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검 (1768~1801)
柳觀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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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감사 앞에서 배교한 유관검(탁희성 작)
전주(全州) 출신의 초기 신자. 유항검(靑恒儉, 아우구 스티노)의 이복 동생. 순교자 이육희(李六喜)의 남편. 주 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것이 확실하나 세례명은 알 려져 있지 않다. 아버지는 유동근(柳東根), 어머니는 유 소사(兪召史)이며, 1768년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 부락[草南里 혹칭 最南里]에서 태어났다. 그의 형 유 항검은 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후, 1786년 가을 가성직자단(假聖職者 團)의 신부로 임명되었는데, 이것으로 보아 유관검도 1786년 이전에 유항검의 전교에 의해 입교한 것이 분명 하다. 그런데도 그는 1790년 봄, 과거를 보러 상경(上 京)하는 길에 청주 노라리(老羅里) 사는 민도(閔燾)에게 교리서를 얻어 보았고, 그 뒤 이종 사촌인 윤지충(尹持 忠, 바오로)을 통해 입교했다고 진술하였다. 유관검은 입교 후 유항검 · 윤지충 · 윤지헌(尹持憲, 프란치스코) · 이우집(李宇集) · 한정흠(韓正欽, 스타니 슬라오) · 신경모 등과 교류하며 신앙 생활을 했고, 1791년 신해박해 때에는 체포되었다가 배교하고 풀려 났다. 그러나 감영에서 석방된 그는 다시 신앙 생활을 시 작하여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 홍익만(洪翼萬, 안토니오),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 윤유일(尹有바오로) 등과 친밀하게 지냈으며, 신주를 묻고 제사도 폐지하였다. 또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의 영입에 도 참여하였으며, 1795년 4월에는 이존창(李存昌, 루도 비코 곤자가)과 함께 상경하여 주문모 신부를 자기 집으로 모시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해 8월에는 주문모 신부 에게 밀사 황심(黃沁, 토마스)을 소개하였고, 1796년 겨 울 주문모 신부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서양의 큰 배가 나와 외교적으로 교섭하도록 간청하는 편지를 북경 주교에게 보낼 때는, 유항검 · 유중태와 함께 400냥의 돈을 모아 보내기도 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유관검은 그 해 3월 전라 감영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고문 중에 배교한 그는 신자들의 명단을 내놓았고, 그 결과 윤지헌 · 이우집을 비롯하여 200명 이상의 신자들이 체포되었다. 그런데 이우집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유관검이 "서양 군함이 나와 조정에서 말을 순순히 듣지 않는다면 무력으로 한바 탕 결판을 내야 한다" [大舶請來 一場判決〕고 한 사실이 밝혀지자, 전라 감사는 그 해 4월 유관검 · 유항검 등을 서울로 압송하였다. 유관검은 형조를 거쳐 의금부에서 신문을 받은 뒤, 1801년 10월 대역부도(大逆不道)죄로 능지처참의 판결을 받고 전주로 이송되어 10월 24일 풍 남문 밖에서 처형되었다. ※ 참고문헌 《邪學懲義》 《闢衛編》 《推案及鞫案》 《달레 교회사》 上. [河聲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