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儒敎
[라]Confucianismus · [영]Confucianism
글자 크기
9권

1 / 5
공자와 여러 성현들의 위패가 봉안된 성균관 대성전.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를 종사(宗師)로 하여 개 인적인 인격 완성과 공동체적인 이상 사회 실현을 지상 과제로 삼는 가르침. 동양 특히 한국 · 중국 · 일본의 동 북 아시아에서 불교와 함께 현재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 고 있는 종교 사상이다. 유(儒)라는 글자는 인(人)과 수 (需)가 합성된 문자로서, 그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 란 뜻이다. 유교(儒敎)는 성현들의 가르침을 본받고 배 운다는 의미에서 유학(儒學)이라고도 하며, 또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도(道)라는 의미에서 유도(儒道)라고도 일컫는다. 아울러 성현들이 남겨 주신 가르침이요 동시 에 성인(聖人) 됨의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성학(聖學)이 라고도 하며,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이면서 동시에 공맹 (孔孟)을 본받고 배우는 학문이라는 뜻에서 공맹지학(孔 孟之學)이라고도 한다. 유교에서 중요시하는 경전은 사서(四書)와 오경(五 經)이다. 사서는 《논어》(論語) · 《대학》(大學) · <중용> (中庸) · 《맹자》(孟子)이다.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 의 언행을 수록한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유교의 핵심 사 상인 인(仁)과 이상적 인물인 군자(君子) 및 공자의 정치 사상에 대해 중점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대학》은 공 자의 도통을 계승한 증자(曾子)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전해지며, 학문의 목표와 실천적 길을 3강령(三綱領)과 8조목(八條目)으로 제시하고 있다. 《중용》은 자사(子思)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천도(天道)와 인도(人道)를 통합하는 중화(中和)와 성(誠)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맹자》는 맹자의 언행을 기록한 책으로, 인간 본성의 선 함을 주장한 성선설(性善說) , 사단지심(四端之心)에 근 거한 인성론, 인의(仁義)의 도덕 규범, 왕도(王道)의 정 치론 등이 강조되고 있다. 오경(五經)은 인간의 정감을 흥기시키고 정서를 순화시키는 고대의 시를 모아 놓은 《시경》(詩經), 군왕과 신하들의 언행을 기록하여 민본적 (民本的) 유교 정치 철학을 제시한 《서경》(書經), 우주 만물의 생성과 원리를 상징 체계와 수리(數理)로써 제시 한 《주역》(周易), 풍속 · 종교 · 윤리의 다양한 규범과 제 도를 논한 《예기》(禮記) 공자의 의리(義理) 사상에 입각해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비판한 유교 역사 비판서 인 《춘추》(春秋) 등이다. I . 성립과 발전 과정 [중 국] 유교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춘추 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에 공자와 그 제자들에 의해 탄생하였다. 당시 사회상은, 기존의 봉건 체제가 붕괴하고 군웅 이 할거하면서 위정자들은 부국 강병과 전쟁에 혈안이 된 반면에, 민생은 도탄에 빠져 참혹히 죽어가고 윤리 도덕은 땅에 떨어진 비참한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자는 백성의 생명을 살리고 윤리 도덕을 세우고 바 람직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당시 도가류(道家類)의 은자(隱者)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온 생애를 투신하였고, 마침내 유교라는 종교 사상을 후세에 남겨 놓았다. 그러나 유교는 공자에 의해 독창적으로 창도되었다기보다는, 그의 "서술할 뿐 창작하지 않는다" [述而不作]는 정신에 따라 요(堯) · 순(舜) · 우(禹) · 탕(湯) · 문무(文 武) · 주공(周公) 등 역대 성인들의 가르침과 업적을 계 승하여 집대성한 사상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공자의 가 르침은 증자(曾子)와 자사(子思)를 거쳐 맹자에 이르러 더욱 명료화되고 체계화되었다. 춘추 전국 시대가 끝나고 천하를 통일한 진대(秦代)에 이르면 법가(法家) 사상에 의한 전제 정치가 행해진다. 유자들은 이러한 현실을 비판했는데, 이에 '분서갱유' (焚書坑儒)라고 일컫는 심한 탄압을 받게 되었다. 한대 (漢代)에는 소실된 경전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훈고학 (訓詁學)이 발달했으며, 무제(武帝) 치세에는 동중서(董 仲舒)의 건의에 따라 유학을 관학(官學)으로 정하고 오 경 박사(五經博士)를 두었으며, 과거 제도의 기본 과목을 유교 경전으로 삼았다. 불교가 풍미하던 당대(唐代) 에는 문학적인 사장학(詞章學)이 성행했으며, 한유(韓 愈)의 불교 비판론과 이고(李翺)의 《복성서》(復性書)를 거쳐, 유교는 송대(宋代)에 이르러 불교와 도가 사상의 자극을 받으면서 철학적으로 체계화되니, 이것이 바로 성리학의 탄생이다. 성리학은 주염계(周謙溪) · 소강절 (邵康節) · 장횡거(張橫渠) · 정명도(程明道) · 정이천(程 伊川)을 거쳐 주자(朱子, 1130~1200)에 이르러 종합 · 집 대성된 철학 사상으로, 태극이기론(太極理氣論) · 성즉 리(性卽理) · 인심도심론(人心道心論) · 성경론(誠敬論) 등이 중심을 이룬다. 명대(明代)에는 왕양명(王陽明, 1472~1529)에 의해 양명학(陽明學)이 대두하여 성리학의 주지적(主知的), 사변적 성향을 비판하면서 심즉리(心卽 理) · 양지설(致良知說) · 지행합일설(知行合-說) 등 을 주장하였다. 청대(淸代)에는 경전의 훈고와 실용적 가치 추구에 중점을 두는 고증학(考證學)과 실학(實學) 이 대두하였는데, 이러한 실용적 학문은 고염무(顧炎 武) · 왕부지(王夫之) · 염약거(閻若璩) · 황종의( 黃宗義) 등에 의해 전개되었다. [한 국] 유교가 한국에 전래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 다. 다만 삼국 시대 이전 한자의 전래와 함께 이루어졌으리라 보며,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는 태학(太學)이 세워져 유교 사상에 입각한 인재 양성이 시작되었다. 삼 국 시대 유교는 주로 한대(漢代)에 성행하던 오경 사상 (五經思想)으로, 교육 제도 · 학술 사상 · 윤리 도덕 · 사 회 · 정치 등에 영향을 미쳤다. 고려 시대는 유교 · 불 교 · 도교가 교섭하던 시대로써, 유교적 이념은 교육과 정치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태조(太祖)의 《십훈요》(十訓要), 최승로(崔承老)의 시무책(時務策) 등 에 잘 나타난다. 고려 중기에는 관학(官學)이 침체하고 사학(私學)이 크게 일어났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해동 공자' 라고 일컬어지는 최충(崔沖)의 9재(九齋)이다. 고려 말기에는 왕실의 쇠퇴와 함께 불교의 폐단이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고 성리학이 전래되면서 성리학자들이 불교를 비판하고 사회 개혁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들 성리학자들은 현실 인식과 인생관의 차이로 인해 혁 명파와 절의파로 나뉘는데, 정도전(鄭道傳) · 권근(權 近) 등의 혁명파는 고려 왕조가 부패하고 실정하여 천명 (天命)을 잃었으므로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왕조로 교체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정몽주(鄭夢周) · 이색(李 穡) · 길재(吉再) 등의 절의파는 춘추 대의(春秋大義) 사 상에 입각해서 고려 왕조를 중흥시키고 신하로서 절의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성리학을 이념적 기반으로 하여 세워진 조선 왕조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견지하였고, 모든 문물 제도를 유교적 이념에 입 각해서 새로이 정비 · 확립하였다. 특히 세종(世宗)은 집 현전을 궁중에 설치하여 유학자들이 깊이 학문 연구를 하도록 하였으며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훈민정음을 창제 하였다. 세조의 왕위 찬탈 사건이 발생하자 사육신(死六 臣) · 생육신(生六臣)들은 정몽주의 의리 사상을 이어받 아 일편단심의 절의를 지켰으며, 이러한 절의 사상은 도 학(道學) 정신으로 사림파(士林派)에 의해 계승되었다. 연산군 때의 무오사화(戊午士禍)를 발단으로 갑자(甲 子) · 기묘(己卯) · 을사(乙巳)의 4대 사화를 겪으면서 김굉필(金宏弼) · 정여창(鄭汝昌) · 조광조(趙光組) 등 수많은 사림파 선비들이 훈구 보수 세력에 의해 처형되 었는데, 후에 이들 중 대표적 인물들은 문묘(文廟)에 배 향되어 사표로서 존숭을 받고 있다. 성리학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과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에 이르러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되었다. 두 사람은 한국 유교의 쌍벽을 이루는 성현이지 만, 서로 다른 현실 상황과 주안점의 차이로 각기 상이한 사상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즉 사화(士禍)의 와중에서 일생을 지낸 퇴계는 정치에 투신하기보다는 학문 연구를 통해 선과 악을 밝히고 올바른 도(道)를 천명하고 자 했으므로, 이기론(理氣論)에 있어서 이(理)와 기(氣) 를 분리하고 이(理)를 높이려는 존리적(尊理的) 이기론 을 폈으며, 인성론에 있어서도 사단(四端)과 칠정(七 情) ·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을 구별하여 '이기호발 설' (理氣互發說)을 폈다. 반면에 사화가 지나고 일대 경장(更張)이 요구되는 시대에 산 율곡은 정치 현실에 투 신하여 직접 사회와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국력을 회복시키려고 했으며, 학문에 있어서도 이기(理氣)의 부 잡성(不雜性)보다는 불리성(不離性)을 중시하여 '이기 지묘' (理氣之妙)를 강조하였고, 인성론 역시 사단과 칠 정, 도심과 인심을 둘로 보지 않고 하나의 두 형태로 보 아 '이기일도설' (理氣一途說)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퇴계와 율곡의 성리학적 이론은 김장생(金長生) · 김집(金 集) 등에 의해 실천적인 예학(禮學)으로 현실화되고 생 활화되었다. 한편 조선 중엽에 전래된 양명학은 퇴계에 의해 이단으로 비판된 이래 계속 배척을 받아 왔으나, 남 언경(南彥經) · 최명길(崔鳴吉) · 장유(張維)를 거쳐 정 제두(鄭齊斗, 1649~1736)에 이르러 빛을 발하게 되었고 조선 양명학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양명학은 후일 권 철신 · 정약용 등 신진 실학자들이 천주교 신앙을 수용하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조선 후기에는 중국으로부터 고증학과 서양 문물 및 서학 사상이 유입되면서 실용 · 실증 · 실리를 중시하는 실학 사상이 대두하게 되었다. 성호 이익(星湖 李潼)을 중심으로 한 성호학파는 성리학의 사변화와 현실 괴리를 비판하면서 경세치용(經世致用)을 강조하고 공맹(孔孟) 의 선진 유학(先秦儒學)으로 돌아가 유교 경전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해석을 시도하였으며, 새로운 사상인 서 학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하였다. 이 성호학파 중 이벽 (李檗) · 권철신(權哲身) · 권일신(權日身) · 정약전(丁若 銓) · 정약용(丁若鏞) · 이가환(李家煥) 등이 서학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면서 한국 천주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II . 근본 사상 [인간관과 수양론] 유교는 천(天) · 지(地) · 인(人) 삼 재(三才)를 사상 체계의 근간으로 삼고 있으나, 그 중심 은 인간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무엇이냐" 는 철학적인 면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존재가 되고 인간다운 사회를 구현하느냐"는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면에 관심을 두고 있다. 유교의 인간론과 수양론은 사람이 궁극자인 천(天)으로부터 내원(來源)했기에 사람의 본 성이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성 선설은 맹자(孟子)에 이르러 체계화되었지만, 《논어》 · 《대학》 · 《중용》 등에서도 인간의 근본 바탕이 선함을 인 정하고 있고, 그 핵심 사상인 인(仁) · 명명덕(明明德) · 솔성(率性) · 성(誠) 등은 모두 성선(性善)을 근거로 하 고 있다. 맹자는 인간이 천(天)에 근거하여 태어나며 선 천적으로 천칙(天則)을 받아 덕성(德性)을 이루므로 그 본성이 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고, 또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의 측은지심(惻隱之心), 도살장으로 가면서 두려워 떠는 짐승을 차마 보지 못하는 불인지심 (不忍之心), 만인 공통의 오관 작용, 우산지목(牛山之 木) 등 심리 작용과 자연 법칙을 살펴볼 때, 인간의 본성 이 선함은 자명하다고 역설하였다. 이렇게 유교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보지만, 다른 한편 인간에게는 악을 유발하는 요소도 함께 있다 고 본다. 공자는 "자신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감이 인 (仁)"이라고 언명함으로써 극복해야 할 요소와 살려야 할 요소가 있음을 시사하였다. 맹자도 인간을 두 가지 요소, 즉 마음[心]인 대체(大體)와 오관의 욕망[五官之欲] 인 소체(小體)로 구성된 존재로 보았으며, 대체(大體)는 살려야 할 요소요 소체(小體)는 절제하고 극기해야 할 요소라고 보았다. 그렇다고 대체만 중시하고 소체를 경 시하거나 죄악시하지 않고, 둘 다 아끼고 길러야 한다고 본다. 다만 소체가 주(主)가 되고 대체가 종(從)이 될 때 소인으로 전락해 버리므로, 대체가 주(主)가 되고 소체가 종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리학에서는 이러한 공맹(孔孟)의 인간관을 이기론 (理氣論)에 입각해서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인 간의 본성을 "생명의 원리" [生之理]라고 이해하고 "성은 곧 이" [性卽理]라고 규정하였다. 이 이(理)는 궁극자인 태극(太極)으로, 인간만이 아니라 만물 안에 내재해 있으므로, 성(性)이란 곧 인간과 만물 안에 품부되어 있는 태극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인간과 만물은 이 형이상(形 而上)의 성(性) 외에 형이하(形而下)의 기(氣)를 품수하여 형체를 이루게 되며, 이 기(氣)에는 맑음과 흐림, 후함과 박함의 차이가 있으므로, 인간과 만물, 성인과 어리석음의 차별이 생기게 된다고 본다. 비록 본연의 성[本 然之性]은 동일하고 선하더라도 기질(氣質)에 있어서는 온전함과 치우침의 차이가 있으므로 여기서 선과 악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흐리고 박한 기(氣)를 받은 사람의 경우, 마치 흐린 물이 그 속에 있는 보석의 빛을 가리듯이, 흐린 기(氣)가 이(理)를 가려 구속하고 본성[本性之性]에 따름을 방해하기에 악의 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두 요소 중 대체(大體) · 본연의 성〔本然之性〕 은 살려야 하고, 소체(小體) · 기질의 정[氣質之情]은 조 절해야 하므로 유교 수양론은 대체와 본성을 기르고 따 르며, 소체와 칠정(七情)을 조절하여 중화(中和)를 이름 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래 마음을 보존하고(存心) 본성을 따라 살아가며[養性] 자신의 잃 었던 마음을 회복하고(求放心) 본성으로 돌아감[復性] 이 유교 수양론의 요체이다. 그리고 이 존심복성(存心復 性)의 수기(修己)를 위한 방법으로는, 인간의 3가지 측 면 즉 지성, 마음, 행동의 관점에서 격물치지(格物致 知) · 성의정심(誠意正心) · 역행(力行)이 강조되고 있 다. 격물치지는 천리(天理) 곧 진리를 추구하고 인식하 는 궁리(窮理)이며, 성의정심은 의지를 성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 성리학에서는 거경(居敬)이 라고도 하며, 역행은 힘써 행동으로 옮겨 지행합일(知行 合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3가지 중에 성의(誠意) 를 수양의 근본으로 삼으니, 의지가 바르고 확고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유교에서는 성선 설과 인간의 능력을 믿기에, 비록 타고난 기(氣)의 후함 과 박함으로 인해 기질과 재능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누구나 노력하고 수양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요(堯) · 순(舜)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 고 단언하였으며, 왕양명은 "사람의 마음에는 누구에게나 공자가 있다" 고 하였다. (궁극자관과 사천(事天) 행위] 중국인들은 고대로부터 궁극자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러한 관념 은 중국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궁극자에 대한 명칭 · 관점 · 관계성은 개인의 사유 양식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상이하고 또한 변화되어 왔다. 《시경》과 《서 경》에서는 우주 만물의 근원 내지 궁극자를 상제 (上帝) 또는 천(天)이라 칭하였고, 이 상제 · 천을 만물을 주재 하고 안양(安養)하는 주재적 · 인격적인 최고신(最高神) 이라고 인식하였다. 후대로 오면서 상제보다는 천(天)으 로 대치되고, 천의 초월성과 함께 내재성이 자각되었다. 공자는 이러한 전통적 천제관(天帝觀)을 이어받아 천 (天)을 의지를 갖고 만물을 주재하는 인격적인 절대자로 인식하였으며, 천에 대한 경건과 천명(天命)에 대한 순응은 그의 삶과 사상 전체의 바탕을 이루었다. 사랑하는 제자 안연이 죽었을 때 "천(天)이 나를 버리셨구나! 천 (天)이 나를 버리셨구나!" 하며 슬피 통곡하면서도 생사 를 천명에 맡기고 순응하였으며, 일생을 통한 심한 역경 속에서도 "나를 알아주는 분은 저 하늘(天)뿐이구나!"라 고 하며 천에 대한 굳은 신뢰를 고백하였다. 그런데 공자는 천과의 관계에 있어 종전과는 다른 태도를 취하여, 천 은 천자 · 제후 · 대부 등 귀족 계층뿐만 아니라 신분 계급의 제한 없이 모든 사람과 개별적이고도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보았다. 또한 천은 단순히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거나 인간에게 굴종만을 강요하는 존재가 아니라, 천명을 통해 인간의 본심(本心)과 성(性)으로 인간 안에 내재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천의 초월성과 내재성은 그의 성숙한 인격 안에서 조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내재적이고 비위격적(非位格的)인 궁극자관을 갖고있는 도가(道家)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유교를 철학적으 로 체계화한 성리학에서는, 궁극자를 철학적 견지에서 이해하였으며, 《주역》의 내재적 태극 · 음양 사상을 발전 시켜 태극이기론(太極理氣論)을 전개하였다. 즉 만물의 근원 내지 궁극자를 태극이라 규정하였는데, 이 태극은 그 이상의 어떤 궁극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무극(無極)이라고도 하며, 각 사물의 존재 근거 내지 원리라는 의미에서 이(理)라고도 한다. 이 태극 내지 이 (理)는 개체 사물을 초탈해서 존재하지 않고, 각 개체 안에 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은 각각 온전한 한 태극을 구유(具有)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하늘에 달이 하나이지만 강과 호수에 비추어 가는 곳마다 있으나 달이 나누어졌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리학에서는 궁극자를 선진(先秦) 유교와는 달리 내재 적 · 철학적 관점에서 파악함으로써, 궁극자관에 있어서 종교적 측면이 약화되었다고 봄이 일반적 인식이다. 그렇다고 성리학이 상제나 천(天)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 며, 유교 경전에서 말하는 상제나 천이 만물의 근원이며 궁극적 존재라는 의미에서 태극과 상통하는 존재임을 인정한다. 동일한 궁극자에 대해 인간의 관점이 다양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상이한 시각에 따라 궁극자의 호칭 역시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리학에서 상제나 천(天)이 란 용어를 기피하고 태극을 사용하는 것은, 상제나 천이 현상 세계와의 관련성에서 일컬어지는 명칭이라면, 태극은 적어도 논리상으로는 기(氣)와 구분하여 궁극자를 지칭하는 근원적 개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궁극자에 대한 호칭과 개념은 시대에 따라 다 양하지만, 유일한 궁극자에 대한 존경 · 순응 · 감사의 사 천(事天) 행위는 인간의 근본 도리라고 변함없이 믿어왔다. 이에 유교에서는 사천 행위로써, 의례적인 차원의 제천(祭天) 예식과 실천적인 차원의 수덕(修德)과 안인 (安人)을 중시한다. 이 중 제천 의례는 천자(天子)가 천하민(天下民)을 대표하여 천하민을 위해 드리는 제사로 써, 그 목적은 구복(求福)과 기원(祈願)도 있지만, 근본 적으로는 받은 생명과 은혜에 대한 보본(報本)과 보은 (報恩)에 있다. 제천 의례 외에 수덕(修德)과 안인(安 人)을 또 다른 사천(事天) 행위로 중요시하는데, 수덕과 선정(善政)이 합쳐지지 않은 제사는 아무리 제물이 풍성하고 의식이 성대하더라도 천(天)이 흠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의례적인 사천 행위보다 실천적인 사천 행위를 더 중요시하는 것은, 효도를 함에 의 · 식 · 주를 편안하게 해드리는 양구체(養口体)의 효(孝)보다는 그 뜻을 따르고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양지(養志)의 효를 더 중요시하는 것과 상통한다. 더욱이 수덕과 선정 자체 를 천명이 영원히 함께 하기를 기도하는 행위요 천은(天 恩)을 받는 수복(受福) 행위라고 본다. 맹자는 성(性)과 천(天), 진성(盡性)과 사천(事天)을 상통적인 것으로 보 아, "인성(人性)을 알게 되면(知性] 천(天)을 알게 되고 [知天], 본심을 보존하고(存心) 본성을 기르는 것[養性] 이 천을 섬기는 길[事天]"이라고 하였다. [선악관과 윤리론] 유교의 선악관은 생명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이란 삶[生] 또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요, 악은 죽음[死] 또는 생명을 죽이는 것이라 고 본다. 다시 말해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하늘 [天]의 대덕(大德)인 생성(生成)의 덕(德) 내지 생명 살림의 마음[生生之心]을 품부받아 본심(本心)과 본성(本 性)을 이루므로, 인간의 본심인 생명 살림의 측은지심 내지 인(仁)이 선(善)이요, 생명을 죽이는 칼날 마음[忍 心] 또는 불인(不仁)이 인성에 배치되는 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화로써, 내적 · 외적인 조화 여하에 생(生)과 사(死)가 달려 있으 므로 생명을 살리는 중화(中和)를 선(善)이라 하고, 생명을 죽게 하는 지나침[過]과 모자람[不及]의 부조화(不 調和)를 악이라 한다. 이 중화는 유교 도통(道統)의 요체 로써, 성인이 되는 심법(心法)이요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는 치법(治法)으로 신봉되어 왔다. 유교에서 추구하는 중화(中和)는 적당한 타협도, 수학적인 중간 지점도, 불변적 고정 원리의 고집도 아니다. 인간과 우주 만물은 변화 속에 생존하기에, 시간과 공간 의 상황을 참작하여, 처한 상황에서 중용을 이루는 시중 (時中)이어야 한다. 그런데 중화에는 판단의 기준과 척 도가 필요한데, 유교에서는 중화의 근본 척도가 궁극자 의 뜻[天命]과 인간의 본성(天命之性)이라고 본다. 천명 (天命) · 태극[理]과 천부적인 인성은 그 자체가 중(中) 이요 지선(至善)으로 선악의 대본적(大本的)인 기준이 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순천명(順天命) · 순 리(順理)와 솔성(率性) · 존심(存心)이 중화요 선인 반 면, 역천명(逆天命) · 역리(逆理)와 패성(悖性) · 방심 (放心)이 과불급(過不及)이요 악이다. 이렇게 볼 때 악 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實體)가 아니라, 궁극자의 뜻과 인간 본성으로부터 괴리된 과불급의 불완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다양한 상황에 따라 천명에 순응하며 중화를 이루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옛 성현들은 누구나 쉽게 중화를 이루도록, 여러 상황을 참작하여 실용적인 규범을 제정해 놓았는데 이것이 예(禮) 이다. 유교에서는 예(禮)를 중화(中和) 곧 선의 실용적 척도로 삼아, 모든 행위와 일용지사(日用之事)를 이에 준해서 하며, 비례(非禮)와 무례(無禮)를 악으로 단죄하고 있다. 공자는 "자신을 극복하여 예(禮)에 돌아감이 인 (仁)"이라고 언명하면서, 그 세목(細目)으로 "예가 아니 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고 역설하였다. 맹자 역 시 "군자는 예로써 존심(存心)한다" 고 강조하였다. 유교인들은 개인적 수기(修己)에서부터 공동체적인 윤리 도 덕 · 사회 정치의 안인(安人)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사 를 예로써 하는 것이다. 인간 관계를 중시하는 유교에서는 안인(安人)의 윤리 로써 특히 오륜(五倫)을 중시한다. 오륜이란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로써, 부모와 자식 사이의 친애[父子有親] · 군주와 신하 사이의 의리[君臣有 義] · 부부 사이의 분별[夫婦有別] · 어른과 젊은이 사이의 질서[長幼有序] · 친구 사이의 신뢰(朋友有信)이다. 이 중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윤리의 기초로 삼고 있는 데, 이 관계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개입되지 않고 오로지 하늘[天]이 맺어 준 관계[天倫]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자지간의 효도를 모든 윤리의 기초로 삼고 중요시한다. 이 효를 인간 행위의 근본이요 모든 덕의 으뜸으로 삼고 있으며, 심지어는 효에 의해 그 사람됨을 평가하여, 효도하지 않는 자는 자식이라 할 수도 없고 사람이라 할 수도 없다고 하면서 불효를 가장 큰 죄로 규정하고 있다. 유교에서는 효와 함께 형제간의 우애인 제(弟)를 중시한다. 효(孝)와 제(弟)는 유교 윤리의 핵심이요 정화인 인 (仁)을 실현하는 근본이라는 것이다. 맹자는 이 효제가 천부적인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이라고 하면서 "요순 (堯舜)의 도(道)는 효제뿐"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런데 이 효제는 단순히 부모와 형제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종 적으로는 조상 숭배(崇祖)와 하늘 공경[敬天]으로 연결 되고, 횡적으로는 비혈육의 이웃과 백성에게 미쳐[治 國], 마침내는 사해 동포에까지 이르게 함〔平天下)으로 써 천하 일가(天下一家)의 대동 사회(大同社會)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 · 사회 사상] 유교의 궁극 목표는 개인적으로는 수기(修己)를 통해 이상적인 인간[君子 · 仁者]이 되고, 공동체적으로는 안인(安人)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大同 社會〕를 구현함에 있다. 유교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道)라고 일컬어질 만큼, 수기와 함께 치인(治人) 내지 안인(安人)을 중요시한다. 공자는 "수기하여 백성을 평안케 하는 것은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도 걱정한 바" 라고 언명하면서, 자신의 평소 포부와 염원은 "노인들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친구들에게는 신뢰를 주며 어린 이들을 사랑으로 품어주는 것"이라고 피력하였다. 유교 에서는 정치 · 경제적인 불량 환경이 인간으로 하여금 악 을 행하게 하는 한 원인으로 보기에, 정치와 경제를 중시 하며 이상적인 사회 구현을 위해 힘쓴다. 유교의 정치 사상에서 중시하고 강조하는 것은 정명 론 · 덕치주의 · 민본주의 등이다. 공자는 "정치는 바르게 함"[政者 正也]이라고 언명하면서, 정치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명분(名分)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정명론(正名 論)을 주장하였다. 각 사람은 그 이름과 직분에 맞게 처신해야 하는데,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 모는 부모답고 자녀는 자녀다워야 한다" 는 것이다. 둘 째,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무력이나 형벌로 하는 패 도(覇道) 정치를 하지 말고, 덕(德)과 인의(仁義)로써 하는 덕치(德治) 내지 왕도(王道)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자는 위정자들의 모범을 중요시하여, 위 정자가 모범을 보이면 상을 주면서 도둑질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셋째,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요 정치의 중심이라는 민본(民本) 사상이다.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社稷)이 그 다음이고, 임금이 가장 아래이다"라고 언명하였으며, 공자는 국가의 유지와 발전에 있어 국민의 신뢰(民信)가 경제[足食], 국방[足兵]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유교에서는 경제적 안정을 매우 중요시했는데, 경제가 안정되지 않으면 제대로 수양도 할 수 없고 윤리 도덕 역시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유교의 경제 사상에서는 항산(恒産)주의, 균화(均和)주의, 절용(節 用)주의 등을 중요시한다. 첫째,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경제적 수입이 안정되면 항심(恒心) 곧 도의심(道義心) 을 갖게 되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으면 도의심도 없어져 아무 짓이나 거침없이 하게 되므로,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경제 적 분배를 조화 있게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는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적음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니, 대개 고르면 가난이 없고, 조화로우면 많고 적음이 없다" 고 하였다. 셋째, 재물을 낭비하지 말 고 가난한 이웃에 대한 구휼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때맞춰 먹고 쓰기를 예(禮)에 따라 하면 재물은 남아돌게 된다"고 하였고, 공자는 "절용하고 남을 사랑하라"고 하였다. 재물을 절용하여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에게 베푸는 것은 인류의 부모인 하늘[天]에 효도를 하 는 것이요 또한 인간의 이상인 인(仁)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생사관과 조상 제사] 유교에서는 생(生)과 사(死)를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일통지사(一統之事)로 생각한 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며 삶을 알면 죽음을 알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죽음과 죽은 이 섬김에 대해 묻는 제자에게, 공자는 삶과 산 사람 섬김에 대해 먼저 관심을 갖고 극진히 하라고 하였다. 이것은 죽음은 삶에 의해 조 명되고 진실한 삶을 통해 경건한 죽음을 맞을 수 있으며, 산 사람 섬김을 극진히 할 때 죽은 이를 합당하게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유교에서는 신비의 세계인 죽음보다 는 현재의 삶을 성실히 하는 데 관심과 정성을 쏟는다. 이런 의미에서 공자는 "아침에 도(道)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였다. 장횡거(張橫渠)는 삶 과 죽음에 임하는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살아서는 부모 섬김[事親]과 하늘 섬김[事天]을 충실히 하여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죽음에 임해서는 부모와 하늘[天]에 부끄럼 없이 평안히 잠든다고 하였다. 또 유교에서는 생사 (生死)는 천명(天命)에 달려 있다고 굳게 믿음으로써 삶에 있어서나 죽음에 임해서나 순천명(順天命)하는 자세를 취한다. 한마디로 유교의 생사관은 천부의 본성에 따라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생사는 오로지 하늘[天]에 맡기고 천명(天命)을 순수(順受)하는 '진인사 대천명'ㅜ(盡人事待天命)의 자세이다. 유교인들은 사후의 세계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사후 에 영혼이 상선벌악(賞善罰惡)에 의해 천당과 지옥에 간 다는 관념도 희박하다. 물론 고대 은대인(殷代人)들은 그들의 왕들이 사후에 하늘에서 상제(上帝)를 모시고 있 다고 믿었으며, 주대인(周代人)들 역시 선조들이 사후에 하늘에 있다고 믿었다. 또 《시경》 · 《서경》 등에 나오는 천(天)은 주재적인 상제를 지칭할 뿐만 아니라, 상제와 선조신(先祖神)들이 거처하는 천당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대로 올수록 점차 종교적 · 신비적 차원으 로부터 인문적 · 합리적 차원으로 관심과 중점이 옮겨지 면서, 천당에 대한 관념도 희박해졌으며, 공자의 경우는 사후 세계나 천당 · 지옥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더욱이 성리학에서는 천당 · 지옥과 같은 사후 세계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교의 천당 지옥설을 이단사설(異端邪說)로 규정하고 신랄히 비판하였다. 불교의 천당 지옥설은 비록 우매한 사람들을 위한 권선 징악의 교화적(敎1比的)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천당· 지옥은 실재하지 않으므로 그 자체가 거짓된 가르침이요 아울러 교화의 효과도 없다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나무가 죽더라도 그 생명력이 열매를 통해 지속되듯이, 개체의 생명력과 얼은 유체(遺體)인 자손을 통해 영속 · 확충되어 나가며, 또한 생시에 이루어 놓은 도덕[德] · 공적(業] · 가르침[言]의 삼불후(三不朽)를 통해 대아(大我)인 인간 공동체 안에 영속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유교인들은 소아(小我)적 차원의 개체의 영 속에 관심을 두지 않고, 도덕적 · 대아적 차원의 자손과 공동체를 위한 삼불후에 관심을 둔다. 유교에서는 사후 세계나 사후 인간의 상태에 관심을 두지 않지만, 선조에 대한 제사는 극진히 드린다. 죽은 이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살아 계실 때 섬기듯이[事死如 事生] 감사의 효도를 계속하는 것이 자녀의 도리라는 것 이다. 추원보본(追遠報本)의 마음에서 정성으로 드리는 제사는, 반드시 죽은 신령이 흠향하게 된다고 믿는다. 이렇게 볼 때, 유교의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이니, 이 정성이 바로 신령과의 통교와 감격(感格)을 가능 하게 하고 실현시키는 매체요 소인(素因)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성이 있으면 신령이 흠향하지만[有誠有物], 정성이 없으면 신령이 흠향하지 않는다(無誠無物)고 믿는다. Ⅲ . 유교에 대한 천주교회의 이해 [예수회 선교사들의 보유론과 성리학 비판] 16세기 말 엽 중국 선교에 임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와 동료 예수회원들은 중국 문화와 사상에 대해 존중하면서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복장이나 생활 양식에 있어서도 중국화하려고 하였으니, 유자(儒者)의 복장을 입고 유자 로서 처신하고, 자신들을 '서유' (西儒) 또는 '서사' (西 士)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한문을 열심히 익혀 유자들도 놀랄 정도로 실력을 쌓았으며, 유교 경전을 깊이 연구하고 천주교 사상과 조화를 이루려고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천주교가 이질적인 서양 종교가 아니라 공맹(孔孟) 의 유교 사상과 상통하는 종교이며, 더 나아가 유교의 부족을 보완시켜 주는 사상임을 설득시키려는 보유론(補儒 論)을 폈다. 이들 선교사들은 대체로 공자를 철학가로 보았으며, 공자의 가르침은 사람이 현세에서 처신하고 사람다운 사 람이 되는 도(道)요 제가(齊家)와 치국(治國)의 도(道) 라고 보았다. 따라서 유교는 정식 종교가 아니라 윤리 도 덕을 가르치는 일종의 철학이므로 유교에 속하면서도 그리스도교인이 될 수 있다고 이해했다. 유교의 가르침은 원칙상 천주교의 기본 도리에 위배되는 것이 없으며, 천 주교 신앙은 유교의 관심사인 사회 안녕과 화평의 실현에 방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크게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였다. 유교가 비록 종교라 하더라도 초보적인 본성적 자연 종교(自然宗敎) 단계에 불과하므로, 완 전하고 유일한 계시 종교인 천주교에 의해 보완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천주교에 귀일(歸一)되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이러한 인식과 신념에서 선진 유학(先秦儒 學)의 소사상제(昭事上帝) · 조상 숭배 신앙(祖上崇拜信 仰) · 상선벌악 사상(賞善罰惡思想) · 인 사상(仁思想) 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그리스도교의 주요 교리인 천주의 존재와 속성 · 영혼 불멸 · 사후 천당 지옥 · 애주 애인(愛主愛人) 등을 설명하였다. 또한 조상 제사와 공자 공경 의례에 대해서도 예수회 원들은 자녀나 제자가 사후에 부모나 스승에게 드리는 효도와 존경의 상징적 표현이요 단지 국민적 · 사회적 의 례로써 천주교의 제사와는 상이하다고 보아 허용하였다. 아울러 하느님에 대한 중국적 명칭으로는 '천주' 가 가장 적절한 호칭이지만, 중국인에게 친숙한 '상제' (上帝)나 '천' (天) 역시 만물의 위격적 주재자(主宰者)를 지칭하 므로 사용할 수 있다고 허용하였다. 그러나 철학적 성리학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 여 성리학이 선유(先儒)의 순수하고 바른 종교 관념을 변질 · 왜곡시켰으며, 무신주의(無神主義) · 영혼 불멸 부인(靈魂不滅否認) · 사후 세계 불신(死後世界不信) 및 만물 일체설(萬物一體說) 등의 오류에 빠져 있다고 판단 하였다. 그래서 성리학의 이론 근거가 되는 태극이기설 (太極理氣說)을 위시하여 만물 일체설(萬物一體說) · 혼 백 산화설(魂魄散化說) 등에 대해 전면적으로 비판하였다. [조선 천주교인들의 유교관] 천주교를 민족 구원의 복 음으로 수용하고 신앙으로 신봉한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 주역들은 불교와 민간 신앙에 대해서는 배격하였으나, 유교 사상에 대해서는 조화를 이루려는 보유론적 자세를 취하였다. 이러한 자세는 중국에서 전교하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보유론적 선교 방침에 영향을 받은 바도 크지만, 다른 한편 유자(儒者)들이었던 이들이 천주교에 귀 의했다 하더라도, 이들의 정신적 · 문화적 바탕은 유교였 으며 아울러 강한 민족적 · 창의적인 주체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최초의 천주교 이론가인 이벽(李檗)은 《성교요지》(聖 敎要旨)에서 유자들에게 친숙한 상제(上帝)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유교적 가치와 덕을 인용함으로써 유교 경전의 상제와 천주교의 천주가 동일한 존재임을 제시하는 동시에 천주교와 유교의 조화를 이루려고 하였다. 또한 민중을 중시한 이들 실학자들은 가사체(歌辭)로 《천주 공경가》 · 《십계명가》를 지어 서민 대중에게 천주교 교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하였다. 이 가사들의 특색은 난해한 한문 숙어보다는 대중적인 쉬운 표현을 쓰면서 유교와의 조화를 이루려고 함에 있다. 《천주 공경가》에서는 천주 공경과 영혼 불멸을 강조하면서도 신앙 생활을 인륜과 사회 생활에 연결시키고 있으며, 《십계명가》에서는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만유의 아버지인 천주의 뜻과 부 모의 공이라고 역설하면서도, 인간의 보본(報本)과 보은 (報恩)의 실천 순서에 있어서는 부모에 대한 효로부터 천주 공경에까지 미쳐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초창기 신자들의 신앙 성격은 천주 공경, 영혼 불멸, 사 후 내세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서도 부모에 대한 효도와 천주 공경, 인륜 도덕과 신앙 생활, 현세와 내세, 성(聖) 과 속(俗)을 이원론적(二元論的)으로 보지 않고 일통지 사(一統之事)로 보았으며, 인륜을 중시하는 유교와 신앙 을 중시하는 천주교를 조화시키려고 하였다. 또한 신앙 의 의의를 개인적인 영혼 구원과 내세 천당보다는 사회 개혁과 민중 구원에 두었다. 이러한 보유론적 자세는 많은 사람들을 입교시키는 데 주효했을 뿐만 아니라, 천주교의 토착화와 민족 문화의 창조적 발전을 위해서도 거시적이고도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그러나 1790년 교황청의 조상 제사 금령의 전달은 당시 조선 신자들로 하여금 부모 공경과 천주 신앙 중 양자 택일을 하도록 강요하였다. 이로써 천주 신앙을 택한 사람들은 금수만도 못한 '무부무군' (無父無君)의 패륜아 로 지탄을 받게 되었고, 부모 공경을 택한 사람들은 배교 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이 제사 금령은 유교와의 관계에 있어, 대화와 조화의 길을 차단하고 상호 생사를 건 투쟁으로 전환하게 하였으며, 토착화의 방향을 막고서 서구 그리스도교 신앙의 순수성을 강화하도록 하였다. [다산(茶山)의 유교관]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한국 교회 창립 주역의 한 사람으로, 사변에 흐른 성리학 을 비판하면서 공맹의 근본 유학으로 돌아가 유교 경전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였다. 그는 예수회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올바른 궁극자관의 정립이라고 확신하였다. 고금(古今)의 대병통 (大病痛)은 전적으로 그릇된 궁극자관에서 기인하며, 이 로 인해 경전 해석에도 많은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 · 순 · 주공 · 공자 등 성인들은 바른 궁극자관을 갖고 있었다고 판단하였으며, 이러한 인식하에 유교 경 전의 인격적이고 주재적 천관(天觀) 내지 상제관(上帝 觀)에 의거하여 궁극자관을 새로이 정립하고 신앙적으로 더욱 심화하려고 하였다. 우선 궁극자와 관련되어 일컬어지는 하늘[天]을 푸른 창공을 지칭하는 유형(有形)의 천(天)과 신령한 주재자를 의미하는 무형(無形)의 천으 로 구분하여, 유형의 천은 단순히 자연계의 천공이지만 무형한 주재(主宰)의 천은 상제(上帝)와 동일한 존재라고 보았다. 또한 지(地)와 대칭적인 천을 상제와 동일시 하는 것은 성현들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비판하면서 상제는 천(天)과 지(地), 천신과 인간을 조화(造化)하고 주재 · 안양(安養)하는 존재라고 역설하였다. 더 나아가 성리학의 비위격적(非位格的) · 내재적(內在的) 궁극자 관에 대해 비판을 가하면서, 태극(太極) · 이(理) · 음양 (陰陽)은 궁극적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즉 태극 (太極)은 개체 사물의 존재 이전에 응취된 일단(一團)의 원기(元氣)에 불과하므로, 유형한 사물의 시초는 될 수 있지만 무형한 존재의 근원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음양 은 햇빛의 명암(明暗)에 붙여진 명칭에 불과하며 본래 체질(體質)이 없으므로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으며, 이 (理) 역시 애증, 희로 등의 감각이 없는 공허한 의뢰품물 [依附之品]에 불과하므로 인간과 우주 만물의 근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궁극자를 이(理)로 잘못 인식함 이 당시 유자들이 성인이 되려고 해도 되지 못하는 3가 지 병통 중에 첫째라고 지적하면서, 태극(太極)을 헛되 이 존숭하고 이(理)를 천(天)으로 오인하면 아무리 인 (仁)을 행해 성인이 되려해도 될 수 없으니, 무엇보다 천(天)을 바로 알고[知天] 하느님 섬김[事天]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다산은 귀신론(鬼神論)에 있어서도 선진(先秦) 유교의 실체적 귀신관의 입장에서 성리학의 기능론적 귀 신관을 비판하였다. 즉 성리학에서는 귀신을 이기론(理 氣論)에 입각해서 '천지의 공용' [天地之功用]. '조화의 발자취' [造化之迹]. '이기의 양능' 〔二氣之良能〕 등 기 (氣)의 굴신(屈伸) 작용으로 이해함으로써 귀신의 객관 적 실체성(實體性)을 약화시켰는데, 다산은 이것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귀신은 객관적 실체요 상제의 신하로서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 신령한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종신토록 도를 배워도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귀신설(鬼神說)에 밝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하였다. 더 나아가 다산은 유교의 전통 적인 천신(天神) · 지기(地祇) · 인귀(人鬼)의 3품(三品) 귀신설에 대해서도 수정을 가하였다. 즉 땅 귀신인 지기 (地祇)는 상제의 명을 받아 땅을 관리하는 천신을 일컫는 것이므로 지기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또한 인귀 (人鬼) 역시 귀신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인간관에 있어서도 다산은 성(性)을 '기호' (嗜好)로 규정하고서 성삼품설(性三品說)을 들어 만물의 본성이 종류에 따라 상이함을 명백히 함으로써 인물성 동일설 (人物性同一說)과 만물 일체설(萬物一體說)을 배척하였다. 또한 선악은 각자의 자주권(自主權)에 달려 있으며, 덕과 선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에 의한 습득적(習得的)인 것이며, 인(仁) 역시 '마음의 덕' [心之 德] · '사랑의 원리' [愛之理]가 아니고 '사람 사랑' 이라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다산의 주장은 예수회 선교사들 의 보유론적 견해와 상통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다산은 당시 천주교의 중세적 신학과는 상이한 견해도 갖고 있었다. 즉 상제 섬김과 윤리를 이원론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인륜에 충실함이 곧 상제 섬김이 된다고 보았으며, 상제 섬김에 있어서도 예배나 기도보다는 인륜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선교사들이 중 시하는 원죄설 · 천주 강생 구속설 · 사후 세계에 대해 전 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인간을 긍정적으로 보아 누구나 노력하면 자력(自力)으로 인을 행하여 성인이 될 수 있 다고 믿었고, 이상 세계를 사후 천당에 두지 않고 현세에 서 인간이 이루어야 할 바람직한 상태라고 보았다. 더욱 이 당시 천주교에서 미신으로 단죄한 천신(天神)에 대한 제사가 오히려 상제(上帝)께 공경이 된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엄하게 금지된 조상 제사를 매우 중시하여 정성껏 봉행하고 자손들에게도 유언을 통해 계속 봉행하도록 명하였다. (→ 두려움, 유교에서의 ; 성리학 ; 인 ; 조상 숭배 ; 조상 제사 문제) ※ 참고문헌 유승국 등, 《유학원론》,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78/ 이병도, 《한국유학사》, 아세아문화사, 1989/ 이동준, 《유교의 인도주 의와 한국 사상》, 한울아카데미, 1997/ 금장태, 《유교 사상의 문제 들》, 여강출판사, 1990/ 유승국, 《한국의 유교》, 세종대왕기념사업 회, 1976/ 김충렬, 《고려 유학사》, 고려대학교 출판부, 1988/ 한국 철 학회, 《한국 철학사》, 동명사, 1987/ 최영성, 《한국 유교 사상사》, 아 세아문화사, 1995/ Julia Ching, Confucianism. and Christianity, Kodansha International Ltd, 1st ed., 1977(임찬순 . 최효선 역, 《유교와 기독교》, 서광사, 1993)/ 최기복, 《유교와 서학의 사상적 갈등과 상화적 이해 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1989. 〔崔基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