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화

琉璃畫

[영]stained g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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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을 유리화로 장식한 파리의 생트 샤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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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을 유리화로 장식한 파리의 생트 샤펠.


장식 유리창과 빛을 통과시키는 물건들에 쓰이는 '색 유리' 를 갖고 만든 그림. 영어로 유리화를 의미하는 '스테인드 글라스' (stained glass)는 전통적으로 그림 장식 창을 만드는 데 사용된 유리를 가리킨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색깔 있는 유리나 녹아 있는 유리에 여러 가지 금속 산화물을 첨가해 착색한 유리를 지칭한다. 전적으로 서양에서만, 특히 성당 건축에 사용된 유리화는 어두운 성당 내부를 밝혀 주었으며, 이를 통해 성서의 내용으로 만들어진 유리화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를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유래와 역사] 유리화는 예수 그리스도 시대부터 있었다고 하지만, 중요한 장식 미술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경이었다. 그 이전에 유리화가 있었음이 기록과 발굴 자료에서 확인되었지만, 그 기술과 방법이 어떠하였는지 세기별로 특징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락탄시오 (L.C.F. Lactantius, 250?~321?), 프루텐시오(Prudentius, 348?~ 405?) 예로니모(Hieronymus, 347~419) 등이 초기 성당(Basilica)의 색유리창에 대해 언급한 바 있고, 클레르몽(Clermont)의 주교이자 시인인 시도니오(Sidonius Apollinaris, 430?~487?)는 프랑스 리옹의 색유리창에 대해 묘사한 바 있다. 또한 교황 레오 3세(795~816)는 로마의 바오로 대 성전 색유리창에 대해 기록하였다. 유럽에서는 카롤링거 왕조 이전부터 부자들의 건축물에 색유리창이 크게 유행 하였음이 요크 주교좌 성당이나 영국 선더랜드의 멍크웨 이머스 수도원에서 발견되는 7세기 말경의 색유리창 조각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초기의 유리창들은 창틀 부분을 얇은 대리석, 설화 석 고(alabaster), 석고 또는 나무판 등으로 메워 놓고 여기에 구멍을 뚫어 색유리를 끼우는 '모자이크' 창의 형태였 다. 이러한 예는 7세기경 세워진 이탈리아 라벤나 외곽 에 있는 성 아폴리나리오(Sant' Appollinare in Classe) 성당 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초기 방법에서 창틀 에 유리 조각들을 붙일 때 납 선이 쓰였을 것이며, 4세기 경부터는 유리창 끼우기에 납으로 된 띠가 쓰였음이 발 굴을 통해 확인되었다. 최초의 납 띠로 된 유리 도안은 9 세기경 세워진 프랑스 랭스의 세리레메지에르 성당에 있 는 작은 패널화이다(1918 파손) 초기의 색유리창은 그림으로 장식되지 않았고 비교적 간단한 도안의 색유리로만 구성되어 있었는데, 9세기까지는 그림이 도안된 색유리 창에 대한 기록은 없다.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유리 화는 독일의 로르슈에서 발굴된 유리 파편들인데, 이것 들을 복원한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부분이었다. 이 를 통해 카롤링거 왕조의 회화와 형식이 유사함을 보여주는 9~10세기 또는 11세기의 작품으로 판단되었다. 하지만 현존하는 최초의 완전한 유리화는 12세기 초에 만들어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성당에 장식된 5명의 예 언자상이다. 카롤링거 왕조와 초기 로마네스크 건축에서는 구조상 창을 내기가 어려워 수도 적었고 크기도 작았기 때문에, 화려한 장식이 창쪽보다는 넓은 벽과 둥근 아치형 천장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후기 로마네스크 양 식과 고딕 양식의 발달은 창 만들기를 더욱 강조하였다. 이때부터 유리화가 주된 예술 양식으로 자리잡게 됐으며 북유럽에서는 교회 장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림이 그려진 유리화는 보통 서유럽에서 발명된 고유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초창기 발전 과정에 모호한 부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극동 지역인 예멘에서도 납선을 사용하지 않고 석고의 틀을 이용하여 비교적 간단한 색 구성으로 배열되어 나름대로 발전되었지만, 합리적으로 발전되지는 못하였다. 12세기부터 유리화는 건물을 위한 하나의 예술로 자 리잡았다. 그리고 건축과 긴밀하게 연결되었으며, 그에 따라 세기별로 발전과 변화가 이루어졌다. 12세기의 색 조화는 아주 간단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푸른 색 과 함께 붉은 색이 뒤 배경에 어울려 있는 경향이나 노란 색의 바탕 위에 녹색이 튀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 분홍색 과 노란 색 위에 자주색이 돌출되는 느낌을 주었다. 12 세기 유리화의 특징인 가장자리의 둘레 부분은 넓은 폭 과 풍부한 요소의 그림들이 들어 있는데, 나무 줄기와 잎 새 혹은 리본이 엮인 듯한 느낌, 또한 환상적인 동물의 출현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에 의해 더욱 장식적으로 보여졌다. 또한, 여러 가지 순서에 의해 그려지는 인물의 경우에도 간단하면서 활동적인 느낌으로 묘사되었다. 1145~1150년 사이에 발표된 법령은 이 시기에 나온 정교하면서도 세련된 유리 그림들을 수도원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로 인해 비잔틴과 이슬람 문양에서 힌트를 얻어 기하학적인 문양을 납 선의 구성에 그대로 이용하여 장식적으로 꾸며 놓은 시스테르시엔(cistercienne)이 출현하였다. 유리화는 12세기 초부터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발전됐는데, 중세 후기 유리화의 정교함과 세련됨은 주제의 자연적인 해석과 표현에 있어서 당대 어떤 화가들의 기 량과도 견줄 수 있는 예술성을 지니고 있었다. 12세기에 중요한 작품으로는 파리 근교인 생 드니(Saint-Denis) 수도원에 남아 있는 것과 파리의 생트 샤펠(Sainte-Chapelle) 의 15개의 창에 1,134개의 장면이 묘사된 화려하고 찬 란한 유리화 장식을 들 수 있다. 13세기의 작품으로 영국의 캔터베리 주교좌 성당을 들 수 있다. 또한 1203~ 1240년 사이에 9명의 작가가 제작한 파리 노트르담 주 교좌 성당의 유리화는 13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라 할 수 있다. 176개의 창에 2,500㎡의 색유리가 사용되었으며, 3개의 장미 창은 각각 직경이 12m로 거대하게 구성되었다. 13~ 16세기까지는 중요한 작품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적인 측면에서 유리화는 퇴보하기 시작하였 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실주의적 경향은 유리화에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고도의 광선 성질을 구 사하는 작업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유리화 예술이 쇠 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19세기에는 고딕 미술의 부흥으 로 중세 유리화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 많은 작품이 만들 어졌다. 영국의 미술 공예 운동자인 번 존스(E.C. BurneJones, 1833~1898)와 모리스(W. Morris, 1834~1896), 그리고 미국의 티퍼니(L.C. Tiffany, 1848~1933) 등에 의해 훌륭한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유리화는 또한 "아르 누보(Art Nouveauu) 운동"의 영향으로 장식적인 목적에 많이 사용되었 고, 건축물에는 라이트(F.L. Wright, 1867~1959)의 작품에 활용되었다. 이는 건축의 장식성을 극복하고 건축물의 형이상학적 공간 개념에 이바지했다. 20세기에는 마티 스(H.-E.-B. Matisse, 1869~1954) · 샤갈(M. Chagall, 1887~ 1985) · 레제(F. Léger, 1881~1955) · 루오(G.-H. Rouault, 1871~1958) 등을 비롯하여 타피에스(A. Tapies, 1923~ )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화가들에 의해 아름답고 찬란한 현대 유리화들이 제작되었다. [제작법] 불기법 : 유리의 출현은 약 기원전 4000년 이전으로 추정되는데, 이집트와 시리아 등지에서 많이 제작되었다. 유리를 용해시키는 기술과 틀을 만드는 기 술은 유리 기술이나 병, 항아리 등을 만드는 기술로 이어 졌다. 그리고 이집트의 제12 왕조 즉 기원전 2000년 전 에 하나의 가장 중요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불어서 만드는 유리 불기법(blow molding)이 출현하였다. 전통 수법 및 역사적인 변천 : 유리화의 전통 수법은 '모자이크' 와 '에나멜링' 예술이 투명한 소재로 전환·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모자이크 제작 방법에서 여러 조각의 유리로 그림을 구성하는 개념이 생겨났고, 에나 멜링에서는 금속 띠(테)로 유리 조각들을 모아 붙이는 기 술과 금속 띠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 또 세부 장식과 명문을 그려 넣는 안료인 유리질 에나멜을 만들어 쓰는 것 에서 영향을 받았다. 1110~1140년 사이에 테오필로 수사가 쓴 《공예 개설》(Schedula deversarum artium)에 최초로 유리화 기법이 서술되었다. 이 기법은, 우선 색의 구분이 나타나 있는 백도제(白塗劑)가 입혀진 탁자 위에 원하는 형태의 그림을 그려 놓고, 색을 맞춰 각각의 유리 판에 뜨겁게 달군 철로 된 연장으로 정확한 크기와 형태로 유리를 잘라 낸다. 그 후 눈금이 새겨진 인두로 다시 가장자리를 다듬는다. 이때 조각들은 납 테를 두를 여분 을 고려하여야 한다. 그리고 세부 디자인은 유리질 에나 멜로 유리 조각 위에 그려 넣고, 가마에 넣어 적당한 온 도로 가열하여 에나멜이 유리에 녹아 붙도록 한다. 그 후 작업 탁자 위에서 두 개의 긴 납 띠로 유리 조각을 서로 연결시킨 뒤 모아 붙여 전체 디자인을 구성하는데, 유리의 가장자리에 두르는 납 띠는 그 홈이 파인 단면이 H형 으로 되어 있다. 화면 · 장식 · 구조의 완전한 화합이 각기 단독으로는 이룰 수 없는 어떤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조화가 유리화 역사에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되었다. 14세기 초에 이르러 초창기에 불가능했던 2차 색깔, 즉 흐린 황색 · 이끼색 · 자주색의 일반화가 가능해졌고, 은염(銀鹽)으로 그린 노란색 색조 유리도 발명되었다. 유리 화가들은 유리질 에나멜들을 표시하여 반색조의 투명 매트를 붙이거나 강조하는 등 모델링하는 많은 기술 발전을 이룩했고, 특히 15세기에는 선의 사용도 숙달되 고 세련되어졌다. 또한 맑은 투명 유리를 녹은 색유리에 잠깐 담궈 얇은 색유리 막을 입힌 유리(flashed glass)라든 가 스테인의 두께와 열의 정도 또는 마연법에 따라 색상의 정도가 다르게 표현되기도 하였다. 이로써 유리화 디자인이 점차 납 띠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15세기 말경 유리질 에나멜의 새로운 사용법이 개발되었고, 16세기 중엽에는 유리 위에 에나멜 안료로 그리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다. 17세기 중엽 유럽 전역의 정치적 혼란으로 색유리가 귀해지자, 색유리 기법은 새로운 기법으로 바뀌었다. 16~20세기까지 유리화 제작 기술의 발 전은 순전히 실용적인 것이었다. 16세기에 다이아몬드 유리 칼이 발명되었고, 18세기에 에칭 입힌 유리 기법을 위해 플루오르화수소산이 사용되었다. 19~20세기에는 가스, 전기 가마, 납땜 인두(soldering iron)도 쓰였으며, 역시 20세기에 색질 두께가 다양한 커다란 유리판도 개 발되었다. 현대에는 1930년경 프랑스에서 납 띠를 대신 하여 콘크리트를 사용하거나 투명 합성 수지 접착제에 유리를 접착시키는 것과 같은 기술을 쓰며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게 되었다. 제작 순서와 특색 : 유리의 착색은 1,200~1,500도에서 녹아 있는 상태의 유리에 붉은색은 동, 푸른색은 코발 트, 자주색은 망간, 노란색은 안티몬, 녹색은 철과 같은 금속성 산화물을 첨가하여 제작된다. 유리화를 위한 판 유리 제작은 '유리 불기법' 으로 만들어졌는데, 유리의 제작은 녹인 유리를 긴 대롱의 끝에 풍선 모양으로 불어 만든 후에 그것의 끝을 잘라 통형을 만들다. 한쪽 끝에서 길이로 이 통형을 잘라서 펌으로써 판형을 만들고, 냉각 가마 내에서 천천히 식혀 완성시킨다. 이러한 공정을 통해 판유리가 만들어지면, 우선 유리화 작가의 기본 구도에 따라 작은 여러 개의 조각으로 나뉘게 되고, 이 각각 의 조각들은 금속성 산화물과 유리 가루, 색소 등이 들어 있는 일종의 유약을 사용하여 그림이 그려지기도 하여 색상이 보완되기도 한다. 아니면, 잘라 낸 색유리 조각들 을 납 띠로 모아 붙여서 전체 구도에 맞게 구성한다. 이 때 납 띠도 디자인의 한 부분 역할을 하며, 개개의 납 띠 를 두른 조각들을 모아 철틀에 끼워넣어 유리창을 만든다. 창을 통한 광선으로만 건축물의 밝기를 조절했던 중세 교회에서는 주변의 어둠과 대비시켜 붉고 푸른 비교적 간단한 색을 이용했고, 광선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기 위해 그리자유(grisaile, 유약의 일종)로 그림도 그려 넣었다. 즉 유리화라 함은 장식적인 색유리의 구성이 하나의 창을 통해 비춰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유리가 가질 수 있는 투과성의 아름다움을 좀 더 장식적이고 실용적 으로 적절히 이용하여 제작된 그림 유리창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고전적인 의미에서나 원래의 유리화가 가지고 있는 성격을 살펴보자면 단지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여러 색의 조합된 빛보다는 좀 더 장식적이면서 사람들 로 하여금 무엇인가에 대해 의미를 되살려 볼 수 있게 해 주는 하나의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유리화 색깔의 아름답고 기묘한 조화는 유리의 고유한 색상에 의한다기보다는 '유리 불기법' 과정 중에 들어가 는 기포들과 그것을 통과하는 빛의 속성에 따른 효과와 사람의 시각이 선택적으로 인지하는 광선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광선은 하루의 시간과 계절 · 날씨에 따라 계속 변화하여 빛의 효과에 의한 색조와 강도가 부드럽고 온화한 것에서 찬란하고 화려한 것으로 끊임없이 바뀐 다. 또한 시간뿐만 아니라 장소에 따라서도 느낌이 달라지는데 개개인이 취하는 시각의 자발적인 선택 과정도 각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주제 : 중세 교회 예술의 경우에는 교훈적인 내용을 주제로 하였기 때문에, 성서의 해설과 교회나 성인들을 영광스럽게 표현하였다. 창문이 커짐에 따라 유리화는 미적 표현의 수단이자 교리 전달 매체로도 이용되었다. 교회 건축에 쓰였던 중세 유리화의 도상학적 배치 계획 은 몇 가지 요인을 고려하여 정해졌다. 교회 건축의 십자형 평면은 그 자체가 4개의 중심 지역으로 구분되고 각 지역의 건축 형태나 태양의 방향에 따라 일정한 주제가 발달하였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샤르트르 주교좌 성당 에는 제단의 5개 중앙 채광 창과 북쪽 장미 창은 성모 마 리아, 남쪽 장미 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서쪽 장미 창은 최후의 심판을 주제로 제작되어 있다. 중세 후기에는 글로 쓴 드로잉(drawing)을 받아서 예비 스케치를 하 고 후견인의 승인을 받은 다음에, 실제 크기로 확대된 최종 도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또한 숙련공이 경영하는 유 리 공장은 고도의 조직화된 사업체로 여러 후견인이나 주문자에 따라 도안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 생산하였다. 14세기에는 양피지나 종이에 그려진 완성된 도안들 을 유리공들이 보존하는 것이 관습화되었다. 이 도안 그림들은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계승되어 오랫동안 사용하였다. 또한 최종 도안은 봉헌자가 성직자이거나 평민이 건 간에 주제와 표현 방법 선택에만 영향력을 미쳤을 뿐, 반드시 당대 최고의 예술 성향을 구현할 수 있는 예술 작가인 숙련 유리공만이 완성할 수 있었다. [현대의 유리화] 제작 : 유리와 납선 그리고 여러 종류의 유약으로 구성된 유리화의 제작과 완성 방법은 오늘 날에도 예전의 방법대로 이루어진다. 물론 중세 장인들 의 방식과 근대의 유리 공방에서 행해지는 방식에는 약 간의 기술적인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제작에 필요한 순서의 차이는 사실상 없으며, 완성 과정은 모두 일곱 가지의 순서에 의해 진행되어 진다. 즉 스케치 작업 과 하도, 색유리 선별 과정, 자르기, 그림, 구워 내기, 조립의 순서이다. 유리화를 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정으로 스케치를 들 수 있는데, 결정된 장소의 창문 크기 측정으로 시작하여 건 축 비율에 꼭 맞는 스케일의 하도를 알맞은 크기로 설정 하고 하도의 비율에 맞는 모형 인간과 색깔, 납 선의 구 성, 유리화를 지탱해 주는 뼈대 등 모든 주변 요소를 생 각한 후 구성을 시작한다. 두 번째 단계로 하도 작업을 한다. 먼저 제작에 필요한 비율로 크기를 확대하고 색이 나 부분적으로 들어갈 그림과 납 선의 구성도 정확히 나 누어 각각의 조각으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유리 조각에 해당되는 조각마다 번호를 표기하여 잊지 않도록 하고 유리화를 지탱해 주는 뼈대 역시 표시를 해 준다. 하도에 모든 것이 다 표기되면, 날이 세 개 달린 가위(납 선 중심 부분에 해당되는 폭을 계산해 줌)로 하도의 조각을 나누어 준다. 이때 납선이 조립되는 방향대로 절단한다. 이것이 유리를 자르기 위한 기본 준비 작업이다. 세 번째 과정으로 색유리 선별 과정을 들 수 있는데, 하도의 각각 에 해당하는 미리 계획된 색조에 따라 색유리 선별 작업을 시작한다. 유리 한 장의 색은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색이 일정할 수 없으며 기포의 분배나 유리의 두꺼운 정도 등 대체로 획일성이 없으므로 그림의 상황에 잘 맞추어 선별하도록 한다. 네 번째 과정은 자르기인데, 색 선별이 끝난 유리판을 하도의 조각에 맞는 색깔 부분을 하도 조각을 대고 다이아몬드 유리 칼로 자른다. 깨끗하게 마무리가 되지 않은 부분은 유리 펜치로 잘 정 리해 준다. 이때 정리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유리화의 크기 변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므로 정확히 정리해 준다. 다섯 번째로 그림 그리기 순서이다. 유리 위의 착색 작 업은 반드시 빛을 필요로 하고 수직으로 고정시켜 창을 향해 그리기도 하며 빛 테이블을 이용하여 작업하기도 한다. 14세까지는 불투명한 염료인 그리자유를 사용했 다. 14세기 이후로 발전하면서 여러 가지 풍부한 색깔의 유약이 등장하였다. 여섯 번째 과정으로 구워 내기를 하는데, 유리 위에 그려진 그림들을 완전히 유리 속에 착색 시키려면 가마에 구워 내야 한다. 이때 가마의 온도는 유 약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600~700도 정도로 조절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유약 속에 포함되어 있는 유리 가루가 조각 유리 속으로 녹아들어 완전히 유리 속에 합체된다. 마지막 과정으로 조립 과정을 들 수 있는데 구워 내는 과정이 끝나고 각각의 유리 조각이 식었을 때, 가마에서 꺼내어 평평한 책상 위에 하도의 번호 순서대 로 맞춰 놓고 납 선의 구성에 따라 조립을 시작한다. 조립이 모두 끝나면 용접 과정으로 이음새의 모든 부분을 납땜하고, 유리와 납 사이를 단단히 고정시켜 주는 일종 의 풀(Mastic)을 이용하여 약 1주일 정도 고정시킨 후 설치한다. 색유리의 종류 : 현재 사용되는 색유리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안틱 글라스(antique glass)는 전통 적인 방법인 입으로 불어 만든 판유리를 이용해 만든 것 이다. 이 색유리는 2~3.5mm 정도 두께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매우 투명하고 유리의 표면에 광채가 많다. 오팔센트 글라스(opalecent glass)는 대부분 불투명이거나 반투명 상태이다. 투사광이 아닌 반사광으로도 색감을 느낄 수 있어 전통 갓이나 인테리어 재료로 널리 쓰이며, 아르 누보 장식에 응용되어 왔다. 주로 2~3가지 이상의 색이 섞여서 자유로운 패턴을 구사한다. 머신 스트리키 (machine-streaky) 글라스는 오팔센트 글라스와 유사하고 반투명한 느낌을 준다. 디자인을 할 경우 안틱 글라스나 오팔센트 글라스와도 어울린다. 워터 글라스(water glass) 는 물의 흐름과 느낌이 비슷한 굴곡을 표현한 유리의 일 종이다. 크랙클 글라스(crackle glass)는 안틱 글라스의 일 종인데, 유리 형체를 만든 즉시 물에 담그면 급격한 온도 의 변화로 금이 간 선들이 형성된다. 이 유리가 서서히 식으면서 단단해지면 텍스처의 형태로 표면에 남게 된 다. 슬래브 글라스(slab glass)는 유리의 두께가 1인치인 두꺼운 유리 덩어리로 주로 에폭시나 시멘트 등이 함께 사용된다. [한국 교회의 유리화와 전망] 유리화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천주교를 통해서였다. 1898년 명동 성당에 프랑스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유리화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명동 성당에서 시작된 유리화는 대 중화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가톨릭 신자인 화가 이남 규가 유리화에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갖고 오스트리아 수 도원과 파리의 베네딕도 수도원 공방에서 3년여 동안 제 작 기법을 익히고 돌아왔다. 그에 의해 예술성을 띤 유리 화가 제작되어 성당에 설치하면서 한국 유리화의 장을 열었고, 다른 성당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특별한 현대 미술 성향과 전통 기법을 조화시킨 예로는 서울 중 림동 성당 · 혜화동 성당 · 역촌동 성당 · 인천 가좌동 성당 등이 있다. 특히 1982~1984년까지 명동 성당의 유 리화 복원 작업은 서양 수도자가 제작한 것을 한국의 예 술가가 새로운 시각에서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한국의 유리화는 상업적인 일상용품으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제작 과정이 번거롭고 비싸며 제작 기법의 정확한 지식이 없는 단점으로 인해 크게 확산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현대 건축물이나 교회, 또한 예술 공간의 부분 장 식으로 다시 사용되고 있는 추세이다. 유리화의 사용 범 위와 폭은 점점 넓어질 전망이다.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전통 종교 미술학과에서 이 분야의 전문인들이 양성 되고 있으며,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내에 있는 유리화 공방에서 성당에 설치될 작품이 구준히 제작되고 있다. 유리화는 현재 5,000~6,000여 색상의 각종 유리와 유 약을 통해 평면 회화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색에 이르기 까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전시 공간이 따로 필 요 없고 건축 공간 안에 새로운 공간 개념을 창조하여 실 내 환경 미술로서 중요한 미술 분야 중 하나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 스테인드 글라스 ; → 가톨릭 건축 ; 가톨릭 미술) ※ 참고문헌  R. Sowers, 《NCE》 13, pp. 628~638/ F. Perrot, Encyclopedia of the Middle Ages 2, ed. A. Vauchez . B. Dobson · M. Lapidge, James Clarke & Co. Ltd. 2000, p. 1379/ Peter and Linda Murray, The Oxford Companion to Christian Art and Architecture, Oxford Univ. Press, 1996, pp. 502~503. 〔張相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