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중성 (?~1802)

柳重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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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마태오.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의 형 유익검(柳益儉)의 아들로 전주 초남리에서 태어났다. 강주 도령이라고도 불리던 그는 세 살 무렵인 1786년에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인 유항검 밑에서 자랐으며, 숙부에게 마태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숙부의 신앙 교육으로 신심이 독실하였으며, 초남리에서 나고 자랐지만 자주 서울에서 지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유씨 일가들과 함께 체포되어 신문을 받았으나 "서교는 곧 집안에서 전 해 오던 학문이고, 두 숙부가 영예롭게 죽었으므로 오직 함께 따라 죽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하며 신앙을 굳게 지켰기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옥에서 형장(刑場) 으로 가는 동안에도 그는 매우 열렬히 백성들에게 설교 하였다. 그는 사촌 형수 이순이(李順伊, 루갈다), , 숙모 이육희(李六喜) · 신희(申喜)와 함께 전주 감영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뒤 1802년 1월 31일 전주 숲정이에서 기쁘고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때의 나이가 15세나 18세였으며 아직 미혼이었다.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上, pp. 554~555/ 조광 역주, 《사학징 의》 1,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 2001, p. 248K純祖實錄》 1년 12월 22 일/김진소, 《천주교 전주교구사》 1, 천주교 전주교구, 1998, p. 206.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