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동 본당
柳川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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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대전교구 소속 본당. 대전시 중구 유천2동 183-3 소 재. 1972년 12월 9일 대흥동(大興洞) 본당과 목동(牧 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바오로. 관할 구역은 유천1 · 2동 전 지역과 문화1 · 2동, 산성 동, 태평2동 일부 지역. [교 세] 1973년 1,450명, 1977 년 2,187명, 1981년 2,048명, 1985년 2,433명, 1990 년 3,466명, 1995년 2,634명, 2000년 2,896명. [역대 신부] 초대 백남익(白南翼) 디오니시오(1972. 12~1975. 8), 2대 조성옥(趙成玉) 요한(1975. 8~1980. 8), 3대 김동 억(金東億) 바오로(1980. 8~1985. , 4대 김종국(金鍾國) 바르나바(1985. 3~1990. 8), 5대 구자오(具滋五) 베네딕도 (1990. 8~1995. 2), 6대 변갑철(邊甲喆) 바오로(1995. 2~1999. 1) , 7대 윤인용(尹仁龍) 바오로(1999. 1~현재). 대흥동 본당은 1964년 5,567명에서 1965년 6,796 명으로 신자수가 계속 증가하였으나, 관할 구역은 1958 년에 확정된 그대로였다. 이에 대흥동 본당은 본당 분할을 논의하기 시작하여 1966년에 성남동 · 문창동 본당 을, 1971년에 신탄진 · 정동(현 삼성동) 본당을 분리하였다. 이어 1972년 2월 대전교구 참사회는 대전 서부 지 역에도 본당을 설립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대흥동 본당과 목동 본당으로부터 500명의 신자를 이관받아 새 본당을 설립할 계획을 세운 다음, 같은 해 12월 유천동 본당을 신설하였다. 동시에 초대 주임으로 백남익 신부가 임명되었으나 백 신부는 해외 교포 사목 관계로 유럽에 주재하고 있었으므로 본당에 부임하지는 못하였다. 이에 본당은 한동안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신자 들은 모(母) 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는데, 공군 군종 윤여홍(尹汝鴻, 바오로) 신부가 본당 옆 군종 사제관에 상주하면서 미리 확보된 현 본당 소재지의 부지 420평 에서 공사를 시작하여 1973년 9월 30일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성당(173.9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함 으로써 본당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같은 날 교구에서는 윤여홍 신부를 임시 주임으로 임명하였고, 유천동 본당 의 관할 구역을 확정하면서 본당의 업무가 시작되었음을 발표했다. 이어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조성옥 신부는 본 격적으로 본당 운영 기구들을 조직하였고, 1976년 4월 에는 정원 공사를 하였으며, 이듬해 4월에는 성모상을 건립하였다. 이와 함께 1979년 12월에 성당 옆 대지에 114평 규모의 유치원 건물을 신축하였고 이듬해 3월에 는 '성심유치원' 을 개원하였다. 3대 주임 김동억 신부는 성당 뒤 가옥을 구입한 뒤 1981년 11월에 수녀원으로 개조하여 이듬해 2월 영원 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였고, 4대 주임 김 종국 신부는 1985년 5월 사제관을 확장 · 개조하였으며, 1988년 12월에는 본당 15년사를 발간하였다. 5대 주임 구자오 신부는 1990년 12월 사목회와의 협의를 거쳐 가 옥(74평)을 매입하여 1992년 9월 보좌 신부 사제관 및 회합실로 개조하였다. 6대 주임으로 부임한 변갑철 신부는 1997년 본당 설립 25주년을 맞이하여 낡은 성당 건물을 신축하고자 하였으나 IMIF 사태로 계획을 연기하였다. 국가적인 경제난으로 인해 7대 주임 윤인용 신부는 성당 리모델링으로 계획을 수정하여 1999년 8월에 성당 외벽 공사, 11월에 성당 내부 시설 공사를 마쳤다. 또한 2000년 4월에는 수녀원 가옥 및 사랑방을 철거하고 대 강당 및 사제관, 수녀원으로 사용될 다목적 건물 공사를 시작하여 7월에 완공하였다. 분리된 자(子) 본당으로는 1979년 진잠 본당, 1985년 태평동 본당, 1980년 도마 동 · 대사동 본당, 1992년 산성동 본당 등이 있다. (→ 대전교구 ; 대흥동 본당 ; 목동 본당) ※ 참고문헌 천주교 대전교구 편, 《대전교구 30년》, 대전교구 홍 보국, 1988.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