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서

[라]Liber Iudith · [영]The Book of Jud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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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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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딧.


구약성서의 역사서 중 하나. "유딧" (יהודית)이라는 여 인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던 끝에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자세히 서술한 이야기. [책 이름과 경전성] 16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제 목은 8장에 가서야 비로소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의 이름 에 따라 붙여졌다. 이 유딧서는 히브리어 성서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고, 그리스어 번역본인 칠십인역에 수록되 어 있다. 구약성서를 율법서와 역사서와 시서(詩書)와 예언서로 구분하는 칠십인역에서, 유딧서는 역사서로 분 류되어 통상 느헤미야서와 토비트서 다음, 그리고 에스 델서와 마카베오서 앞에 배치된다. 유대인들은 비슷한 면을 지닌 에스델서와 달리 유딧서 는 경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토비 트서나 지혜서 등과 같이 유딧서의 경전성에 대해서 이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인노첸시오 1세 교황(402~ 417)이 405년에 작성한 경전 목록에 포함되었고, 1546 년의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최종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제 2 경전으로 인정을 받았다. 히브리어로 전해지는 책만 경전으로 받아들인 루터(M. Luther, 1483~1546)는 그리스 어로만 전해지는 다른 책들과 함께 유딧서를 "성서와 동등하게 여길 수는 없지만 읽으면 이롭고 좋은 책"이라고 하면서, 구약과 신약성서 사이에 따로 배치하였다. 이후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이 책들을 '외경' 으로 간주하였고, 번역본 성서에서는 루터처럼 구약 다음에 포함시키거나 수록하지 않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의 프로테스탄트는 후자에 속한다. 〔내용과 역사성] 근동의 패자로 자리를 굳힌 아시리아 의 느부갓네살 왕(기원전 604~562)은 명실공히 온 세상 의 주인으로 군림하기 위하여, 그 동안 순종하지 않은 서부 지역을 토벌하라고 홀로페르네스(Holofernes)를 파견한다. 아시리아의 토벌대가 진군해 오자, 유배에서 갓 돌아온 유대인들만 항전하려고 나선다. 홀로페르네스가 타 민족들의 신전을 모두 파괴하고 느부갓네살을 유일한 신으로 섬기도록 강요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전 쟁 준비를 한 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고행하며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한다. 홀로페르네스가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유대인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까닭을 묻자, 암몬의 수령 아키오르(Achior)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하느님께 죄를 지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그 하느님 때문에 이길 가망이 없다고 말한다. 홀로페르네스는 느부갓네살 말고 신이 또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아키오르를 묶어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길이 내 려다보이는 산 위의 요충지 베툴리아 밑에 내던지게 한다. 그리고 이튿날 평지에 있는 베툴리아의 수원지들을 점령하고 그 고을을 완전히 에워싼다. 포위된 지 34일 만에 베툴리아의 물이 바닥난다. 주민들은 죽기보다는 노예가 되는 편이 낫다고 하면서 화친을 요구하자, 고을의 대표가 하느님께서 어떻게 해 주실지도 모르니 5일만 견디어 보자고 타이른다. 아름답고 신심 깊은 과부 유딧은 이 말을 듣고 원로들을 모셔다가, 왜 하느님을 시험하느냐고 책망한다. 이어 서 온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전이 원로들의 손에 달렸으니 모범을 보이자고 하며, 주님이 자기의 손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유딧은 하느님께 기도한 다음, 몸치장을 하고 시녀와 함께 성 밖으로 나간다. 유딧의 미모와 솔깃한 말에 매료된 적군들이 그를 홀 로페르네스에게 데려다 준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에게 아키오르의 말을 상기시키면서, 이제 유대인들이 하느님에게 잘못을 저지를 터이니, 자기가 그 때를 알려 주고 예루살렘까지 안내하겠다고 말한다. 다만 밤에는 골짜기로 나가 기도하게 해 달라고 청한다. 나흘째 되는 날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을 처음 본 순간부터 품어 온 욕정을 채우려고 연회를 열어 유딧을 부른 다. 그러나 그는 흥에 겨운 나머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종들이 자리를 피해 준 뒤에 홀로 남은 유딧 앞에서 끓아 떨어진다. 유딧은 하느님에게 기도한 다음, 홀로페르네 스의 칼을 빼들어 그의 목을 치고 그것을 시녀에게 넘긴 다. 그리고 기도하러 가는 것처럼 진지 밖으로 나가 베툴 리아로 돌아간다. 유딧은 그동안의 경과를 듣고 자신을 칭송하는 백성에게, 온 이스라엘 주민과 함께 날이 밝는 대로 장수를 잃은 아시리아 군대를 공격하라고 이른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일제히 일어나 다마스커스 너머까지 적들을 추격하며 큰 타격을 입히고 그들의 진영을 노획한다. 이윽고 예루살렘에서 대사제와 원로들 이 유딧을 찾아와 그를 칭송한다. 그들은 모두 예루살렘 으로 올라가 감사제를 지낸다. 고향으로 내려간 유딧은 온 나라의 존경을 받으면서 과부로 105세까지 살다가 죽는다. 그의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오랫동안 더 이상 유대 땅을 위협하는 자가 없었다. 느부갓네살은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임금으로,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까지 파괴한 후 임금을 비롯하여 많은 유대인을 바빌론으로 끌고 간 인물이다. 아주 후대의 유대인들도 결코 잊거나 혼동할 수 없는 이 인물이 유딧서에서는 유배 이후 시대 니느웨에서 아시리 아인들을 다스리는 임금으로 언급된다(1, 1). 이는 유딧 서가 첫머리에서 실제 역사가 아니라 꾸민 이야기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베툴리아도 큰 사건의 중심지이면서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사건 자체도 성서는 물론 필로(Philo of Alexandria, 기원전 15?~ 서기 45)나 요세푸스(F. Josephus, 37/38?~100?) 같은 유대 인 저술가들의 책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한편, 여성 특히 과부의 지위가 낮았던 그 시대에, 젊은 과부가 그처럼 큰 일을 하고 큰 영예를 누렸다는 이야 기를 꾸며 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미드라 쉬에는 유딧 이야기와 비슷한 설화가 자주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하누카(Hanukkah) 즉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 오쿠스 4세(Antiochus IV Epiphanes, 기원전 175~164)가 예 루살렘 성전을 더럽힌 지 3년 만인 기원전 164년에 성 전을 다시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와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할 때, 사건의 규모나 결과가 유딧 이 야기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이러한 설화가 어떤 실제 사건에서 유래하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문학 유형과 의도] 학자들이 제시하는 유딧서의 문학 유형은 매우 다양한데, 크게 소설과 민간 설화와 묵시록 등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의 다양성은 이 옛날 이야기를 현대의 어느 한 가지 문학 유형에 끼워 맞추기가 어려움을 드러낸다. 이스라엘의 직계 후손인(8, 1) 주인공의 이름 "유딧"은 히브리어로 '유대인 여자' 를 뜻한다. "유대" 라는 말도 히브리어나 그리스어에서 여성이다. 이 언어들에서는 나라나 민족을 여성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딧"은 이교도들의 억압에 끗끗이 맞서라고 촉구되는 "유대" 나라나 민족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중심 무대인 "베틀리아"는 "브돌" (בְּדוֹל, 여호 19, 4) 또 는 "브두엘" (בְּדוּאֵל), 1역대 4, 30)일 수도 있지만, '하느 님의 집' 을 뜻하는 "베델" (בֵּית אֵל)이나 '처녀' 를 뜻하 는 "버툴라" (בַּתּוּלָה)와 관련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베툴리아는 상징적으로 예루살렘 또는 그 안에 있는 성전을 가리킬 수 있다. 사실 유딧 이야기에서는 베툴리아 자체보다는 이 두 곳에 더 관심이 집중된다. 유딧서라는 교훈적 이야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여러 사 건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곧 에훗 판관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모압 임금 에글론을 죽인 일 (판관 3, 12-30),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적군의 장수 시스라를 죽인 일(판관 4장),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1사무 17 장),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한 호소(1사무 25장) 등이다. 유딧서 저자는 실제로 일어났었을 수 있는 어떤 사건을 기본 골격으로 하여, 쉽게 연상되는 성서의 여러 자료를 갖고 자유롭게 덧붙인다. 그렇게 하여 강대국의 종교 적 · 정치적 위협 속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선택된 민족의 모든 구성원에게 교훈을 주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저자와 저작 시기] 그리스어로 쓰인 유딧서는 많은 곳에서 히브리어 표현을 그대로 드러낸다. 반면 성서를 인용할 때에는 히브리어 성서가 아니라 칠십인역을 따른다. 그리고 예로니모(Hieronymus Eusebius, 341?~420)가 옮 긴 대중 라틴어 성서, 즉 불가타의 유딧서는 지금은 전해 지지 않는 아람어 원본을 토대로 고대 라틴어 성서를 개정한 것인데, 그리스어 유딧서와는 사뭇 다르다. 이로써 유딧서가 본래 히브리어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유딧서의 저자는 알려져 있지 있지만, 팔레스티나 땅에 살던 유대인이었음은 확실하다. 이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신심이나 생각이 바리사이파와 가까워 원저자가 초기 바 리사이계 유대인이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리스어 유 딧서는 기원전 2세기, 늦어도 1세기에 그리스계 번역자 가 히브리어 원본을 글자 그대로, 때로는 자유롭게 번역 한 것이다. 원작의 저술 시기도 단정 짓기가 어렵다. 크게 두 시기 가 제시된다. 첫째는, 유딧서의 느부갓네살 임금을 연상 시키는(3, 8 ; 6, 2 ; 다니 11, 36-37) 시리아의 안티오쿠 스 4세가 유대교를 혹독히 박해하자 마카베오 가문의 형 제들이 독립 전쟁을 하던 또는 독립 전쟁을 끝낸 기원전 160년 또는 150년대이다. 둘째는, 요한 히르카누스 1세 왕(기원전 134~104)이 그리짐 산의 성전을 파괴하고 사 마리아 지방을 하스모네 독립 왕국에 편입시킨 기원전 107년 이후이다. [신 학] 유딧서는 극적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으로 구성되었으면서도, 곳곳에 나오는 기도나 권고 등을 통 하여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명백히 밝힌다. 그러한 하느님의 모습은 결국 주인공 유딧의 행동과 그 결과로 확인된다. 민족과 종교의 존립이 이교도들에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저자는 동포들에게 하느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재확인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유딧 서의 근본 주제 가운데 하나는 누가 온 세상의 참된 임금이며 누가 진정하고 유일한 하느님이냐는 것이다. 온 세 상의 주인이고 유일한 신이라고 호언하며 대군을 앞세워 이스라엘까지 삼키려는 느부갓네살 '대왕' 이냐(2, 5 ; 6, 2), 아니면 '조용히 계신'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냐는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무형의 말씀으로 온 세상을 만든 창조주, 하늘과 땅의 주님, 모든 조물의 임금이다(9, 12 ; 13, 18 ; 16, 14). 이처럼 위대하고 영광스러우며 놀라운 힘을 지닌 하느님께 대적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16, 13). 설사 느부갓네살 같은 대제국의 왕이라 할지라도 이런 하느님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참 임금인 하느님의 통치 방법부터 이 이교 왕과는 다르다. 느부갓네살은 살육의 전쟁으로 통치의 기반을 닦는다. 그러나 하느님은 전쟁 자체를 싫어하여 그것을 없애 버리는 분이다(9, 7 ; 16, 2). 그분의 능력은 수에 달려 있지 않고 위력은 힘센 자들에게 달려 있지 않다(9, 11). 그래서 이 전쟁의 화신인 느부갓네살의 대군을 쳐부수는 것도 신통한 군대라든가 초자연적 기적의 힘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무장 된 가날픈 젊은 과부의 손이다(16, 5). 이렇듯 초월적인 하느님은 당신의 "선견"에 따라 현재와 미래를 계획하 고, 모든 것을 복종시키는 권위를 가지고 그 계획을 실현 시킨다(9, 5-6 ; 16, 14ㄷ). 이러한 하느님이 선택한 백성에게 부당한 해를 가할 경우 그분의 엄한 징벌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9, 2-4 ; 16, 17). 하느님은 이스라엘 땅을 침략한 적군을 언제라도 쳐부 술 능력을 지닌 전능하신 분이지만(8, 15 ; 9, 14), 인간 쪽에서는 그것을 강요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 잘못 없이 (8, 18-20) 고통을 겪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은 절대적으 로 자유로운 분으로서 '사람과 달리 협박할 수도 부추길 수도 없는 분' 이다(8, 16). 선택된 백성의 무고한 고통도 이러한 하느님의 절대적인 자유와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길 없는 섭리 속에서(8, 14) 뚜렷한 의미와 목적을 지니 고 이루어진다. 곧 당신 백성의 마음이 어떠한지 시험하 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채찍질' 은 깨우침을 주기 위한 것이다(8, 25-27).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이렇듯 초월적인 분이면서도, "미천한 이들의 옹호자, 비천한 이들의 구조자, 약한 이들의 보호자, 버림받은 이들의 옹호자, 희망 없는 이들의 구원자" (9, 11)이다. 이로써 선택된 백성은 자신들이 바 로 이 '작은 자들' 이라고 고백한다. 사실 그들은 조그마 한 겨레로서 민족과 종교의 존립을 뒤흔드는 위협 속에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자비를 베푸는 하느님이 계시기에 선택된 백성은 '위대한' 민족으로 그 삶을 지속할 수 있다(16, 15-16). 이를 이루어 가기 위해서 신앙과 신뢰와 인내와 용기가 요구되는데, 유딧이라는 한 여성이 그 모범을 보여 준다. (→ 구약성서) ※ 참고문헌  E. Zenger, Judith Judithbuch, Theologische Realenzyklopädie XVII pp. 404~408/ C.A.Moore, 《ABD》 3, pp. 1117~1125/ H. Gross, Die Neue Echter Bibel. Tobit · Judit, Echter Verlag, 1987 . 1944. [任承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