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구 (1915~1987)

柳鳳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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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신부.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1915년 5월 15일 경기도 고양군 지도면 행주외리에서 태어나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6월 24일 명동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해 7월 명동 본당 보좌를 거쳐 충남 예산 본당 주임(1943. 12~1948. 9), 옹진 본 당 주임(1948. 9~1950. 5)을 역임하였고 1950년 5월에는 개성 본당 8대 주임으로 부임 하였지만, 부임한 지 1개월 만에 한국 전쟁이 일어나 월남하게 되었다. 유봉구 신부는 해군에 입대하여 1952년 7월 10일 대 위로 임관한 뒤 8월 10일부터 해병대 사령부 가톨릭 군종 업무를 맡아 미국 가톨릭 복지 협회(N.C.W.C.)의 협 조로 UN군 점령 지역과 백령도에 구호품을 보내는 등 구호 사업을 실시하였는데, 해군 본부로 전속되었다가 1957년 10월에 소령으로 전역하였다. 군종 신부로 재직하던 1956년 2월 《가톨릭 청년》 잡지 편집 책임자로 발 령받은 유봉구 신부는 그 해 8월에 《군종 신부 카폰》을, 같은 해 3월에 《그리스도의 일생》, 1958년 8월에 《가톨 릭 입문》을 번역 · 발간하였으며, 가톨릭 출판사의 편집 부장(1957~1958. 4)을 맡기도 하였다. 1958년 4월 일산 본당 주임(1958. 4~1960. 7)으로 부임하였고, 1960년에 벨기에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와 이듬해 12월 26일 한 국 군종 신부단 2대 단장에 임명되었다. 1962년 7월에 발안 본당 2대 주임으로, 1964년 7월에는 북수동 본당 8대 주임(1964. 7~1970. 7) 겸 소화초등학교 교장으로 부 임하였다. 유봉구 신부는 주일학교 교리 교육에 특히 관 심을 보였으며, 예비자를 위한 교리서 《신앙으로 가는 길》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1968년 11월에는 본당 주보 <주간 생활 안내>를 창간하였는데, 이 주보는 후에 수원 시 연합 주보로, 더 나아가 교구 주보로 발전하였다. 행 려자들을 위한 '안토니오 식당' 을 약 2년 동안 운영하였고, 또 이 시기에 성 라자로 마을의 6대 원장(1967. 7~ 1970. 12)을 겸임하기도 하였다. 1970년 7월 양지 본당 8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76년 약 1개월 간의 미국 방문 시기를 제외하고(1976년 4월 10대 주임으로 재부임) 1980년 4월까지 10년 간 재임하였다. 이어 1980년 4월 에 가톨릭의대 부속 성 빈센트병원 초대 원목으로 부임 하여 1987년 8월 2일 73세로 선종할 때까지 재임하였으며 유해는 미리내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수원교 구 평의회 평의원, 교리 연구위원회 지도 신부, 교구 참 사회 참사 위원, 교구 건축위원회 건축 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 참고문헌  이순용, 《韓國天主教會年史》, 1998/ 해군 본부 군종 감실, 《해군 군종사》, 해군교재창, 1976/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교 구 30년사》, 1993/ 천주교 수원교구 북수동 성당, 《北水洞聖堂七十 年史》, 1994. [金志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