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13장 18절에 언급된 하느님을 모독하는 '짐승의 수 . [성서에서의 언급] 666이라는 수를 문자로 풀어 쓴 형 태로는 시나이 사본(א, 여성형으로 나옴), 알렉산드리아 사본(A, 남성형으로 나옴), 레닌그라드 사본(P)과 그 외 약간의 사본(중성형으로 나옴)에서, 그리고 숫자 형태로는 일부 사본(P⁴⁷ , 046)에서 나오고 있다. 반면, 616이란 숫 자로 쓰여진 사본들도 있는데, 문자로 풀어쓴 형태 (ἑξακόσιοι δέκα ἕξ)로는 에프렘 이중 사본(C)과 소문자 사본 11(여성형으로 나옴), 그리고 이레네오(Irenaeus, 130~200)가 알고 있던 문헌들이 있다. 반면, 숫자 형태로 는 소문자 사본 5에 쓰여져 있는데, 소문자 사본 5와 11 은 분실되었다.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이 숫자가 짐승의 수라고 말하며, 하나의 상징적인 숫자로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 을 알아듣는 데는 지혜가 필요하다(18절)고 말한다. 그 렇기에 저자는 영리한 사람은 그 짐승을 가리키는 숫자를 풀어 보라고 하면서, 그 숫자는 사람의 이름으로 666 (일부 고대 사본에서는 616)이라고 한다. [해 석] 이 숫자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 당시 이 묵시록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즉시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에 대한 해석의 열쇠는 아주 이른 시기에 잃어버렸다. 이 숫자의 열쇠를 찾기 위한 시 도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가 있을 것이다. 독자의 지혜에 의해서 밝혀지게 될 어떤 이름을 나타낸다고 보는 이론들 : 2세기의 이레네오 시대 이후부터 학자들은 전체 수치가 666과 동일한 이름을 찾아내기 위해 히브리어는 물론 그리스어 문자의 알려진 모든 수 치를 동원하였다. 그들은 율법 학자들에게 '게마트리아 (Gematria, 기하학을 가리키는 희브리어)로 알려진 체계를 요 한이 사용한 것이라고 추론하였다. "지혜로운 자" (13, 8) 만이 문제의 그 이름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이 바람직 하게 여겨졌던 시대에 그 체계는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에 의해 즐겨 채택되었다. 이레네오가 전하는 이러한 시 도들은 다음과 같은 추론들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666과 616 중 666이 묵시록의 저자가 본래 사용한 숫자이며 이 수가 기리키는 이름은 "에우안타스" (εὐάνθας, ε=5, ὐ=400, α= 1, ν=50, θ=9, α=1, ς=200)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반면, 이 수가 "라틴"(λατεινος, λ=30, α=1, τ= 300, ε=5, ι=10, ν=50, ο=70, ς=200)을 의미하며, 로마 제국 또는 로마 황제를 나타낸다고 본다. 하지만 이 수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이탄"(τειταν, τ=300, ε=5, ι=10, τ=300, α=1, ν=50)을 의미한다고도 여겼다. 왜냐하면, 이 이름이 로마 황제 중 황제 숭배 사상을 가장 많이 강요한 황제들로 하느님의 대반역자인 베스파 시아누스(69~79) · 티투스(79~81) · 도미티아누스(81~96) 의 가문 이름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 숫자를 역사적인 구체적 인물로 보아야 한다는 시도들은 지난 수 세기 동안 많은 학자들에 의하 여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많은 해석들 가운데 주류를 이 루고 있는 것은 "네로 황제" (Neron Caesar)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름의 히브리어 자음(נרו קיסר)을 숫자로 환원시켜 그 수를 모두 더하면 666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은 일부 고대 사본에서 666 대신 616으로 쓰여진 것에 대한 설명도 된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문자 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필사자가 네로의 마지막 3(=50) 자를 라틴어 이름에서처럼 빠뜨렸기 때문에 616이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의 학자들은 《시빌라의 신탁》에서 시도한 방 법(5, 12-14)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율리우스 체사르 부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까지 황제들의 이름 첫 글자를 합친 수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666이 로마 제국 전체 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주장하였다[K(Caesar) =20, S=200, T=300, G=3, K=20, N=50, G=3, 0=70]. 둘째, 본래 숫자는 616이며, 이 수가 가리키는 것은 "카이사르는 하느님이다"(καῖσαρ θεός, κ=20, α=1, ῖ=10, σ=200, α=1, ρ=100, θ=9, ε=5, ό=70, ς=200) 또는 "가이우스 황제" (γάϊος καῖσαρ. γ=3, α=1, ϊ=10, ο=70, ς=200, κ=20, α= 1 , 1=10, σ=200, α=1 ρ=100)i 라는 주장도 있다. 셋째, 일부 학자들은 "그 짐승의 숫자를··· 어떤 사람 의 수이니" 라는 묵시록 저자의 언급은 이솝세피즘 (isopsephism, 수 값이 서로 같은 2개의 단어를 말한다)의 한 경우라고 해석했다. 즉 13장 18절의 경우에서 어떤 한 동물의 수 값과 어떤 한 사람의 수 값이 같다는 것이다. 한편 일부의 학자들은 666을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완전의 상징수 7에서 하나가 모자란 것이 셋이나 모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짐승의 숫자는 불완전한 것,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적이 아니라 인간적인 존재라고 한다. 일반적이고 확정되지 않은 성격을 지닌 상징적인 숫자로서 보는 이론 : 이러한 이론들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일부 학자들은 "인간의 수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고 결론짓는다. 둘 째, 다른 학자들은 "삼각 측정" (triangulation, Dreieckszah) 이란 체계를 사용하여 666을 해석하였다. 이들의 해석 에 의하면 666은 1에서 36까지의 수를 합한 합계와 같 으며, 36은 또한 1에서 8(반그리스도의 수 ; 참조 17, 11) 까지의 수를 합한 수이다. 그러므로 8과 666은 곧 예수를 반대하는 자로 예수보다 열등한 자를 의미한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예수란 그리스어 이름의 각 철자가 지니고 있는 숫자를 합하면 666보다 큰 888(Ἰησοῦς, Ἰ= 10, η=8, σ=200, ο=70, ῦ=400, ς=200)이 되기 때문이다 (《시빌라의 신탁》 1, 325 참조). 그런데 묵시록의 666(혹은 616)이란 숫자에 대해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숫자가 상징하는 인물을 알아보려고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이 숫자를 역사적인 인물이나 동시대의 인물과 동일시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한때는 '무함 마드' (Muhammed, 571~632)라는 이름을 짐승의 숫자에 맞추기 위해 '마오메티스' (Maometis)로 바꾸기도 하였 다. 그리고 때로는 무슬림들, 사라센인들, 그리고 터키인 들도 이 짐승과 동일시하기도 하였다. 한편 종교 개혁 이 후 많은 사람들은 교황 제도를 반대하며 교황을 666이 라고 하며 비난하였다. 또는 알파벳의 숫자를 임의적으로 만들어 자신들이 원하는 적들에게 이 숫자를 적용시 켰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케플러(J. Kepler, 1571~1630)는 독일의 알파벳의 시작을 100으로 계산하여, A=100, B=101, C=102 등으로 계산하였다. 그래서 666은 히틀러(Hitler, H=107, I=108, T=119, L=111, E=104, R=117)라고 하였다. 그 외에도 이러한 시도들은 루터 (M. Luther, 1483~1546) · 칼뱅(J. Calvin, 1509~1564) · 나폴레응(Napoléon I ,1769~1821) 등에게 거론되었다. [의 미] 요한 묵시록에 나타나는 모든 숫자들은 수의 양을 나타내기보다는 수의 질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 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24명의 원로, 일곱 봉인, 144,000명, 마흔두 달, 두 증인, 일곱 머리, 열 개의 뿔 등이다. 특히 666의 환시는 자신들의 이마에 그리스도 와 하느님의 이름을 받은 144,000명의 환시가 뒤따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의미가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 지를 더욱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숫자는 하 느님 백성의 상대적 개념으로 악마의 이름을 간직한 사람들을 나타내고 있는 상징적인 수이다. 이 숫자는 요한 묵시록 11장 2절의 "마흔두 달과 같은 상징적인 숫자 로 알아들어야 하는 것이다. "마흔두 달" 즉 3년 반이 다니엘서에서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기원전 175~164)에 의한 시련의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다니 7, 25 ; 9, 27 ; 12, 7. 11-12 ; 참조 : 1마카 1-3장 : 2마카 5장 ; 요 세푸스, 《유대 전쟁사》 1, 19 ; 5, 394). 하지만 그 후 성서에 서 이 숫자는 상징적인 의미로 종말론적인 시련의 시기 를 의미하였다(루가 4, 25 ; 야고 5, 17 참조). 이와 마찬가 지로 묵시록에 나타나는 짐승의 수 666(616)도 묵시록 이 쓰여질 당시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인물을 상징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묵시록을 읽는 현대인들에게 이 숫자 는 묵시록의 다른 숫자들처럼 상징적인 의미로 알아들어 야 한다. 즉 하나의 상징적인 숫자로써 그리스도의 이름 을 간직한 사람들인 참된 신앙인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당시 묵시록의 상황과 같이 우리들을 주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 놓는 어떤 것, 인물이건 사물이건 모두 666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요한의 묵시록) ※ 참고문헌 R.J. Bauckham, Climax ofProphecy : Studies in the Book of Revelation, Edinburgh, Clark, 1993/ W. Bousset, Die Offenbarung Johannis, Göttingen, 1906/ R.H. Charles,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St. John II , ICC, Edinburgh, Clark, 1920/ A.Y. Collins, The Apocalypse(Revelation), The New Jerome Biblical Commentary, Englewood Cliffs, Prentice-Hall, 1990, pp. 996~1016/ -, Numerical Symbolism in Jewish and Early Christian Apocalyptic Literature, 《ANRW》 II -21-2(1984), pp. 1221~1287/ G.A. Deissmann, Lightfrom the Ancient East, New-York, Hodder and Stoughton, 1908/ J. Roloff, Revelation, Minneapolis, Fortress, 1993/ 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I, New York, Scribner, 1882/ S.J. Scherrer, Singns and Wonders in the Imperial Cult : A New Look at a Roman Religious Institution in the Light of Rev. 13, 13~15, 《JBL》 103(1984), pp. 599~610/ H.B. Swete, The Apocalypse ofSt. John, London, 1906. [閔丙燮]
육백육십육
六百六拾六
[그]ἑξακόσιοι ἑξήκοντα ἕξ · [라]sexcenti sexaginta sex · [영]six hundred and sixty six
글자 크기
9권
