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체칠리아.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의 후처(後妻). 성인 정하상(丁夏祥, 바오로)과 성녀 정정혜의 모친. 20세 때 상처(喪妻)한 정약종과 결혼한 뒤 남편으로부터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고,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에게서 세례성사를 받았 으며, 처음 가졌던 열심을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보존하였다. 올바른 수계 생활을 위해 남편과 함께 양근 분원 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정하상과 정정혜를 낳았으며, 1800년에 살고 있던 양근(楊根) 지방에 박해가 일어나 자 남편을 따라 서울로 이주했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전 가족이 함 께 체포되고 말았다. 이 가운데 남편과 전처 아들 정철상 (丁哲祥, 가롤로)은 순교하였고, 나머지 가족들은 오랫 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석방되었다. 하지만 가산을 모두 몰수당하여 가지고 있는 재산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녀의 가족들은 갈 곳이 없었다. 다행히 양근 마재[馬峴] 에 사는 시동생 정약용(丁若鏞, 요한)의 집에서 받아 주 었으므로 그녀의 가족들은 그곳으로 가서 살았다. 그러나 집안 사람들의 심한 박해와 궁핍으로 인해 그녀의 가족들은 많은 고통을 겪었다. 맏딸이 얼마 가지 않아 죽었고, 정철상의 아내와 아들도 죽었다. 겨우 정하상 · 정정 혜 남매만을 길러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 녀는 정하상 · 정정혜 남매에게 몰래 구전으로 교리 교육 을 시키는 것을 잠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유 세실리아가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남편이 나타나 "나는 천국에 방이 여덟 개 있는 집을 지었소. 그중 다섯은 찼는데 나머지 세 방은 아직 빈 채로 있소. 비참한 생 활을 잘 참아 견디고 무엇보다도 우리 있는 데로 오는 것 을 잊지 마시오"라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이 꿈은 그녀 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유 세실리아는 아들 정 하상이 선교사들을 조선에 잠입시키기 위하여 북경으로 길을 떠날 때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으나 매번 잘 견더 냈다. 정하 상이 신부와 주교의 복사 일을 보게 되자, 그녀는 그를 따라다니며 신심 생활에 몰두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났을 때, 조카 한 사람이 찾아와 시골로 피신하라고 권하였으나 "나는 항 상 순교하기를 원했으니 내 아들 바오로와 함께 순교하 고 싶네" 라고 말하며 그녀는 거절하였다. 결국 7월 19일 체포되어 노령(老齡)임에도 신문을 받는 동안 고문을 당했으며, 곤장 230대를 맞았다. 노인들은 법으로 참수를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4개월 동안 옥에서 신음하다가 11 월 23일 예수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 79세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 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기해박 해 ; 정정혜 ; 정하상) ※ 참고문헌 《기해일기》《달레 교회사》 中, pp. 498~500/ 차기진, <정약종의 교회 활동과 신앙>, 《교회사 연구》 15집, 2000/ 윤민구, <정하상 성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연구>, 《한국 그리스도 사상》 1, 1993. [孫淑景]
유 세실리아 (1761~1839)
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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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