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렬 (1911~1~195)

柳洪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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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한국 교회사 연구가. 세례명은 라우렌시오. 호는 혜암(惠庵). 본관은 문화(文化). 1911년 4월 19일 경기도 장단군 군내면 정자리에서 유인희(柳寅曦)와 박 윤병(朴閏秉)의 2남으로 출생하여, 1930년 경성 제일공 립고등보통학교(京城第一公立高等普通學學校, 현 경기고등 학교)를 졸업하였다. 1935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 선사학과(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1938년 3월까지 같은 대학 조수(助手)로 근무하였다. 1936년 9월 명동 성당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보좌 신 부에게서 세례를 받아 천주교로 개종한 유홍렬은 1938 년 4월부터 동성상업학교(東星商業學校) 교사로 재직하 다가 해방을 맞았다. 1945년 10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교수로 취임한 그는 1947년 7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 학 사학과로 옮겨 1966년 8월까지 봉직하였다. 그간 문리과대학 문학부장 · 의예과 부장 · 교양과정부장을 거쳐, 4 · 19 직후인 1960년 7월부터 2년 동안 교무처장 을 맡아 상과대학 학장 서리 · 총장 직무 대리 등을 겸하기도 하였다. 또 한국 전쟁 중에는 공군에 입대하여 정훈 감(政訓監)을 거쳐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1956년부터 1년 간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963년 서울대학교에서 <고종 치하 서학 수난의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 9월 대구대학교 학장으로 부임하였고, 1968년부터 1976년까지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대학원 원장과 총장 직무 대리를 역임한 바 있다. 1974년부터는 인하대학교 초빙 교수로 있었다. 국사 편 찬위원회 위원(1955~1982)과 학술원 회원(1960~1995)으 로 오래 재임하였으며, 진단 학회(震檀學會)와 한국 사 학회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국제 동양 학자 회의와 천주 교 평신도 회의 등 각종 국제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였고, 산악 등반에도 조예가 깊었다. 문화 훈장 민국장을 비롯하여 3 · 1 문화상 학술상, 학술원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1995년 6월 14일 선종하여 경기도 남양주시 선영에 안장되었다. 교회 활동으로는 혜화동 성당 총회장 · 한국 가톨릭 지 성인 단체 연합회장 · 한국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중앙 협의회장 · 새남 클럽 회장 · 한국 정의 평화위원회 위원 장 · 성 라자로 마을 돕기 회장 · 천진암지 성역화 추진위 원회 부위원장 ·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업위원 회 임원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그는 초대 평신도 사도직 중앙 협의회 회장 재임 시절 주교단에 건의하여 평신도 의 날' 을 제정하게 하였으며, 103위 복자의 시성 운동에도 앞장서 왔다. 특히 그는 한국 천주교회사의 연구에 매진하여, 1949 년 《조선 천주교회사》 상권을 발간했고 1962년에 《한국 천주교회사》(증보판, 상 · 하권, 1975)를 출판했다. 《이누갈 다전》(1955), 《고종 치하 서학 수난의 연구》(1962), 《한국 천주교 소사》(1971), 《한국의 천주교》(1975) 등 교회 사 관계 저술이 있고, 그 밖에 《조선 독립 사상 사고》 (1948), 《한국 문화사》(1950) 《한국 근대화의 여명》 (1971), 《한국 사회 사상사 논고》(1980) 등의 저술과 《나의 인생관》(1971) 등이 있다. ※ 참고문헌  유홍렬, 《한국 천주교회사》, 가톨릭출판사, 1962(증보판, 1975)/ 《柳洪烈博士華甲記念論叢》, 探求堂, 1971/ 《史學研究》 五人惠庵與洪烈博士古稀紀念論叢) 한국사학회, 1983/ <가톨릭신문> 1995. 6. 25/ <평화신문> 1995. 7. 2. [崔起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