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誘惑
[라]tentatio · [영]temp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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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악을 바치도록 한 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시험이었다.
남을 꾀어서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것, 또는 그릇된 길 로 꾀는 것. I . 성서에서의 유혹 우리 말에서 유혹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공동 번역 성서에서는 유혹이라는 용어 외에도 '시험' · '시련' · '떠보다' 등 다양하게 옮겨진 데서 드러나듯이 이 말의 뜻은 훨씬 광범위하다. 본래 이 말은 무엇인가를 선택하도록 도전받는 상태를 의미하며, 그럼으로써 드러나 있지 않던 그 존재의 본질이나 관계의 본바탕을 드러 낸다는 의미를 갖는다. 성서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시 험 또는 유혹은 인간 실존 조건의 하나이며, 하느님과 특별한 계약 관계에 있는 인간 또는 그분의 백성과의 관계 에서 계속 조명되는 주요 주제이다. [구약성서에서의 의미] 구약성서에는 시험 또는 유혹에 관한 이야기가 적않게 다뤄지고 있다. 그 이야기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하느님이 시험하는 경우와 사람들이 하느님을 시험하는 경우이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히브 리어 명사는 "마싸" (מַסָּח)인데, 어떤 것의 품질을 '시험 하다, 증명하다, 검사하다' 는 뜻을 지닌 동사 "나사" (נָשָׂא)에서 유래되었다. 동사 "바한" (בָּהָן)은 본래 '(광석 의 순도를 알아보려고) 분석한다' 는 뜻으로 사용되었는 데, 성서에서는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시험하는 경우에만 사용된다. '제련하다' 는 의미를 지닌 "차랍" (חָרַב)도 하느님이 주체가 되어 시험할 때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하느님의 시험 : 시험이나 유혹이란 단어가 직접 언급 되지 않지만 창세기의 첫머리에 나오는 에덴 동산 이야 기(창세 2, 4ㄴ-3, 24)에서부터 이 주제가 부각된다. 동 산 한가운데 세워진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창조주 하느님께 기꺼이 의지할 것인가를 시험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 대신 자신들이 하느님 처럼 될 수 있다는 또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 그들에게 죽음이 초래된다. 비로소 시험과 선택 사이에 유혹의 요소가 개입되고 그 위험성이 폭로된다. 이와 다른 전형적인 예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시험이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한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고 아들 이사악을 주었는데, 그 아들을 당신께 바치라고 이른다. 이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창세 22, 1) 하신 일이다. 아브라함이 이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는 축복과 약속을 거듭 받게 된다(창세 22, 2-18 ; 집회 44, 20 ; 1마카 2, 52). 이로써 사람들이 참으로 믿 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믿음의 본질을 드러내도 록 하느님께서 시험하실 때, 하느님께 순종하는 이에게 내리는 풍성한 축복과 생명이 예시된다. 후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태어났던 고통스러운 광야 여정도 당신 백성이 잘 되도록 하느님이 시험한 과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너를 낮추시고, 네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의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를 시험하신 것이 다" (신명 8, 2. 16-17 ; 13, 4 ; 33, 8 ; 출애 16, 4 ; 20, 20). 또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주변 민족들을 통해서도 당신 백성을 시험하며 가르쳤다고 고백한다. "이는 이스 라엘이 저희 조상들처럼 주님의 길을 명심하여 따라 걷는지 따라 걷지 않는지, 그 민족들을 통하여 시험하시려는 것이었다" (판관 2, 22 ; 참조 : 3, 1. 4 ; 6, 39 ; 2역대 32, 31). 유혹은 화를 자초한다는 전통적인 지혜 사상(잠언 28, 10) 외에, 구약 시대 말기에는 시험과 시련이 신앙인을 단련시키는 교육의 도구라는 통찰이 적극 개진된다. "그 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시험하시고 번제물 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지혜 3, 6 ; 참조 : 지혜 11, 9 ; 집회 2, 1-6 ; 4, 17 ; 33, 1 ; 시편 26, 2 ; 66, 10 ; 이사 1, 25 ; 49, 10 ; 즈가 13, 9). 아울러 이스라엘 민족이 겪은 고통스러운 역사도 "당신께 가까운 이들을 깨우쳐 주시 려고 채찍질"로 가르쳐 주신 하느님의 시험으로 받아들인다(유딧 8, 25-27). 이와 같이 하느님의 시험은, 종종 고통이나 역경을 동반하지만, 궁극적으로 신앙인들에게 취약한 부분을 일러 주고 단련 · 정화시킨다. 또한, 그들의 믿음을 성장시켜 더 큰 축복과 생명을 주시기 위해 행해진다는 긍정적인 목적을 지닌다. 그러나 구약 시대 후기에 와서 하느님이 허용한 한계 내에서 여건을 조절하여 하느님의 백성을 시험하는 주체로 새롭게 '사탄' 이 등장한다(읍 1, 12 : 2, 6). 사탄은 의인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유혹하는데, 욥은 하느님이 주시는 시련을 피할 수 없으며(욥 7, 18-21) 창조 세계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을 인간이 시험할 수 없음을 깨닫고 승복함으로써 유혹을 극복한다(욥42, 1-6). 하느님에 대한 사람들의 시험 :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 님이 과연 자신들을 구원할 의지와 권능이 있는지 알아 보려고 하느님을 시험한다. 두드러진 예가 출애급의 광야 여정에 나오는 불평 기사들이다. 그들은 하느님이 자 신들에게 필요한 물과 양식을 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며 하느님의 권능과 선의를 시험한다(출애 15, 25 ; 16, 4 ; 20, 20 ; 시편 78, 18. 41. 56 ; 106, 14). 이렇게 하느님을 시험한 이들은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처벌 을 받는다(민수 14, 22). 이런 그들의 그릇된 시험을 계속 상기시키는 대표적인 기념물이 "마싸" (מַסָּע)라는 지명이 다(출애 17, 2). 이 지명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그들을 이 끄는 주님께 대한 믿음의 부족과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 실 때를 기다리지 못한 잘못을 기억하면서 현재의 자신을 성찰하도록 권유한다. "오늘 너희는 그의 말씀을 듣 게 되리니, 므리바에서 그 날 마싸 광야에서의 너희 선조들처럼,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굳히지 마라, 그들은 거 기에서 내가 하는 일을 보고서도 나의 속을 떠보고 나를 시험하였다"(시편 95, 7-9). 그래서 하느님의 백성은 "마 싸에서처럼 너희 하느님 야훼를 시험하지 못한다" (신명 6, 16 ; 집회 18, 23)고 율법으로 금지되지만, 그런 시도 는 사라지지 않았다(말라 3, 15 : 참조 : 이사 7, 12). [신약성서에서의 의미] 고전 그리스어에서 '시도하 다' 또는 '시험하다, 검사하다' 는 뜻으로 널리 쓰인 동사 "페이라오"(πειράω)에는 악으로 유인한다는 뜻이 거의 없었다. 신약성서에서 '시험', '시도' 외에 악으로 이끄 는 '유혹' 까지 내포하는 단어로 가장 많이 쓰인 동사 "페 이라조" (πειράζω)와 명사 "페이라스모스" (πειρασμός)는 주로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약성서에서는 구약성 서보다 시험의 부정적 측면인 유혹이 부각되며, 유혹과 죄에 빠질 위험성이 강조된다. 또 하느님이 유혹자로 직 접 등장하지 않고, 사탄 또는 악마가 유혹하는 자로 폭로 된다(마태 4, 3 : 1고린 7, 5 : 1데살 3, 5 ; 묵시 2, 10). 하느님의 사람에 대한 시험 : 복음서마다 자세한 표현은 다르지만, 예수는 공생활을 시작하는 첫머리에 광야에서 사탄 또는 악마에게 유혹을 받는다(마르 1, 12-13 ; 마태 4, 1-11 ; 루가 4, 1-13). 이 사건은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지기에 본질적으로 하느님 계획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시험당하는 예수의 모습 배후에는 똑같이 시험당했지만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 그리고 하느님의 백 성인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겪은 시련과 실패가 아로새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받은 시험의 내용과 받은 장소는 복음서마다 다르지만, 실제로는 그분의 세례 때 드러난 하느님의 아 들이라는 정체성에 충실하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명을 수행할 것인가가 그 시험의 관건이다.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정을 성찰한 신명기 구절(8, 3 ; 6, 13. 16)을 인용하면서 사탄의 광야 시험을 극복한다. 그 이후 예수는 복음을 선포하면서 하느님의 권능으로 사탄의 세력을 꺾어 버리지만,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시험을 받는다. 공생활 내내 적대자들은 예수에게 권위의 근거를 입증할 표징을 보여 달라고 도전하고(마르 8, 11-13 ; 루가 11, 16-17 ; 마태 12, 38-40 ; 16, 1. 4), 예수의 말씀을 트집잡아 올가미를 씌우려 하거나 그의 가르침을, 예를 들어 이 혼(마태 19, 3-12 ; 마르 10, 2-12), 세금 납부(마르 12, 1417 ; 루가 20, 20-26), 율법 사항(마태 22, 35 ; 루가 10, 25 ; 요한 8, 1-12) 등을 시험하였다. 사탄은 "(다음) 기회까 지 그분에게서 떠나 있었다"(루가 4, 13). 예수는 제자를 시험한 경우도 있지만(요한 6, 6) 마지막 때에 당신도 온갖 시련(시험)을 겪었노라고 밝힌다(루가 22, 28). 특히 게쎄마니 동산에서 유혹을 받을 때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시오"(마르 14, 38 ; 마태 26, 41 ; 루가 22, 46)라고 거듭 당부한다. 예수가 시험을 받은 것처럼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도 종말 때까지 숱한 시험에 직면한다. 그들은 유혹자인 사탄에게(1베드 5, 8)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2고린 2. 11). 또 자기 욕심이 유혹의 한 원인일 수 있으므로(야고 1, 13-14 ; 참조 : 1디모 6, 9), 늘 자신을 살피며 유혹에 대처할 것이 요구된다(갈라 6, 1 ; 1고린 7, 5).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하여" 환난이 닥쳐 오고(묵시 3, 10) 그 "유혹의 때가 오면" (루가 8, 13 : 참조 : 마태 13, 21 : 마르 4, 17) 믿음을 잃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며 기도해야 한다(마태 6, 13 : 루가 11, 4 : 에 페 6, 18). 그리스도인들은 유혹이나 시련을 당할 때 "죄 외에는 모든 일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던"(히브 4, 15) 주님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그들이 시련 중에 기 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길이기 때문이며(야고 1, 2 : 1베드 1, 6 : 4, 12), 하느님은 "여러 분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여러분이 시련을 당하 도록 묵인하지 않으실 것이며, 오히려 시련과 함께 그것을 견디어 낼 방도도 마련해 주실 것" (1고린 10, 13 ; 참조 : 2베드 2, 9 : 묵시 3, 10)이다. 이는 "그분은 친히 시험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시험을 받는 사람들을 도와 주실 수 있다"(히브 2, 18 ; 참조 : 4, 15)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까지 시험과 시련을 견디어 낸 이들은 상급을 받게 된다(루가 22, 28 ; 야고 1, 12 ; 묵시 2. 10). 하느님을 시험하는 사람 : 사도 행전에서 아나니아와 삽피라는 자기들의 땅을 판 돈의 일부를 빼돌려서 공동체를 속인 것이 "주의 영을 시험하는" 잘못으로 드러나서 죽는다(사도 5, 9).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 사도회의 에서 이방계 그리스도인에게 율법을 강요하는 것이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사도 15, 10). 그래 서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말라" 고 고린토의 그 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한다(1고린 10, 9). 또 히브리서의 저자는 시편(95, 8-9)을 인용하여 하느님을 시험 삼아 떠 보지 말 것을 거듭 호소한다(히브 3, 8-9).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은 언제나 신앙의 부족을 의미하기에 처벌받기 때문이다(1고린 10, 9). [교회 전통에서의 유혹] 교회에서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게 하고 의식적으로 하느님을 거부하게 이끄는 요인이나 그런 존재를 가리키는 유혹의 문제를 원죄 또는 죄의 문제와 연결하여 주로 다루었다. 전 통적으로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근본 요인으로 세 가지를 꼽아 왔다. 첫째는 유혹의 주동자로 본 사탄으로, 실재하 는 악의 세력을 가리킨다. 둘째는 악으로 이끄는 세상의 환경이나 조건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 사회 구조와 가치 체계, 이념 관습 등 사회 환경에 깃든 구조악이 유혹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사목 25항). 앞의 두 가지가 외 적 유혹자라면 셋째는 내적 유혹자라 할 수 있는 육신으 로, 인간 개인이 가지고 있는 한계성과 무질서한 욕망을 말한다. 욕망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결핍 된 것을 채우면 더 완전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는 자극을 받아 욕망이 무질서해지면, 정해진 한계를 넘어 유혹의 대상을 가지고 싶어지며 심지어 그것을 좋은 것 으로 여길 수 있다. 유혹 자체는 죄가 아니다. 다만 유혹 속에 선한 것처럼 보이는 악을 의식적으로 선택하였을 때, 그것은 죄가 된다. 또 그렇게 유혹에 대응하는 방식은 앞으로 부딪칠 유 혹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교회 는 유혹의 첫 단계부터 저항하고 그것이 일어날 것 같은 기회와 상황을 피하도록 가르친다. 나아가 유혹의 올가 미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고 부지런하게 수행하면서 하느님과 머무는 생활을 하도록 권장해 왔다. 나아가 유혹에 빠져 죄를 지은 경우에도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통해 구원될 수있 는 길을 성사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에서 보듯, 시험 또는 유혹은 유한한 인간이 하느님을 찾아 그분의 길을 걸으면서 필연적으로 계 속 체험하게 되는 삶의 기본 조건이다. 따라서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죄의 유혹에 유의하는 동시에, 더 넓은 맥락에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을 위 하여 시험하신다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시련 속에서 그 동안 깨닫지 못했던 인간의 한계와 하느님께 대한 깊은 의존을 알게 되며, 은총에 열 린 자세로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받고 성숙하게 된다. ※ 참고문헌 《TDNT》 6, PP. 23~26/ C. Syuhlmueller, ed., The Collegevile Pastoral Dictionary of Biblical Theology, The Liturgical Press, 1998, pp. 984~990/ B. Gerhardson, The Testing ofGod's Son(Matt 4 1-11 and par), 《ConBNT》 2-1, 1968/ L.P. Pokorny, The Temptation Stories and Their Intention, 《NTS》 20-2(Jan., 1974), pp. 115~127/ J. Leclercq, Pastoral Treatment ofSin, ed. by Ph. Delhaye, Tournai, Declee, 1968/ X. 레옹-뒤푸 르 편,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84/ K.H. 페 쉬케, 김창훈 역, 《그리스도교 윤리학》 1권, 분도출판사, 1991, pp. 404~413/ 최창무, 《윤리 신학 1》,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89, pp. 102~106. 〔李鎔結〕 Ⅱ. 윤리 신학에서의 유혹 [개 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는 원조(元祖)들이 받은 유혹에 대해 언급하였다. 원조들은 유혹에서 인간이 지닌 지성(知性)과 감성(感性)의 본성 이 모두 시험에 직면하였다. 원조들은 지성적으로는 하느님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고, 감성적으로는 성서에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지선악수(知善惡樹) 실과(實果)의 모습, 뱀의 달콤한 속삭임, 하와의 동의와 과감한 행동 등 주변 환경에 매혹되어 유혹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였다. 유혹은 악을 행하도록 인간을 자극하고 충동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인간은 여러 가지 유혹을 받을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갖고 살고 있지만, 그 결과 는 선과 악 두 가지로 나오기에 단정적으로 유혹의 방향 과 효과를 예측할 수는 없다. 따라서 유혹 자체는 가치 중립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렇게 유혹은 선과 악에 대한 분명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최종적 동의를 보류하여 주저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유혹의 대상이 악한 것이 라면 동의가 성립되는 순간에 죄를 범하게 된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유혹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으로 체 험하는 과정이며 현상이다. 개인이 추구하는 행복의 실현은 항구한 선택을 필요로 하기에, 다른 선들을 포기하 는 자세와 태도가 요청된다. 한 직장에 성실하기 위해서는 다른 직장들을 포기해야 하며, 결혼한 사람은 한 배우자에게 충실해야만 결혼과 가정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 성직자와 수도자는 결혼과 가정을 소유하려는 욕망과 행 복을 포기해야만 본연의 직무에 충실할 수 있고 완덕(完 德)으로 나갈 수 있다. 인간에게는 자기가 소유하지 못 한 것을 충족시킴으로써 행복에 이르게 된다는 오류적 판단에 빠져 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생각은 금지된 선에 대한 유혹에 가담하고 동의하게 되는 원인이다. 인간 의 욕망은 무한하기에 현재 염원하고 있는 부족한 것을 충족시켰다고 하여 결코 완전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유혹을 물리침] 신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유혹은 오직 은총의 도움으로 극복되며, 이 은총은 다양한 환경적 요 인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모든 유혹의 경우에 부여된다. 유혹을 멀리하고 물리치는 전통적인 방법은 기도와 고행이다. 기도는 유혹에 빠져 들지 않고 경계하는 최선의 길이다. 믿음 · 희망 사랑 · 정결 · 겸손 등을 거스르는 유혹을 당할 때 기도 생활을 멀리하고 있다면 영 적 성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기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유혹을 방치할 뿐만 아니라, 유혹이 확산되는 바 탕과 근거가 된다. 고행은 오늘날 불필요한 덕목이라는 오해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육체적 감각과 쾌락 의 노예가 되지 않고 정신적이고 영성적 가치 정립을 위해 여전히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다만 육신을 죄악시하여 과거에 실행되었던 육체적 편태(鞭笞), 가학적인 고 통의 수용, 무의미한 육신의 학대, 육신의 영양 공급을 차단하는 단식과 기본적인 육체적 운동의 거부 등은 수용되지 말아야 하고, 방법적으로 고행은 건실한 것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오늘날에는 그러한 비인간적인 측면을 탈피하여 건전한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신체 단련, 건강 요법, 스포츠 등을 고행의 방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육체 단련과 훈련을 위해서도 피눈물 나 는 각고의 노고와 정성 · 수고가 따르며, 이는 신앙인으 로서 건강하게 살수 있는 생활의 활기를 넣어 주는 역할 을 한다. 허약하고 병약한 육체적 조건을 갖고 있으면 이 웃에게 부담과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 지향 적인 영성적 성숙을 도모할 수 없다. 그 밖에도 자제와 각성(覺醒) 등이 유혹을 막는 방법으로 제시될 수 있으며, 모든 방법은 끊임없는 영적 투쟁을 전제하고 있다. 또한 유혹을 퇴치하기 위해 근면한 생활 자세가 요구된다. 건설적으로 하느님과 인간 공동체에 봉사하는 것 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해야 하는 인간의 근본 사 명이기 때문이다. 근면을 통해 태만과 잡념을 물리칠 수 있으며, 큰 보람과 기쁨으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 불건전한 의식을 갖고 있는 형제들과 사귀고 사회에 대한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사는 것 자체가 유혹의 원인이다. 인간은 하느님을 유혹하는 잘 못을 범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을 시험하는 일이다. 시험은 일반적으로 다른 이의 지식 · 능력 · 의지를 떠보 는 것인데,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일에 게으름을 부리면 서 하느님의 도우심만 바란다면 이는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이는 죄이며 불확실한 신앙심에서 나온다. 이는 동시에 하느님께 대한 불경(不敬)이며 경신덕(敬神德) 을 거스르는 죄이다. 인간이 모든 유혹의 기회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인간의 영육을 해롭게 하는 죄의 기회를 피하는 것은 유혹에 빠지지 않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권장해야 할 사항이다. 가장(家長)은 배우자와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간통이나 도박, 공금 횡령과 뇌물 수수, 범죄 조직 을 주도하거나 협력함, 직무 유기로 타인의 생명과 재산 에 손해를 끼침, 무질서한 경제적 · 사회적 · 성적(性的) 욕망 등의 유혹을 피해야 한다. 정상적이고 건전한 취미 와 오락, 봉사적인 일에 전념하는 것은 유혹을 피하는 유익한 방법이다. 인간은 자기가 맡은 직무와 현실적 환경과 조건을 고려하여 선한 지향과 소망을 계속적으로 고양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인간은 자신이 맡고 있는 소 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 직무에 성실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포기할 수 없는 사명이며, 사회 를 건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기틀이다. [예수가 받은 유혹과 유혹의 출처] 예수는 하느님이면 서도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유혹의 상황을 만 났다.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는 거짓 메시아 사상을 수용하라는 유혹을 받았다. 그래서, 사 람들이 억지로라도 왕으로 삼으려는 것을 눈치채고 혼 자 산으로 피하였다(요한6, 15).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 파 사람들이 예수에게 표징을 요구하지만 단호히 거절한 다(마태 12, 38-40). 예수가 받은 최후의 시련은 죽음을 앞둔 게쎄마니 동산에서 있었다. 여기서 그는 혹독한 죽 음과 고통 앞에 선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의 모든 고 통을 분명하고 뜨겁게 체험하였다. 그는 하늘의 계신 하 느님께 애타게 울부짖으면서, 그 무서운 고통의 잔을 거두어 달라고 외쳤다. 그러나 구원 사명의 완수를 의식하여 당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겠다 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실상 그는 친히 시험을 받고 고난을 당하였기에 시험을 받는 자들을 도와 줄 수 있 다. 그렇기에 예수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죄 외에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와 마찬가지 로 시험을 받았던 것이다(히브 3, 18 ; 4, 15). 이런 유혹 은 사도 베드로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베드로는 예수 를 정치적 우두머리로 세우려는 백성의 열광에 마음이 기울어져 스승을 고통과 수난의 길로부터 떠나도록 유도 하였다(마르 8, 31-33). 예수가 겪은 유혹 중 공생활을 시작하는 처음과 십자 가에서 죽는 마지막 순간의 유혹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먼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광야로 간 예수에게 일어난 유혹들은 그의 사명과 결부되어 있다(마태 4, 110 : 마르 1, 12-13 ; 루가 4, 1-13). 돌을 빵으로 변화시키라는 것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을 것 이라는 유혹은, 군중이 기대한 거짓 메시아 사상이다. 그리고 백성에게 군림하는 세속적 성공의 메시아가 되라는 유혹도 예수의 사명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세 번 째 유혹에서 "물러가라, 사탄아!" 하고 호통 치는 모습은 정치적 혁명을 열망하던 젤롯 당원들의 주장을 뒤엎는 말이다. 하느님 나라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봉사와 연대성 안에서 십자가를 통해 실현 된다. 예수는 한 번도 권능 과시용이나 자신의 인기(人 氣)를 드러내기 위해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 인간은 기 적이 아닌 감추어져 있는 은총과 구원의 신비를 이해하 고 하느님 앞에 승복하며 영광을 돌려야 한다. 광야에서 예수가 받은 유혹은 하느님으로서 인간이 된 그가 인류의 해방자와 구원자가 되기 위해 일생 동안 직면할 대결 사항을 미리 체험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악마는 예수를 여러모로 시험해 본 후 다음 기회를 노리며 떠나갔다(루가 4, 13). 여기서 다음 기회는 예수의 고난과 고통의 순간, 십자가상의 치욕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이렇게 예수는 세상의 악과 죄에 의해 엄청난 도전 과 공격을 받으면서 전 인류를 구원하였다. 예수가 겪은 극도의 고통과 죽음은 예외 없이 인류 구원의 기회가 되었다. 유혹은 하느님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악이 선의 모습을 갖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간이 유혹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 의지 때문이다. 자유의 본성은 필연적으로 유혹과 죄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유를 통해 인간은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활동과 삶을 전개한다. 인 간의 창조적 능력은 위대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언제나 죄를 지을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유혹이 늘 악한 것은 아니며, 인간 생활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윤리적이고 영성적 생활의 성숙을 위해 때 로는 고통과 시련이 교육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고통을 동반한 여러 난관들은 덕행과 완덕 연마, 인간적 성숙, 사회 생활의 올바른 대처 능력을 키워 주고 있지만, 그렇 다고 고의적으로 유혹을 찾아 나설 필요는 없다. 크고 작 은 유혹을 확실하고 절대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보장 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이 바치는 "우리 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마태 6, 13)라는 기도의 내용은 언제나 실천해야 할 유효한 과제이다. ※ 참고문헌 《한국 가톨릭 대사전》, 1985, pp. 908~909/ B. Haering, Free and faithful in Christ, St Paul publications, 1979, pp. 388~391/ K.H. Peschke, Christian Ethics I(김창훈 역, 《그리스도교 윤리학》, 분 도출판사, 1990), pp. 409-413/Thomas Aquinas, Summa Theologica, II II ,q. 97, a. 1-3 ; q. 165, a. 1-2. 〔李容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