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 본당

儒城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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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소속 본당. 대전시 유성구 봉명동 568-1 소 재. 1965년 11월 25일 목동(牧洞) 본당 소속 유성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관할 구역은 봉명동, 장대동, 구암동, 상대동, 학하동, 죽동 전 지역과 공주시 반포면 일부 지역. (교 세] 1971년 445명, 1982년 787명, 1986년 751명, 1991년 1,225명, 1995년 1,128명, 2000년 1,235명. [역대 신부] 임시 콤토이스(A. Comtois, 孔) 아우렐리에 (1965. 11~1967. 5), 초대 베젤리스(L. Vezelis, 朴) 루도비 코(1967. 5~1975. 5), 2대 강효식(姜孝植) 야고보(1975. 5~1976. 4), 3대 박상옥(朴商玉) 토마스(1976. 4~1980. 4), 4대 고영환(高永煥) 타데오(1980. 4~1982. 9), 5대 크랭캉 (J. Crinquand, 강진수) 요한(1982. 9~1985. 8), 6대 유성숙 (兪性淑) 루도비코(1985. 8~1988. 2), 7대 나기순(羅基淳) 루도비코(1988. 2~1993. 8), 8대 김영곤(金英坤) 안드레아 (1993. 8~1999. 1), 9대 조병기(趙炳起) 바오로(1999. 1~2000.2), 10대 김석태(金錫泰) 베드로(2000. 2~현재). 1937년 9월 대전에 진출한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목동 본당 옆에 수도원을 건립하고 활동을 전개하였다. 목동 본당은 한국 전쟁 당시 본당이 폐쇄되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으나, 1960년 무렵부터 다양한 교리 프로그램을 개 발한 결과 1959년 702명이던 신자수가 1965년 1,624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에 1965년 6월 목동 본당 12대 주임 베젤리스 신부는 본당 분할을 염두에 두고 유성 공소를 설립하였는데, 당시 유성 공소의 신자수는 30세대 90명이었다. 같은 해 10월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본당 설립을 위해 현 본당 소재지의 기와집 38평과 부지 809 평을 매입하였으며, 이어 11월 25일 유성 공소는 본당 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본당 설립을 위해 노력한 베젤리스 신부가 임명되었다. 하지만 공주 본당 12대 주임으로 사목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젤리스 신부는 즉시 부임하지 못하였고, 임시 주임으로 콤토이스 신부가 부임하였다. 1967년 5월 본당에 부임한 초대 주임 베젤리스 신부는 미리 마련한 기와집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다양한 단체를 구성하는 등 본당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3대 주임 박상옥 신부는 1977년 7월 37.9평 규모의 사제관을 신축하였고, 1979년 10월에는 246.8평의 성 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때 인보 성체 수도회의 분원이 마련되었다. 6대 주임 유성숙 신부는 1986년 8월 대덕 연구 단지가 조성되면서 신자수가 증 가하자 본당 관할의 3개 구역을 이관하여 도룡동(道龍 洞) 본당을 분가시켰으며, 7대 주임으로 부임한 나기순 신부는 1988년 9월 성당 시설 개 · 보수 공사와 사제관 증축(12.67평) 공사를 실시하였다. 1993년 8월 관할 구역 조정으로 궁동, 어은동, 죽동의 교적이 궁동 본당으 로 이관되었으며, 9대 주임 조병기 신부는 1999년 6월 만남의 집을 증축하였다.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석태 신부는 2001년 2월 전 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매월 1회 2년 과정의 신앙 학교를 개설하였고, 3월에는 본당 부설 유성 소화노인대학을 개설하였다. 또한 이듬해 2월 620 세대 1,200명의 교적을 이관하여 노은 본당을 분리하였 으며, 본당 신자들의 기초 신앙을 다지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 대전교구 ; 목동 성당) ※ 참고문헌  천주교 대전교구 편, 《대전교구 30년》, 대전교구 홍 보국, 1988.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