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도포 본당

六道泡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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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교구 소속 본당. 1923년 만주 간도성 훈춘현 육 도포촌에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에는 원산교구 소속이었으나 1928년 7월 19일 연길교구 소속이 되었으며, 주보는 성 안드레아. 훈춘(琿春) 지역에는 1905년경 복음이 전파되었고 1907년 이 지역의 주민 13명이 원산(元山) 본당의 브레 (Bret, 白)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고 교우촌을 형성한 이 후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와 라리보(Laribeau, 元) 신부의 순방을 받았으며, 1909년 다시 100여 명의 영세자가 탄생함으로써 7개의 공소가 설립되었다. 1920년 8 월에는 원산교구가 서울교구로부터 분리 · 설정되었으 며, 이듬해 3월 간도 지역은 함경도 지역과 함께 성 베네 딕도 수도회에 위임되었다. 원산교구에 편입된 이후에도 마적들의 습격 등으로 여전히 어려움을 겪었지만, 용 정 · 팔도구 · 삼원봉 본당의 교세는 계속 확장되었다. 이에 사우어(B.Sauer, 보니파시오) 주교는 1922년 연길 하 시 본당을 설립한 데 이어, 1923년에는 육도포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팔도구 본당에 있던 퀴겔겐(C. Kügelgen, 具) 신부를 임명하였으며 뱅거(M. Bainger, 方) 신부를 보좌로 임명하였다. 퀴겔겐 신부는 전교와 교육 사업을 병행하여 교세를 발전시켰다. 1924년 훈춘 본당을 분리, 독립시킴과 동시에 퀴겔겐 신부가 훈춘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자 보좌이던 빙거 신 부가 2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고, 1926년에는 3 대 주임으로 되르플러(E. Dörfler, 鄭) 신부가 부임하였다. 1929년 4대 주임으로 부임한 트라버(H. Traber, 馬) 신부 는 성당을 증축하고 해성학교를 설립하는 등 본당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마적과 공산군의 빈번한 침략으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1932년 신부 주재소를 함경 북도 경흥(慶興)으로 옮기고 전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육도포 본당 관할 지역은 훈춘 본당 관할이 되 었다가, 1934년 성당과 사제관이 공산군의 침략으로 전 소되자 본당은 폐쇄되었다. (→ 연길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청년》 41호(1936. 10)/ 부산 성 베네딕도 수 녀원 60년사 편찬위원회 편, 《은혜의 60년》,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 원, 1995.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