, 16 ; 33, 14), "악인"(읍기 8, 5)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한다. 물론 선행하는 자나 의인이 란 단어와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용하면서(잠언 11, 19), 그러한 위선자의 행위는 "하느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예레 9, 7)는 점을 강조한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위선 또는 위선자라는 표현을 여러 번 사용하긴 하지만, 그리스어 단어의 의 미대로 사용한 것은, "밀정들을 선량한 사람처럼 꾸며" (루가 20, 20) 납세 거부자라는 올가미를 씌우려는 구절일 것이다(마태 22, 15-22 ; 마르 12, 13-17). 주로 바리사이 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을 여러 차례 단죄하기 위해(마 태 6, 1. 16 ; 루가 11, 39. 46 : 마르 6, 5-8) 유사한 의미의 용어들을 사용한다. 즉 "간교함"(루가 20, 23), "교활한 속셈" (마르 12, 15), "선량한 사람처럼 꾸밈" (루가 20, 20), "간악한 속셈"(마태 22, 18), "독사의 족속" (루가 3, 6 ; 마 태 23, 33), "지옥의 자식"(마태 23, 15), "눈먼 인도자"(마 태 23, 16), "회칠한 무덤"(마태 23, 27) 등이 있다. 위선적인 행위는 대략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종교적인 형식주의이다. "남에게 보여 주기 위 한(마태 6, 16) 목적으로 종교적인 열심을 가장하는 것 이다. 즉 커다란 성구 넣는 갑 착용, 옷단의 긴 술, 잔치 와 회당에서 상좌(上座) 선호, 인사받기, 스승 호칭 듣기 (마태 23, 5-7) 등이다. 둘째는 자신의 지식을 믿고 율법 조항을 선택적으로 준수하며, 또 "사람의 전통을 하느님 의 계명인 양 가르친다"(마태 15, 9)는 점이다. 즉 부모 봉양보다 우선하는 재물 봉헌의 전통(마태 15, 5-6), 선행 마저도 금지시키는 안식일 규정(루가 13, 14) 그리고 정 의와 자비와 신의의 실천보다 십일조를 우선시한다(마태 23, 23)는 것이다. 그래서 겉은 청결하게 하면서 속은 탐 욕과 착취, 위선과 불법으로 악취를 풍기는 회칠한 무덤 과 같다(마태 23, 25-28). 셋째는 물질주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하느님과 직접 관련된 성전이나 제단보다는 그것을 꾸미는 도구, 황금이나 제물에 더 권 위를 둠으로써(마태 23, 16-19) 물질주의적인 속성을 드 러낸다는 점이다. 넷째는 결정적인 오류로써 구원의 결 정권이 하느님의 자비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율 법 준수 능력에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 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이 드 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로 마 3, 21). 즉 "내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내 믿 음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것입니다"(필립 3, 9).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 준수의 불성실함보다 율법 준수 자체로 의인이 된다는 교만을 지적하였다(루가 18, 9-14). [윤리 신학적 의미] 윤리 신학적 측면에서 위선은 특 히 윤리적인 덕성이 높은 사람에게서 발견되기 쉬운 거 짓 행위로써, 진실해야 하는 의무를 거스르는 것이다. 진 실의 내용이 덕이기에 죄질(罪質)이 더 나쁠 수 있고, 덕 을 꾸미려는 동기와 목적에 따라 죄질이 구분된다. 즉 궁 극적이고 기본적인 가치들을 파괴하기 위해 유혹의 수단 으로 삼을 때는 대죄(大罪)일 수 있으며(루가 18, 9-14 ; 마태 24, 51), 단순히 허영심으로 덕을 꾸미는 것은 소죄 (小罪)로 간주된다(마태 6, 2. 5. 16). 그러나 단순히 자기 죄를 감추려 하다가 또는 의도하지 않았던 행위의 결과 가 좋게 되어 착하거나 거룩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때 적 극적으로 자신의 부덕을 고백하지 않더라도 위선의 죄라 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지혜로운 침묵' 의 상태를 유지 하다가 악 표양을 피하면서 합리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남에게 죄를 짓게 하는 행위는 너무나 커다란 죄악이기 때문이다(마르 9, 42). 물론 내적으로 선한 지향과 외적인 선행이 자신의 인격 안에 잘 통합되어 있을 때 자신의 덕 을 과장하지 않고 드러낸다면 위선은 아니다. ※ 참고문헌  Karl. H. Peschke, Christian Ethics, vol. Ⅲ C. Goodliffe Neale, Alcester and Dublin, 1986(유봉준 역,《그리스도교 윤리학》 3, 분 도출판사, 1992)/ X. Léon-Dufour ed., Vocabulaire de Théologie Biblique, Paris, Les Editions Du Cerf, 4th ed., 1977(광주 가톨릭대학교 역,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교, 1984)/ 그리스도교대사전 大學 편찬위 원회, 《그리스도교 대사전》, 대한기독교서회, 1972/ S.F. Parmisano, 《NCE》 7, pp. 305~306. [李東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