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난

救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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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迫害)와 혼용되어 쓰이는 용어. 1944년 일본인 학자 우라가와(浦川和三郎)가 《조선 순교사》(朝鮮殉教 史)를 저술하면서 처음 사용하였으며, 이후 우리 나라의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도 사용되었다. 이들은 그 어의가 '종교상의 박해나 어려움' 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이해하 기 쉽다는 점, 호교적 입장에서의 '박해' 또는 조선의 정 치사 · 형벌사의 입장에서 말하는 '사옥' (邪獄)이라는 용어보다 객관적 입장에 서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한편 교난은 순수한 박해보다는 1901년 제주도의 신축교난 (辛丑敎難)처럼 정치 · 사회적 요인이 혼합된 사건에 더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현재 사용되는 박해에 이와 같은 의미가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니며, 그것이 가해와 피해의 두 측면으로 해석된다는 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용한 고유 용어일 뿐만 아니라 교과서적 인 용어로 정착되었다는 점에서 굳이 혼용할 필요는 없 다. (⇨ 박해)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