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나와 치프리아노 Justina et Cypria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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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 4세기 초의 순교자들. 축일은 9월 26일. [전설 및 순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치프리아 노는 본래 안티오키아에서 살던 이교도로서 잡귀신들을 불러 마술을 부리는 마법사였다고 한다. 그는 잡귀신들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교 신자인 동정녀 유스티나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유스티나는 십자가의 표지로 마귀들의 공격을 막아 내었다. 이에 굴복한 치프리아노는 십자가를 자신의 표지로 삼으며, 옛 행실을 버리고 새로운 사 람이 되었다. 그는 신자가 되었으며, 많은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받았다. 그리고 주교가 되었으며, 유스티 나는 수녀원장이 되었다. 이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가 일으킨 박 해 중에 체포되어 다마스커스로 압송되었는데, 그곳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고문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신앙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들은 황제 앞으로 끌려 나가 재판을 받았으며, 니코메디아(Nicomedia)의 갈루스(Gallus) 강 언덕에서 황제의 명으로 참수형을 당하였다. 그리고 이때 치프리아노를 찾아와 위로하였던 테옥티스토 (Theoctistus)라는 신자도 함께 처형을 당하였다. 이들의 시신은 매장되지 않고 방치된 채로 있었지만, 6일 후 신 자인 선원들이 발견하여 로마로 옮겨 갔다고 한다. 이들 의 유해는 루피나(Rufina)라는 귀족 부인의 영지에 매장 되었다가, 후에 콘스탄틴 성당 안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성인전의 진정성] 두 성인에 대해 전해 오는 이야기는 거의 전설이나 우화에 가깝다. 이 이야기는 묘사와 대화 가 뒤섞인 형태로 《시메온이 전하는 이야기》(Symeon Metaphrastes) 안에 수록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 수록된 내용은 사실성이 떨어진다. 후에 에우도키아 2세(Eudocia Ⅱ)가 이 순교 이야기를 주제로 시를 지었으며,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Gregorius Nazianzenus, 329/330~389/390)와 프루텐시오(Prudentius)도 두 성인을 언급하였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이 두 성인의 순교가 4세기 무렵에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분 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와 프루덴시오는 이 치프리아노를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 아노(+258?)로 혼동하였다. 이러한 혼동은 그 후에도 이어졌다.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의혹은 안티오키아에는 치프리아노라는 이름의 주교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칼데론(Calderon)이라는 희곡 작가는 치프리아노 순교 이야기를 토대로 《놀라운 마술사》(EI magico prodigioso)라는 희곡을 썼다. 그리고 이 성인들의 순교 이야기는 《성인 전》(Acta SS. 9. Ⅲ)에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최근 이 이야기의 고대 시리아어와 에티오피 아어 판본이 출간되었다. ※ 참고문헌  G. Bardy, 《Cath》 Ⅲ , p. 3971 R. Gazeau, O.S.B., 《Cath》 Ⅵ , pp. 1331~1332/ 《ODCC》, pp. 441~442/ Les Bénédictins de Ramsgate réd., Dix Mille Saints Dictionnaire hagiographique, Brepols, Belgique, 1991, p. 134/ Donald Attwater, The Penguin Dictionary of Saints, Great Britain, 1983, p. 971 David Hugh Farmer, The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Univ. Press, 1987, p. 108. 〔宋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